[자전거 유럽 일주기] 미친여행 CHAP2_33 보스니아 - 전쟁의 상처 | 터널 박물관, 참혹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온 그들의 아픈 이야기

in #kr-travel6 years ago (edited)

33. 전쟁의 상처

2011년 9월 6일







오늘은 터널 박물관을 가 보기로 한다.

글쎄, 왜 터널 박물관일까? 만나는 사람마다 다들 터널 박물관을 가라고 성화다.
딱 봐도 터널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박물관인 것 같은데 뭐가 신기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호스텔에서 지도를 받아 대강의 위치 설명을 듣고 출발한다.
도심에서 꽤 떨어진 곳이다.
하지만 교통비를 쓰기는 아깝고 또 가기도 번거로워서 난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한다.

“혹시 터널 박물관까지 자전거 타고 갈 수 있나요?”

“좀 멀지만 괜찮아요. 그런데 사라예보 밖으로 벗어납니다.”

“어디길래 그래요?”

“부트미르라고 조그만 도시가 있어요. 여기서 한 10km 정도?”

실제로 가보니 좀 멀리 가기는 하다.
하지만 부트미르Butmir까지는 이정표가 잘 되어있는 덕에 찾아가기 매우 쉽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곳은 유명한 명소임에도 불구, 박물관까지의 이정표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난 부트미르 마을 안에서 얼마나 길을 헤맸는지 모르겠다.

설상가상으로 아예 물어볼 사람도 없다.
마을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
거리 이름을 찾아서 가는 수밖에.

박물관의 거리 이름을 찾느라고 마을 안에 있는 모든 길을 다 찾아본 것 같다.
그러느라 시멘트 공장 곁에도 갔었고, 이상한 흙길도 달려 보았다.
아마도 박물관 바로 앞이 공항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으면 찾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공항을 따라 나란하게 난 거리를 보자마자 그 거리로 들어갔고,
거리 명패를 보니 바로 터널 박물관이 있는 거리였다.



주소 제대로 안 보고 가면 이게 박물관인지 아닌 지 알 수가 없다.



터널 박물관 현판....





마을을 한 시간 헤맨 끝에 찾아낸 터널 박물관.
그런데 나를 반기는 것은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집이다.
갑자기 힘이 축 빠진다.
내가 이것 때문에 이 고생을 하면서 여기 왔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뭐가 그리 좋아서 여기를 꼭 가야 되냐고 성화인지.

겉모습부터 팍팍 구겨졌는데, 입장료까지 받는다.

“입장료 내셔야 합니다.”

“얼마요?”

“5마르카.” [4000원]

이런 도둑놈들을 봤나?





안에는 터널 만드는 도구는 전혀 없었다.
보이는 건 죄다 전쟁용품들이다.
아래쪽에는 몸을 수그려야만 갈 수 있는 아주 비좁은 터널이 있었다.

아, 여기서 터널은 산을 깎아 만드는 그 터널이 아니었다.
우리로 따지면 땅굴 박물관 정도가 더 어울리겠다.



터널 박물관의 그 터널이다. 뭣도 모르고 와서 용도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깨닫는다고 여기에 대한 인상이 더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더 실망했다.
비좁은 터널을 지나가 올라가면 강의실이 여러 개가 있다.
그 이상 아무것도 없다!
아니, 지금 이 정도로 5마르카나 받는 거야? 이 날강도들!







이곳에서 아무리 더 찾아봐도 볼 게 없었다.
그냥 나갈까?
그런데 마침 가이드들 앞에 20명 정도 앉아서
보스니아 전쟁 상황 지도를 놓고 이 땅굴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래. 이것으로라도 입장료 뽕 빼야지.

앞에 앉은 분들은 비싼 돈 내고 패키지 가이드 투어를 받는 분들이다.
난 그 뒤에 슬쩍 무임승차를 한다.
이렇게라도 아니면 입장료가 아까워서 나가지 못할 것 같다.
죄송합니다. 가이드님.

“어쩌구저쩌구 쏼라쏼라...”

...영국 영어다. 난 도저히 들을 수 없다.

다른 그룹에 가 보았다. 이 그룹도 영국 영어로 한다.
다른 그룹에 가 보았다. 아예 여기는 독일어다.
내가 들을 수 있는 그룹이 하나도 없다. 망했다.








하지만 이미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몸.
가이드 투어까지 들어야 뽕을 뽑았다고 생각한 이상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어차피 오늘 볼 것은 이게 전부인 이상
한국어, 혹은 미국 영어 가이드가 올 때 까지 버티고 있겠어.
세 그룹이 들어갔다 나왔다.
영국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다.
정녕 내가 들을 곳은 없는 것인가?



기다림에 지칠 때 쯤 또 한 그룹이 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뒤에 앉아서 듣기 시작했다.
언어는... 영어다. 이번엔 잘 들릴까?

이번엔... 들린다! 드디어 미국 영어 가이드를 찾았다!

가이드님, 죄송해요. 그냥 가면 서러울 것 같아서 좀 듣고 갈게요.
잘 하시면 팁 넣어 드릴 테니깐 쫓아내진 말아주세요.







터널 레일 규격에 맞춘 탄약수송카트






먼저 이 땅굴에 관한 영상을 틀어 주었다.
땅굴을 만드는 과정과 이용하던 사람들을 찍은 짤막한 비디오를 틀어 주었다.
노인, 환자, 그리고 전쟁 물자들을 나르는 모습들이 간간히 보인다.

이어서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사라예보는 산으로 둘러싸인 곳입니다.
당시 그 언덕은 세르비아 군이 점령하고 있었죠.
그래서 사라예보는 육지에 있는 섬과 같은 곳이었어요.

그런데 UN측에서 구호물자 수송을 위하여
공항만은 UN 영토로 설정해 달라는 요구를 세르비아 측이 수락하여
양 진영 사이에 있던 공항만은 중립 영토가 되어 있었죠.

그렇지만 세르비아 군이 점령하지 않은 산이 딱 하나 있어요.
북쪽 방향의 산인데요.
세계 1차 대전 당시, 겨울에 영하 40도 이하의 큰 추위에 이 언덕을 넘으려다가 거의 전멸한 사례 때문에
이곳만은 점령하지 않았어요.
그 산에서는 옛날 1984년에 동계올림픽 스키 경기장이 있었던 곳이었어요.
그 정도면 그곳의 추위는 알 만 하죠.

그래서 보급 물자를 들여오든지, 다른 곳에 갔다 오려면
험한 산길을 넘은 다음 공항 활주로를 가로지르는 방법밖엔 없었어요.

그 산길을 통해 물자를 들여와서 공항 활주로를 가로질러
전쟁 물자를 운반하고 사람을 만날 수 있었어요.
유일한 통로인 언덕을 운전할 때에는 세르비아 군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차의 라이트를 모두 끄고 숲속 길로만 운전해야만 해요.
들키면 바로 저격당하게 되죠.
그래서 지금 사라예보 사람들은 세계에서 운전을 가장 잘 한답니다.

하지만 그걸로 보급 물자 수송이 끝난 게 아니에요.
가장 큰 관문이 남아 있죠.
활주로를 통과해야 합니다.

북쪽의 산을 제외한 모든 고지에는
세르비아 군이 향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잊으면 안 되죠.
계속 활주로만 지켜보고 있어요.

아, 활주로를 건너는 사람을 쏘면 안 돼요.
그건 UN군 영토에 공격을 가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UN군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요.
그럼 계속 지켜봐요.
그러다가 보스니아 영토로 들어오는 순간 저격해요.
식량, 무기를 들여오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그렇게 희생되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만 명이 넘었어요.

이런 희생이 많아지자 이대로 있을 수 없다고 느낀 사령부는
고심 끝에 활주로를 가로지르는 땅굴을 기획하게 되죠.
그래서 공학자들을 초빙하여 활주로를 가로지르는 땅굴을 완성하고야 맙니다.”




투어 참가자 중 한 사람이 질문을 한다.




“그런데 땅굴의 존재를 세르비아 측이 모를 리 없잖아요?
땅굴만 부수면 모든 것이 끝나지 않나요?”





“좋은 질문이에요. 물론, 세르비아에서 땅굴의 존재를 모를 리 없습니다.
다만, 공격할 수는 없죠.
땅굴을 부수려면 활주로를 때려야 되죠.
그런데 활주로가 어디 땅이죠? UN 영토죠?
알고도 막을 수 없는 기막힌 루트를 찾아낸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땅굴 중 일부가 지금 박물관으로 개방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곳은 아버지와 아들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둘 모두 전쟁에 참전했던 용사입니다.
이 분들 덕에 제가 지금 살아있는 것이고요.

전 전쟁 당시 8살 소녀였어요.
전쟁이란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할 나이죠.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기억밖에 몰랐어요.
땅굴 덕분에 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낀 지는 얼마 안 되었어요.
그래서 이 박물관을 지키는 부자를 전 진심으로 존경한답니다.”




이번엔 자리를 옮겨 전쟁 당시 땅굴에서 사용했던 물자에 대한 설명을 계속 이어나간다.



노약자 및 환자 수송용 카트


“굴만 파고 끝난 게 아니에요. 원활한 수송을 위하여 레일을 깔았죠.
그래서 보통은 수레를 끌어 이동하게 됩니다.
아까 저 너머에서 여기로 올 때 땅굴 조금 지나 오셨죠?
서서는 절대 못 오죠? 무조건 수그려서 와야 되죠.
엄청 불편해요. 그 정도로도 불편한데 그 때는 1km를 그렇게 왔어요.
뭔가 안락의자 같은 이 수레는 어르신이나 환자를 수송하는 데 쓰인 수레에요.
가끔씩은 무기 파트들을 들여올 때에도 쓰였고요.”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농담까지 한다.




“옛날에 병사들이 피던 담배가루도 있네요.
지금도 갑 담배 대신 말이 피는 담배를 많이 피는데요,
그 당시에는 종이가 너무 부족해서 갑담배도 신문지나 이면지로 감쌌어요.
담배를 피기 전에 한 개비에 한 구절씩 보게 되죠.
그래서 전쟁과 담배 덕분에 유식해졌다는 말도 있죠.

밑에는 지금 여기엔 그 당시 구호물자로 지급되었던 비상식량을 보고 계시는데요,
여기 제가 가장 좋아했던 식량이 있네요.
전 언제나 치킨이 들어있던 7형 비상식량을 기다렸어요.”





호스텔에서, 그리고 사람들이 이 터널박물관을 추천한 건 다 이유가 있었구나.
이 터널은 단순한 땅굴이 아니라
전쟁통에서 사라예보 사람들을 살아남게 해 준 생명의 터널이었다.



이런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처음에 입장료 타령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생생한 전쟁의 증인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5마르카를 더 건네주고 왔다.



당시 사라예보 사람들의 생명의 땅, 사라예보 공항
공항이 있기에 땅굴을 팔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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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5 첫 주행 + 1_6 북한도 자전거로 달린다고?
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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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문을 선물해주신 @mimitravel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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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용하던 곳이지요? 음산하니 무서울 것 같네요 ㅎㅎ

그러하옵죠 ㅎㅎ 전쟁 때 시민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죠

스플릿에서 두브로브닉으로 남어갈 때 거쳤던 보스니아가 생각났네요. 잘 내려가다가 갑자기 국경이 등장해서 당황했었습니다. 위치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생존자가 전하는 역사의 현장,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 재밌게 잘 봤습니다! (단숨에 읽었습니다) :)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지옥에서 살아돌아오분들이라 그 심정을 더욱 더 실감나게 들을 수 있었어요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어이구... 전쟁은 무섭네요 결국 10마르카 값어치를 할만한(?) 방문이었네요

역시 스토리를 상세히 들어야 좀 뭐 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아요 ㅎㅎ

머나먼길을 자전거로 가셨는데 찾기까지 힘들어서
엄청 고생하셨을것 같아요.
그래도 미국영어 가이드를 만나서 뽕(?) 뽑으셔서 다행입니다. ㅎㅎ
땅굴 위치 선정이 정말 대단하네요.

살려고 하면 정말 뭐라도 다 하는 것 같아요 ㅎㅎ

아앗 땅굴 터널은 저는 못 가본 것 같은데!! 그런 곳이 있었군요...

사라예보 밖이라서 그럴수도...
저도 호스텔 스텝 아니었음 몰랐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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