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 일주기] 미친여행 CHAP1_38 체코 - 잠좀 자게 해달라고!! | 캠핑장에서 난데없는 몸싸움

in #kr-travel6 years ago (edited)

38. 잠좀 자게 해달라고!!

2011년 7월 4일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체코 흘루친으로 가는 길





오늘 바도비체에서 국경을 넘어 체코로 간다.

체코? 난 체코라고 하면 좀 환상이 있다.
글쎄, 프라하 하나 때문에 생긴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옛날에 드라마 때문에 생긴 환상도 있고
여행 잡지를 봤을 때 사진들이 너무 예쁜 탓이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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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 이 사건으로 체코에 대한 환상은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








어제 쫄딱 젖은 옷 다 말려 놨더니 오늘도 비가 온다.
어떻게 말린 옷인데.
많이 오진 않고 비가 왔다가 안 왔다가 한다.
하지만 6시간동안 비를 맞으면 똑같이 젖는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니 점점 구름이 걷히면서 해가 난다.
햇빛 밑에서 몇 시간 달리니 다 마르긴 하더라.




폴란드와 체코 국경에 있던 팻말





계속 달리다 보니 국경이다.
내 생각에는 국경이라면 지금은 쉥겐 조약 때문에 사라졌다고 해도
적어도 국경 검문소 자리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여기는 도로 중간에 느닷없이 팻말이 나타난다.

‘Česká republika’

아예 국경 기분도 들지 않지만 국경을 넘긴 넘었다.
날라리 국경이지만 국경은 국경이다.

화폐가 바뀌고
언어가 바뀌고
물가가 바뀐다.






캠핑장은 흘루친Hlucin에 있다.
국경에서 거기까지 가는 길도 죄다 산이다.

수많은 언덕을 넘어 캠핑장에 도착하니 다리가 저리다.
지금은 8시 반.
저녁은 못 먹었는데 마트는 모두 8시에 닫았단다.

어렵사리 캠핑장에 찾아 들어왔다.
보통은 입구에 리셉션이 있고 그 곳에서 계산을 하는데
여기는 이상하게 입구에 리셉션이 없다.

리셉션을 찾아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다.
그러다 하나 찾긴 했다.
그런데 그 리셉션에서는 돈을 받을 수 없단다.
지금 시간이 늦어서 모든 리셉션이 닫았다고.

리셉션이 운을 튼다.

리셉션: “영어 할 줄 아세요?”

나: “뭐... 그냥 약간?”

리셉션: “반가워요!
여기는 외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이라서 영어를 쓸 기회가 거의 없거든요.”

영어에 목마른 리셉션리스트였다.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지금 북한은 어떤지,
도대체 한국사람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 어떻게 찾아왔는지,
체코여자 예쁘다 등등.




재밌게 해주니 나도 재밌었고 호흡이 잘 맞아
여러 가지 친절을 배풀어 주셨다.

내 자전거의 안전이 걱정된다고 자기 방에 자전거를 주차해 놓으란다.
그리고 원래는 10시 이전에 들어와서 계산을 해야 하지만,
특별히 나는 지금 일단 자고 다음날에 계산하라고 한다.



그렇게 친절을 베풀고 리셉션은 퇴근했다.

내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잠시 큰 텐트 밑에 대피했다가
비가 잠깐 그칠 때 나와
재빨리 내 자리로 가서 텐트와 침낭을 화장실로 대피시켰다.




그 때였다.
웬 밀리터리룩을 입고
며칠동안 머리를 안감고 세수도 안 한 것처럼 생긴 사람이 나타났다.

“노노노!!”

손사래를 친다. 빨리 나가라고 하는 것 같다.

아저씨: “토이레, 토이레. 아웃! 아웃!”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나: “레인, 레인. 웨이팅, 히어, 레인, 스탑.”

몸짓을 해도 지지리도 못 알아듣는다.

아저씨: “티켓, 티켓!”

표를 달라고? 지금 내가 표가 있을 리가 없잖아.
오늘 그냥 자고 내일 끊으라는 거 몸으로 어떻게 할 건데?

나: “텐 오클락, 리셉션. 클로즈. 리셉션, 리셉션, 페이, 투마로. 레이터. 오케이?”

알아 들을 리는 없다. 벽에다 대고 떠드는 거지 이건.

아저씨: “팔로미, 팔로미.”

따라오란다. 걸어나갔다.

아저씨: “픽, 픽 디스.”

짐까지 들고 오란다. 오호라. 잠깐 비를 피할 곳을 알려주려나?

밖으로 나간다. 따라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앞으로 확 디민다!

아저씨: “유 슬립 히어!!! 디스 이즈 유어 홈!”

뭐? 지금 나 돈 안내고 잔다고 내쫓는거야?
밖에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다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 사람도 완강하게 저항한다.

그 자리에서 그 인간과 나는 서로 엉켜 몇 분간 몸싸움을 했다.
들어가려는 사람과 내쫓으려는 사람.

나: “리셉션 기브 미 슬립 히어 오케이?”

아저씨: “노노노. 꾸웨엑~~.”

이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전투다.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괴력이 밀려온다.
덩치부터 내가 잽이 되지 않았다.

키가 나보다 작았지만
워낙 부피가 큰 지라
아무리 무게를 실어 밀어도 꿈쩍도 안한다.
서로 멱살을 잡고 힘싸움을 한다.




그 사람... 딱 이렇게 생겼다





아저씨: “고 아웃! 고 아웃!”

나: “리셉션 기브...”

아저씨 “Fuck! Fuck!”

이젠 아예 들으려는 생각 자체를 안 한다.
이 답도 없는 사람. 어떻게 해야할까?

그때 머릿속에 무엇인가가 불현 듯 지나간다.
아마도 이 사람이 나를 돈 없는 사람으로 생각해서 그럴려나?

그렇다면 뇌물이라도 주면 잠잠해질 것이다.
돈이 있다고 해 보자.

나: “헤이, 머니! 머니!”

아저씨 “오~ 머니! 아이러브머니!”





아이러브머니.

이 때 들은 아이러브머니.
정말 가슴속에 오래 남는다.

계속 말이 안 통하다가 머니 한 번에 모든 대화가 다 끝났다.
(이 돈을 준 것도 아니다)
돈 없어서 안 낸 걸 그제야 알아챘는지
내 구역을 정해 주고 "페이~ 페이~"라고 하고 간다.

영어를 몰라도 머니는 아는 이 씁쓸한 세상.

아무리 돈이 중요한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다른 나라들은 이렇게 돈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보낸 곳은 없었어...
리셉션과 아까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체코가 좀 먹고 살만해 진 지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공산주의의 정신이 남아있지만
돈맛을 본 지는 얼마 안 돼서 거기에는 또 사람들이 미치죠.”

언덕 오르랴,
사람과 싸우랴
오늘 하루도 정말 피곤했다.

얌전히 밖에서 텐트치고 눕는다.
이제 더 이상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텐트는 에스토니아의 아구르가 선물로 준 텐트인데,
좋은 걸 준 것 같다. 물이 하나도 안 들어온다.

자는 동안 몸이 마르면서 뽀송뽀송해지고 있다.

텐트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자장가삼아 오늘 밤도 지나간다.




흘루친 캠핑장 들어가기 직전 저녁 어스름의 해





내일 이 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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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7 이런 곳에도 한국사람?
CHAP1_5 첫 주행 + 1_6 북한도 자전거로 달린다고?
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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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통하는 외국인이 돈도안내고 들어올려고 하니 돈안내고 도망가려고 하나 생각했나보네요.ㅎㅎ
그래도 비오는데 무조건 나가라니 너무하네요ㅎㅎㅎ

돈맛을 보게 되면 야박한 사람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앞뒤 안가리고 먹튀로 판단하는 것도...ㅜㅜ

아이러브머니... 열심히 읽다가 또 펑터졌네요 ㅎㅎ
아저씨 정말 저렇게 생겼나요 다음편이 궁금해지네요.

브라이언님 편안한밤되세요 ㅎ

몸매랑 얼굴이 완전 멧돼지였어요!!
저팔계가 계속 저를 밀쳐대서 죽을맛이었어요 ㅜㅜ

와... 진짜 당시엔 막막하셨겠지만 '아이러브 머니'에서 빵 터졌네요....ㅋㅋㅋㅋㅋㅋ 재밌게 잘 봤습니다. 팔로하고 갈게요!

감사합니다 :) 지금 대역폭이 그지라 스티밋이 메롱하더니 댓글이 두개 달리셨네요 ㅎㅎㅎ

와... 진짜 당시엔 막막하셨겠지만 '아이러브 머니'에서 빵 터졌네요....ㅋㅋㅋㅋㅋㅋ 재밌게 잘 봤습니다. 팔로하고 갈게요!

ㅋㅋㅋㅋ 아이러브머니 빵터지고 갑니다

이 세상에 돈 만한게 없죠잉? ㅋㅋㅋㅋㅋㅋ

체코 여자 예쁘다 + 아이러브 머니 ㅋㅋㅋ
제일 기억에 남는 말이었습니다. ^^
다음 여행기도 기다릴게요~

체코여자... 뭐...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ㅎㅎ

내일도 이 시간에 뵐께용 :)

체코:D!! 저도 환상있어요~!! 피렌체가 너무 좋았는데 피렌체보다 더 좋은 곳이 체코라는 말을 들어서 말이에요~ 생김새와 함께 보니 음성지원되는 것 같아요! 아이러브머니 보고 헛웃음이 훗 나네요~ 역시 석양은 언제나 옳네요~:)

좋긴 좋습니다 ㅎㅎㅎ
근데 체코는 인심에서 뒤통수 맞을 수 있죠 -_-

음성지원된다니, 정말 프린세스메이커는 훌륭한 게임 같습니다 ㅋ

ex) 영수증에 팁 안 찍어놓고 20% 팁 받기

하...
알럽머니...
세상사람들 다 똑같죠... ^-^;;;

팔로우 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 즐거운 스티밋!!!

짱짱맨도 즐거운 스티밋!!!

아이러브머니 넘 웃기네요^^

돈돈돈돈 ㅜㅜ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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