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 일주기] 미친여행 CHAP2_11 크로아티아 - 크닌의 신부님 | 라우라의 구걸문을 사용해보았다! 효과는 굉장하였다!

in #kr-travel6 years ago

11. 크닌의 신부님

2011년 8월 10일





우드비나에서 크닌Knin까지는 85km이다.
하루 라이딩 거리로 멀지도 않고 짧지도 않다.
딱 적당하다.
한 시간 내내 올라가던 오르막 빼고.

오르막을 보상하듯, 크닌 도심으로 가는 길은 계속 내리막이었다.
산을 뱅뱅 돌면서 내려간다. 자동차와 비슷한 속도로 말이다.

이 도시는 매우 한적했다. 길을 다시 내느라 죄다 갈아엎은 것 빼곤.


오늘은 성당에서 얻어 잘 생각을 해 본다.
이곳 성당은 유적으로 간주되어, 국가에서 세워주는 사적 이정표로 안내되어 있다.
성당 자체에서 이정표를 세워야 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달리다가 보이던 이정표대로 따라가 본다.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 가다보니 십자가가 보인다.
그런데 그 성당은 정문이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으며,
건물만 있고 사람이 아무도 없는, 빈 곳이었다. 제길.

어떡하지? 성당이 더 있으란 보장은 없는데?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다.
천주교가 거의 국교이다시피 한 나라에서
큰 도시에 성당은 좀 있어야지.
도심으로 가 본다.




역시나, 이정표에 다른 성당이 있다.
그렇게 찾아간 성당은 무슨 일이 있는지,
마당에 차가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필시 미사가 있을 것이다.
재워주든, 안 재워주든 일단 들어간다.
지금까지 온 길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드릴 생각이다.






다행히도 미사 초입이었다.
성당 안에는 신자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이차 있었고,
제단에는 이상하게도 수십 명의 사제들이 앉아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래도 미사의 진행에는 다를 게 없다.
지금까지 별 다친 곳 없이 안전하게 여기까지 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건강하게 이 여행 끝마치게 해주옵소서.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옆 교육관으로 몰려간다.
뭔가 폴란드 때와 비슷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점은
그 때는 이미 신부님이나 신자들과 좀 안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상태라는 것.
참 들어가기 뻘쭘하다.










계속 밖을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숨만 쉬어도 튀는 이 존재감. 누가 말 안 걸면 이제는 이상하다.

“여기서 뭐 하세요?”

“그냥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것보다 오늘 미사는 왜 이렇게 신부님들이 많죠?”

“오늘 한 신부님의 장례미사에요.
그래서 여기저기서 많이 왔죠. 자그레브, 쉬베닉, 자다르 등등에서요.”

운을 떴다. 이제 목적으로 들어가 보자.

“사실 전 자전거로 여행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얻어 자는 것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데...”

“사실 전 여기 사람이 아니에요.
이 미사 때문에 스플릿에서 왔어요.
그래서 확답을 드릴 수는 없네요.
근데 여기는 지금 보다시피 큰 성당이고, 방도 많아요. 아마 잘 재워줄 거예요.”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어떤 분이 이거 보여주면 재워줄 거라고 해서요. 이거 어때요?”

“하하하, 아래 스마일 마크가 귀여워서라도 재워주겠네요.
그나저나 지금 안에서 다과회 하는데, 들어가지 않을래요?”

“근데 전 여기에 연고도 없고 그래서 좀 그런데...”

“뭐, 까짓거, 같이 들어가요.”







안에서는 다과회 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신부님께서 날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신다.
다행히 현지인들에게 환대를 해 준다.
하지만 언어가 문제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분들이 많이 없다.
죄다 독일어 할 줄 아냐고 물어본다.

“Kannst du sprechen Deutsch?”

“Nein...”

그러면 모두 머리를 감싸 쥐고 많은 말을 하길 포기한다.
그리고 내가 알아듣든 말든 꿋꿋하게 독일어로 모든 것을 말한다.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로 들은 풍월로 조금은 알아듣지만,
그래도 뭐라고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몸동작을 보면서 때려 맞추고
아는 단어 모르는 단어 다 끌어 모아서 독일어로 말한다.

자전거 타는 시늉이라고 하면

“Ich bin hier mit dem fahrad.” (잘못된 표현일 것이다.)

이러면 손가락을 접으면서 계속 샌다.
아마도 여행 얼마나 했냐고 물어보는 것일레라.

“3 monat.” (역시 잘못된 표현일 것이다.)

고등학교 2외국어가 고맙다.
그저 단어라도 말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강점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동구권의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영어는 몰라도 독일어는 좀 말할 수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면상에 철판을 깔고 포도 주스를 얻어먹고 양고기를 뜯었다.
하지만 음식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잠자리만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하는데...
먹고 있으면서도 너무 불안하다.

다과회가 끝났다.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나는 잠자리가 해결되지 않았다.
다른 곳을 갈 수가 없다.
얻어 자든지, 아니면 길바닥에서 노숙해야 한다.

















계속 밖에서 서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신부님께서 한 사람이라도 나와야 내가 말이라도 좀 걸텐데.
계속 가방 안에 있는 종이를 만지작 거린다.
한 시간 기다리다보니 한 신부님이 나오신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얼른 달려갔다.

“익스큐즈미~”

“흠? Kannst du sprechen Deutsch?”

“어..어어어.......바이!”

그냥 말을 끊고 가려는데, 손을 내 이마에 대고 기도를 해 주신다.
소위 안수기도라고 하지.
뭐, 별 거 없는 거지만, 누가 나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준다는 것. 정말 감동적이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잘 곳이잖아.
해결이 안 됐으니 어딜 갈 수 없다.
날이 어둑해져 가기 때문에 다른 가정집을 알아보기 힘들다.
죽으나 사나 여기서 얻어 자든지 아니면 그냥 침낭에서 자야 한다.







미사가 또 있나 보다.
신도들 열 명 남짓이 성당으로 들어간다.
노랫소리가 조금 나오고 또 끝난다.
한 시간 또 밖에서 죽치고 있었다.
다시 사람들이 나온다.
이제 신부님이 나오겠구나!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안면 몰수!
무조건 말을 걸어야 한다!



신부님이 성당서 나오셨는데
신도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신다.
상담이라도 하나 보네? 아까 독일어를 하던 신부님은 아니다.
다행이다. 시도해 볼 수 있겠다.
10분 남짓 기다리니깐 상담 끝나고 신도를 보내는 것 같다.

지금이 기회다!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들이댄다. 돌격 앞으로!














“익스큐즈미!”















......















아... 쪽팔린다. 이래야 얻어 잘 수 있지만
왜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어야 하지?
신부님이 종이를 읽어보는 시간이 한 시간 같다.

“잠깐만 밖에서 기다리세요.”

하아... 질러 버렸다. 대답도 받았다.
진이 빠진다. 힘이 빠진다. 이제 이판사판이다.

10분 쯤 지났나? 신부님께서 봉지를 한 꾸러미 들고 나오신다.

“저녁으로는 이걸 드시고... 차 끌고 갈 테니 절 따라 오세요.”

어디로 가는 걸까?
왜 성당을 두고 왜 멀리까지 데러가는 걸까?
분명 나쁜 곳은 아니라 확신하지만,
불안한 것은 없지만,
일이 어떻게 돼 가는 건지는 모르겠다.

















또 다른 시내로 들어왔다.
차가 모텔 앞에 섰다.
설마 여기다가 재워준다고?
신부님이 카운터에 들어가서 몇 마디 나누더니 키를 나에게 주신다.

“여기는 저희 신도가 운영하는 모텔이고요,
값은 이미 치렀고, 걱정하지 말고 여기서 자면 됩니다.”

“네? 이렇게 까진 필요 없는데...
그저 성당에 방 있으면 재워주는 정도면 되는데...”

“괜찮아요. 오늘은 편하게 주무세요.”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 그렇다면요, 흠.. 정 은혜를 갚고 싶다면 메듀고리에Međugorje에 가서 기도를 드리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당시 모텔에서 재워 준 크닌의 신부님



크닌 요새



크닌 시내 중심을 흐르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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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10 사람의 따뜻함을 느끼다 + 노르웨이의 자연에 호되게 데이다
CHAP1_8 한국영화 많이 컸네? + 9 첫 주행, 첫 노숙, 첫 봉변
CHAP1_7 이런 곳에도 한국사람?
CHAP1_5 첫 주행 + 1_6 북한도 자전거로 달린다고?
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bryanrhee님후문2.gif

후문을 선물해주신 @mimitravel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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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까지 치러주시다니 ㅠㅠㅠㅠㅠ 감동이네요

정말 감동먹었었어요 ㅜㅜ 이런 날도 있구나.. 하면서!!!

다행이네요 정말..
세상엔 좋은분들이 너무나도 많은것같아요

세상은 아직 아름다워서 참 좋아요 ㅎㅎ
이 맛에 사는 거 같아요

신부님 인상이 좀 무시시하시네요.ㅋㅋㅋ 크닌요새라는 곳이 역사적인 곳인가보군요.

인상은 무시시하지만 매우 착한 분이고요
크닌 요새는 흠.. 그닥 역사랑은 관련 없어 보여요 ㅎㅎ

크 멋진 신부님이네요

나중에 가서 인사드려야겠어요 ㅎㅎ

혹시 천주교신거세요?? 우와.. 언제 이렇게 여행을 다니시는건가요 ㅜㅜ 부러워요. 외국 신부님 포스가.. 느낌이 새롭네요 ㅋㅋ

한국이선 성당 안 나간지 근 17년 다 되어가는 나이롱이예요 ㅎㅎ

신부님 포스가 ㅎㄷㄷ 좋으신분!! ㅎㅎㅎ 언어가 여러모로 중요한 것같아요 물론 몰라도 지장없지만 알면 얻는게 더 많으니까요 ㅎㅎㅎ

언어는 여러모로 모든 일의 근원이 되는 것 같아요 ㅎㅎ

신부님의 배려에 저도 감사하네요. ^^
이날은 몸도 마음도 편히 보내셨겠어요.
그나저나 지금이라도 제2외국어 공부를 다시 할까봐요.ㅋㅋ

늦지 않았어요!!
팟팅!!!

혹시나 댓글만달리고 보팅이 안간다면 바로바로 답을 주세요^^
더러 피곤해서 안달리는것도 있을꺼같아요

친절사신분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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