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 일주기] 미친여행 CHAP2_10 크로아티아 - SNS에 길을 묻다 | 내 길의 선배님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in #kr-travel6 years ago (edited)

언덕을 다 오르고, 내가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며








10. SNS에 길을 묻다

2011년 8월 9일





다시 나 혼자다.
그렇게 바라고 바란 동행인데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역시 만나느니만 못하다.
그래서 다들 동행을 양날의 칼이라고 하나 보다.









스플릿으로 가는 길은 정말 시원하다.
계속 직진.

오르막, 내리막, 그런 것 없다.
끝없는 평지다.

순풍까지 분다. 날아간다.
신나게 2시간을 더 달렸다.

그런데 이정표가 이상하다.
갈림길이 있는데, 스플릿 방향으로 직진하면 고속도로가 된단다.
지도엔 분명 국도로 가는 길이 있었는데.




결국 바로 앞부터 고속도로가 시작된다는 표지판이 떡 하니 붙어 있었다.
직진 이외의 갈림길은 좌회전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단 들어가 보자.








광활한 숲을 따라 철조망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몇 분 달리다 보니 장갑차가 몇 대 보인다.
군부대다.
기분이 심히 좋지 않다.

더욱 더 깊숙이 들어가니 작은 마을이었다.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그런데, 이정표에 스플릿은 없다.
왼쪽, 오른쪽을 다 가봤지만, 가다가 길이 끊겨있다.

직진하면 엄청난 언덕이 나온다.

설마 스플릿을 가려면 고속도로밖에 방법이 없는 것인가?

그럼 자전거로는 영영 갈 방법이 없는 것인가?
정말 난감한 일일세.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싶지만 지금 여기 물어 볼 사람이 없다.
밖에 나와있는 사람이 없다.




할 수 없다.
오늘 라이딩은 이걸로 마치자.
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전진할 수가 없다.








갈림길 옆에 작은 마을에는 걸맞지 않게 큰 레스토랑이 있었다.
무려 무료 와이파이까지 되는 곳이다.
이건 하늘이 주신 인터넷 검색 찬스인가 싶다.
밥값을 쓰는 한이 있어도 지금 인터넷이 너무 급하다.




지도 프로그램을 켰다.
지금 내가 가진 종이지도도 그렇고, 이 인터넷 지도도 그렇고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가는 길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어떻게 가는지는 없다. 종업원한테 물어볼까?

“스플릿 어떻게 가죠?”

“모르겠는데요?”

...대책 없다.
날은 계속 깜깜해지는데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하는구나.
내일 땡볕 밑에서 이 주위를 몇 시간동안 헤맬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SNS를 열었다.

그런데 형근형이 접속해 있다.
예전에 프라하에서 만나려다가 못 만난 분.
지금은 이미 스플릿에 가 있다고 포스팅이 되어 있었다.
다시 지푸라기를 잡아보는 심정으로 메시지를 날린다.

‘지금 스플릿에 가는 길인데
스플릿 방향으로 가면 바로 고속도로가 돼 버려서
마을로 들어갔더니 아예 길이 없네요. 도대체 어떻게 가는 걸까요?’

이 분도 이 길을 지나왔나 보다. 바로 답변이 올라온다.

‘아마도 지금 우드비나Udbina인 것 같은데요,
양 옆으로 다니면 길이 다 끊어져 있어요.
직진하면 이상하리만치 하얀 성당이 있는 언덕이 있는데
그 언덕을 넘어가셔야 합니다.’

오오오! 바로 해답이 나온다.

SNS는 그냥 친구끼리 연락이나 하고
여행이야기나 하는 용도로 쓰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여행길 선배에게 조언을 들을 수도 있구나.




‘하얀 성당 옆에 텐트치기 좋은 곳이 있어요.
그리고 계속 죽 가면
쉬베닉Šibenik, 스플릿, 두브로브닉이 연달아 나오는데
이 도시 모두 패스트푸드 체인이 있어서
와이파이가 다 터지니 정보 걱정은 안하셔도 되요.’

문제 해결!! 선배님의 조언 정말 눈물겹게 고맙습니다!!








오늘 캠핑은 레스토랑 앞에서 한다.
내가 먹던 이 레스토랑, 아무래도 기사식당인가 보다.
무지막지한 화물차, 트레일러 차들이 열 몇 대 가량 서 있다.

차 속에서 자는 사람들이 많으니 내 짐을 탐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안심하고 자도 되겠다.




그날 밤, 기적이 일어났다.

5월에서 10월 사이의 크로아티아는
절대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간밤에 비가 왕창 쏟아졌다.
그놈의 기적 덕분에 내 짐은 쫄딱 젖었다.

난 부랴부랴 베개로 베고 잔 텐트를 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자전거에 실려 있던 내 짐은 다 젖었다.
그래도 좋다.
저 언덕만 올라가면
길 찾아 헤매지 않아도 길이 나온다는 사실에
지금 오는 이 비도 즐겁다.




이 사진을 찍고 얼마 지나지않아 거짓말같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어나니 7시다.

비는 온데간데없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다시 12시의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아침으로 하나 있던 라면을 끓여 먹고 언덕을 올라갔다.

도로 공사 인부들이 나를 보고 큰 소리로 응원을 한다.
신이 난다.
언제나 응원을 받는 건 재미난다.




희망의 언덕을 오른다



언덕 위 하얀 성당!




단숨에 언덕을 넘어 내려가니
거짓말같이 이정표에 쉬베닉과 스플릿이 쓰여 있다!

형근형,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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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10 사람의 따뜻함을 느끼다 + 노르웨이의 자연에 호되게 데이다
CHAP1_8 한국영화 많이 컸네? + 9 첫 주행, 첫 노숙, 첫 봉변
CHAP1_7 이런 곳에도 한국사람?
CHAP1_5 첫 주행 + 1_6 북한도 자전거로 달린다고?
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bryanrhee님후문2.gif

후문을 선물해주신 @mimitravel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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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순기능을 11년도에 이용하셨군요 ㅎㅎ

절박하니 뭐라도 다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ㅎㅎ

와..자전거 여행은 아직 한번도 못해본건데 글을 보니까 왠지 용기가 납니다! SNS와 함께라니 생각만해도 든든하군요 :)

나중에 도전해보시는....? ㅋㅋㅋㅋ

SNS로 여행에서 길도 찾으시고 도움도 받고 ^^
진정한 SNS의 방향을 일찍 활용해나가셨네요~
그나저나 저기서 비맞고 어떻게 주무셨데요.. ㅠㅠ

이젠 뭐 자다 비떨어지는 건 이골이 나서요 ㅋㅋㅋ
마을에는 그래도 비 피할 곳이 많아 괜찮아요

크 대단해요... 하필근데 새벽에 비가 오다니요 ㅠㅠ

이젠 그러려니 하고 삽니다 ㅎㅎ

짱짱맨 태그 사용에 감사드립니다^^

최악의 경우에서는 저 차 밑? 에서 잘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아무리 노숙을 하는 상황일지라도 위험성이 크겠죠 ?

정말 대단하신 도전이에요. 자전거여행 쉽지만은 않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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