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 일주기] 미친여행 CHAP1_39 체코 - 또 하나의 프라하, 올로모츠 | 고장난 다리 | 사려깊은 여행자 | 나는 진정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가?

in #kr-travel6 years ago (edited)

39. 올로모츠

2011년 7월 4일 체코 올로모츠




1) 고장난 다리



훌루친에서 올로모츠Olomouc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딱히 높은 산은 없었는데,
끊임없는 오르막 내리막,
20여개의 언덕, 1개의 산을 넘고 나니
올로모츠에 도착할 수 있었다.

98km밖에 되지 않은 거리인데,
다리는 한 140km 달린 것 처럼 시끈거리다.




이만큼 달려서 다리는 지금 너무 시려워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호스텔이 건물 5충에 있다.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 때 마다 다리가 너무 시끈거리다.






원래는 하룻밤 자고 뜰 생각으로 스탑오버 격의 도시로 생각하고 왔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리의 상태가 말이 아니다.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하루는 더 쉬어야 겠다.

그런데 그냥 침대에 누워있을라니 너무 좀이 쑤신다.
나가긴 나가야 할 것 같다.
걸을 때 마다 너무 무릎이 아프긴 하지만.






체코는 두 개의 왕국이 있었다고 한다.
프라하를 중심으로 하는 보헤미아 왕국과
올로모츠를 중심으로 하는 모리비아 왕국.

내가 가는 길에 들렀다 간다고 생각했던 이 도시가
알고 보니 이렇게 유서가 깊은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구시가지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다리에서부터 올라오는 통증을 인내하며
모리비아 왕국의 돌길을 한걸음 한걸음 내딛었다.

천문시계,
전망대,
건축박물관...

그렇지만 이런 몸으로 이리저리 걷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일치감치 호스텔로 들어와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소식을 듣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와 무섭다!! 올림픽 개막일에 올림픽 유치 성공일 이야기를 올리다니


올로모츠 성당 꼭대기에서 바라본 시가지 전경



올로모츠 중앙 광장





올로모츠 천문 시계. 프라하에 있는 것들은 대부분 올로모츠에도 똑같이 있다.




2) 사려깊은 마이클





호스텔에 마이클이라는 손님이 들어왔다.
오늘 들어오신 건 아니고,
며칠 전에 오셔서 당일치기로 아침 기차를 타고 조금 멀리 갔다 오셨단다.

마이클은 여기 올로모츠에 반해서
1년에 한 번씩,
10년동안 여기에 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알건 다 알고 있다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다리가 좀 나아진 듯 싶다.
이제 좀 기동력이 되서 마이클과 같이 돌아다녔다.

대학 카페 마당,
성당 밑에 있는 고문도구와 성인 순교지...


그리고 카페로 들어갔다.
점심 주문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리셉션을 보던 크리스가 온다.
그래서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놀아 보았다.








마이클은 정말 사려가 깊다.

난 영어가 짧다. 이들의 총알 속사포 현지인 영어를 도저히 듣고 쫓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호주인 마이클과 영국인 크리스하고만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에서도 마이클은
내가 끼어들 틈을 만들어 주려고 여간 애쓰는 것이 아니다.

둘이 열심히 이래저리 이야기를 하다가도 불쑥 내 이야기를 꺼내는 마이클이다.

"이제 브라이언은 동유럽까지 간다고."

그럼 잠시나마 내가 입을 열고 말할 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면 루트를 알아봐주느라 둘이 열심히 말한다.

"여기에 산이 있고.. 여기가 좀 마을이 예쁘고.."

"그런데 여기 루트에 산이 많아서 좀 가기 힘들꺼야.."

그러다가도 내가 조용하다 싶으면 또 말할 거리를 꺼내준다.

"남쪽까지 다 찍고는 어디로 가?"

이렇게 두 사람은 내 동유럽 루트를 검토를 해 주고
동유럽이 절대 위험하지 않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노숙만 하지 않으면 절대 위험한 동네가 아니라고.


이런 집에서 살아보고픈 로망이 좀 있다






3) 의외의 곳에서 만나는 한국사람



크리스가 귀띰을 해 준다.

“우리 뒷 자리에 우리 호스텔 손님인데, 한국사람이다.”

그래? 말이나 걸어 볼 요량으로 다가갔다.
아니나다를까, 정겨운 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이 부부는 차를 렌트해서 유럽을 도는 분이시다.
참, 돈 있는 분들은 씀씀이와 스케일이 다르다.
핀란드에서부터 차를 타고 오셨단다.

난 항상 도로를 달릴 때 마다 내 옆을 지나가는 차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는데,
그래서 다음에 이렇게 여행할 일이 있다면 항상 렌트카 여행을 꿈꿨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바로 옆에 있으니 부러운 마음이 더욱 더 커져만 갔다.

알고 보니 두 분은 내 고향 옆 동네에서 사시는 분둘이셨다.
그래서 더욱 반가운 분들이시다.
여행을 다니면서는 커녕 서울에서도 충청도 사람들은 만나기 너무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이 분들도 나에 대해 더욱 더 애착이 가는 듯 하신다.
내일 프라하에 가신다고 내가 원하면 프라하까지 태워주신단다.
그렇지만 난 지금 자전거를 끌고 있어서 실을 수도 없을 뿐더러
난 오늘 빨리 프라하에 가야 한다.

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빨리 길을 나서려고 하는데, 갑자기 나를 불러세운다.

"얼마 되진 않는데 이거 가지고 차비에 보태 쓰세요!"

그러시면서 무려 400코룬을 내 손에 쥐어주신다.









4) 나는 진정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가?



프라하로 가는 기차 안



가벼운 마음으로 짐을 챙기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 다리로는 절대 프라하까지 못 갈것 같아서다.

표를 끊어보니 내 몸은 310코룬이고, 자전거는 45코룬이었다.
기차에 타 보니 무려 6인실 방으로 들어가란다.
그 곳에 자전거를 주차해 놓고 나 혼자 쓰고 있다.

기차에서 한참 생각을 한다. 여행 전에 내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 놨으면 좀 그런 것 좀 써 먹고 다녀봐."

올로모츠에서 프라하까지 250km다. 자전거로는 3일이요, 기차로는 3시간이다.







계속 마음이 찝찝하다.
자전거 여행에 기차를 얹었다는 죄책감이 든다.

내 자신의 약속을 저버리고 지금 몇 km째 차를 탔고
교통비로 지금 얼마째 날린건지,

지금 이렇게 여행해 놓고서
자전거 여행이라는 타이틀을 너에게 붙일 수 있겠는지, 등등.

어디 가서 이 여행을 자전거 여행이라고 했다간
여기저기서 얻어맞을 것이라는 것 등등.




자기 합리와도 해 본다.
애초에 주파가 목적도 아니었는데
왜 나 혼자 힘든 목표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끼워 맞추느라 고생하는지,

가장 큰 목표는 여러 문화와 사람을 만나면서 세계를 넓히는 건데,
차 조금 탄다고 여행에 흠집냐는 등등






뭐가 맞는 여행일까? 두 마음이 싸우고 있다.




Praha Hlavni Nadrazi

결론도 못 내리고 싱승생숭한 마음으로 프라하에 도착해버렸다.



프라하로 가는 기차 안



프라하 중앙 기차역







다음 주 이 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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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8 한국영화 많이 컸네? + 9 첫 주행, 첫 노숙, 첫 봉변
CHAP1_7 이런 곳에도 한국사람?
CHAP1_5 첫 주행 + 1_6 북한도 자전거로 달린다고?
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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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면 뭐 기차 탈 수 있죠 ㅎㅎ 무사히 여행하는게 그래도 최종목표 아닐까요 무리해서 몸 상하면 손해입니다 ㅋㅋㅋ

이러니저러니 해도 무사귀환이 가장 최상의 답이었던 것 같아요 ㅎㅎ
다행히도 무사히 돌아왔고요 ㅋ

Here's some stories of Olomouc in Czech

사진 분위기 너무 좋네요 저도 내년여름 유럽여행 계획중이에요!🤔

뭐 아직 한참 남았네요 ㅎㅎ
천천히 즐겨주시고 꼼꼼하게 짜시면 되겠습니다 ^_^

다리가 도저히 걸을수 없는데 쑤셔서 걸으시다니 ㅎㅎ 프로 여행꾼이네요 ㅎㅎ

괜히 자유로운 영혼이것습니다 ㅎㅎㅎ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여행을 참 좋아하시나봐요 부럽슴다^^

좋은사람들 만나셔서 다행인거 같아요 인복있으신 브라이언님^^ 두마음중 결론이 다음편에 나올지 궁금하네요.
좋은밤되세요^^

여행 끝까지 가도 절대 결론은 나지 않습니다
이 나이 먹고 나서야 결론이 났죠 ㅎㅎ

너무 힘들면 잠시 외도를 해도 괜찮죠ㅜㅠ
여행중 친절한 마이클과 한국분을 만나셨군요
낯선곳에서의 만남은 여행의 활력인듯 해요
잘 보고 갑니다^^

무슨 회사 굴리는 것도 아니고, 저 좋아서 가는 여행인데
그렇게까지 목표에 집착해봐야 제 목만 조르는 것이더라고요

체코는 천문시계가 다 저렇게 멋진가봐요. ^^
저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천문시계만 봤는데
인형도 그렇고 비슷한 느낌이네요~

그래서 친근하고, 그런데 조용하고
그래서 참 좋았던 곳이예요 :)
다음에 체코 가실 일 있으면 올로모츠 지나가보시는 걸 추천!

제 눈에는 기차역이 왜 이렇게 멋져보일까요.ㅎ

좀 으리으리하죠? ㅎㅎㅎ
보면 우리나라가 참 시스템 좋아보여요
이 친구들은 서울역이랑 비슷한 트래픽 굴리면서도 플랫폼은 20~30개 먹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열몇개 남짓으로 그 많은 스케줄들을 다 처리하니깐요 ㅎㅎ

그래도 자전거여행기라고 이름 붙이고 수기를 쓰는건 그만한 목표를 이루셨다는 거겠죵?? 커밍쑤운..

지금은 그랬는데 옛날만 해도 참 머뭇머뭇했던 시절이 있었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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