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 일주기] 미친여행 CHAP1_22 에스토니아 - 늪지대 오지체험 11일 | 동양인은 봉이다

in #kr-travel7 years ago (edited)

22. 동양인은 봉이다

2011년 5월 22일





엊그제 비 때문에 못 잔 선잠까지 다 잤다.
잠은행에서 대출했던 잠은 다 갚은 것 같다.
일어나 보니 아르보는 벌써 시내로 출근했다.

오늘은 어제 약속한 대로 빌렸던 카누를 반납하는 날이다.
출발 준비를 하려는데 아르고가 한마디 꺼낸다.

“기름 값 10유로만.”

응? 어제까지만 해도 [다 해줄게]의 말투였는데 갑자기 뭔가 바뀐 기분.

얻어 자는 입장이라 그닥 할 말은 없지만
어제는 그냥 해줄 것 같이 말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러니깐 좀 그렇다.
뭐, 그렇지만 보아하니 여기서 일하면서 겨우겨우 벌어 사는 것 같으니 뭐 그냥 살자.








차에 올라타 보니 이 친구들의 생활이 보인다.
진짜 겨우겨우 사는 듯하다.

일단, 우리처럼 기름을 꽉꽉 채우지 못한다.
그날 달리는 거리를 봐서 그 정도만 채운다.
매일매일 다 태우고 들어오니 지금 기름이 있을 턱이 없다.
카누를 반납하고 주유소로 가야 하는데 갖다 주려 가다가 기름이 떨어질 수도 있단다.

게다가 변속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시동을 끄고 기어를 넣은 다음 시동을 켜야 한다.
후진 전진을 반복할라 하면
기어를 바꿀 때 마다 시동을 끄고
기어 넣고 시동을 켜야 한다.
참 대단하다. 형편이 많이 어려운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카누를 빌렸던 카루스코세에 도착했다.
그런데 주인이 없다. 전화번호는 나한테만 있었는데
그 번호는 핸드폰에 있고, 지금 핸드폰은 죽어있다.
그 사람에게 연락이 닿은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의 보스 번호가 있는 안내책자도 놓고온 상태.
제길..

일단 여행센터에 갔다. 아무도 없다.
그런데 아르고는 내 타 들어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센터 앞에 죽치고 앉아서 그 앞에 있는 노인과 30분 동안 수다를 떨고 출발한다.




카누를 담당하는 사람 번호를 찾으려 이집 저집 전전하고 있다.
그 마을의 게스트하우스에도 갔다.
알고 보니 어제 카누 타다가 보드카를 얻어 마신 집이었다.
안면이 있으니 말 통하기 쉽겠지 하고 찾아갔는데...
집에 아무도 없다.
문을 활짝활짝 열어놓고 마실 나가셨다.
혹시나 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봤지만 나와 보는 사람 한 명 없다.

다시 딴 곳으로 간다.
차 시동을 켤 때마다 기어를 넣고 시동을 걸어야 한다.
그 때마다 시동이 걸리자마자 차가 앞으로 휙 나가는데, 그 때마다 고역이다.




얼마 달리지 않아 빌라가 나왔다.
내 느낌으로는 여기는 좀 아닌데, 아르고는 그냥 내려서 물어보자고 한다.
그냥 무작정 내려서 집 아무데나 들어가서 노크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마구마구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일!
그 집은 그 사람 번호를 알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을 받고 마르트가 돌아왔다.
3일이라 얼마인지 물어봤더니 75유로란다.
5일에 90인데 무슨 3일에 75냐고 하니깐
렌트비가 60이고, 차량비가 15란다.

지금 당장 현금으로 줄 수 있으면 60인데
카드밖에 없으니 ATM까지 왕복을 해야된단다.
그리고 그 차비를 받겠다는 것이다.

아르고가 나서서 우리들이 ATM 데려다가 주겠다고 하는데
계속 안된다고 잡아뗀다.
자전거를 담보로 맡겨놓고 가면 안되냐고 하니깐
그것도 안된다고 한다.
이건 뭐 완전히 돈 거저 벌겠다는 심보인데?
좀 미친것 같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냥 까라면 깔 수밖에.
좀 배아프지만 물어주지 않고서는 베길 방법이 없다.


대략 왕복 한 시간을 달려 돈을 뽑아다 줬다.
서로 기분이 더러워서 갈 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돈을 주니깐 그 사람 기분이 좋은지 자꾸 말을 건다.
아이스티도 주고.
역시 현찰을 받으면 모든 사람은 다 달라지나 보다.




한 시간을 갔다 오는 동안
두 형제는 누구를 기다렸다는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

우리 같으면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얼굴에 지루하다는 것이 막 쓰여 있는데.
역시 여유가 넘치는 유럽인이다.









난생 처음 개를 만져본 날


차를 갈아타고 다시 패르누에 갔다.
가는 길에 주유소에 들렸는데, 딱 10유로어치만 넣더라.
어라? 3명이서 3분의 1로 10유로 넣은 거 아냐?
왜 30유로 넣질 않지?
더치페이한게 아니고 지금 기름값 다 나한테 뒤집어씌운 건가?
기분이 조금은 좋지 않다.
그렇지만 어쩌겠냐?
호스텔서 먹고 자는 것보단 싸게 먹히고,
내가 이 친구들한테 입은 은혜가 많으니 뭐라고는 못하겠다.
많은 것을 바라지 말자.








도시에 도착해서는 큰 병원에 차를 주차하고 버스로 갈아탄다.
이 차로 도시를 다녔다간 어떤 사고를 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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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르누의 시내버스 티켓. 매우 허술하다. 나도 위조할 수 있겠다.



여기의 시내버스 가격은 64 유로센트다. 1000원정도.
우리나라만큼 대중교통비가 싼 나라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나머지 2명은 무임승차를 한다.
걸리지도 않는데 돈 써서까지 왜 사냐는 것이다.

그런데 표가 좀 허술하게 생겼다.
위조방지 장치가 많지 않더라.
그래서 실제로 이 분들 자주 위조해서 다녔다는 것이다.
언제나 돈이 원수다.








처음엔 아르고의 여자친구네 집에 갔다.
참 희한하다.
우리 생각에는 여자친구네 집 가기도 힘들텐데
이미 깨진 분 집에 가셔서 뭘 하는 건지.

그런데 알고보니 지금도 여자친구네 가족과는 가족처럼 지낸단다.
자기 친어머니마냥 대하고 집도 자기집 마냥 쓴다.
그래, 여긴 유럽이다.
한국의 상식을 들이대지 말자.

진정한 개인주의를 보고 있다.
깨진 여자 친구는 여자 친구고, 부모님은 부모님이다.
여자 친구랑 친한 것과 부모님과 친한 것은,
여자 친구랑 친해졌기 때문에 부모님과 친한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과 친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친구랑 깨져도 부모님과는 친할 수 있다.





처음 집에 들어갔을 때 날 맞은 것은...
개 두 마리였다.

그런데 나는 심각한 개 공포증이 있다.
반경 1m 이내에 개가 들어오면 일단 겁에 질린다.
그리고 안전한 곳을 찾는다.
가까이라도 오면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른다. 
개 말고 강아지여도 예외는 없다. 



그런데 이 개들은 4개월밖에 안됐다는데
크기는 집채만한것이 내 허리에 온다.
이런 개들이 내가 와서 반갑다고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면서 혀를 내밀고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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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큰 개들이다...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계속 뒷걸음질치고,
아르고는 놀라서 개를 옆으로 뺐다.
십년 감수했다.

이 때였다.

"여러분, 다 브라이언 잡아요!!! 꽉 잡아요."



아르고가 사자후를 외친다.

"괜찮아 브라이언, 물지 않아. 자 만져봐..!"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지만...
내 조그만 몸집으로는 아르고를 이길 수가 없다.

아르고의 악력에 이끌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개를 쓰다듬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커다란 개가 나의 손짓에 얌전히 주저앉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개를 컨트롤해 본 날이다.





커피를 대접받고 30분 이야기 하고 나갔는데
전 여자친구가 왔단다.

아구르는 다가가서 같이 노는데,
아르고는 마치 보기 싫은 사람 마주친 것 마냥 말 할 생각도 안하고 없어진다.
지금 여자친구를 어떻게 해보려고 부모님한테 잘 하는거 아니었어?
궁금이 치밀어 오를 때 아르고가 입을 연다.

“저 애랑 가까이 지내면 안된단다.
날 버리고 30살 남자하고 사귀고 있어.
생각이 있는애인지 없는애인지 알 수가 없어.”

설마... 돈을 보고 아르고를 버린건가?

“내가 저 애 집에 놀러갔는데, 침대에서... 둘이... 아... 생각도 하기 싫다.”

아... 아픈 추억이 있었구나. 괜한 궁금증 가지지 말아야겠다. 다칠라.






그 다음은 내 핸드폰을 고치러 간다.
그런데 AS 센터를 찾는 게 아니고 핸드폰 가게로 들어간다.
어찌된 영문이고 하니,
여기는 우리나라와 달리
가게에서 모든 회사 물건을 판매하고
개통, 수리까지 모두 담당한다.

그런데 진열대를 보니
선사시대때 쓰던 핸드폰들이 전시되어 있다.
죄다 5~10유로짜리 핸드폰이다.

여기는 대부분 우리나라마냥 한달 요금제를 쓰는 것이 아닌,
심카드에 선불로 충전해서 쓴다.

최신 핸드폰이 아닌 이상 기계를 살 땐 기계값을 거의 다 낸단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전화만 할거면 스마트폰을 사지 않는다.

폰들을 보면 한국 S사와 L사 그리고 핀란드 N사가 각각 3분의 1 정도씩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내 것은 미국 M사.
유럽에서는 거의 사라져버린 브랜드란다.
아마 수리를 한다면 1~2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부품을 주문해와야 한단다.




절망을 안고 다시 전 여자친구네 집으로 갔다.
다시 집채 만한 개와 함께 있었다.
그래도 이번엔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
한 번 도전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개에게 과자를 주는데 성공했다.
과자만 정확하게 집어먹는다.
절대 손은 먹지 않는다.




에스토니아 와서 공포증을 벌써 2개나 해결하였다.
장족의 발전이다.







내일 이 시간에 계속..

오늘은 글이 좀 난잡해 보이지만
글을 매만질 새가 없네요 ㅜㅜ


<이전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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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21 에스토니아 - 늪지대 오지체험 11일 | 핸드폰과 맞바꾼 인연
CHAP1_20 사람은 사람이 살린다
CHAP1_18 에스토니아 - 에스토니아 여자는 동양 남자를 싫어해! + 19 이젠 되는 일이 없다
CHAP1_17 에스토니아 - 오를레앙과 함꼐하는 탈린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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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15 웁살라, 너와 같은 하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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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12 욕창 터지고, 기차에 실려 가고
CHAP1_11 배낭을 털리다
CHAP1_10 사람의 따뜻함을 느끼다 + 노르웨이의 자연에 호되게 데이다
CHAP1_8 한국영화 많이 컸네? + 9 첫 주행, 첫 노숙, 첫 봉변
CHAP1_7 이런 곳에도 한국사람?
CHAP1_5 첫 주행 + 1_6 북한도 자전거로 달린다고?
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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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역시 유럽은 뭔가 다르군요ㅎㅎ
전여친의 집에 가다니...!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ㅎㅎㅎ

뇌 구성이 너무 달라요 ㅜㅜ
이해하려는 노력은 안 하시는게 좋을듯 ㅎ

그나라의 문화가 다르긴 다른거 같아요 ㅎㅎ 전여자친구집에 간다는거 자체가 전 상상도 못할거같아요 ㅎ

정말 레알 생각 회로 자체가 달라요 ㅡ.ㅡ
매우 신기할 정도로...
특히나 우리같은 가족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봤어요 ㅎㅎ

버라이어티 한 여행이네요! 그래도 기분이 좀 나쁘셨겠는데요 ㅠㅠ

여기에 쓴 겐 아니지만
중국 친구들이 워낙 현금질에 진상짓을 많이 해서
한중일 싸잡아서 우린 칭창총이예요 ㅠㅠ

ㅏㅏㅏㅏ아ㅏㅏㅏ 칭창총 ㅠㅠㅠ저도 칭챙총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있지요.

놀림받은...?

네 ㅠㅠ 옛날에 독일에서 산적이 있는데 항상 지나가면서 애들이 눈을 찢으면서 칭챙총~~~ 요러고 가더라구요! 중국인들... 뭔 짓을 한거야 ㅂㄷㅂㄷ

중국은 예나제나
왜 이렇게 하는 짓들이 민폐인지ㅜㅜ

읽으면서 저상황이 상상되네요 열도 엄청 받았겠는데요? ㅎㅎ
포스팅 잘보고 갑니당

그냥 뭐 어쩌겠어.. 하고 삽니다
다행히도 이젠 한류때문에 동양인 분류도 점점 달라질 것 같아요 ㅎㅅ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이네요
비가 옵니다~~!! 힘내세요!! 퐈이팅

짱짱맨 파이팅!!!!

오늘도 재밌게 잘보고 갑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

황당 여행이네요. 하지만 재미있습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
매우 당황스러운 여행일겁니다 ㅎㅎ
제 일이든, 주위 일이든 -_-

4개월인데 엄청 크네요!!!
개 좋아하는 저도 깜놀ㅋㅋㅋㅋ
전 여자친구 집이라....쿨하다고 해야할까요?ㅋㅋㅋ

북유럽 동유럽은 사람만 발육이 빨랐던 것이 아니므니다 ㄷㄷㄷ
빠른 발육만큼 쿨내도 덜덜 떨릴 정도로 나다이다;;;

우리나라가 대중교통이 싼거군요..ㅎㅎㅎ
50원 100원올리면 난리나는 우리나라..ㅎㅎㅎ
저도 사실 싼지는몰랐어욤..

다른 유럽 다녀보면
우리 나라 교통비에 매우 감사하게 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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