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 일주기] 미친여행 CHAP1_37 폴란드 - 요한 바오로 2세의 축복 | 초딩에게 한글 가르치기!! | 요한 바오로 2세 생가에서 겪은 따뜻한 폴란드인

in #kr-travel7 years ago (edited)

37.요한 바오로 2세의 축복

2011년 7월 3일 폴란드 크라코프에서 바도비체로 향하는 길



이제 크라코프를 뜰 시간이다.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왜 내가 가려고 하면 꼭 이런지는 모르겠다.
북유럽에서 하도 비를 많이 맞고 다녀서 이제 비라면 진절머리가 난다.
하루 쉬면 좋겠다.

하지만 쉥겐 조약에 의거, 지금 내 무비자 체류기간은 이제 한 달밖에 안 남았다.

내 미션중 하나,
잘츠부르크 음악 축제를 생각하면
기차를 몇 번 타도 시간이 빠듯할 판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돈이 없다.
이동 없이 호스텔에서 하루 잔다는 것은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서 돈을 까먹는다는 뜻이다.

많은 변수 때문에 지출이 큰지라
지금은 얻어자면서 가도 과소비인 상태다.
빨리 이동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바도비체Wadowice까지 간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고향이다.)

그런데 크라코프에서 나가는 도로는
모조리 고속도로 표시가 되어 있다.
이대로라면 나갈 방도가 없다.
들어왔던 도로로는 바도비체로 가는 길이 없다.

일단 움직이기는 해야하니깐 속는 셈 치고 다른 큰 도로로 달려 본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자전거 진입 금지 팻말이 보인다.
되돌아갔다.

다른 갈림길로 들어갔다.
이곳도 마찬가지, 자전거 진입 금지다.

정말 골치아프다.






지도나 보면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때였다.

“뭐, 도와줄 거 있나요?”

뒤에서 유창한 영어가 들린다.
파트라슈만치 큰 개를 끌고 산책을 하시던 와중이었다.

“지금 바도비체로 가야 하는데, 지금 이 도로들은 죄다 자전거 출입금지네요? 어떻게 가죠?”

“따라오세요.”

부탁한 적도 없는데 뭘 도와줄지 물어보는 이 친절.
유럽은 개인주의다, 혼자 살고 혼자 죽는다 이렇게 말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한국 사람들보다 이 사람들이 더 친절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래봐.
누가 도와주나.
도와달라고 하면 친절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서서 도와주진 않잖아.




그 분을 따라 열심히 밟았다.
개도 참 열심히 뛴다.

내가 주인님께 위협을 가하는 존재 같은지 시종일관 계속 짖어댄다.
주인이 그만 짖으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10분 정도 달리자 지도에 없는 희한한 길이 나온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T 마트가 있어요.
거기 옆길로 꺾어서 들어가신 다음에 앞으로 주욱 가시면 이 지방도랑 연결되요.
아니면 저 국도따라 올라가다가 이 지방도로 빠져도 되고, 앞으로 죽 가서 국도를 타셔도 되요.”

지금 자신이 가는 길을 틀어서까지
자기를 따라오라면서 길을 알려주는 것도 고마운데,
어떻게 갈 지 추천 루트를 여러가지 제시까지 해주시는
고객감동(?) 서비스.

난 폴란드에서 이래저래 따뜻함을 안고 간다.







추적추적 오던 비는 3시간 가량 달리다 보니 제법 굵은 비로 바뀌어 있었다.
고개를 털 때마다 헬멧에 고인 물이 쏟아져 내린다.
눈앞으로 빗물이 흘러내린다.

흘러내린 물은 일부는 밑으로, 일부는 입 안으로 흘러들어간다.
머리카락과 이마를 거친 빗물은 땀과 섞여
눈을 깜빡거릴 때 눈 안으로 들어가
마치 바닷물이 눈 안으로 들어갔을 때의 따갑고 매운 느낌을 알게 해 준다.

그 느낌이 너무 싫어서 눈에 물을 넣지 않기 위해
점점 고개가 아래로 쳐진다.

하지만 앞은 보고 달려야 한다.
손이 얼어서 느낌이 오지 않는다.
몸도 덜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페달운동으로 만들어진 열보다
빗물이 증발하면서 뺏어가는 열이 더 많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풍경을 보면서 달리는 낭만따위는 없다.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으면 페달을 젓는다'라는 목적의식.
이것 빼고는 없다.




앞에 엄청난 내리막이 나왔다.
신나게 내려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지금은 빗길이다.
속도는 적당히 즐기고 천천히 내려오려 했다.

그 때였다.
어느 정도 속도가 나와서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브레이크가 듣지 않았다!

브레이크 고무가 바퀴 림에 스치는 소리는 나지만

자전거 속도는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내달리려 하고 있었다!

빨리 멈춰야 한다!

그렇지만 딱히 감속 수단이 없다.
가드레일에라도 박아야 하는데 그것도 없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감속 수단이 하나 더 있다.

내 발로도 가능하다.

필사적으로 발을 땅에 갖다 댔다.
어떡해서든 속도는 줄여야 하는 마음뿐이다.

샌들 바닥이 땅에 긁히면서 오는 진동이 온 몸으로 퍼진다.
땅에 끌리는 소리가 정말 요란하다.
당장 지금 신은 샌들이 끊어질 듯 하다.

샌들은 끊어져도 좋다.
지금 이 곳에서 개죽음만 당하지 않으면 된다.

속도가 쉽게 줄지 않는다.
필살기를 써야 할 것 같다.
자전거를 자빠뜨리면 빨리 멈출것이다.
하지만 짐이 많은 지라 자전거가 많이 상하게 된다.
발로 더 강하게 제동을 해 보고 안 되면 해 보자.
이번에는 아예 내려 앉아서 발에 힘을 더 강하게 했다.

백여미터 미끄러져 달린 뒤에야 다행히도 겨우 멈췄다.
십년 감수했다.

비 맞은 몸에 식은 땀까지 흐르고 있었다.
잘 되던 브레이크 갑자기 왜 이러는거지?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브레이크를 보았다.
고무가 다 뭉게져 있었다.

출발 점검때만 해도 멀쩡했던 브레이크다.
비 때문에 고무가 다 갈린 것 같다.
칼을 숫돌에 갈 때 물을 부어 가는 것과 똑같은 원리랄까?




이제 빨리 가긴 글렀다.
자고로 자전거는 땀 흘려 오르막을 오르면
내리막에서 짜릿한 스피드로 보답을 받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지금은 내리막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야 한다.

짜증난다.

가뜩이나 비도 잔뜩 맞아서
빨리 도착해서 몸을 녹여야 하는데 오히려 자전거를 끌고 가야 한다니..






그렇게 꾸역꾸역 달려서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가,
바도비체에 도착했다.

너무 힘들다.
싼 숙소 찾아볼 힘이 없다.
호텔이고 뭐고 몸 뉘일 곳만 있으면 당장 들어가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다.
요한 바오로 2세 생가면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와야 할 텐데
호스텔은커녕 호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가 덜덜덜 떨린다.
비는 그쳤지만 지금까지 맞은 비 때문에 몸이 너무 춥다.




머리를 굴렸다.
요한 바오로 2세 헌정 성당 옆에는 박물관이 있었다.
그래. 박물관 구경을 하면서 몸을 녹이고
카운터한테 잘 곳을 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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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 사제 서품식때 입었던 옷이라 한다



요한 바오로 2세 박물관에 들어갔다.
성당 박물관답게 카운터에는 수녀님이 앉아 계신다.
입장료를 내려고 하는데 손이 얼어서 접히지 않고 호주머니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수녀님께서 손을 비비면서 녹이라는 시늉을 하신다.
돈은 천천히 내라고.
비에 쫄딱 맞은 생쥐가 자전거 헬멧을 가지고 와서 이러고 있으니 얼마나 불쌍해 보였을까.

박물관에 들어가니 전 ‘교황 성하’께서
생전에 쓰시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뭐, 별다른 내용은 없다.
몸을 녹이는 것이 의의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들어가서 보이는 전시품이 하나도 없었다.

다 보고 나왔다.
카운터 보던 수녀님께 잘 곳을 물어봤다.
호텔이고 어디고 아무데나 좋으니 하나만 가르쳐 달라고.

수첩을 뒤적거리시다가 주소 하나를 적어주신다.
성호경을 그어 드리고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나왔다.






적어주신 주소, 아까 길을 헤맬 때 많이 지나가던 길이다.
금방 찾겠구나.

그런데 이상하다.
번지수만 찾으면 되는 데, 이번에도 번지수 숫자가 내 목적지만 빼고 이어져 있다.
5, 7, 9 이렇게 가다가 11 없이 바로 13이 나와 버린다.

정말 난감하다.
그리고 죄다 사람사는 집만 있다.
호텔처럼 생긴 곳이 없다.




그렇게 한 30분을 헤매었을까?
지나가는 분 붙잡고 물어봤다.
자기가 그곳에 가는 길이라고 따라오란다!

그런데 따라가 보니 한참 전에 지나친 성당이다.
자라고 하는 곳이 호텔 호스텔 B&B도 아니고 성당?!
잘 곳 알려달라니깐 알아서 얻어자라고 주신 주소인가?

날 데려다 주신 분과 그 안에 계신 수사님끼리
몇 차례 옥신각신 오가고는 어느 건물에 들어갔다.

푸근하게 생긴 분께서 나를 맞아 주셨다.
건물에 어디어디 들어가니 갑자기 깔끔하고 포근한 방이 나온다!
누가 봐도 호텔급이다!
으리으리하거나 그런 건 없지만 매우 깔끔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이래서 수녀님이 이 주소를 적어 주신거구나..
누가 여기에 잘 곳이 있을 거라 생각하겠어?
하긴, 여긴 전 교황님 생가인지라 신부님들이 왕래가 많겠지?
그럴 것 같으니깐 아예 이렇게 따로 방을 만드는 게 서로서로 좋겠지?

수사님은 또 이탈리아 분이시다. 영어 못 하신다.
소통을 할 수가 없다.
할 수 없다. 몸짓으로 모든 걸 때워야지.
식사는 했는지, 수건이 필요한지,
씻어야 하는지, 샴푸랑 비누가 있는지 등등 이것저것을 다 챙겨주신다.
호텔에서나 봤던 샘플샴푸와 비누를 주고
식빵 한 더미에 치즈와 햄을 접시에 정갈하게 담아 방에 서빙까지 해준다!!
이건 그냥 호텔이다, 호텔!

이 정도면 몇 유로, 몇 즈워티라도 얌전히 내고 자야겠다.
계산은 해 놓아야지.

“얼마에요?”

“응?”

참, 못 알아들으시지?
비에 젖어 말리려고 깔아놓은 돈을 보여줬다.

기겁을 하신다.
손사레를 치면서 노노노를 연발하신다.

“프레슈토.”

프레슈토. 이시다 유스케의 자전거 세계 일주기 [가보기 전에 죽지 마라]에서
폴란드에서 버섯 파는 할아버지가
돈 안 받고 버섯을 줄 때 하던 말이었지.
웬지 모르게 뇌리에 많이 박힌 말이었지.

그 말이 신호라도 된 건가?
듣는 순간 마음 한 구석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든다.

나를 자전거 여행으로 이끈 책에서,
똑같은 나라에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플롯의 대사가,
나에게도 들린다.

그 분이 계속 자기를 가리키며 말씀하신다.

“그레고리오.”

통성명 하자는 모양이다.

“도미니꼬 사비오.”

내 세례명이다.

그 분은 손수 두 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 주시며
알아들을 수 없는 무언가를 속으로 계속 말씀하셨다.
(알고보니 안수기도라고 한다)
내 여행에 안위를 빌어주는 걸로 알아들어야지.
고맙습니다.




순례자 성당 숙소. 자전거 정비 때문에 방 안으로 들여 놓았다.
흙탕물이 튀어 먼지가 한가득이었다. 물론 떨어진 모래들은 다 청소하고 나왔다.


난 한때는 7살때부터 13살까진
7년 연속 개근한 독실한 신도였지만
중1 이후에는 선데이 크리스찬으로도 모자라
최근 몇 년간 성당 근처에 간 일도 없는 냉담자다.

하지만, 오늘은 이 일을 감사드리고자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전 세계 미사 의식은 언어만 다르고
순서나 멘트의 뜻은 똑같은지라
우리말과 비교해서 들으면 그것 나름대로 어학공부가 된다.
가령, [You may stand up.]이라고 할 때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면 [일어나라]는 뜻이다라는 식으로 알아듣는 것 말이다.
이렇게 정해져 있는 대사들은 계속 다니다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성서를 읽는 시간이나 강론 때는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정말 뭐라고 하는 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냥 멍 때리고 있다가 끝났다 싶으면 입이나 벌린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지금 그 강론은 알아들을 수 없어서
감사한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진짜로 진실로 오늘 있던 일은 감사합니다.




미사가 끝나고 모임에 껴 보았다. 정녕 내가 낄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죽 둘러봤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다른 나라 성당에 가 보면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연령대가 아주 다양하다.
어린아이에서부터 지긋하신 분들까지.

아동부, 청년부가 이렇게 탄탄한 성당은 처음 봤다.

진담 반 농담 반 섞어서 폴란드는 천주교 인구가 90%를 넘는다는데,
농담이 아닌가 보다.

내 옆에 조그마한 아이가 앉았다.
한 6학년 정도 돼 보였다.

처음에는 호기심 반, 망태 할아버지를 보는 시선 반이었다.
조금은 경계의 눈빛이 보인다.
그래도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을 계속 보다 보니 경계는 금방 풀었다.

“체슈츠Cześć”

“체슈츠”

쑥스런 인사로 시작했다.

“브라이언”

“슈체판Szczepan”

“꼬레아.”

“바도비체”

[I'm from] 안 붙여도 다 통한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 수첩을 가져가더니 자전거를 그린다.
부모님께서 귀띔해 주셨나 보다.

“로베르Rower”

이렇게 폴란드어 수업시간이 시작되었다.

숫자부터 물어봐야겠다.
간단한 숫자 정도는 알아가서
시장가서 뭐 몇 개 달라고 할 때
숫자 정도는 현지어로 해 주면 대접이 꽤 좋아진다.

1부터 10까지 죽 썼다.

‘이에덴, 드바, 트츠, 츠테리...’ [1, 2, 3, 4..]

이제 따라 읽는 시간이다.

“이에덴.”
“이에덴.”

“드바.”
“드바.”

....

슈체판이 신난 모양이다. 종이를 하나 더 달라고 한다.
이번엔 주방용품 강의인가 보다. 포크를 든다.

“비데레츠Widelec.”
“비데레츠.”

본격적으로 배우면 힘들겠지만
이렇게 토막토막 배우는 현지어시간은 참 재밌다.
나중에 여행길에 만난 사람한테 그 나라 말 써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 없더라.
[크로아티아에서 만난 에스토니아 여행자에게 내 소개를 에스토니아 어로 했더니 끼뻑 죽는다.]

“잉글리쉬.”
“잉글리쉬.”

여기도 영어를 잉글리쉬라고 하는구나.

“잉글리쉬!”
“잉글리쉬.”

따라 읽었잖아. 왜 열을 내?

슈체판이 *포크를 들고 다시 외친다.

“잉글리쉬!!”
아, 포크 영어로 뭔지 알려달라고? 나도 참 눈치는 참 없나보다.

“포크.”

지금 이놈 한국사람한테 영어를 알려달라고 하는거냐?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를 그냥 볼 수는 없지.
이제, 한글 강의 시간이다.

이놈을 적어도 글씨 생긴 것 보고 읽을 수는 있게 만들어 줘야겠다.
로마자 표기를 적어주고 읽으라고 몇 번 연습을 시켰다.
하지만 폴란드어에는 ‘ㅇ’ 발음과 ‘ㅈ’ 발음이 없다.

가르치는 데 조금 애를 먹긴 했지만 30분 연습을 시키니 어느 정도는 해낸다.
한국어를 써 주면 폴란드어로 바꿀 수는 있다.

그런데, 폴란드어를 소리나는 대로 한국어로 적는 것이 매우 힘들다.
이 아이의 이름 슈체판Szczepan을 써야 하는데 ‘ㅅ쳎ㅏㄴ’으로 쓰니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 줘야 할지 참 난감하다.

“왜 틀려? sz는 ㅅ, czep 끊어서 쳎, an은...”
분명 이 아이는 알려준 대로 쓰긴 한건데
이렇게 자음이 연속으로 나오면 ‘ㅡ’나 ‘ㅠ’ 이런 것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려주려면
머리가 깨질 것은 당연지사.
뭐라고 해줘야 할까...?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어 교습법이라도 배워서 가면 참 좋았을텐데...
계속 틀렸다고 하니 오기가 생겼는지
집에 가기 직전까지 내가 써준 로마자 변환표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오기의 슈체판, 근성의 슈체판





시간이 되어 사람들은 모두 돌아갔다.

“잠깐 시간 되나요?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네요.”

신부님의 개인적인 호기심 덕에 일대일 면담 시간이 되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아까 나를 맞아 주셨던 분이다.
그런데 옷이 아까랑 다르다. 사제복이었다!
난 그냥 일하시는 분 내지는 수사님인줄 알았는데 신부님?

“저 분 덕에 오늘 무료로 주무시네요. 행운이십니다.”

그냥 일하는 분으로 생각했던 분이
알고 보니 이 성당의 총 책임자인 큰 신부님이신 것이다.
나한테 돈 받는 권한은 그 분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
감사합니다, 그레고리오..





키 크고 젊은 신부님 세례명은 베드로라고 하신다.
베드로 신부님은 여기저기 많이 다니셨다.

“전 바르샤바에서 태어나서
신학교는 워치Łódź에서 나와
한 교구를 갔다가 이번 두 번째 임기는 여기,
바도비체에서 있게 되었네요.”

“정말 동선이 기네요?”

“그렇죠. 동선도 긴데 고향으로 갈 수가 없어요.
사제가 되면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만
죽을 때 까지 절대 자신의 출신 교구로 돌아가지 못해요.”

얼마나 힘들까?
우리나라는 몇 시간이면 어디든 갈 수라도 있지,
여기는 어디 좀 가려면 기본이 7~8시간이다.
잠깐 짬을 내서 고향에 잠깐 왔다 간다고?
여기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직 신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인제 두 번째 부임이니깐요. 고향이 정말 그립네요.”

천주교 사제는 5년마다 교구를 옮긴다.
옛날 썩었던 시절의 교훈으로,
정경 말고 종경유착의 큰 원인 중 하나는 고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그렇다.


신부님께서 짐 하나만 들어달라고 하신다.
같이 따라간 곳은 수도자 식당이다.

복도에서 문 하나만 따고 들어가면 나오는 사제들만의 공간이다.
일반 신자 출입 금지.
그렇지만 특별히 아무도 없으니 이렇게 들어와 보는 것이라고.

이곳이 아니어도 경건한 곳이지만
문을 열자마자 경건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금녀의 구역.
가끔씩 나같은 경우로 출입하는 일은 드물게 있지만
여자는 절대로 출입할 수 없다고.

영화에서 보았던 풍경이 펼쳐져 있다.
ㄷ자 형태로 되어 있는 식탁.
앞에 큰 신부님이 앉을 것이고, 나머지 자리는 신부님과 수사님의 자리일 것이다.
아주 경건한 분위기에서 기도 후 숟가락 움직이는 소리만 들릴 것 같은 식사시간.
그날 저녁도 그렇게 지나갔다.




아침이 되었다. 이제 다시 나의 길을 가야 할 시간이다.

단 하루뿐이었지만, 너무나도 행복했던 시간이다.
한국 기념품을 좀 드리고 싶은데,
급한 일이 있다고 하셔서 내가 채비도 하기 전에 나가셨다.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지엔쿠예 이... 코함 체우!
Dziękuję i... kocham cię







내일 이 시간에 계속...!

폴란드의 요한 바오로 2세 사랑



생전 모습



바도비체 큰 성당. 그 숙소와는 다른 성당이다.



...이 정도면 폴란드의 국부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사제를 넘어 주교로 부임했을 때
첫 부임 대교구였던 체우스토호바Częstochowa



어느 도시에 가도 있는 요한 바오로 2세 거리
폴란드 식으로 읽으면 '야나 파브와'다



어딜 가도 있는 물 브랜드도 '요한'이다



<이전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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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17 에스토니아 - 오를레앙과 함꼐하는 탈린 나들이
CHAP1_16 잠시 동안의 탈린 나들이, 그리고 안녕
CHAP1_15 웁살라, 너와 같은 하늘 아래
CHAP1_14 아직은 ... 말할 수 없다
CHAP1_13 그녀를 만나기 12시간 전
CHAP1_12 욕창 터지고, 기차에 실려 가고
CHAP1_11 배낭을 털리다
CHAP1_10 사람의 따뜻함을 느끼다 + 노르웨이의 자연에 호되게 데이다
CHAP1_8 한국영화 많이 컸네? + 9 첫 주행, 첫 노숙, 첫 봉변
CHAP1_7 이런 곳에도 한국사람?
CHAP1_5 첫 주행 + 1_6 북한도 자전거로 달린다고?
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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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경험 하시는군요^^
젊음이 부럽습니다.ㅎ

아직 한 번은 더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인생이 허락하지 않는군요
죽기 전에 세계일주는 해보고 싶습니다 :)

저도 모르게 경건해집니다. 정말 인복이 많으신 거 같아요ㅎㅎ많이 피곤하고 지치는 날이었을 텐데 자전거 길을 알려준 분부터 숙소를 제공해주신 신부님까지~!재밌게 보고 갑니다ㅎㅈㅎ

정말 이래저래 폴란드는 저에게 축복의 땅입니닷 ㅎㅎㅎㅎ

자전거 진짜 좋아하시는군요.. 저보다 더 광이신거같아요 전 자전거 타고 해외로 여행까진 못가봤는데 ㅠ-ㅠ 부러워요

그냥 자전거를 좀 좋아할 뿐입니다 ㅎㅎ
박스에 우겨넣고 가면 되는 거긴 하잖아요 -_-ㅋ

제겐 위쳐의 나라 폴란드인데 요한의 나라군요. 오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전국토가 요한 바오로 2세입니다

숙소에 하루 더 묵으면 돈낭비+지연이라는 생각, 비오는 날 힘들게 타는 자전거에 대한 묘사가 괜히 반갑고 좋았어요. 이런 게 여행의 민낯이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요. 브레이크 안들어서 내리막에서 겨우 멈춘 장면은 무슨 스릴러 보는 것처럼 두근거리면서 읽었네요. 별 일 없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ㅁ; 어쩌면 굳이 길을 떠난 덕에, 비가 온 덕에, 자전거가 말썽인 덕에.. 천사를 만나신 것 같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수도원에서 잠시 생활했던 생각도 나고, 순례길 걸었던 생각도 나고... 그러다보니 댓글도 이렇게 길어지고...

이래저래 모든 것은 운명이죠

😇

그런데 수도원 생활도 해보셨어요???!!!!
허허허허허
스프링필드님도.. 재밌게 인생을 즐기시는군요 ㅎㅎ
여행기들을 보면 웬지 수녀님 잘 어울릴 거 같긴 합니다 ㅎㅎ

이시다 유스케 자전거 여행기 저도 흠뻑 빠져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일 기억나는건 에스토니아 였나? 북유럽 미녀와 사랑이 빠질 뻔한 러브스토리 ㅎㅎ

자전거 여행기는 항상 흥미진진합니다

정말 엄청난 자전거 여행을 하셧군요.

나중에 자전거 세계여행을 한다면 좋은 지침서가 될듯합니다.

읽을 거리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이쿠.. 이렇게까지... 감사합니다 ㅜㅜ!
꼭 자전거 세계여행 출발해보시길!!

지금 역주행해서 보고 있는데 .. 역시 세계 어디에서나 쇼부(?)는 대장하고 보는게 주효한 것 같습니다 !!! 이런 숙소를 주님께서 예비해주시고 최고 신부님을 만나시다니

일하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큰신부님이였던 것이 매우 놀라워요 ㅎㅎ
다 주님의 뜻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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