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 일주기] 미친여행 CHAP1_8 한국영화 많이 컸네? + 9 첫 주행, 첫 노숙, 첫 봉변

in #kr-travel7 years ago (edited)
  • 사진이 없진 않지만 텍스트 위주입니다.
  • 출판해보려다가 퇴짜맞고 하드에 4년 이상 짱박아놓았다가 스팀이란 플랫폼을 보고 빛 볼 수 있을까 하고 꺼내 봅니다.
  • 이땐 미처 모르고 카메라를 똑딱이로 가져가서 화질은 매우 구립니다.
  • 자전거로 여행한 이야기지만, 자전거는 회차가 지날 수록 점점 흐려질거고 사람 사는 이야기로 초점이 점점 옮겨갈 것입니다.

08. 한국영화 많이 컸네?

2011년 5월 6일 노르웨이 베르겐



베르겐에는 맑은 날이 며칠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공항에 내려 비 맞고 온 날 빼고는 비가 하나도 오지 않았다.
맑은 하늘 아래 베르겐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그저 돌아만 다녀도 행복한 그런 느낌.




그 베르겐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들어왔다.
그런데, 내 옆 침대에 있는 아이가 나에게 호기심을 보인다.
내 자리에 널려있는 자전거 용품을 보고 누군지 얼굴을 좀 보고 싶었다고.


이름은 루시안, 국적은 독일, 20살이란다.

“그럼 넌 몇 살인데?”

한 번 유럽인의 동양사람 얼굴 견적 보는 눈 좀 봐야지.

“맞춰봐.”

“18살?”

18살이란다. 우하하하하!

“(만) 23살이란다.”

“뭐라?! 나이는 어디로 먹어?”

“아니야. 당신들이 나이를 빨리 먹는거란다..”

군대 때문에 많이 삭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난 죽지 않았어!




한국에 대해 친숙하다고 한다.
이유인즉, 한국 영화가 독일에 많이 들어왔다고.

그 중 조폭 영화가 참 재밌다는 그 아이는 그 중에서도 ‘짝패’가 가장 재밌었다고 했다.

해외 영화제에서 많이 강림하시는 박찬욱 감독과 김기덕 감독 작품들은 벌써 다 꿰고 있다고.

이래저래 이야기 하다가 밥 때가 되었다. 이번 끼니는 돈 절약을 위해 전투식량이나 먹어야지.

“너 전투식량이라고 들어는 봤어?”

“어이, 군대라고 하면 내가 치가 떨린다.”

“어디서 가지도 않은 것이. 난 2년 썩다 왔다.”

“그러니깐 이렇게 여행하는 거지.”

“안 그래도 내 여행 보고 친구들이 맨날 ‘너 군대 또 가냐?’고 그런다.”

“너 만약 책 쓰면 제목 ‘나만큼 미쳐봐’라고 해봐봐. 하하하하하하”

“군인들이 가소롭게 보이는 한 청년의 여행기. 하하하하하하”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눈 덮인 노르웨이 산을 트레킹 하라! 크하하하.”
(다음 주에 보시면.. 말이 씨가 됩니다....)

이런 것 가지고 2시간동안 같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이 일 때문에 한 때는 이 책 제목을 [그래, 나 미쳤다]로 할 까 생각도 했었다.
('나만큼 미쳐봐'가 가장 입에 좍좍 붙긴 한데, 이건 이미 임요환 자서전 제목으로 선점되어 있다 ㅜㅜ)




09. 첫 주행, 첫 노숙, 첫 봉변,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

2011년 5월 7일


이제 정든 베르겐을 떠나 송네 피오르드로 향할 시간이다.
전날 봐 놓았던 서점에 가서 도로지도를 산다.
A3 크기 정도의 도로지도가 3만원이다. 우리나라 3배 값이다.
정말 살기 좋은 나라 같으니라고.




시내에는 언제나 도로 옆에 자전거 차선이 따로 있어서 매우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

터널이 있는데
차량용 터널과 자전거용 터널, 두 개가 있는 것을 보고
‘유럽은 다르구나. 하는 감동을 먹었었지.


그러다가 30분 만에 그 생각은 무너졌다.
도로와 나란히 달리던 길이 갑자기 외딴 곳으로 가더니, 산을 타기 시작한다.
오른다... 계속 오른다...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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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르막 끝의 뷰는 꿀이다



목적지는 같은데,
차는 평평한 길을 주는데,
자전거는 자연을 느끼랍시고 산등성이를 넘는 길을 준다.
좀 편하게 도로 옆에 나란히 자전거 도로 만들어주면 어디 덧나나!



하지만 고생 끝에는 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호수!
물을 보니 바닥이 깨끗하게 다 보이니 정수 없이 먹어도 별 탈 없을 것이라 믿는다.
노르웨이 깨끗하기로 유명하잖아.
목이 타 죽을 지경이었는데 잘됐다.
호수 물을 다 마셔버릴 기세로 ‘흡입’을 하기 시작했다.

이 더운 날에도 호수의 물은 얼음장같이 차다.
물을 채우고 다시 갈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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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호수는 정말 찬란하도록 눈부셨다. 아직까지도 그 빛깔이 잊혀지지 않는다



갈림길이 나온다. 지도에 없는 길이다. 이정표도 없다.
이러면 답이 없다.

잘못 가면 이상한 곳으로 갈 위험이 있는 상황.
다행히도 멀리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뛰어 오신다.

그런데 얼굴이 새빨간 것이 마치 옆 동네에서 한 잔 하고 오신 분 같다.
이 분 믿을 만한가? 하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다. 할 수 없지, 뭐.

“송네 피오르드 방향이 어디죠?”
“저기로 죽 가면 도로랑 같이 달리거든? 그대로 죽 가면 되.”

취한 목소리가 아니다.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 믿음직스럽다. 그냥 피부가 약한 탓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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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무라카미 하루키 - 노르웨이 숲


올라갈 때 한 시간이 걸린 길을 내려오는 데는 10분이면 족했다.
그 할아버님 말씀대로 도로랑 같이 달렸다.
그런데 그렇게 달리기를 30분, 다시 갈림길이 나왔다.

오슬로 방향으로 가니 자전거 통행금지 표지판이 나왔다.
다시 갈림길로 돌아갔다.
또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마냥 기다린다. 5분 쯤 있었을까?
어떤 분께서 이쪽으로 뛰어오신다. 이젠 반사적으로 말이 나온다.

“저...저기요!” “혹시 송네 피오르드 가는 길은 어떻게 되죠?”

“여기로 가면 됩니다만, 자전거는 못가니... 흠. 이리로 가서 돌아가야겠네요.
근데 지도 좀 줘 보세요. 송네는 너무 멀고요, 둥글둥글해서 피오르드의 매력을 느낄 수는 없어요.”

“엥? 그러면 어디가 좋죠?”

“오슬로로 가는 최단거리 도로에 있는 이 피오르드,
하르당게르 피오르드Hardangerfjord는 둥글둥글한 송네와는 달리 웅장함을 보여주죠.
송네는 이제는 녹지대로 많고 해서 피오르드보다는 산의 느낌이 많이 나요.
그렇지만 하르당게르는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는 피오르드라서
바위와 눈으로만 덮여 있고 좀 뾰족뾰족 하거든요. 보시면 압도당할 것이에요.
저 같으면 거기를 가겠어요.”

바로 핸들을 하르당게르 피오르드로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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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뚫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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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뚫리는 마을



하르당게르 피요르드로 가는 길.
죽 가다보니 길가에 힘차게 흐르는 강물이 있고, 간단한 피크닉 테이블이 있었다.
앞에는 끝없는 오르막이 보였다. 올라가 보려고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속도계를 보니 110km는 달렸구나. 수고했다, 내 허벅지. 오늘은 여기까지.


노르웨이 맑은 물에 세수를 해 봤다. 머리도 감아본다.
5월 달 물인데도 엄청 차갑다. 모공이 오그라들고 두피가 좍좍 당기는 느낌이 난다.


저녁도 준비해 본다.
불을 피우고 싶지만 아직은 버너에 넣을 가스가 없으니
미리 준비해 온 발열체를 써서 물을 끓여 본다.

하지만 열이 그렇게 세지 않은 모양. 제대로 끓지 않는다.
팔팔 끓는 물은 포기하고 어느 정도 따뜻한 물로 합의를 보고 전투식량에 붓는다.
팔팔 끓는 물이었다면 10분이면 되고, 따뜻한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만,
이 경우는 근 20분은 기다려야 되고, 따뜻한 밥이 나오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비싼 돈 안들이고 한 끼를 때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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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노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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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계곡에서 미역을 감으면 두피가 수축되어 건강에 좋다



생애 첫 노숙이다. 옆에는 차가 씽씽 달린다.
그렇지만 나에게 해를 가할 차는 없는 것 같다.
처음이라는 것에 다시 여행 준비할 때 느꼈던 그 떨림이 오기 시작한다.

노숙은 어떤 느낌일까?
밖에서 침낭 하나에 의지해서 밤을 지새우는 것.
게다가 같이 잘 사람 없이 무방비 상태로 혼자 있는 것.

오늘따라 숲은 더 푸르고, 강물은 더 힘차게 흐른다.

하늘에서 구름이 몰려온다. 구름한 점 없는 하늘 가운데 위풍당당한 구름이 오니 가히 장관이더라.
노르웨이는 정말 자연의 신비로 가득한 나라인 것 같다.

여기 천혜 받은 땅에 사는 노르웨이 국민들은 자신이 복 받은 국민인 것을 알아야 한다.

눈을 감았다. 내 여행, 노숙 첫날밤이다.







갑자기 눈이 떠진다.




침낭이 축축하다.












그리고 밖의 소리가 심상치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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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낭을 열어보니 수많은 물방울이 내 얼굴을 때리고 있다.

제길!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비가 올 때에는 빨리 짐들을 걷고 지붕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던지,

아니면 길을 계속 가든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지붕 있는 곳은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면 전진이다.
수건, 신발, 배낭 모조리 다 젖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노르웨이는 자연의 신비 풀 패키지다.
여기 천혜 받은 땅에 사는 노르웨이 국민들은 자신들이 억수로 복 받은 국민인 것을 알아야 한다.






밖에 널어놓은 짐들을 부랴부랴 다 박아 넣고 우의를 꺼내 입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지금은 새벽 4시.
어제 오르려다가 포기한 오르막을 올라갔다.
그래도 근육이 쉬었다고 많이 힘들지는 않더라.


도대체 내가 여기서 무슨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여행하려고 왔지, 고생하려고 온 건 아니잖아?
문명의 이기 좀 쓰라고 할 때 들을 걸 그랬나? 온갖 잡생각이 다 난다.
깜깜한 길옆으로 쌍 라이트를 달고 다니는 차들이 마구 내달린다.
날 비웃는 것 같아.




그나저나 이놈의 오르막길은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고도가 높아지니 추워진다. 그러다가 어느새 입김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더 올라가니 녹지 않은 눈들이 간간이 보인다!
추운데 몸도 다 젖어서 열을 심하게 뺏기니 이가 덜덜덜 떨린다.

설상가상, 먹은 것 없이 달리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저혈당 증세가 온 것이다. 이대로 달리면 갑자기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




안되겠다. 지금 시간은 6시. 아침을 먹어야겠다.
가다가 민가 하나를 찾았다. 넓은 지붕과 공간이 있다.
원래는 양해를 구하고 먹어야겠지만,
지금 시간엔 양해를 구하려다가 뭇매를 맞을 듯싶다.
그냥 조용히 쭈그려서 식사 준비를 한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딱 한 팩 가져온 미군 전투식량을 꺼낸다.
뜨거운 물 필요 없다. 찬물만 있으면 된다.
발열체 내장이라 물을 붓기만 하면 알아서 끓는다.

데우는 동한 빵을 뜯어 먹는데, 손이 심하게 떨려서 빵을 뜯지 못한다.
봉지 속에 물을 붓는 것도 손이 너무 떨려 힘들었다.
뜨거운 발열체를 쓰다듬는다. 그래야 손이 녹을 것 같다.
그래도 떨림은 가시지 않았다. 본 요리 치킨 퀘사디아를 뜯는다.
말이 퀘사디아지, 전투식량 맛이 뭐, 특별할까?
손을 덜덜덜 떨면서 허울 좋은 퀘사디아를 쓸쓸히 퍼 먹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저 멀리서 트랙터 소리가 들리더니 내 쪽으로 향한다.




‘어, 뭐지?’




트랙터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어어어...?’




이 집 앞으로 들어온다.






‘어떡해....’





트랙터가 주차하려고 후진 전진을 할 때 내 얼굴을 보고 말았다.







‘죽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



<이전 포스팅>

CHAP1 런던, 노르웨이, 스웨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체코, 독일, 오스트리아
CHAP1_7 이런 곳에도 한국사람?
CHAP1_5 첫 주행 + 1_6 북한도 자전거로 달린다고?
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Sort:  

와...자전거 여행 정말 멋진 컨셉인데요?!!!저도 여행 정말 좋아해서ㅎㅎ 시간내서 시리즈 재밌게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준히 달리겠습니다 :)

사진만 봐도 좋네요.
북유럽 여행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ㅎㅎ

안녕하세요!
두 번에 한 번 꼴로 업봇 해주신 거 연재 초반부터 보고 있었습니다.
@skan 님 업봇이 없다고 연재가 중단될 일은 아니지만,
제가 2년동안 방학 버리고 학점 버려가면서 기억 복각해서 옮긴 삽질이
이제야 빛을 보는구나 하는 희망을 느끼면서
글도 다시 보게 되고, 더 고쳐보기도 하면서
셀봇 줄이고 답방 많이 가면서 뉴비분들 많이 지원할 수 있었던 건
@skan 님 업봇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업봇으로 받은 스달 일부는
첫 월급 말고 첫 주급 이벤트를 통해서
뉴비분들 양성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

아. 우연히 들렸다가 @skan 님을 여기서 만나게 되었네요! 가끔씩 글에 힘을 주시는 점 항상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힘입어 여행자들에게 유용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

와 자전거로 유럽여행이라니 대단하세요
온통 돌바닥이라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자전거 차선이 있었군요!
이런 도전적인 여행기 참 색다른 것 같아요 :D

앗 ㅎㅎ 여기에도 댓글이 있었군요

자전거 차선도 따로 있고
자전거 터널도 따로 있고
터널뚫기 귀찮으면 옆길로 언덕 넘게 만들고
자전거로 도로 달리는 사람들이 일상이라 다들 거부감 없어 하고

여러모로 자전거는 이 동네에선 천국이예용 ㅎㅎ

출판은 다시 한번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저도 수십번 퇴짜 맞았었죠^^; 누군가 @bryanrhee님의 글을 알아봐주는 곳이 있을거예요. 팔로우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근데 지금 다시 보면.. 너무 문장이 만연함을 느끼고는 있어요
하지만.. 결정만 내려주면 문장은 빡시게 만져드릴 수 있을텐데!!! ㅋㅋㅋ

천사의 손길이 한번은 오겠죠 ㅎ 저도 첫 저서는 50개 중 1곳에서만 손길이 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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