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 일주기] 미친여행 CHAP1_21 에스토니아 - 늪지대 오지체험 11일 | 핸드폰과 맞바꾼 인연

in #kr-travel6 years ago

21. 핸드폰과 맞바꾼 인연

2011년 5월 21일





얼마 가지 않아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첫 날은 오두막을 못 찾아서,
아니, 귀찮아서 노숙했지만
오늘은 제대로 된 오두막이다.

배를 대고 올라가 있긴 했는데
이게 자는 집인지, 그냥 가정집인지, 돈을 내야 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다.


251274_165805710150520_7171169_n.jpg

내가 카누를 타고 흘러들어온 오두막 앞 강



그렇게 폐인 같은 몰골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어떻게 오셨어요?”

한 분이 나오신다.

“5일짜리 카누 타고 있는데 오늘은 여기서 자라고 하네요.”

“그럼 오늘은 여기서 하룻밤 주무시는 거죠? 들어오세요.”

어떻게 왔는지, 머물려고 왔는지를 묻고는 들어오라고 하시고 커피를 타 주신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권해 주신다.





자신을 아구르Agur라고 소개한 이 분은
나보다도 더 가난하게 이곳저곳을 많이 다니셨다.

식량을 차에 다 싣고 단돈 20유로만 들고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베네룩스 3국, 독일... 등등을 다 돌아다니셨다.

잠은 숲속에서 자고, 버너는 주유소에서 트럭 기사한테 빌리는 식으로.

“그 때 우리가 먹던 게 이런 거야.”


255084_165805360150555_5967421_n.jpg

에스토니아산 수수밥. Tatar라고 한다



따따르Tatar라고 하는데, 밥 같이 만들면 된다.

포르투갈에서 나는 수수 비슷한 걸로 지은 밥이라고 한다.
그냥 밥을 먹는 느낌이다.
그런데 문제는 반찬이 있어야 밥을 먹을 텐데 이 사람들은 이 요리가 그냥 끼니다.

따로 더 차려 먹지 않는다.




더욱 나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것은

거기에 설탕을 세 스푼, 잼을 세 스푼 집어넣고



맛있다고 먹는 모습을 볼 때다.
밥에 고추장 대신 잼을 비벼먹는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 봤는가? 정말 무섭다.




이런 생각이 솟을 때 쯤 나머지 두 형제가 들어온다.

두 아이들은 날 보자마자 뭐가 그리 반가운지 내 손을 부러뜨릴 기세로 악수를 했다.
이름은 아르고Argo, 아르보Arvo다.
나보다 머리 하나씩은 큰 아이들인데 세 형제들 나이가 각각 24, 20, 19살이란다.
역시 유럽의 유전자는 월등하다.



“한국에서 왔다고? 지금 보여줄 게 하나 있는데.”

2층에 올라가서 뒤적거리더니 종이 한 장을 가지고 내려왔다.
그것은 바로...

1951년 2월 2일자, 1.4 후퇴 즈음에 연합군이 중공군을 밀고 올라간다는 기사가 나온 신문이었다!



247005_165805863483838_1118022_n.jpg

보이는가? 찬란하게 찍혀있는1951년 2월 1일!!! 덕 중 제일 덕은 양덕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창고에는 2차 대전 때 전투기 경보용으로 쓰였던 사이렌도 있었다.
손잡이를 돌려서 소리를 내는 건데, 몇 번 돌려 보니 듣기 짜증날 정도로 윙윙 소리가 난다.
정말 이 집에는 전쟁에 관해서는 없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어떻게 이런 걸 수집할 수 있는지도 신기하다.


250014_165810273483397_1603626_n.jpg

2차대전 시절 공습경보 사이렌과, 당장 총들고 나가야할 것 같은 아르고

이것 말고도.. 사진은 안 찍었지만, 옷걸이는 못 대신 M16 실탄을 벽에 박아 옷걸이로 쓴다



부엌으로 들어가서 다시 커피 한 잔을 한다.

“도대체 여긴 어떻게 왔어?”

“1박 2일 카누를 타고.”

“얼마에?”

“5일에 90유로.”

“뭣이라??? 그렇게 비싸게??”

우리나라 같으면 몇 시간 빌려도 2~3만원 나올 테고
5일을 빌린다고 하면 못해도 20만원 돈은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는 5일에 13만원도 비싸다고 하다니.

살기 좋은 나라임은 틀림없다.
뭐, 그래서 그런 진 몰라도
이 나라 사람들은 아시아 사람들만 보면 못 뜯어먹어서 안달이라고 한다.




아구르가 집 앞의 늪지대를 구경시켜 준단다.
일단 보트를 타고 강 건너로 간다.
이 보트야 말로 내가 상상하던 카누다. 노 두 개로 젓는 보트.
보트를 타고 가는데 난 무슨 모터보트를 타는 줄 알았다. 앞으로 죽죽 나간다.




이 분들은 보트가 레저의 수단이 아니고 생존을 위한 교통수단이란다.

이곳은 ‘제 5계절’로 유명한데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외에 4월이 되면 5번째 계절이 있다.

비가 억수로 와서 모든 집의 1층 높이까지는 다 물에 잠기는 물의 계절이다.



그러면 밖에 나갈 땐 무조건 카누를 타고 가야 한다.
차도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을 가다 보면 말뚝에 2010, 2011 이런 게 쓰여 있는데
이 뜻은 2010년엔, 그리고 2011년엔 5계절 때 물이 이만큼 찼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란다.

매년 4월마다 2층에 갇혀 산다는 걸 상상하면 정말 끔찍하다.




강 건너편에 다다랐다.
보통 산길을 타다가 갑자기 산길에 나무 널빤지로 인도를 만든 것이 보인다.
왜 산길에 널빤지를 깔았나 했더니 갑자기 늪지대로 바뀐다.

아구르가 길에 발을 집어넣으니 발이 땅 속으로 쑥 꺼지려고 한다.
널빤지 길을 벗어나는 순간 바로 익사라고 한다.

2차 대전 때 이걸 몰랐던 러시아군은 여기로 탱크를 끌고 왔다가 이곳에 100대 정도 생매장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끝없는 늪의 바닥엔 아직도 탱크가 원형으로 보존되어 남아있을 것이라고.


253814_165806113483813_7723601_n.jpg

사진으로 보면 그냥 땅 같지만, 나무 널판지 밖으로 나가는 순간 이 세상과는 사요나라다.


늪이 매년 1mm씩 높아지고 수심은 2mm씩 깊어진다고 한단다.
아직도 에스토니아 방위군이 이곳에서 훈련을 한다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249829_165806033483821_2686901_n.jpg

늪지대 한복판에 있는 호수



한복판에 가 보니 작은 호수 같은 것이 있다. 바닥이 훤히 보인다.
오염이 되지 않아 그냥 먹어도 상관없단다.

나도 한 모금 들이켰다. 밖은 더운데 이 물은 얼음장이다.
지금도 물이 차가운데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들어가서 수영한단다.
정말 강한친구다.

더 대단한 것은,

1박 2일 동안 식량 없이 한겨울에 생존키트만 가지고 이 늪지대로 캠핑을 간다고 한다.

정말 무섭다.




집으로 돌아오니 이 형제들이 귀가 솔깃한 제안을 한다.
여기서 더 머물다 가면 이 늪을 더 구경시켜 주고,
사례마Saaremaa 섬이나 나르바Narva도 같이 갈 수 있다고 한다.
카누 이야기를 꺼내니 그런 건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카누 반납 다 해주고 시내 가서 돈 뽑아서 주는 것 까지 자기 차로 가면 된다고 한다.




생각을 좀 해본다.
지금까지 쓴 돈을 생각해 보니 1일 5만원이 넘어가려 한다.
이럴 수는 없다. 다시 1일 3만원으로 줄이려면 여기서 필히 10일 이상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짜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제안을 수락하고 난 이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가족이 된 기념으로 먹은 첫 요리는 덤플링이란 것이다.
러시아식 만두다.
그걸 구워서 양파 맛 나는 쪽파와 사워크림(Sour Cream, 신맛이 난다.)을 곁들여서 먹는다.
밀가루 맛이 좀 많이 나긴 하지만 맛있다.
사워크림이 없으면 더 맛있을 것 같지만.


250159_165806160150475_7794936_n.jpg

에스토니아 만두(덤플링)의 비주얼. 저 위에 뿌린 에스토니아 쪽파는 바로...



254334_165805566817201_3719968_n.jpg


248529_165805506817207_2584818_n.jpg

... 이렇게 생겼다. 쪽파 끝에 작은 양파같은 것이 달려 있고, 맛은 양파맛이 난다.





저녁이 끝나고는 에스토니아식 사우나를 한단다.
이런 집구석에 어디에 사우나가 있을까 했는데,
따로 옆에 있는 집 한 채가 사우나를 하는 곳이란다.

들어가 봤더니 낯익은 아궁이와 함께 그 위에 돌들이 쌓여 있었다.
아궁이에 장작을 떼는 모습을 보니 이건 영락없는 우리나라 산골이다.

미칠 듯이 장작을 집어넣어 돌을 달구고 그 열로 돌을 달궈 공기를 뜨겁게 한다.
거기에 물이라도 부어 버리면 수증기가 목을 메우면서 갑자기 미칠 듯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물 대신 맥주를 부우면 빵 굽는 냄새가 나서 더욱 좋단다.

그렇게 몸을 달궈 땀을 쭉 빼고 나면 바로 앞에 있는 강으로 뛰어든다.
알몸군단 3형제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참 웃기다.

나머지 알몸 1은 옛날부터 찬물에 바로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 강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목욕탕에서 아무리 더워도 찬물에 잘 못 들어가던 나였다.
그런데 3형제들이 브라이언을 연호하면서 빨리 뛰어들라고 한다.
몸 식으면 더 못 들어온다고.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이걸 체험시켜준 이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에스토니아 식으로 놀자!

프로레슬러마냥 호기 있게 1, 2, 3을 외치고 입수!

근데 이게 웬일? 생각보다 별로 춥지 않다.

오히려 사우나로 열만 가득했던 몸이 개운하게 씻기는 기분이다.

한국에서 24년 동안 떨치지 못했던 냉탕 공포증을 여기 이역만리 에스토니아서 떨쳐 냈다.



이것을 몇 번 반복한 다음,
열기로 뎁혀진 물로 샤워를 하면 그날의 피로가 말끔하게 풀린다.




인생은 새옹지마랬나?
핸드폰이 터지고 암울할 것만 같던 내 여행에 이런 일도 생긴다.




247579_165805406817217_7421889_n.jpg

에스토니아식 사우나. 핀란드 사우나를 체험해봤다면 똑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월요일에 계속!


<이전 포스팅>

CHAP1 런던, 노르웨이, 스웨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체코, 독일, 오스트리아
CHAP1_20 사람은 사람이 살린다
CHAP1_18 에스토니아 - 에스토니아 여자는 동양 남자를 싫어해! + 19 이젠 되는 일이 없다
CHAP1_17 에스토니아 - 오를레앙과 함꼐하는 탈린 나들이
CHAP1_16 잠시 동안의 탈린 나들이, 그리고 안녕
CHAP1_15 웁살라, 너와 같은 하늘 아래
CHAP1_14 아직은 ... 말할 수 없다
CHAP1_13 그녀를 만나기 12시간 전
CHAP1_12 욕창 터지고, 기차에 실려 가고
CHAP1_11 배낭을 털리다
CHAP1_10 사람의 따뜻함을 느끼다 + 노르웨이의 자연에 호되게 데이다
CHAP1_8 한국영화 많이 컸네? + 9 첫 주행, 첫 노숙, 첫 봉변
CHAP1_7 이런 곳에도 한국사람?
CHAP1_5 첫 주행 + 1_6 북한도 자전거로 달린다고?
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Sort:  

짱짱맨도 외칩니다! 가즈아!!!
날씨가 다시 추워진거같아요
따뜻하게!! 봄날씨로 가즈아!!!

짱짱맨 가즈아~~~~!

안녕하세요!! 노래 작업을 포스팅 하는 뉴비입니다^^
우연히 들르게 됐습니다
여유가 되신다면 방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곧 방문가겠심다 ㅎㅎ!

띠용..! 수수밥+설탕+잼...?! 😳😳
같은 방식으로 드셨나요? (진정 로컬 체험?ㅋㅋㅋ)

브리 여행 1원칙. 현지인대로 행동합니다.
브리 여행 2원칙. 현지인대로 행동합니다.
브리 여행 3원칙. 한국 오면 현지인대로 행동해볼 찬스가 안 납니다.
브리 여행 4원칙. 현지인대로 여행했으면 어딘가에 백업해 놓습니다.
브리 여행 5원칙. 현지인대로 여행한 걸 기록하지 않으면 제 뇌는 그 기록 리플레이에 챽임지지 않습니다.

의외로 한국식과 통하는것들이 있네요!
올라온 음식들 다 먹어보고 싶어요ㅋㅋ

밥도 있고 만두도 있고
심지어 순대볶음도 있어요!

Congratulations @bryanrhee! You have completed some achievement on Steemit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Award for the number of upvotes

Click on any badge to view your own Board of Honor on SteemitBoard.
For more information about SteemitBoard, click here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

By upvoting this notification, you can help all Steemit users. Learn how here!

왜 저 널빤지 밖으로 발을 담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요? ㅋㅋㅋ
신기해 ㅠㅠ
5번째 계절!!

한 번 정도는 겪어볼 만한?!
집 한 층이 잠길 만큼 오는 건 신기해요

음.. 오늘도 역시 생생하게 쓰셨네요 ㅋㅋㅋ 소설책 읽는것처럼 술술 읽었습니다. 저도 위의 르바고님처럼 늪에다가 발한번 담궈보고싶네요.. 저세상 가겠지만..

한 사람이 밖에서 잡아준다면 한 발 정도는 담궈볼수도? ㅋㅋ (진지)

널반지 바깥으로 발을 담구다가 .. 갑자기 아득해지면서 넘어지면 바로 인생이 사요나라니 저기서는 정신 바짝 ! 차려야겠네요

밤에 지나가면 정말 레알 랜턴 필수입니다!
근데 이 친구들은 불도 없이 숙숙 잘 다니더라고요
그거 따라하다가 전 잘못 디뎌서 사요나라할 뻔하고....ㅠ_ㅠ

Coin Marketplace

STEEM 0.29
TRX 0.11
JST 0.033
BTC 63901.15
ETH 3133.40
USDT 1.00
SBD 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