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 일주기] 미친여행 CHAP2_25 보스니아 - 약속의 땅 2

in #kr-travel6 years ago (edited)

2011년 8월 28일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과 축복을 분에 넘치게 받았다.
그래서 감사를 드리자는 의미에서
여기서는 돈이 좀 들더라도 펜션에 들어가기로 했다.
헌금보다 더욱 현실적인 헌금이겠지(?). 나의 숙박비가 이들의 축복이 되길.




다음날, 아침 먹을거리를 찾아 나섰다.
예전에 슬루니의 라우라 부부가 알려준
부렉과 요거트Burek i yogurt를 찾기 위해서다.
본토에 왔으니 다시 먹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곳은 수많은 순례자들로 인하여 보스니아의 전통이 사라진 지 오래다.
죄다 이탈리아 음식점이다.
여기저기 뒤져봐도 부렉을 파는 곳이 나오질 않는다.

30분을 구석구석 찾은 끝에 시내 외곽 쪽에 딱 하나 있는 부렉 가게를 찾았다.
그런데 무려 2유로나 한단다!
그땐 1유로도 안 했던 음식인데...
관광지의 배짱 장사다.
그래도 어쩌겠어? 이탈리아 식당으로 가는 즉시 7유로 이상으로 뛰는데.
그래도 이곳 치고는 싼 것이니깐 군말 말고 먹자.

주문을 하려는데 웨이터가 영어를 못 하나 보다.
만인의 언어 바디랭귀지로 메뉴에 손을 가리켰는데
손사래를 치는 것도 아니고 말만 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겠다.
어안이 벙벙해진다.

정말 난감했던 그 때, 옆에 앉은 중년 분께서 통역을 해 주신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아서 15분은 기다려야 되는데
그래도 좀만 기다리면 나오는 것이라서 괜찮은지 물어보는 것이에요.”

이렇게 통역을 해 주시고, 말을 트고,
통성명을 하고 어디서 왔는지 등등을 이야기했다.
보통, 중년 분과 대화를 할 건수가 마련되는 즉시
통성명부터 시작해서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지게 되어 있다.
그럴 때 내 여행이야기를 듣게 되면 사달라고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내 몫까지 다 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지금 이 분도 이런 코스로 가게 될 것 같다. 괜히 설랜다.

일단 희망사항은 집어치고 사심을 버리고 대화를 하자.

이 분은 크로아티아에서 오셨고, 무역선 엔지니어를 하시는 분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는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한국도 많이 와보셨나요?”

“그래요? 어디를요?”

“여수항에 많이 갔었죠. 인천도 몇 번 갔었고.
이런 식으로 세계를 많이 돌아다녀요.
한 번 출항하면 근 3달은 까먹어요.
그래서 한 번 배에서 내리면 휴가도 매우 길죠.
지금은 친구와 함께 차를 빌려서 동유럽을 한 바퀴 도는 중이에요.
혹시 크로아티아 가 봤어요?”

“어제 두브로브닉에서 여기 왔어요.”

“어디어디 갔었어요?”

“자그레브, 플리트비체, 크닌, 쉬베닉, 스플릿...”

“오! 당신, 안 가본 곳이 없네요.
정말 크로아티아를 사랑하나 봅니다.
크로아티아 국민으로서 고맙다고 하고 싶네요.
그런데 자다르를 빼 놓으신 것 같은데?”

“날짜를 못 맞출 것 같아서 갈 수가 없었네요.”

“뭐, 상관없어요. 그냥 이 친구가 자다르 출신이라서 그래요.
그나저나 부렉까지 알 정도면 여행 제대로 하시네요.”

“그냥 현지인처럼 먹고 자고 하는 것을 즐겨요.”

“젊은 게 좋긴 좋네요. 힘도 많이 쓸 텐데 부렉 한 장 더 먹을래요? 제가 쏩니다.”

“아니아니아니 괜찮아요.”

“아니에요. 당신한테 2유로는 큰 돈이지만
저희한테는 솔직히 길바닥에 버려도 별로 표 안나요.
먹고 싶으면 주저하지 마세요.”

“아... 그...그럼. 감사합니다.”

예상대로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 예상대로 되었다고 해도 항상 고마운 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차타고 떠나시는 길 일어나서 90도 폴더 인사를 드렸다.
감사하는 마음 메듀고리에 식으로 표현을 해 보자.
하느님 아버지, 범사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제 남은 여행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시내를 30분 뒤져 간신히 찾은 곳의 부렉 가게




시간이 흘러 영어 미사 시간이다.
아직 앞 시간 미사가 끝나지 않아 사람들이 밖에 빼곡하게 서 있다.
영어 미사시간에 동양인이 서 있으니 내가 무척이나 신기한가 보다.
주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속 나에게 말을 건다.
이 순간 내 입은 ARS다.
사람들이 계속 말을 거는데, 물어보는 말은 죄다 똑같다.
한 10분과 대화를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분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죄다 아일랜드 혹은 미국이다. 이상하다.

가까운 영국에선 왜 안 오지?

잠시 입에서 ARS를 벗기고 한 분께 물어보았다.

“왜 영국 사람은 여기 없죠?”

“영국에 가톨릭이 있을 턱이 없죠. 다 성공회죠.”

아차, 그렇지. 한국의 주입식 교육의 한계다.
사회시간 시험 때문에 달달 외우기만 하고 시험이 끝나는 즉시 날려버리니
이런 상식을 알 턱이 있나.
이제 역사에도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지.





미국인들이 빼곡한 영어미사시간




미사가 시작되었다. 미군 성당에서 했던 것들이 기억날 줄 알았는데,
막상 지금 해 보니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새 다 까먹었다. 입으로 웅얼거리다가 끝난 것 같다.

미사 막바지에 신부님께서 기도를 하신다.

“하느님 아버지, 미국을 굽어 살피사 이 아름다운 미국이 영원할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이 말을 들으니 왠지 이 말이 떠올랐다.

“하늘에 이 서울을 바칩니다.”

자국민의 번영만을 위한 메시지만 외치는 것은 심히 좋지 않아 보인다.

하느님 아버지, 우리 모두에게 전쟁 없이 사이좋게 지내는 평화를 주소서.
그리고 사제들이 저런 바람을 하지 않도록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성모 발현지에서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있는 순례자들





미사가 끝나기 직전 강복 시간이다.

“강복 드리겠습니다. 여기에서 구입한 성물이 있으면 지금 꺼내주세요.”

이 한 마디에 다들 품속에서 봉지가 하나씩 나온다.
성물에 축복을 받겠다는 것이다.
글쎄, 이건 너무 미신 같지만, 이 종교의 문화이고,
남한테 피해가 가진 않으니 뭐라고는 않겠다.

미사가 끝나고 옆에 계신 분께서 방금 강복시간에 꺼내 든 봉지를 나에게 주신다.
밖에서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본 사람 중 한 분이다.

“제가 이스라엘에서 가져 온 것들이에요.
부디 당신의 여행에 하느님께서 힘이 되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 분의 정성어린 선물에 감동받았다. 마음이 정말 짠해졌다.
내 여행의 부적이 될 것 같다.
이렇게 응원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안전하게 이 여행을 마쳐야겠다.

고맙습니다. 당신의 길에도 하느님의 가호가 함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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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bryanrhee님후문2.gif

후문을 선물해주신 @mimitravel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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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도 폴더인사 하시는 브라이언님 모습이 상상되어서 웃음이 낫네요 ㅋㅋㅋ. 역시 필력 bb
이전 포스팅도 그렇고 이번포스팅도 그렇고 종교의 힘이 참 .. 무교인 저로서는 신기하기만 합니다.

저도 부모님 손에 이끌려 관성으로 다녔지 지금 멘탈은 무교라서요 ㅋㅋㅋ
저도 저런 분들이 참 신기해보일 따름이예요
고쳐 옛날에 많이 다녀서 익숙해진 거라 종교적 활동이 그닥 거부감이 없을 뿐

오늘도 호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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