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 일주기] 미친여행 CHAP2_18 크로아티아 -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아름다움은 느낄 수 있다 | 마음을 씻어주는 아름다운 브라츠 섬

in #kr-travel6 years ago (edited)

18.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아름다움은 느낄 수 있다

2011년 8월 17일



갖출 것은 이제 다 갖췄다.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
마리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여기에 더 있다간 부정이 탈 것 같다.
빨리 충격을 씻어내야 한다.

집에 가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계속 세뇌를 한다.
그렇다고 쉽게 진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신을 가다듬고 다음 목적지를 생각하자.



슬루니에 있을 때 라우라 부부가 말씀하셨다.

“크로아티아의 모든 섬을 가보지 않았으면
크로아티아에 왔다고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요."

그 정도로 크로아티아의 섬들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꼭 가 보기는 해야 한다.

그렇지만 문제는 페리 티켓값.
섬이 제주도마냥 크지 않은지라
자전거로 섬의 끝에서 끝을 하루 만에 주파는 가능하다.
그렇게 항구에 도착하면
배를 타고 다음 섬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자전거를 탄다.

내가 봐야 할 섬은 브라츠Brač, 흐바르Hvar, 코르츌라Korčula, 믈리엣Mljet.
하루에 한 번 페리를 타니
하루 예산에서 그 돈은 깔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만큼 나머지 숙박비와 식비의 여유가 줄어든다.
게다가 지금 그 페리값이 각각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
만일에 대비하여 씀씀이를 더 줄어야 된다.

돈이냐 경치냐. 나의 선택은 경치였다.
돈이야 나중에 벌면 되지만
과연 나중에 이렇게 자유롭게 돌 시간이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지금 이렇게 시간이 많을 때 돌 수 있는 곳을 다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래. 노숙하고 굶는 한이 있더라도 볼 것은 다 보자!
과감하게 브라츠Brač 섬으로 가는 페리를 끊었다.
이렇게 크로아티아 남부 섬 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스플릿에서 브라츠 섬 수페타르Supetar까지는
내 몸이 33쿠나, 자전거는 38쿠나,
도합 71쿠나[14200원]다.

자전거가 몸보다 비싸네. 제길.
정말 이놈의 자전거가
지금까지 교통비를 많이 아껴주긴 했지만
한 번 무엇이라도 타려 하면 태우기도 힘들고,
태우게 되면 거금이 깨지니 가장 골칫거리다.

그래도 돈이라도 내고 태울 수만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돈을 준대도 탑승을 거부할 때도 있으니깐.

겨우 한 시간 가는 주제에
배는 자동차에 버스까지 실을 수 있는 매우 큰 놈을 띄운다.
누가 그렇게 많이 타나 싶은데 선착장 앞에 차가 빽빽이 줄지어 서 있다.
정말 여름의 크로아티아는 답이 없구나.

크로아티아 차가 반이요, 이탈리아 차가 반이다.
이탈리아 차는 페리로 여기까지 왔을 테고
크로아티아 차라면 저 중 태반은 렌터카일 것이다.

그리고 차 속이든,
지금 나와 같이 체크인을 하려고 줄 선 사람이든,
저 중에는 내 넷북을 훔쳐간 사람이 있을 줄도 모른다. 응?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더니 몸이 너무 피곤하다.
뱃속에서 앉자마자 그대로 뻗어버렸다.




브라츠 섬 입도 직전







섬에 내렸다.
지금 내 너덜너덜한 멘탈때문에도 그렇고,
선착장에 빽빽했던 저 이탈리아 차들을 보고 소름이 돋은지라
여기에서부터는 노숙할 정신이 들지 않는다.
얌전히 안에 들어가서 자자.

이 섬의 호스텔은 단 두 개.
평이 좋은 곳으로 찾아간다.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개떼같이 몰려와
“어코모데이션”, “아파르트멘토”를 외쳐대면서 정신공격을 해 댄다.
아무리 길 찾기 귀찮아도 말리면 안 된다.
저기에 말렸다가 돈은 돈대로 쓰고 기분은 기분대로 상할 위험이 있다.
최대한 빨리 각개돌파를 하여 내 갈 길을 가자.









“자리 없나요?”

“아.. 오늘은 꽉 찼네요? 근데 잠시만 기다려 주실래요?”

예약을 하지 않고 무작정 들어간 호스텔.
흐바르나 유명하지 브라츠에 사람이 오겠냐는 생각을 한 내가 잘못이다.
예약이 꽉꽉 차서 발 디딜 틈이 없더라.
하룻밤에 3만원이 넘는 숙소인데도 말이다.
아침이 나오지도 않는데 왜 이러지?
그리고 그나저나 자리도 없다면서 왜 기다려 달라고 하는 거지?

“자리 없으면 딴 데 알아볼게요.”

“아뇨. 기다리면 자리가 생길 거예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나 했더니
잠시 후에 리셉션 둘이서 침대 매트리스를 들고 낑낑대면서 2층으로 올라가더라.
복도에 매트리스를 놓아주고 내 자리란다.

“원래는 160쿠나인데, 정식 침대가 아니라서
저희 보스가 80쿠나만 받으라고 하시네요.
이 정도면 매우 좋은 가격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콜?”

당연히 콜이지.
지금 이 시즌에 이 가격으로 잘 수 있는 곳이 있을 턱이 없는데.

우리 기준에는 좀 비싸다 싶지만 이 사람들은 한철 장사다.
가을 넘어가면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이 때 최대한으로 뽑아야 한다.
불법으로 자리 하나 만드는 이런 일도 이해는 된다.
그리고 싸잖아?
난 씻고 잠잘 곳만 주면 어디서라도 잘 수 있다고.
그니깐 싼 게 장땡이라고.




여유, 그 자체



이제 8월이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더위의 절정이 시작되었다.
10시가 넘어가면 밖에 나갈 수 없다.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먹을 것을 사고 바닷가로 산책을 나간다.
그리고 좀 즐길까 싶으면 갑자기 날이 확 더워진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열이 나온다.
더 이상 서있을 수가 없다.
빨리 들어와서 쉬어야 한다.
그리고는 해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 사이에는 컴퓨터를 하고 밀린 일기를 쓴다.
그마저도 귀찮으면 안에 있는 사람들과 노가리를 까면서 시간을 때운다.
8시가 되면 해가 조금씩 지려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다시 나갈 만하다.




자전거 여행 3달째, 주행거리 3831.9 km
한동안 글에서는 자전거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그렇지, 난 여전히 자전거여행중이다



양 옆 나무들.. 모두 올리브 나무다.





크로아티아에는 올리브나무가 매우 많다.
크로아티아에서 그리스까지.
아드리아 해를 걸치고 있는 나라들은
5월부터 10월까지 비가 거의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기후 덕에
올리브를 키우기가 매우 좋단다.

차도 양 옆에는 올리브 나무 천지다.

정말 나무 아래에서 노숙하면 딱 좋겠는데.
하지만 자연 경관에 매우 민감하신 우리 크로아티아 경찰께서는
30분마다 순찰을 돌면서 노숙하는 여행자는 경찰서로 끌고 간단다.
요리할 때 불 피우다가 산불 낼 수 있다면서.

수도원 뒤에 있는 올리브 길을 가 보았다.
예전에는 올리브 밭이었지만 지금은 트레킹 길이다.
그래도 나무를 베어낸 것은 아닌지라 올리브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 않아 길을 오르기에는 매우 어려웠다.
조금만 보고 돌아왔다.




아예 올리브길도 있다





돌아오는 길에 해가 진다.
지대가 높아 바다와 섬이 한눈에 보인다.
다시 한 번 예스러운 건물과 어우러진 자연에 빠져 본다.

노트북 사건 때문에 정신적으로 매우 지쳐버린 오늘,
그래도 아직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여지는 있나보다.


브라츠 섬, 석양



브라츠 섬 망망대해



속 보이는 바닷물



마을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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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bryanrhee님후문2.gif

후문을 선물해주신 @mimitravel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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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여행기가 아주 재미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꾸준히 부탁드릴게요~

스팀아 4월을 멋지게 가보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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