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 일주기] 미친여행 CHAP1_25 에스토니아 - 늪지대 오지체험 11일 | 에스토니아 아이들에게 한국 알리기 | 에스토니아판 아.우.성.

in #kr-travel7 years ago

25. 에스토니아 아이들에게 한국 알리기

2011년 6월 3일










1 한국 알리기



점심때가 좀 넘으니 차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졸업여행으로 아소네 산장에서 캠핑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들이닥치니 갑자기 너무 바쁘다.
부랴부랴 군용 주방 꺼내오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난 야채와 돼지 간을 썰었다.
순대를 먹을 때만 보던 돼지 간을 눈앞에서 날것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카레 만드는 사이즈로 썰어줘.”

무슨 요리를 하려고 그런 걸까?

내가 낑낑거리면서 간과 씨름하고 있을 때 아르고는 남다른 솜씨로 칼질을 한다.
알고 보니 요리학교 출신이다. 얇게 썰면서도 신속하다.
그리고 굵기가 일정하다. 괜히 요리학교 출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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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여행으로 야생을 느끼러 온 우리 초딩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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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에 모여있는 귀여운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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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 이동식 야전주방에서 만드는 "사워 크림에 빠뜨린 간 야채 볶음"


잘게 썬 야채들과 간을 넣고 볶는다.
그리고 향신료 몇 종류를 뿌린다.
다 익으면 그것들 모조리 끓는 물속에 넣는다.
그 물속에 사워 크림[sour cream]과 밀가루를 넣고 걸쭉하게 만든다.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에스토니아 전통 요리란다.
파스타에 뿌려 먹으면 된단다.

간과 야채를 볶았을 때만 해도 내 취향에 딱 맞다는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물에 빠뜨리고 밀가루와 사워크림을 뿌리니 좀 거북하다.
뭐, 그래도 맛있다.
기름 위에 더 기름진 걸 먹는 기분이긴 하지만.








아르고는 키가 훤칠하다. 185cm정도 된다.
그리고 나름 잘 생겼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에게, 특히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요리를 하고 있으면 여자애들이 몇 명씩 와서 서로 말을 걸려고 난리다.

“누가 이것 좀 볶아줄래?”

“나! 나!‘

서로 도와주려고 싸우기까지 한다.

그에 비해 난 찬밥이다. 일단 말이 안통하거든. 수줍어하는 것 같다.




저녁을 먹으면서 점점 이 친구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여자애들이 지나가다 수줍게 헬로우를 날린다.
난 거기에 헬로우가 아닌 테레Tere[에스토니아어로 안녕이란 뜻임]로 답을 해 줬다.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렇게 몇몇 아이들과 친해지니 나머지는 식은 죽 먹기다.
덩어리는 쉽게 불릴 수 있다.

모닥불 앞에서 자전거 점검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탈린에서는 지나가다가 툭하면 칭창총 소리를 들었는데.
이 애들도 과연 나를 칭창총으로 보는지 실험해 보았다.

“나 어디서 온줄 알았어?”

“중국이요!!!”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럼 과연 한국은 어디 붙어있는지 알까?
아니, 한국이란 나라는 알까?

“한국이란 나라는 알아?”

“삼숭!” [S전자의 현지 발음이다.]
“월드컵”
“여나킴” [김연아 선수]

외교관 다 필요 없다. 이런 분들이 외교 다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든다.

“지금 각 나라 돈을 모으고 있는데, 한국 돈 혹시 있나요?”

이 때, 내 머릿속이 확 돌아갔다.
지금 이 자라나는 꿈나무에게 한국 홍보 제대로 한번 해보자.
가지고 있는 엽서를 몽땅 긁어왔다.
원래는 가지고 다니면서 고마운 분들에게 한 장씩 뿌리는 용도로 가져왔지만,
어른들 열 명 보다는 아이들 한 명의 인식이 파급력이 더 클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다.
다른 분께 못 드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아이들에게 올인을 하리라.




일단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은 만원 짜리 3장밖에 없다.
백원이나 십원짜리를 가져오면 좋을 것을...

출혈이 좀 크긴 하지만 과감하게 만원 짜리 한 장을 넘겨준다.
만원이란 걸 처음 보자마자 하는 말.

“이 나라 돈은 왜 이리 숫자가 크데요? 유로로 얼마예요?”

6.66유로란다, 얘들아.
우리나라 돈은 숫자만 크고 실속이 없단다.


돈에 써져 있는 [만원]이란 글자를 보고는
알파벳이 아닌, 그저 동그라미와 네모, 막대기로 이루어진 것이
어떻게 언어가 되는 지도 신기하단다.
글자가 단순하고 예쁘게 생겼단다.






엽서를 뿌렸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세계 최대 실내놀이공원 L이었다.
아무리 독도에 대해서 입에 침이 튀도록 떠들어도 다 필요 없다.
아이들은 놀이공원이다.

먹거리 엽서를 열었더니 반응은 더욱 더 폭발적이었다.
비빔밥을 보여 줬더니

“한국인은 그림을 먹나요? 무지 예쁘네요!”

역사편을 열었을 때에는 찬밥이었다.
하긴, 이제 중학생 될 애들이 자기 나라 역사도 관심이 있을까 말까 한데
조그만 변방나라 역사를 알고 싶어 할까.

그런데 독도를 설명할 때 쯤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든다.

“한국과 일본은 왜 사이가 안 좋아요?”

이럴 때에는 장황하게 식민지 역사 설명해봐야 필요 없다.
발틱 3국에 와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이 말 한마디면 끝난다.

“너 러시아 좋아해? 싫어해? 알겠지?”

바로 ‘아~’가 튀어나온다.

이 나라는 러시아한테 우리보다 수많은 세월을 시달려왔단다.
우리보다 더 길게. 이곳에 러시아 문화는 많이 들어와 있고 러시아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몇몇 사람이 문제다.
과거를 잊고 새롭게 지내고 싶어도 망발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시선이 좋아지려다가도 다시 돌아서게 된다.
마치 일본처럼 말이다.

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한국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2 아. 우. 성.


선물 한 방으로 이 친구들의 마음을 여는 데에 성공했다.
그런데말이다... 마음을 열고 나니 이 친구들이 못하는 말들이 없다!


"브라이언은 여자랑 자 봤어요?"


응.......?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남자애들끼리야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대화인데,
지금.. 여자고 남자고 다 섞인 곳이다.
그런데 질문이 이러하시다.
혹시.. 눈치코치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친구인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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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이야기는 매우 자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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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에 둘러앉아 나에게만 아~~~주 진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분위기가 무척이나 다르다.
여자애들의 눈빛에 불쾌함이 보이지 않는다.
여자애들이고 남자애들이고 내 답변을 기다리느라 초롱초롱하다.

이 질문에 뻘쭘한 사람은 나밖에 없는 상태다.



그리고 (이 당시) 난 모솔..
이런 일이 있을리가.. (이것들.. 아픈 곳을 찌르다니..)


"난 .. 지금까지 한 번도 생긴 적이 없어서..."

"브라이언 몇 살인데요?"

"(만) 23살이지?"

"야! 23살인데 한 번도 못했데~~~!"

"브라이언 얼래리꼴래리~~"


.... 에스토니아는 이런 곳인가보다.
뭐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이야기 갈 때까지 가 보자.
유치한 수준이 되어 눈높이를 맞춰보자.


"그럼 너낸 했어?"

"당근이죠~ 안 하는 애가 어딨어요?"

"야, 얘도 못해봤어."

"아 맞아요, 얘도 못해봤데요~"


아.. 이 친구들..
이런 이야기는 이 친구들에겐
그냥 놀이터에서 모래로 두꺼비집 짓고 소꿉놀이 하는 이야기랑 똑같은 격이구나..


"네들 이제 초등학교 졸업하는데 원래 다 이래?"

"저흰 13살이면 다 해 봐요. 안 하는게 이상한 거 아녜요? 한국은 다 이래요?"



순간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다. 한 번도 경험 못 해봤다고..

"어.. 한국에선 20이 되어도 안 하고 살 수 있어."

"우와.. 신기하다. 그럼 뭐하고 놀아요?"

"잠깐만 얘들아.. 그게 뭐하고 놀아 정도의 레벨은 아니잖니?"

"그래도 궁금해요!"

"뭐, PC방이라고 컴퓨터 가득 있는 데에서 게임하고 놀거나,
나같은 경우에는 주말만 되면 해 떠 있을 때 축구하다가
밤 9시는 되어야 집에 들어가고 그렇게 살았지."

"여자친구도 없이요?"

"운동하고 노는 데 여자애들이 잘 나오진 않지?"

"그런 게 어딨어요? 다 나와서 노는거지. 여자라고 운동 안 해요?"



"아.. 뭐 그런건 아닌데, 한국의 여자들은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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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면 재밌어요?"







아... 별 거 아닌 질문인데 많은 생각들이 갑자기 일어나면서 얼어붙었다.

그렇게 살면 무슨 재미일까?
이 질문 나에게는
재미를 억누르면 그것이 사는건가?
이렇게 들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자신의 재미대로 사는 것을 억누르도록 교육받는다.
사회와 사람들이 원하는 틀이 있고, 그것에 맞춰서 살아가게 된다.
밖으로 나가면 죄악이다.

그 밖으로 나가는 것들은
상하관계
성과 성 역할에 대한 제약들
나이와 나이에 맞는 역할 제약들
등등이 있다.

은연중에 우리는 그것들을 벗어나는 데에 매우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이 친구들이 왜 이런 말들을 쉽게 할 까 생각해보면
그냥 이런 제약들이 별로 없다는 걸로 해석이 되는 것 같다.

사회에서 성에 대하여 제약을 걸지 않으니
호기심 나면 자유롭게 하면서 호기심과 욕망을 자연스럽게 푸는 것이다.
(하지 말라고 하는 대신,
포르노에 가까울 정도의 영상자료로 교육을 시키고 안전한 생활 방법을 알려준다.)
여자 역할에 제약을 걸지 않으니
운동 좋아하면 그냥 남자애들과 같이 축구하고 노는거다.

이런 친구들 앞에서 생각에 제약을 보여주는 건 여러모로 매우 안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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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면 재밌어요?"


"아니. 그리고 이제 이렇게 안 살거야." (씨익)









- 이 글을 올리는 2018년 오늘은 그런 관념들이 정말 많이 약해져서 정말 다행이다. -




다음 이 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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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나무에 뭐 꽂아서 먹는 건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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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7 이런 곳에도 한국사람?
CHAP1_5 첫 주행 + 1_6 북한도 자전거로 달린다고?
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Sort:  

현지인하고 이렇게 리얼하게 이야기 나누는 여행기는 처음 봅니다. ^^)

현자인과 교류하는 여행기는 많습니다 ㅋㅋ
할말 못할 말 다 적어제끼는 건 못봤지만요 ㅋㅋ

이... 여행기 중독되어도 되나요?

중독되신 다음에 매일 보팅 찍어주시면 됩니다 :)

13살이면ㅎㅎㅎ 개방적이네여 정말ㅎㅎㅎ 다르다고 많이 생각드네요 아 순간 벙지네요 ㅎㅎㅎ

정말레알 우리 가준이선 막나가기 때문에
듣는 순간엔 벙쪄요
이 나라에서 성에 대한 이야기는 그냥 취미생활 이야기하는 수준 정도입니다
호기심들을 다 알치감치 풀고 커서 그런가 좀 자란 찬구들은 문란하지 않아요

오늘은 정말 컬쳐쇼크군요 ㅋㅋ 13살이라니..

제약 없이 건강하게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ㅋㅋ
우리 가준에선... 매우 황당하지만...ㅋ

너무 멋지십니다!! 저도 이글을 읽으니 여행떠나고싶어지네요

생각이 들 때 준비하고 가는겁니다 큭큭큭

정말 티없이 맑은 아이들이네요ㅎㅎ
러시아와의 비유는 그야말로...촌철살인!

뭐.. 역사들이 좀 비슷비슷해서말이죠 ㅋㅋ
너무 티가 없어서 사람을 벙찌게 만들죠 ㅋㅋㅋ

삼숭, 월드컵, 연아킴 못지 않은 외교관 역활을 하고 오셨네요 ㅋㅋㅋ
비록 '아우성'시간에는 에스토니아 초딩들에게 한 방 먹었지만요 ㅋㅋㅋㅋ

이 친구들 이제 대학생일텐데
한국을 잘 가억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요

자유롭고 많이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주네여~ ^^

생각 체계를 보면 매우 재밌어요 ㅋㅋ
하나를 놓고 너무 다른 대답이 나오는 걸 보면
그 근본을 파는 재미가 쏠쏠

음....꽤 개방적인 곳인가봐요ㅎㅎㅎ좋은 곳 많이 다니셔서 부럽당ㅜㅜ재밌게 읽었습니다~!^^

이 나라가 유독 그런 것 같아요 ㅎㅎ
바로 아래 라트비아만 가도 안 그랬던 것 같은데...ㅎㅎ

오.. 제목에 끌려들어왔는데 포스팅 꿀잼이네요 ㅋㅋ 삶이 부럽습니다 멋있으세요!

그럼 제 낚시는 성공적이었군요 ㅋㅋㅋㅋㅋㅋㅋ
블로그했을 때 폐인들 분석은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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