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 일주기] 미친여행 CHAP1_12 욕창 터지고, 기차에 실려 가고

in #kr-travel7 years ago
  • 사진이 없진 않지만 텍스트 위주입니다.
  • 출판해보려다가 퇴짜맞고 하드에 4년 이상 짱박아놓았다가 스팀이란 플랫폼을 보고 빛 볼 수 있을까 하고 꺼내 봅니다.
  • 이땐 미처 모르고 카메라를 똑딱이로 가져가서 화질은 매우 구립니다.
  • 자전거로 여행한 이야기지만, 자전거는 회차가 지날 수록 점점 흐려질거고 사람 사는 이야기로 초점이 점점 옮겨갈 것입니다.
  • 이 이야기에서 나온 인물명은 모두 가명입니다. 어떤 실재 인물명과 일치함은 현존인물이든 망자이든 전적으로 우연입니다. 어디선가 본듯한 말?

12. 욕창 터지고, 기차에 실려 가고

2011년 5월 13일



오슬로에서는 애정이 싹 가셨다.
며칠 보지도 않고 한 바퀴 돌아보고 바로 빠져나갔다.
물가도 비싼데 이런 일을 당했으니 꼴 보기도 싫다.
빨리 스웨덴으로 넘어야지.

스톡홀름 위에 웁살라Uppsala란 도시에는 동아리 친구 소담이가 교환학생으로 있다.
며칠 전부터 노르웨이의 살인적인 물가 소식에 기겁을 하면서
빨리 오라고 하는 마음씨 넉넉한 친구다.

오슬로에서 웁살라까지는 대략 500km.
1일에 100km씩 달리면 된다.
1400m 산이 나오지 않고 비가 와서 발이 묶이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막막했던 나날들을 접고 다시 자전거를 끌고 길에 섰다.
스톡홀름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30분정도를 달리니 바닷가를 보면서 달릴 수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싱그러운 하늘, 상쾌한 바람이 요 며칠간의 비극을 잊게 해 주었다.
계속 이런 도로로 달렸으면 좋겠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해안도로는 끝났지만 이제는 드넓은 들판이 나를 반긴다.
조각조각 걸린 구름들과 함께 어우러진 들판은 내가 그림 속에 달리는 느낌을 받게 했다.
날 미치게 만드는 역풍만 아니었으면 더욱 낭만적인 라이딩이 되었을 것이다.
낭만적인 도로와 함께한 노르웨이의 마지막은 그래도 행복하다.


국경 근처에 왔다. ‘주의! 국경 2km전!’ 같은 간판들이 여럿 꽂혀 있다.
하지만 쉥겐 조약에 가입된 국가 간에는 국경이 없다고 했다.
과연 그 말대로 둘 사이에는 옛날 국경검문소의 흔적만 보였지, 실제 검사하는 풍경은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간판.
Sverige
처음으로 자전거로 국경을 넘었다.
감동이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성취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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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국경샷. 차라리 여권 검사하고 각 나라당 90일 줬으면 좋겠다.



그 감격스러움도 잠시, 시계를 보니 지금은 8시다.
잘 곳을 찾아야 한다.
오늘은 좀 쌀쌀하니 안에 들어가 자야할 것 같다.


마침 호스텔이라고 쓰여 있는 이정표가 있다.
그런데 방이 꽉 찼단다! 이런 호스텔에 빈 방 하나 없겠나 싶었더니...

“제 집에 방이 좀 있어요.”

날 설레게 하는 호스텔 사장의 말.
혹시 가련한 자전거여행객에게 자기 집에서 자라는 주인의 자비인가?
공짜를 바라면서 예의상 가격을 물어봤다.

“얼마......죠?”

“여기랑 똑같아요. 350크로나.”

하룻밤에 7만원... 여기서 1km 떨어져 있단다.
집까지 데려다는 주겠는데 아침에 픽업은 못해준단다. 됐다.
이런 곳에서 7만원에 밥값 만원에 자느니 그냥 밖에서 자고 만다.
지금 여기가 어딘데 아직도 노르웨이인 척 하는 게야?
스웨덴이면 스웨덴답게 할 것이지.




오늘도 들어가서 자기는 글렀다. 또 노숙할 곳이나 찾아보자.
마침 도로 옆에 나무를 잔뜩 베어 쌓아놓은 곳이 있다.
쌓인 모습이 동굴 같아 추위와 비를 피하기 좋아 보이니 오늘 밤 눈 붙일 곳으로는 제격이겠다.

대충 침낭을 깔고 오늘의 낭만적인 라이딩 코스를 되새기며 즐겁게 단잠을 즐겼다.
오늘 국경도 넘어봤다고! 이건 뭔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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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슬을 피해 보겠다고 나무더미 옆에 마련한 노숙터. 소용없었다.



일어나긴 했는데, 너무 춥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반이다.
언제나 노숙하면 그렇듯, 해가 지면 잠들고, 해가 뜨면 일어난다.

문제는 해가 10시에 지고 새벽 4시에 뜨니 충분히 잘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불안해서 푹 잘 수가 없다는 것.

공기를 마셔보니 인간적으로 춥다. 몸을 일으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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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에 무게가 실릴 때 갑자기 통증이 밀려온다.

“아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왜 이렇게 아프지?

만져보니 이상하게 울퉁불퉁하다. 그리고 딱지의 느낌이 나는데..?

피도 막 묻어나온다.
고름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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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떤 곳은 살이 푸딩처럼 파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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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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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말로만 듣던... 욕창...?



이건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누워있어서
통풍이 안 될 때만 생기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옷을 도둑맞은 후 갈아입을 옷이 없으니 계속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그러니 아무리 샤워를 해도 더러울 수밖에.

다른 옷도 더러울 텐데,
특히 매일 8~10시간씩 안장에 붙어있어서 땀에 절여 있어야 하는 엉덩이부위는 훨씬 더러울 수밖에.

그래도 그렇지.... 소름 돋는다.




잠이 확 달아난다.
단숨에 일어나서 출발 준비를 한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움직이지만, 밖은 너무 춥다.
추위를 떨쳐 내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그래도 추위를 떨칠 수는 없었다.

이런 추위에 오늘 아침은 콘푸레이크.
추운 아침에 얼음장 같은 우유를 마시니 온몸이 뻣뻣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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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아침.

노르웨이에서 유일하게 싼

2000원짜리 PB 우유와 1200원짜리 GMO 옥수수로 만든 콘프레이크



이제 다시 출발이다. 자전거에 올라탔다. 안장에 엉덩이를 댄다. 그 순간

지잉~



등짝이 저릿저릿해지는 아픔이 엉덩이에서부터 전해진다.
아픈 곳은 엉덩이인데 다른 곳까지 저릿저릿 거리는 고통을 느껴는 보셨는지?

‘웁살라까지 자전거 타고는 못가겠다.’

이렇게 타고 가다가는 여행을 하러 왔는데 고행이 될 판이다.
오늘도 기차 신세를 져야할 것 같다.

가까운 역을 찾아볼까?
일단 지도에 기차가 어디를 지나가는 지부터 보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아르비카Arvika.
커피 이름이냐?






큰 도로를 달리다가 아르비카 방면으로 꺾으니 완전 시골길이다.

나 혼자 전세 내어 달리는 도로.
원래는 행복한 라이딩이 돼야 갰지만 엉덩이가 그 행복을 다 깎아먹었다.
이런 꿀도로 오늘 아니면 맛보기 힘들 텐데 말이다.

다리도 상태가 매롱인 것 같다.
조금만 오르막에도 최저속기어 아니면 앞으로 갈 힘이 나지 않는다.
내리막에서도 좀만 속도를 낼까 하면 무릎과 근육들이 온몸을 콕콕 찌른다.
엉덩이는 계속 쓰라리고, 다리는 울린다.
빨리 역에 도착해서 기차나 타고 싶다.
그렇지만 몇 시간을 달려도 아르비카 코빼기도 안 보인다.


그러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산을 타는 느낌이 든다.
심한 오르막은 아니지만 벌써 1시간째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보이는 팻말 ‘아르비카 20km 앞’.
지금 속도계에는 5km/h가 찍혀 있다.

만약 죽 이 속도로 가면 4시간을 계속 오르막을 타야 되는데.
지금 이 몸으로 4시간?
내가 지금 뚜르 드 프랑스(프랑스의 유명한 자전거경주)를 하냐고?
난 지금 여행을 하는 몸이니 목적지에 도달만 하면 장땡이지.
얼마나 빨리 도달하는 것은 내 알바 아니야.
늦으면 늦은 대로 살지 뭐.
안 되면 이틀로 나눠.


마음을 고쳐먹자. 속도를 줄이고 앞으로 가는 것에만 의의를 두었다.
힘을 좀 덜 주니 그제야 무릎과 근육들이 진정되었다.

문득, 옛날에 친구와 함께 서울에서 해남에 갔을 적이 생각난다.
처음에는 내 페이스대로, 그 친구에게는 좀 빠른 스피드로 갔지.
근데 전주쯤에서 그 친구가 무릎이 너무 아프다고 그러는 것이야.
결국엔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다고 침까지 맞았어.
그래서 마지막 날 거리도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여유 있게 가 봤지.

“한 번 네 스피드로 가 보자고.”

근데 속도가 많이 줄지 않더라고. 3km/h 남짓?
이정도면 큰 차이는 아니지. 땅 끝에 도착하니 30분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났다.

힘을 조금만 줄여도 몸이 매우 편해지는데, 시간 차이가 생각보다 많이 나지 않아.

지금 내가 그것을 느끼고 있다. 조금 늦으면 어때.
꼭 하루에 100km 찍으란 법 있어?
좀 줄여서 80km 달린다고 내 여행에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단다.


다행히도 오르막은 금방 끝나고 올라간 만큼 내리막을 탄 덕에 1시쯤 되서 아르비카에 들어왔다.
지도상에 큰 도시마냥 표시가 되어 있어서 엄청 큰 곳인 줄 알았는데, 매우 작다.
우리나라로 치면 좀 큰 면 정도?

그렇지만 도시가 아기자기하니 매우 예쁘다. 동화속의 도시를 보는 느낌이랄까?
품속에서 사진기가 절로 꺼내진다.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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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들어오자마자 느껴지는 감정 "동화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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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비카 역. 제 자전거를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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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함으로 치자면 일본 싸다구를 때릴 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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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비카 항(?) 처럼 보이지만 이건 호수다.



마침 역 앞에 재래시장이 열렸다.
마치 현지인마냥 시장 중간에 뛰어들어 마음껏 놀았다.

그 김에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도 샀다.
확실히 물가가 싸 진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도넛 9개에 우유, 그리고 큰 빵까지 해서 71크로나다.
노르웨이에서 이정도면 어이구, 얼마냐? 두 배도 넘으려나? 상상도 하기 싫다.


웁살라까지 가는 기차를 보았다.
그런데 두 가지 메뉴가 나온다.
그냥 Buy Ticket과 Sista Minuten.

‘시스타 미누텐’은 Last Minute Ticket, 즉, 떨이 티켓이란 뜻이다.

떨이를 한 번 눌러본다.
428크로나가[85600원] 나왔다. 거리는 두 배인데 노르웨이 기차와 값이 비등비등하다!

싸구나 싶어서 바로 결제를 누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을 지나가는 생각.

‘혹시 저가티켓 취소표가 생겼다면 더 싼 표도 있지 않을까?’

일반티켓을 눌렀다.

175크로나!! [35000원]



대박이다! 무려 5시간을 넘게 가는 기차인데 35000원이라니...
거의 이건 한국 기차 값이잖아!
드디어 절약을 하는구나.

이제 네가 좀 스마트 해 지는구나!





투비컨티뉴.

그리고 아르비카 사진 더 투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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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이마트, 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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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 동화나라 같이 즐길 여자사람 구해요



<이전 포스팅>

CHAP1 런던, 노르웨이, 스웨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체코, 독일, 오스트리아
CHAP1_11 배낭을 털리다
CHAP1_10 사람의 따뜻함을 느끼다 + 노르웨이의 자연에 호되게 데이다
CHAP1_8 한국영화 많이 컸네? + 9 첫 주행, 첫 노숙, 첫 봉변
CHAP1_7 이런 곳에도 한국사람?
CHAP1_5 첫 주행 + 1_6 북한도 자전거로 달린다고?
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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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고 가요 ㅎㅎㅎ 읽는 제가 더 춥고 아픈것 같네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
정말이지 매우 춥고 아팠어요 ㅜㅜ

재미있게 읽고갑니다. 유럽 여행을 다시 한번 가고 싶어지네요 ㅠㅠ

자전거로 가신다면 환영합니다 ㅋㅋㅋ

👏👏👏👏엄청난 여행기네요..ㅎㅎ 지금은 웃으며 돌아보는 이야기지만 욕창이라니..너무 고생하셨겠어요..! 그래도 같은 여행지를 다녀온 어느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 사진 몇 장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특별한 경험을 하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당!!

감사합니다 ㅜㅜ
어떻게든, 어디에 떨어져도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죠 ㅎㅎ

지금은 뮌헨에서 달달하게 보내고 계시죠?
부럽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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