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32)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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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32)

"일어나라.
앞으로 보름간 바깥출입을 금하고 오직 연공에만 전념하라.
식사도 이 방안에서 모두가 함께한다.
예외는 없다.
알았나?"
"충(忠)!"
지르가다이가 바늘을 한 바구니 가득 사오자 다른 여덟 명에게 했던 말을 그에게 전하고 그들과 같은 대답을 듣고서야 구음진경(九陰眞經)의 역근단골편(易筋鍛骨篇)을 전수했다.
아홉 명이 한 방에서 역근단골편(易筋鍛骨篇)을 연공하는 동안 나는 문 앞을 지키며 바늘을 던졌다.
그리고 밤이 찾아왔다.
나는 멸절사태와 정현사태, 정허사태의 내력을 흡수한 뒤 상당히 공력이 깊어졌다.
매시간 조금씩 무상공력이 북명진기(北冥眞氣)를 승화시키고 있었지만, 워낙 방대한 양이라 다 승화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굳이 깊어진 공력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하들이 역근단골편(易筋鍛骨篇)을 연공하는 방 앞에서 만천화우척금침(滿天花雨擲金針)을 연마하며 생각해보니 이렇게 방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북명신공은 누구에게도 들어나면 안 된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런 신공을 탐내지 않을까?
나는 전백광이 아미파 제자들을 관리하겠다고 한 것이 떠올렸다.
그가 혹시라도 공력을 잃어버린 사람을 조사하다 의문을 품는다면?
더군다나 자신의 한독을 흡수하는 것을 직접 느꼈던 사람이라면 멸절사태 등이 공력을 빼앗긴 사실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지 않을까?
의심암귀(疑心暗鬼)라더니 정말 한 번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자 당장이라도 전백광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이 생겨 불안함을 억누르기가 어려웠다.
혹여 그의 의심이 어린 제자와 밤새도록 무학에 대해 토론할 만큼 무예에 욕심이 많은 티무르부카의 귀에 들어간다면?
나는 더는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누가 따라올까 싶어서 바구니에 남은 바늘을 한 움큼 쥐고 순식간에 담을 넘었다.
많은 무공비급을 읽었다.
특히나 무학보전이라는 구음진경(九陰眞經)을 읽고 나자 내 신법은 이전과 다른 구석이 생겼다.
비록 아직 고련하지 않아서 남에게 대단하다는 평을 듣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느끼기엔 몸이 무척 가벼워져서 한 번 발을 뗄 때마다 사오 미터 씩 나아갈 수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멸절사태와의 대결 이후 내 목숨을 살려준 현철중검을 한시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사십 킬로그램이 넘는 검을 들고 뛰면서도 버겁다고 느끼질 못했으니, 불안한 가운데서도 흡족함을 느꼈다.
정신없이 달려서 낙양 성을 벗어난 나는 황량한 들판에서 가만히 주변의 소리에 집중했다.
날이 흐려서 별빛이 밝지 않았다.
다행히도 매일 밤 점화지(點花指)를 수련하면서 나의 청력은 매우 예민해졌다.
한동안 숨소리마저 줄이고 주변을 경계했다.
혹시라도 누군가 따라오거나 숨어서 지켜보는 이가 있지는 않을까?
황량한 벌판이라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스산한 바람소리만 들판에 가득했다.

본래 소무상공(少無相功)은 크게 운기와 주문 두 가지로 나뉜다.
그러나 운기편이 너무 뛰어나서 소무상공(少無相功)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문편을 등한시하고 운기에만 집중하여 고강하면서도 순수한 공력을 얻었다.
오직 이추수와 티무르부카 그리고 고춘기만이 주문편에서 깨달음을 얻어 무상공력을 이루었다.
무상공력은 불수의근(不隨意筋)적 성격이 다분했다.
그것은 사람의 의지로 움직일 수 없으나 항상 우리 몸을 위해 운동하는 불수의근(不隨意筋)처럼 무상공력은 의식할 필요 없이 절로 몸을 보호하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힘을 보태준다.
고춘기는 아무도 없는 황량한 공터에서 다시 주문을 외웠다.
그의 북명진기(北冥眞氣)가 순식간에 승화되는 것을 느꼈다.
그가 주문을 멈췄을 때, 그가 아미파 제자들에게 흡수한 북명진기(北冥眞氣)는 모조리 승화되어 무상공력이 되었다.
절륜한 공력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허탈함을 느낌과 동시에 한손에 들은 현철중검이 상당히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무상공력은 마치 우리의 인체와 같아서 부족하면 채우려했다.
굶기를 밥 먹듯이 하던 사람이 한 번에 폭식을 하는 것은 그의 몸이 이번에 몽땅 먹어서 에너지를 지방으로 저장해 놓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몸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서 이후에 굶을 것을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무상공력은 고춘기가 몇 달 티무르부카로부터 흡수한 대량의 공력을 승화시킨데 이어 다시 아미파 제자들의 공력을 승화시키자 스스로 공력을 승화시키는 일을 중단했다.

다음 날, 그는 만천화우척금침(滿天花雨擲金針)을 익힐 수 있었다.
비로소 한 손으로 십여 개의 바늘을 던져 십 미터 밖에 세워놓은 표적을 정확히 맞출 수 있었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나자 사람 형태의 목각인형을 세워놓고 주변을 빠르게 달리며 한손에 바늘을 열다섯 개씩 잡아 머뭇거림 없이 번갈아 던지는데도 단 하나의 바늘도 목표점에서 빗나가지 않았다.
그로부터 열흘이 흘렀다.
어느새 연무장에 세워놓은 목각인형의 수는 아홉 구로 늘어났고 그들의 각 요혈에는 바늘이 수도 없이 빽빽하게 꽂혀있었다.
이제 고춘기가 구르고 뛰고 달리면서 던져도 하나의 바늘도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그날 저녁 수하들이 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구음진경(九陰眞經)의 역근단골편(易筋鍛骨篇)을 전수받은 그들은 보름 만에 역근단골편(易筋鍛骨篇)을 2단계까지 연공해낸 것이다.
그들은 내력이 크게 증진된 것을 느끼고 얼른 자신의 힘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제일 신이 난 건 지르가다이였다.
그는 다른 여덟 명과 함께 고춘기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자신의 공력을 시험할 물건을 찾아다녔다.
결국, 마땅한 제물을 찾지 못한 지르가다이는 의자다리를 뽑아들었다.
그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잘 마른 의자 다리에 그의 손가락이 깊숙이 묻혔다.
"주인! 일 년이 아니라 한 달이면 산산조각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르가다이는 처음에 고가금강지를 전수할 때,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린 것이다.
"경거망동하지마라. 소림에 가면 황금을 진흙처럼 주무르는 이들이 손으로 셀 수도 없이 많다."
물론, 소림에 금강대력지공(金剛大力指功)을 연마한 승려는 여섯 정도밖에 안됐으나, 이들이 작은 성취에 기고만장하여 연공을 게을리할까봐 일부러 부풀려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지르가다이는 크게 풀이 죽어버렸다.
자기 딴엔 대단한 공력을 얻은 줄 알았는데, 황금을 진흙처럼 주무르는 고수들이 즐비하다니…….
"풀 죽을 것 없다. 죽어라 연공한다면 오 년 안에 그들을 따라잡지 못할 리 없다."
그렇게 칠월의 끝자락에 이르자 욕심 많은 부천호(副千戶) 조정이 병사를 보내 티무르부카가 낙양 성에 도달했음을 알려왔다.

스승님은 낙양 성에 도착하고도 한참이나 더 있다가 공무를 다 마치고 나서야 장원으로 돌아오셨다.
나는 스승님이 낙양성에 돌아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장원에 칩거하라는 명령을 어길 수 없어서 장원 대문 앞에서 무릎 꿇고 사부님을 기다렸다.
혼나는 것도 두려웠지만, 그보다 두려운 것은 일을 벌인 전백광을 다치게 하거나 입을 막기 위해서 아미파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할까봐 두려웠다.

티무르부카는 이미 한 달 가까이 지난 일을 마음에 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쉽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금방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장원으로 돌아오며 아무래도 이번에 단단히 혼을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돌이켜보니, 고춘기를 만나고 한 번도 제대로 야단을 친 적이 없었다.
티무르부카는 문 앞에 무릎 꿇은 고춘기를 보고 한 번, 짧게 자른 그의 머리카락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혹시 못 보던 사이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겨 승려가 되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이번에 상대한 곳이 불교 성격이 짙은 아미파라고 했었지…….'
그는 짐짓 위엄을 세워 고춘기를 꾸짖었다.
"그렇게 조심하라고 일렀거늘! 명성을 얻고 싶었느냐?"
"아닙니다. 사부님도 안 계시는데다가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서 죽을 각오로 손을 쓰지 않으면 한 팔이 잘리고 무공이 폐지되었을 겁니다."
고춘기는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티무르부카의 발만 쳐다보며 대답했다.
"저들이 그리 말하더냐?"
"물론, 발단은 저희의 잘못으로 시작됐습니다."
"너희가 아니라 또 전백광이라는 그 놈이 문제를 일으켰겠지."
순간 고춘기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바로 답하지 못했다.
"아닙니다. 형님이 시작하긴 했으나, 저도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일을 해서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든 죄가 있습니다."
자신의 신체적 결함에 대한 열등감을 피할 수 없는 티무르부카는 평소에도 마치 자신을 비웃듯 세상의 많은 여자들을 탐닉하는 호색한들을 경멸했다.
게다가 전백광은 첫 만남부터 좋지 못했고 끊임없이 사고를 치는 인물이었다.
그런 자가 고춘기 옆에 붙어서 혹여 나쁜 물이라도 들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고춘기는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몰라 안절부절 못했다.
비록 비밀을 공유하지는 못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전백광이었다.
또한 여러 번 생사고락을 함께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돌아보니, 자신이 의형에게 너무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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