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3)

in #kr7 years ago (edited)

너에게로 가는 길.png
"일단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선 벗어났으나 다시 험지로 가고 있으니 앞이 막막합니다."
호안민은 말에 오르며 말했다.
말에 오르고 나아가는 그 모습이 마치 앞선 몽고기병들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럼 저들이 우리를 사지로 몰고 간다는 말인가?"
"풋. 형님, 안 어울립니다. 평소 하던 대로 하세요."
말을 가까이 몰아오더니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죽여 물어보는 전백광을 보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동생은 지금 웃음이 나오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지도 모르는데?"
"일단 그들이 바라는 대로 따라가 봐야 알겠습니다. 너무 심려 마세요. 어차피 닥칠 일이라면 고민한다고 빗겨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금석 일행이 점차 속도를 높이는 바람에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젠장, 황량한 벌판에서 백 마리에 달하는 말들 뒤를 쫓아 달려본 적이 있는가?
'개자식들, 복수를 더럽게 하네.'
엄청난 먼지가 몰려와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이런 먼지 속에서 숨을 쉬다가는 폐가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나는 급히 상의를 벗어서 머리에 둘렀다.
확실히 그렇게라도 두르고 나니 숨쉬기는 훨씬 편해졌다.
태어나서 두 번째 타보는 말인데 익숙할 리가 없다.
하지만, 이금석과 몽고기병들이 내 사정을 봐주면서 달리지는 않았다.
기분 좋게 마셨던 해장술이 다 깨버렸다.

"여기는 낙양성이 아닌가?"
전백광은 당황했다.
그들이 한 시간 넘게 모래를 뒤집어쓰면서 달려 온 곳은 낙양이었다.
"안민, 여기가 하남의 낙양이 맞는가?"
"네, 그 유명한 고도 낙양입니다."
"낙양 주변의 땅이 이렇게 황폐하다니……."
"대인께선 아무래도 깊은 산 속에서 오래도록 수양하고 오신 것 같습니다."
세태를 전혀 모르는 전백광의 모습을 호안민이 의아하게 여겼다.
그런 호안민에게 전백광이 무슨 말을 하랴?
자신이 겪은 일은 워낙 황당해서 아마 영원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고충으로 남을 것이다.
"4년 전 황하가 대범람하는 바람에 농경지까지 휩쓸려버렸습니다. 거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역병까지 창궐했습니다. 오늘 먹을 것은커녕 올해 심을 종자를 걱정해야할 판에 나라에선 세금을 거두어들이니 남아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둘 도망가다 보니 그나마 남은 땅마저 농사지을 사람이 남지 않아 황무지가 되어버린 겁니다."
방금 전까지 실컷 술과 고기로 배를 채우고 싸움질까지 하고나서 화해한답시고 술 한 잔 걸치러 가는 길에 그런 말을 들으니 괜히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았다.
이금석 등 성문에 다다르자 말에서 내렸다.
때마침 그들이 말에서 내려 걸어가는 바람에 전백광이나 내가 주변을 둘러보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막상 성 안에 들어오니 호안민의 설명과는 다르게 사람이 정말 많았다.
어려서부터 아침저녁으로 부비부비 타임을 갖는 지하철을 이용해온 내가 사람 수가 많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 복색과 인종이 정말 다양했다.
눈에 익은 얼굴의 고려인은 말할 것도 없고 눈이 작고 쭉 찢어진 몽고사람, 앞머리를 밀어버리고 나머지는 틀어 올린 일본인, 머리에 터번을 두른 중앙아시아계 아랍인, 머리를 몽땅 밀어버린 흑인 라마승까지…….
이곳에서 흑형까지 볼 줄은 몰랐다.
게다가 라마승이라니.
원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제국이었다더니 동서양을 막론하긴 하나보다.
사람뿐만 아니라 낙양 그 자체도 볼만했다.
여러 왕조의 수도였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건물마다 그럴듯 해보였다.
확실히 크기로 비교하자면 민속촌에서 봤던 초가나 전통마을에서 봤던 조선시대의 한옥들과는 비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평소에 이런 옛날 건축양식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크기로 치자면 고층 아파트인 우리 집이 훨씬 크다.
물론, 아쉽지만 아파트 중 1207호만 우리 집이라서 그 부분만 떼어놓고 보자면 다시 고개 숙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슬렁슬렁 주위를 구경하는 우리를 이끈 곳은 또 술집이었다.
모란주루
이름도 참 대충지은 티가 났다.
이곳까지 걸어오며 본 대단히 휘황찬란한 술집들에 비하면 손색이 있는 주루였다.
'이렇게 주구장창 술만 마시다가는 곧 위에 구멍 나겠다.'
그렇게 위 건강을 걱정하는데, 이금석은 네 명의 병사들에게 환자들을 맡기고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열댓 명의 몽고병사를 앞세우고 들어가자 당황하는 손님들의 면면을 둘러봐도 고급 술집은 아니었다.
비단 옷을 입은 사람은 몇 사람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이 변발하고 있어서 얼굴을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았다.
한족이라느니 남인이라느니 구분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차이는 있었다.
보통 살집이 좋고 색감이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은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이거나 혼혈느낌이 많이 풍겼다.
손님 대부분은 몽고병사 뒤를 이어 들어온 우리를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것이 참 볼만했다.
일층에 가득한 사람들을 지나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그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하나씩 확인할 수 있었다.
몇몇은 불쾌한 표정을 짓는가 하면 몇몇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버렸고 다른 이들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술잔을 들어올렸다.
심지어 몇몇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나와 전백광은 저절로 호안민을 바라봤다.
"변발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무기를 들고 다니는 남인들이 몽고병사 꽁무니를 쫓아다니니, 자연히 눈이 쏠리지 않겠소?"
안내하던 이금석이 입을 열었다.
거기다 대고 뭐라고 맞장구치기도 궁색해서 그가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다.
북적북적 시끄러운 1층과는 다르게 2층엔 호호백발 할아버지와 일고여덟 살 남짓한 어린아이뿐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자리를 널찍하게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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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를 전부 살펴보진 못해아쉽지만 대단한 열정이신지라 리플로 응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와.... 열정이 정말 대단 하세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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