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2화 복수 02

in #kr-literature7 years ago (edited)

너에게로 가는 길.png
"네, **파출소 경장 김태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기 ***번지 1207호에서 이 새벽에 누가 술 먹고 들어왔는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난리네요. 도저히 잠을 못자겠어요."
"네, ***번지 1207호……. 신고 받고 출동했습니다."
"아휴, 그래요? 수고 많으십니다."
딸각.
"어떤 놈이 이 시간에 난리를 피우는지……. 제정신이 아니네요. 안 그래요 김 경장님?"
"사람이 무슨 죄야 다 술이 죄지. 술이 죄다. 이만 일어나자. 계속 신고 들어올 모양이다."

"계세요? 고춘기 씨 문 좀 열어보세요!"
김태희 경장이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벨을 눌러도 안에선 뭐라고 혼자 떠들기만 할 뿐 들은 척도 안했다.
"그러지 말고 그냥 내가 열어드릴까? 이 학생이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닌데, 술을 많이 마셨나보네……."
관리실 할아버지가 옆에서 지금도 안에서 소리치는 학생을 두둔했다.
"김 경장님, 이쯤해서 열고 들어가죠? 여기서 소리 질러도 안에서 못 듣나 봐요."
들어온 지 한 달밖에 안됐는데, 벌써 완전하게 적응해버린 이길재 순경이 피곤한지 빨리 끝내고 갔으면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야겠지? 할아버님 열어주세요. 여기서 계속 떠들다가 이웃집 다 깨겠네요."
"이미 다 깼어요. 경찰아저씨 들어가서 혼 좀 내주세요. 이런 것 한 번 두 번 넘어가면 습관이 되서 계속 저런다니까요."
김 경장이 도착하기 전부터 문을 두드리고 있던 잠옷 바람의 옆집 아주머니가 맞장구쳤다.
"아니, 저런 사람 구속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거 고성방가죄 아니에요? 현행범으로 잡아갈 수 있다던데?"
산발한 머리에 뿔테안경을 낀 답답하게 생긴 이웃집 남자는 화가 단단히 났는지 방방 떴다.
"이보게 재일이, 저 학생이 잘못을 하기야 했지만, 처음 아닌가……. 평소에 그런 학생도 아니고 처음인데, 구속이라니 이웃 간에 좀……."
"저 지금 삼일 만에 겨우 잠든 거란 말이에요! 이러다 잠 못 자서 과로사하면 누가 책임 질것이에요? 누가?"
관리소 할아버지가 두둔하자 더 방방 뛰는 뿔테안경이다.
"일단 문 열어보세요. 지금이라도 말려야 다른 집에서 조금이라도 눈 붙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방방 뛰는 이웃 주민을 말리기도 난감한 상황이라 할아버지를 재촉하는 김태희 경장이다.
문이 열렸다.
"오~ 쉣! 김 경장님 이거 심각한데요?"
열자마자 역한 냄새가 몰려오자 이길재가 생각 없이 말했다.
"계세요? 고춘기씨! 이 순경 일단, 불 좀 켜봐."
주민들 앞에서 말을 함부로 하는 이길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람들 앞에서 혼낼 수는 없어서 이따 파출소에서 따끔하게 혼내기 로하고 일단 불부터 켜게 했다.
깜깜한 방 안은 탄내와 함께 역한 냄새가 가득했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끄럽게 소리치던 사람이 있던 방 같지가 않았다.
"어? 불이 안 들어오는데요?"
"랜턴! 불 좀 비춰봐."
"두꺼비집이 여기 어디 있을 거요."
관리실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누전차단기를 다시 올리자 불이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억! 김, 김 경장님. 저기, 저기 좀 보세요!"
"왜 그리 호들갑이야? 랜턴 비춰봐!"
새카만 모니터 앞에 얼굴을 고개를 박은 남자가 보였다.
"고춘기씨? 여보세요!"
대답 없는 남자의 어깨를 잡아 흔들려고 다가간 김태희는 그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
"할아버지 누전차단기 만지지 마세요!"
책상에 고개를 묻은 남자의 입 주변과 토사물 주변이 새카맣게 타버린 것을 보고 혹시 할아버지가 두꺼비집을 만질까 싶어 말렸다.
"고춘기씨, 고춘기씨?"
김태희 경장이 남자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봤지만, 의식이 없었다.
제발 아니길 바라며 남자의 경동맥 부근을 만졌다.
아무런 맥박이 없었다.
"길재야, 바닥에 눕혀!"
둘은 의식도 맥박도 없는 남자를 바닥에 바로 눕혔다.
"길재야, 119에 전화해!"
김태희 경장은 호흡을 확인하기 위해 손가락을 가져다 댔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김 경장님 전화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새끼야! 귀에다 대!"
김태희 경장은 의식불명의 남자의 입안 토사물을 건져냈다.
"여기 ***번지 1207호입니다. 환자는 감전사고 피해자인 것 같습니다. 의식도 맥박도 호흡도 없습니다. 2분쯤 전까지 소리 지르는 것 들었고 지금 CPR시작합니다."

119구조대원들이 1207호에서 흰 천으로 뒤덮인 들것을 들고 나갔다.
얼굴과 상의에 오물이 범벅된 김 경장은 말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그을음이 묻은 책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넋이 나간 이길재도 관리실 할아버지도 잠결에 뛰어나온 옆집 아주머니도,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이웃집 남자 뿔테안경도 아무 말 없이 괜히 한숨만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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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퓨전 무협인가요!? 1화부터 제대로 읽어봐야겠네요 :)

아름다운 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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