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3화 여긴 어디? 너는 누구? (1)

in #kr-literature7 years ago (edited)

너에게로 가는 길.png
3화 여긴 어디? 너는 누구? (1)

"웁!"
갑자기 치솟는 구역질에 눈도 못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바닥에 쏟을 수 없다는 생각에 손을 들어 벽을 찾았다.
한 걸음 두 걸음…….
다섯 여섯 걸음을 걸으며 팔을 휘저어도 걸리는 게 없었다.
'우리 집이 이렇게 넓었나?'
"풉!"
손으로 막아보지만, 역부족이다.
"우웩~"
이미 터진 것 되돌릴 수 없다.
아직 덜나온 불쾌한 기분을 털어내려고 아예 자세를 제대로 잡고 쏟아냈다.
살짝 무릎을 구부리고 허벅지 부근에 손을 기대고 누군가 내 위장을 걸레 짜듯이 쥐어짜는 고통을 방관하고 있을 때였다.
"앗 뜨거! 뭐야 이거?"
토하는 와중에 눈을 뜨고 보니 거꾸로 끌어올리느라 자연스레 습기가 가득해진 안구 너머로 괴로운 인간 와상(臥像)이 보였다.

내가 그에게 토해주기 전에 그는 다만 하나의 와상(臥像)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토해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이리저리 움직여 사람이 되었다.
내가 그에게 토해준 것처럼 누군가 나에게도 더러운 토를 쏟아 내주기를 바라진 않는다.
다만, 그 사람은 그 자리에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고 쏟아지는 내 토를 막아내려고 두 손을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괴로워하는 그를 보면서 멈추고 싶었지만, 이미 자세는 완벽하게 고정되었고 위가 뒤틀리는 고통 때문에 앞으로 넘어지거나 뒤로 넘어지는 것 외에 움직일 수 없었다.
그에겐 미안하지만, 어디로 넘어지든 내게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는 없었다.
이미 버린 몸…….
"퉤! 퉤! 이게, 뭐하는 짓인가! 멀쩡한 사람한테 이런 짓을 하다니!"
"하~ 죄송합니다. 정말 거기 계신 줄 몰랐어요. 자다가 갑자기 쏠리는 바람에 화장실을 찾으려고 일어났다가 못 참고 쏟아냈는데……."
그제야 일을 끝마친 나는 일부러 많이 당황한 것처럼 과장 섞인 연기력을 보여드렸다.
내게 큰소리로 따지는 남자의 몰골은 정말 가관이었다.
내가 토해놓은 것만 아니라면 크게 웃고 싶었지만,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도 아니, 모르는 사람이기에 더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초면에 이게 무슨 실례인가…….'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어떻게 세탁비라도 변상해드리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봐도 세탁비로는 해결이 안 될 상황이었다.
그가 일어나서 얼굴에 묻은 토사물을 쓸어냈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어떻게 손을 써 볼 수 있는 지경을 넘어서서 그의 상체 대부분이 그것에 젖었고 지금도 질척이게 반죽된 부분은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이거이거 경찰 부르면 잡혀가는 것 아니야?
요새 묻지마 범죄가 성행한다던데, 막 길가는 사람 얼굴에 황산을 뿌린다던가?
나도 위산이 조금 섞여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것도 폭행으로 분류 되려나?
아니, 테러?
나 테러범 된 거임?
'내가 다시 술을 마시면 개다. 개야!'
미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감히 피해자와 눈을 마주치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속앓이를 하는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바닥이 흙바닥이다.
방바닥도 아니고 대리석도 아니고 아스팔트도 아닌 흙바닥이라니?
피해자가 기분 상할까 두려웠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심스레 곁눈질하듯 뒤를 보았다.
그리고 몸 전체를 돌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황량한 벌판.
그야말로 초목 한그루 찾기 어려운 허허벌판이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더럽게 꼬인 것 같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동생, 그렇다고 그렇게 풀 죽을 일은 아니네. 남자가 살다보면 여기 저기 토할 수도 있는 거야!"
자다가 토를 뒤집어 쓴 사람치고는 너무 호탕한데?
"여긴 어디? 너는 누구?"
이 모든 상황이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반말이 튀어나와버렸다.
아차 하는 순간에 그의 손이 춘기의 양 볼을 순식간에 세 번이나 오갔다.
무공을 익힌 적도 없을 뿐더러 숙취로 인해서 몸 상태가 말이 아닌 춘기는 그가 손을 뻗는 것도 보지 못했다.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고 미친 척을 하다니……. 내겐 안 통하네!"
순식간에 별이 반짝이고 정신차려보니 주저앉아 볼을 감싼 자신을 발견했다.
그제야 제대로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잘못했습니다."
나는 굽혀야 할 때, 굽힐 줄 아는 시대의 준걸이다.
"하하하 형제의 연을 맺은 사이에 이까짓 잘못쯤이야 뭐 그리 큰 잘못이겠나?"
별것 아니면 때리지를 말던가…….
별일 아닌 일로 맞은 볼이 아직도 저릿했다.
분명히 감정이 실렸다.
"그런데 형제의 연이라니……요?"
"자네 어제 술이 과하긴 과했나보군. 정말 기억이 안 나는가?"
또 다시 뺨을 때릴 듯이 한손을 치켜드는 그에게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 아! 아~ 아하! 이제 기억이 나네요. 분명히 우린! 어제? 유비, 관우, 장비 개잡종 세 놈들보다 더 우애 깊은 형제가 되기로 했습죠?"
"어제 그런 이야기까지 했었나? 어? 이건?"
그러더니 그때까지 때릴지 말지 고민하며 내려오지 않던 손바닥을 허공을 향해 쳐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장난치듯이 파리도 못 잡을 손바닥을 이리저리 뻗던 그가 팔짝팔짝 뛰고 빙글빙글 돌았다가 주저앉을 것처럼 바닥을 쓸더니 점차 빠르게 사방팔방으로 손바닥을 쳐냈다.
'영화배우지망생인가? 얼굴은 그렇게 안 생겼는데?'
확실히 그랬다.
울퉁불퉁하면서 툭 튀어나온 이마.
짙은 눈썹과 옆으로 쭉 찢어진 눈.
낮은 코와 긴 하관.
오늘 새벽에도 밭에서 김매다온 것 같이 그을린 피부.
좋게 말하면 농촌 총각이고 솔직히 말하면 논두렁깡패의 전형이다.
울퉁불퉁한 그의 얼굴처럼 꼭 성격도 그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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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물과 무협의 하이브리드인가요. 묵향이 생각나네요. 저작보상 1갑자 예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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