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14)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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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14)

"태감!"
장삼봉은 결국, 티무르부카를 불렀다.
"그대의 호의를 거절하고도 이런 청을 하는 것이 염치 없어보일지 모르겠지만, 체면 불구하고 입을 열겠소."
"저는 개의치 않으니 마음 쓰지 마시고 말씀하시지요."
"우, 우리 무기가 전 소협과 같은 병세를 앓고 있소."
장삼봉은 차마 흉수와 일문이고 원 황실의 관리인 티무르부카에게 직접 부탁한다는 말을 꺼내진 못했다.
티무르부카가 그가 내뱉지 못한 부탁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할 리 없었다.
허나, 이미 장삼봉에게 못마땅한 마음이 생긴 그는 자신의 공력을 소모해가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가, 무기라는 아이 또한 네 의형과 같은 증세를 지녔다. 이 스승은 이미 많은 공력을 잃어버려 몹시 피곤하구나. 저 아이의 병세도 돌볼 수 있겠느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춘기는 망설이지 않았다.
장무기는 사실 이 시대를 이끌어갈 주역이다.
성격이 답답해서 소설을 읽는 내내 자신을 속 터지게 만들었지만, 근본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장무기와 인연을 만들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네 귀한 공력을 소모하는 결정이니 신중을 기하도록 해라."
"평소 무당칠협 중 억울하게 돌아가신 장오협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흥! 도룡도 따위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오대문파가 우르르 몰려들어 핍박을 하다니……."
"도룡도라니? 금시초문이구나?"
"강호에 수십 년 전부터 무림지존은 도룡도이며 누구든 그것을 얻으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는데, 태감께서는 정말 한 번도 못 들어보셨습니까?"
"아직도, 태감이라고 부를게냐?"
"사, 사부라고 불러야 하나요? 왠지 조금 낯간지럽네요. 스승님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요?"
"그럼, 그렇게 해라. 듣고 보니 참 재미있구나. 도룡보도라……."
"고 공자. 자네도 도룡도가 탐이 나는가?"
장삼봉은 어린 고춘기까지 도룡도의 허황된 이야기를 알고 있으니, 어린 무기의 앞날이 그야말로 캄캄해보였다.
"탐이야 왜 나지 않겠습니까? 다만,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서 가지러 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아가, 너는 도룡도가 어디 있는 줄 아느냐?"
"알지요. 금모사왕 사손이라는 고수가 가지고 있어요."
"그럼, 그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겠구나?"
"그게 뭐 비밀이라고요. 그는 빙……."
"악! 형님! 말하면 안돼요! 의부님의 행방을 말하면 안돼요!"
고춘기는 순간 아차 했다.
장무기의 부모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잇달아 자살한 것은 저간의 여러 복잡한 사정도 있었지만, 사손의 행방을 추궁하는 이들 앞에서 목숨을 걸고 비밀을 지키기 위함도 있었으리라.
장무기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손의 행방이 누설되는 것은 자신의 부모가 헛되이 목숨을 잃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스승님, 말하지 않겠습니다. 무기 동생의 부모님이 그 일 때문에 사손의 행방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셨으니, 장취산 대협을 존경하는 저로서는 감히 비밀을 누설하여 그들의 죽음이 헛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하하! 재미있구나.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한낱 쇠붙이 따위가 어찌 무림지존을 논하겠느냐? 그런 신외지물과 당치도 않은 소문 때문에 생사람을 죽음으로 내몰다니, 오대문파도 별 볼일 없겠군."
사실, 사손의 행방은 도룡도의 행방뿐만 아니라 사손이 맺은 여러 원한도 포함된 문제였다.
허나 티무르부카의 말처럼 원한을 가졌던 그렇지 못하던 상관없이 강호인들은 도룡도에 미쳐있었다.
티무르부카는 별 인사도 없이 장삼봉에게 목례하곤 먼저 내려가 버렸다.
"고 공자, 그대가 어찌 그 비밀을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비밀을 지켜줘서 고맙네. 부디 무기를 부탁하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태사부님, 저는 태사부님과 함께 있겠습니다. 어디로도 가지 않겠어요."
일고여덟 살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 녀석이 열두 살이나 먹은 장무기라니…….
이 시대의 영양상태가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었다.
"무기야, 할아버지 마음 편하시도록 의젓한 모습을 보여드려야지."
장무기는 고춘기의 품에 안겨 계단을 다 내려올 때까지 샘솟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모란주루 앞엔 새하얀 백마가 이끄는 호화로운 팔두마차와 여러 관리들이 연신 티무르부카에게 허리를 접었다 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먼저 마차에 오른 티무르부카는 문을 열어놓고 나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내가 한 손으로 장무기를 안고 다른 손은 전백광을 부축하면서 마차로 향하는 동안 여러 관리들과 그들을 호위하기 위해 도열한 군사들은 허리를 피지 못했다.
마치 한 나라의 왕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마차에 오르자 티무르부카는 웃으며 물었다.
"어떠냐? 환관이 되면 이 정도는 누릴 수 있는 게야. 환관이 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느냐?"
어디선가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우리는 으리으리한 장원에 도착했다.
나와 장무기, 전백광을 내려준 티무르부카는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전백광은 기연을 얻었다며 연공을 멈추지 않았고 나는 울먹이는 장무기를 달래느라 고생해야했다.
다행히 장원에서 워낙 극진하게 모시는 터라 무기를 달래는 일 외에는 어려운 일이 없었다.
해가 지고 달도 별도 뜨지 않는 새카만 밤이었다.
장무기는 열두 살이라지만, 겨우 많이 쳐줘봐야 여덟 살로밖에 보이지 않는데다가 중병을 앓고 있어서 혼자 자게 할 수 없었다.
텅 빈 방안에 혼자 둘까봐 무서웠는지 문을 나서려고 하면 자꾸 말을 걸었다.
나는 장무기를 재우고서야 겨우 바람을 쐬러 나올 수 있었다.
날이 흐려 별 하나도 뜨지 않은 하늘이 보였다.
오늘 하루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는 아니지만, 정말 놀람의 연속이었다.
괜히 은미 때문에 잔뜩 취해서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제야 술에 취해 은미에게 전화로 주정한 일이 생각났다.
'젠장, 술 먹고 새벽에 전화하는 게 제일 짜증나는 주사라는데……. 은미가 날 완전히 병신으로 알겠구나.'
이상한 상황에 처한 것보다 은미에게 마지막일 모습을 그렇게 안 좋은 인상으로 남겼다는 사실이 가슴을 더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 때,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열서너 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티무르부카가 나를 찾는다는 말을 전했다.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께서 찾으십니다."
나는 그 아이를 따라 티무르부카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야밤에 무슨 일이지? 할 말이 있으면 낮에 하면 될 것이지 괜히 기분 묘하게 이 밤에 찾는담?'
노크하고 들어가자 티무르부카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왔느냐? 자리에 앉아라."
손자병법(孫子兵法)
티무르부카가 책을 덮자 제목이 눈에 띄었다.
"내 비록 무장은 아니나 평생 손자(孫子)를 멀리한 적 없다. 삶이 곧 전쟁이니 읽어두면 그 효용이 무궁할 것이다."
"네,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손자(孫子)는 궤도(詭道)를 남겼으나 누구도 얻지 못했다. 오직 한 명 칭기즈 칸만이 궤도(詭道)를 얻고 천하를 호령했다. 항상 궤도(詭道)를 염두에 두어라. 그러면 네가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티무르부카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이제 네가 내 문하로 입문했으니, 본파의 역사를 알아야겠지?
본파는 대설산 대륜사(大輪寺) 구마지(鳩摩智) 조사께서 개창하셨다.
단예에게 공력을 모두 빼앗긴 구마지 선사께서는 천축의 불법에 심취하셨다.
그 이후 선사께서 천축의 불가경론을 서장의 글로 옮긴 것을 보고 많은 이들이 대천대오하여 고승이 되었다고 떠받들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외인이 알지 못하는 깊은 사연이 있다.
단예에게 공력을 빼앗기기 전 선사께서는 모용가의 계략에 빠져 소림사의 칠십이종절예를 모두 익히시고 거기에 더해 역근경까지 익히시려다 결국, 마(魔)에 들으셨다.
당시 구마지 선사께서 단예에게 공력을 빼앗기지 않았더라면 아마 목숨을 잃으셨을 것이다.
공력을 모두 잃으신 구마지 선사께서는 소림에서 만났던 흑의승의 말을 떠올렸다.
그 승려는 소림의 칠십이종절예는 불법 수위가 부족하면서 억지로 상승의 무공을 더 많이 배우려고 한다면 주화입마하여 내상을 입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본 구마지 선사는 그 흑의승의 말이 하나도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셨다.
그러나, 그분이 멀고 먼 길을 돌아오셨을 때, 깨달으셨다.
본시 소림의 칠십이종절예는 모두 다 체(體)와 용(用)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체(體)는 내력의 본체이고 용(用)은 응용하는 요령이다.
구마지 선사께서 익힌 것은 그중 용(用) 즉, 응용하는 요령이다.
허나, 이후 역근경을 얻으신 선사께서는 내력의 본체인 체(體)를 익히시다 크게 탈이 나신 것이다.
흑의승이 말하기를 응용하는 요령을 익히고자한다면 해를 입더라도 일시적으로 들어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만약 내력의 본체를 익히려 한다면 크게 탈이 난다는 것이지.
구마지 선사께서는 소림의 칠십이종절예의 비급에 누군가 손을 써놓은 사실을 깨달으신 게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불가의 무학을 후대의 승려들도 자유롭게 보지 못하도록 장격각에 숨겨놓고 엄하게 지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처음 그 무예들이 책으로 엮였을 때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이후에 누군가 악독한 마음을 먹고 그리 바꿨는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것은 너무도 내밀한 소림의 비밀이라 소림사 안에서도 아는 이가 드물었다.
흑의승이 말한 불법이 깊을수록 더 많은 상승의 무공을 익힐 수 있다는 말도 당시 소림 방장과 그 사형제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
그것은 누군가 칠십이종절예를 조작해서 진체인 내력의 본체를 훔쳐 배우려고 하면 목숨을 잃게 만들고 응용하는 요령만 훔친다면 크게 상하지 않게 한 것이다.
선사께서는 흑의승을 의심하셨다.
당시 그가 보여줬던 무위라면 충분히 칠십이종절예를 모조리 뜯어고칠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바로 선사의 판단이셨다.
이 악독한 심보의 승려는 자신을 숨기고 칠십이종절예를 비틀어 놓은 뒤 숨어서 도둑들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보고 환호한 게지.
그리고 그들 앞에선 불심이 모자라다느니 하는 말로 영영 헤어 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려 버린 게야.
자신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득도한 고승인 척하면서 말이다.
감히 승려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후 구마지 선사께서는 소림의 칠십이종절예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셨다.
그분께서는 소림의 무학이 천축의 불법에서 전해져왔음을 상기하시고 천축의 불법을 구하셨다.
그 와중에 천축의 불가경론을 서장의 글로 번역하신 것이다.
구마지 선사께서는 본래 내외의 무학에 오묘한 정도를 정통하셨다.
그분께서 익히신 무예는 바다와 같이 넓고도 깊었다.
대단한 절학들 중에서 손에 꼽을만한 것이 바로 소무상공(少無相功)이다.
선사께서는 우연한 계기로 소무상공(少無相功)을 얻으시고 평생 잊지 않으셨다.
그분이 소림의 칠십이종절예를 복원할 때, 염두에 두셨던 것이 바로 소무상공(少無相功)이다.
소무상공(少無相功)을 기둥으로 삼고 다른 절기는 가지로 삼아라.
그분께서 입적하시기 전에 소림 무학 중 오로지 다섯 가지만 남기셨다.
앞으로 네가 배울 점화지와 다라엽지, 무상겁지 이 세 가지 지법과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 그리고 역근경(易筋經)이다.
나머지 소림절예들은 모조리 불태우셨다.
복원하지 못한 무학들을 후대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접했다가 흑의승의 의도대로 자멸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셨다.
이 다섯 가지 무학은 소무상공(少無相功)과 소통함에 있어서 거리낌이 없고 서로가 상호작용하여 하나가 앞서나가면 다른 것을 이끌어 성취를 돕는다.
오늘에 이르러서 이 네 가지 무예는 이백 여 년 동안 무려 여덟 대를 거쳐 내려오며 소림의 그것과는 이름과 겉모습만 비슷할 뿐 완전히 다른 무학으로 거듭났다.
너는 선대의 가르침을 받아 물려받은 무예를 계승 발전시킬 각오가 되었느냐?"
"예, 최선을 다해 배우고 발전시키겠습니다."
"오늘 네게 가르칠 것은 우리의 본이 되는 소무상공(少無相功)이다."
'소무상공(少無相功)!'
소요파의 3대 신공으로까지 불리는 사기무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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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직접쓰시는거에요??

쓴지 한참된 글이죠.

우와........

이런 감탄사 처음이얏!!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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