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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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7)

장삼봉은 전백광에게 호감이 갔으나, 몽고 병사와 어울리고 행실 또한 방탕함을 본지라 말을 오래 섞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선을 전백광 뒤에 선 고 공자에게 돌렸다.
"동생, 인사 올리게. 장 진인이시네."
전백광의 호들갑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 숙여 인사하려고 했으나, 내게 재촉하는 전백광은 아직도 무릎을 꿇은 상태인데, 동생인 내가 서서 인사하기도 뻘쭘했다.
"고춘기가 장 진인을 뵙습니다."
세배하듯 장삼봉에게 절을 올렸다.
"그만들하고 일어나시오."
장삼봉이 직접 부축하고 나서야 전백광은 무릎을 들었다.
"자네가 입고 있는 것이 연위갑이 맞는가?"
"그렇게 들었습니다."
고춘기는 눈앞에 노인이 장삼봉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천하제일인이 아닌가?
게다가 백 살이 넘었다는데, 눈앞의 장삼봉은 백발백염을 자랑할지언정 피부는 팽팽했다.
"그 보물은 본래 과거 도화도의 보물로 곽정 대협과 황용 여협이 돌아가시고 행방이 묘연한 물건이었네. 자네는 그분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모르는 분들입니다. 이 갑옷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남기신 유품으로 가보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선사께선 함자가 어찌되시는가?"
"고(高) 두(杜) 자 심(審) 자 쓰십니다."
장삼봉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연위갑을 둘러싼 저간의 사정은 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본래 도화도의 보물이었고 곽정 대협과 황룡 여협께서는 몽고로부터 나라를 지키다 순국하셨네."
이 연위갑은 내가 치트키를 써서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호노(胡虜: 흉노)에게 백년의 운(運)은 없다는 예언을 명심하시게."

이금석은 여전히 고춘기가 마음에 걸렸다.
햇볕 한 번 받아보지 못한 것 같은 새하얀 피부,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고 하대를 당연시하는 행동거지.
말을 탈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말에 혼자 오르지 못하는 행동.
자신이 손을 내밀자마자 항상 그랬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손을 밟고 오르는 모습 등 모든 것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는 귀한 집 자손일 것이 분명했다.
남을 함부로 대해도 될 만큼 유력한 배경을 지녔을 것이다.
더군다나 고춘기와 전백광은 서로 의형제라고 밝혔으나 행동거지와 겉모습을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대단한 무위를 지닌 전백광과 함께 다니는 귀공자…….
차라리 대단한 가문에서 귀공자를 지키기 위해 호위무사를 달아놓았다는 추론이 더 현실적이었다.
이금석은 그가 고용보와 관계가 없더라도 분명히 유력가문과 연관관계가 있을 것 같았다.
유력가문의 자제일지도 모른다고 수모를 당하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자신도 따지고 보면 자정원당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이금석은 여섯 명의 동료들에게 부상자들을 부탁함과 동시에 티무르부카에게 연락을 취할 것도 부탁했다.

티무르부카는 제자 아홉이 내력을 상실하고 실려 온 것을 보고 괴이하게 여겼다.
그는 천하 각파의 무예에 관심이 깊었다.
오래도록 관심을 갖고 살피니 당연히 조예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실려 온 아홉 제자들이 어떤 무공에 당해 내력을 잃어버린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이들은 비록 자질이 모자라 관문제자(關門弟子)가 될 수는 없었으나 이들은 후에 자정원당의 팔다리가 될 계획이었다.
향후 자정원당이 대원제국의 군권을 장악할 때, 이들이 그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야했다.
사실, 자정원당이야 망하던 말든 그가 크게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티무르부카는 새로운 수법이 궁금했다.
그는 쉽게 몸을 움직이지 않는 성격이었으나 처음 보는 수법은 그의 무거운 다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호노(胡虜: 흉노)에게 백년의 운(運)은 없다는 예언을 명심하시게."
"알탄! 보르후!"
모란주루까지 티무르부카를 안내한 자르갈은 피를 토하고 쓰러진 동료들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티무르부카는 자르갈의 뒤를 따라 모란주루의 2층에 올랐다.
너부러진 몽고 기병들 사이에서 일장 연설하는 백발백염 도인의 말을 들었다.
그것은 원조치하의 중국사회에서 유행하는 예언이었다.
원나라는 백년을 가지 못하고 망할 것이다.
그 말을 듣자 장내의 상황이 어찌된 일인지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그대가 이들을 상하게 한 이유는 무엇이오?"
그의 목소리는 매우 괴이했다.
어떻게 들으면 어린 아이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여인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으면 그 무엇과도 달랐다.
그의 외모 또한 목소리만큼이나 특이했다.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의 얼굴엔 수염이 한 가닥도 보이지 않았고 어딘지 모르게 여성스러움이 느껴졌다.
어려서 거세한 티무르부카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목소리 톤이 높았다.
티무르부카는 장삼봉이 대답하길 기다리지 않았다.
티무르부카의 신법은 뛰어나 눈 깜짝할 사이에 장삼봉 앞에 이르러 쌍장을 내질렀다.
그의 신법이 대단한 것을 보고 장삼봉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삼봉은 진산장(震山掌)으로 맞섰다.
꽈광! 두 사람의 육장이 부딪히면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쌍장을 부딪힘과 동시에 떨어졌는데 그 결과는 사뭇 달랐다.
장삼봉은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난 반면 티무르부카는 고작 뒤로 한걸음 내딛었을 뿐이었다.
티무르부카는 크게 놀랐다.
지난 십 년간 자신의 장력을 받아내고도 두 다리로 땅을 딛고 버틴 사람은 없었다.
그는 장삼봉을 보고 단번에 노회한 고수인 것을 파악하고 전력을 다해 장력을 떨쳤는데, 상대를 죽이지 못하고 도리어 한걸음 물러섰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경신법을 발휘해 도약함과 동시에 내질렀던 것인데도 상대가 큰 부상을 입지 않은 것 같아 간담이 서늘했다.
그의 인생 최대의 강적을 만난 것임을 확신했다.
장삼봉은 긴 한숨을 내쉬고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
장삼봉이 과거 소림 각원대사의 가르침을 받을 때, 많은 이들이 도전했으나 감히 익히지 못한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이었다.
백여 년에 한 번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을 익힌 기재가 나타나곤 했으나 지난 백년 간 소림의 어떤 기재가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을 익혔다는 말은 들어본 기억 없었다.
그러나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을 펼친 이는 환관이었다.
전백광은 두 사람의 장력대결에서 환관은 겨우 한걸음 물러난 것에 비해 장삼봉이 세 걸음이나 물러나자 크게 손해를 본 줄 알고 얼른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 부랄 도둑 같은 놈아! 감히 진인께 무례를 범하다니……. 이리와라! 이 전 나리가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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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부정적으로 살지말고 매사를 밝고 희망있게 바라보고 하나를 보고 판단하지 말며 그사람을 모욕하기전 자기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 볼줄 아는 그런 청년이 되길 바람. 똥덩거리가... 나는 한번 물면 절대 안놓는다.. 내 아이디와 글이 똥덩거리라면 당신이 작성하는 외전은 어떻다고 생각하지?

게임에서 대력금강장이 나왔었나요. 오래되서 가물가물하네.

제 글에선 김용의 모든 소설에 등장하는 무공이 등장합니다.
게임 의천도룡기 외전에서 김용의 모든 소설에 등장하는 무공을 다 넣으려고 했던 것을 모티브로 했죠.

게임은 너무 오래전에 해서 제가 잘 몰랐네요. 김용이 쓴 책을 찾아다녔던 것 정도 기억납니다. 나중에 제가 이미 그책을 다 읽어봤다는 걸 알고 실망했었죠. 김용소설을 제일 좋아했는데 이미 다 읽어버렸다는게 아쉬워서 재미있는 무협을 찾아 여러작가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소요님과 반대 순서로 김용 소설을 접했습니다.
만화책 졸업하고 무협지에 빠져있을 때였죠.
묵향으로 시작해서 당시 책방에 나온 모든 책을 다 읽고나서 구석진 곳에 비치된 옛날 무협들을 읽을 때였습니다.
김용의 소설은 아무래도 초반에 주인공이 누구인지 헤깔리는 경우가 많죠.
보통 신무협은 시작과 동시에 5분 안에 독자를 끌어잡으려는 마치 영화 같은 포지션을 취했기 때문에 신무협에 익숙해진 제가 접하기엔 매우 지루해서 두 세번 읽으려다 포기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읽을 게 없어서 지루한 앞부분을 꾹 참고 한권 두권 읽어나갔더니 어느 순간에 제가 울고 웃고 전율하는 것을 느끼고 감탄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천룡팔부에서 단예가 왕모 여인마저 자신의 배다른 동생이란 사실을 알게되는 장면,
그리고 소오강호에서 동방불패가 화장하는 장면에서 울고 전율했죠.
아... 동방불패..
화장하는 동방불패를 묘사하는 그 2,3 페이지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설정, 상상을 했는지 그땐 감전된 것처럼 전율했습니다.
그 때, 진짜 김용이 대단한 작가구나...
라고 인정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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