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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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17)

그가 거듭 흥분하자 갑자기 그의 전중혈의 진기가 멋대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제 그는 장삼봉의 내력이 자신의 삼성 공력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티무르부카의 내력을 이 할이나 잡아먹었다.
장삼봉은 구십년 남짓을 반쪽 구양신공을 연마해서 내력으로는 이날 이때까지 한 번도 손해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삼분의 이에 해당하는 공력을 한 번에 받아들였으니, 탈이 나지 않고 하루를 버틴 것이 용했다.
거기다 전백광을 살린답시고 한독과 융합한 내력을 절반이상이나 흡수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흥분하는 바람에 물이 가득한 찻잔을 흔들어버린 형국이 되었다.
찻잔 속의 물은 넘치려고 했고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사방이 막혀있는 찻잔이다 보니 넘친다는 것은 곧 잔이 깨져버리는 것을 의미했다.
혈도가 망가져버리면 경과가 좋더라도 겨우 폐인이 되는 것이다.
물이 넘치지 않게 하려고 어제 한 번 경험한대로 전중혈 바로 아래 위치한 중정혈로 흘려보냈다.
허나 이미, 그곳도 물이 가득한 상태인데 건드리는 바람에 그곳의 찻잔도 크게 흔들려 안에 가득찬 물이 찻잔을 깨고서라도 나오려고 했다.
그는 이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나 멈출 수는 없었다.
감히 다시 위로 올라갔다가 전중혈이 망가져 버릴까봐 올라갈 엄두는 내지 못하고 다시 중정혈 아래에 위치한 구미혈로 내려갔다.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멈출 수도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넘치는 물을 아래로 아래로 흘려보냈다.
구미혈 아래의 거궐혈도 그 아래의 상완혈도 그 아래에 위치한 중완, 건리, 하완, 수분, 신궐, 음교, 기해혈까지 가득차지 않은 곳이 없었다.
중정혈만큼 거대한 기해혈을 건드리곤 더는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게 된 고춘기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열두 개의 혈도가 망가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결국 그가 떠올린 것은 소무상공(少無相功)이었다.
고춘기는 현철중검을 들고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연무장에 도달한 고춘기는 가상의 적을 만들고 현철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어제 아침에 현철검법을 익혔다.
비록 힘과 내력이 부족해서 현명패천장(玄冥覇天掌)을 익힌 전백광처럼 마음껏 풀어내지 못했을 따름이다.
-무거운 검에는 날이 없고 뛰어난 기교란 기교를 부리지 않는 것이다.
누구의 기억인지 모르게지만, 천하종횡하며 십년간 무수하게 쓰러뜨린 적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람도 베고 짐승도 베었다.
전력을 다해 휘두르면 그나마 잠시라도 개운했다.
그의 검은 갈수록 빠르게 움직였다.
찌르고 베고 휘두르기를 수십 번, 내력은 부족하지 않았으나 힘이 부족했다.
고춘기의 근육은 아직 이렇게 무거운 물건을 들고 전력으로 휘둘러도 견뎌낼 만큼 건실하지 않았다.
그는 온몸의 근육이 현철중검을 맹렬하게 휘두르는 것을 버티느라 터져나갈 것 같이 아파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베고 찌르기를 반복했다.
입에선 끊임없이 알 수 없는 주문(呪文)을 암송했다.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칼을 들고 날뛰는데, 장원의 시비들과 하인들은 감히 그의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거리를 두고 훔쳐보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고춘기는 신기가 대단한 무당이 신 내림을 받은 것처럼 무언가 대단한 것이라도 쓰인 것 같았다.
그러니 혹시 다가갔다가 귀신에게 해코지라도 당할까 무서워 감히 그를 제지할 생각은커녕 눈앞에 마주서기도 두려웠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가 신 내림을 받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자신들이 크게 곤욕을 치룰 것이 분명했다.
말려야하나 말아야하나 눈을 감고 뜨는 짧은 순간에도 수십 번씩 번민이 찾아왔다.
어린 아이가 칼을 들고 날뛰는 것이 보기 흉하고 좋음을 떠나서 그의 입에서 웅얼거리는 주문(呪文)은 정말 괴이했다.
처음엔 뭐라고 웅얼거리는지 자세히 들으면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남이 들을까봐 무서웠는지 소리는 내지 않고 입모양만 오물조물 움직이는 바람에 귀를 쫑긋 세웠던 구경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의 궁금증은 더해져만 갔다.
얼마나 대단한 주문(呪文)이기에 저리 귀하게 감추는 것일까?
그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알았을까?
다시 웅얼거리는 주문(呪文)이 들려왔다.
이번엔 아까보다 더 큰소리가 났지만, 그러나 이전보다 더 심하게 웅얼거리는 바람에 역시 아무도 제대로 들은 사람이 없었다.
미친 소년의 옹알이는 다시 점차 줄어들어 아무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때, 이미 소년은 광기로 얼룩져있었다.
얼굴은 이미 땀과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는데도 닦지도 않고 칼춤에만 열중했다.
그의 광증(狂症)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다시 소년의 주문(呪文)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것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소년이 귀신에 들어서 귀신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주문(呪文)을 내뱉는다고 생각했다.
집사 이헌 또한 미친 소년이 두렵고도 신기해서 어찌하지 못하고 훔쳐보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니 자기보다 높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이 소년이 잘못되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가장 높은 자신이 책임을 쳐야했다.
"이보게! 뭣들 하는가! 당장 가서 말리지 않고!"
그는 바로 옆에서 숨어 자신과 함께 미친 소년의 광란의 칼춤을 구경하던 잡부들에게 윽박질렀다.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잡부들은 이 장원에서 빌어먹고 사는 자들로 집사인 자신의 한마디면 당장 쫓겨나도 억울하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꼬리 내릴 인간들이었다.
평소에 자신의 말을 황제의 칙서 대하 듯 하던, 이들이 자신의 말을 들은 체도 안하자 항상 조심하던 혈압도 잊어버리고 더 큰소리로 악을 썼다.
"이놈들! 내 말이 안 들리나! 당장 가서 말리지 못하겠느냐! 당장 뛰어나가지 않으면 이 집에서 밥 빌어먹긴 틀린 줄 알아!"
그가 한껏 으름장을 놓았으나 잡부 다섯 명 중 한 명도 뒤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이런 상놈들이!"
그는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은 분명히 큰 소리를 쳤건만, 자신의 귀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거짓말처럼 이상한 주문(呪文)소리가 뚝 그쳤다.
그는 그제야 주문(呪文)소리가 너무 커서 이들이 자신의 고함소리조차 듣지 못한 줄 알았다.
아무렴 감히 잡부 따위가 자신이 말하는데 무슨 담으로 못들은 척 한다는 말인가?
돌이켜보니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
전후 사정을 잘 살펴보지도 않고 무작정 닦달하는 성격이라니…….
내년이면 쉰인데, 앞으로 조금 더 체면을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보게. 자네들 이제 내 목소리가 들리는가?"
그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아무소리도 듣지 못했다.
고춘기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가 주문(呪文)을 외울수록 두 유두 사이 가운데에 위치한 전중혈부터 기해혈까지 열두 혈도에 가득차서 혈도를 망가뜨리려했던 기운이 조금씩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것은 희한한 일이었다.
흩어져서 주변으로 퍼진 것도 아니고 다른 어떤 것과 충돌하여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은연중에 조금씩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물론, 자신이 공들여 쌓은 공력은 아니었지만, 어찌됐든 이제 자기 것이 되었으니 아까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살기 위해선 주문(呪文)을 계속 외워야 했고 약간의 손해가 있더라도 살아남는 길을 선택했다.
신기한 것은 공력이 조금씩 없어지는데, 그럴수록 무거웠던 현철중검이 점차 가벼워졌다.
곧 요동치던 기운을 다스릴 수 있을 만큼 공력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의 미친 칼춤도 어느새 멈췄다.
그러나 고춘기는 소무상공(少無相功)의 주문(呪文)을 멈추지 않고 계속 외웠다.
공력은 계속해서 자취를 감추는데, 한손으로 든 현철중검은 점차 가벼워졌다.
그는 공력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주문(呪文)을 외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공력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자 그는 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속으로 계속해서 어제 외운 소무상공(少無相功)의 비급을 되새겼다.
티무르부카는 저녁 늦게야 장원으로 돌아왔다.
그는 장원에 속한 스무 명 남짓한 식솔들이 벙어리에 귀머거리가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티무르부카는 그들을 보고 짚이는 것이 있어 서둘러 고춘기의 방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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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출도할 때 쯤에는 절세고수가 되겠네요. 소무상공 부작용의 복선회수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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