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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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31)

다음 날, 나는 결국 태현경(太玄經)을 불사르지 못하고 문을 나섰다.
그러나 이런 귀한 물건을 불안하게 놓고 다닐 수도 없었다.
그래서 기름먹인 가죽으로 잘 감싸서 연위갑 안쪽에 꿰매버렸다.
북명신공 본래 취지를 깨달은 지금 태현경(太玄經)에 얽매일 필요는 없었지만, 왠지 이런 보물 하나쯤은 머릿속이 아니라 내 품안에 갖고 싶었다.
'그동안 못 익혔던 수많은 무학들을 모조리 익혀주마!'
"동생. 얼굴 한 번 보기 힘들군. 뭐 대단한 무공이라도 연마했나보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전부터 고민했던 문제가 풀린 것뿐입니다."
전백광은 선뜻 믿지 않는 눈치였으나 계속 캐묻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아침을 함께했다.
장무기와 전백광이 함께했다.
무기는 이제 병색이 완전히 사라졌고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무당장권을 연마하고 있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간바타르 등 아홉 명의 고가금강지(高家金剛指)를 살펴보았다.
역시 소림의 무공은 며칠 안 봤다고 급격히 성장하는 성향은 아니었다.
뙤약볕에 열심히 외공수련을 하고 있으나, 하루 이틀로는 성과를 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앞으로 내 손발이 되어야하는데, 이런 수준이면 아예 내가 모시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매번 힘이 필요할 때마다 내가 나서야한다면 수하를 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뭔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전백광이 나타났다.
그는 꽤나 유심히 우간바타르 등 아홉 명이 금강지를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들이 연마하는 지공이 꼭 소림의 금강대력지공(金剛大力指功)과 매우 유사한 것 같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감히 소림의 금강지와 비교할 수준은 아닙니다.
그저 대수롭지 않은 저희 집 가전무공인 걸요."
열심히 수련하던 부하들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일전에 천하제일인 소림의 금강대력지공(金剛大力指功)과 비견될만하다고 호언장담하지 않았냐는 눈빛들이었다.
난 그들의 추궁하는 눈빛을 가볍게 묵살했다.
"아무래도 아미파 제자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할 것 같네.
무공을 폐지당한 사람은 적고 아직도 몇몇은 탈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그의 말을 듣고 난 어렵지 않게 그가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형님이 좀 맡아주시겠습니까?"
"아! 그럴까? 역시 나만한 사람이 없지?"
전백광은 너무 속내를 뻔히 드러냈다.
"스승님께서 이번 사건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저는 무조건 형님 편을 들겠지만, 아시다시피 형님이 스승님께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히셨으니 좀 조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형님이 앞으로 아미파 제자들을 관리한다는 명목아래 그녀들을 괴롭히거나 해서 더 큰 문제를 만든다면 저로서도 스승님께 할 말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 없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난 평생 동안 여자를 괴롭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네."
전백광의 흰소리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내 머릿속에선 며칠간 집어넣은 비급들이 서로 손짓하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남들은 평생 한 번 구경하기도 힘든 보배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었다.
어느 것을 먼저 익힐까 한참을 고민하고 나서야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어떤 무공이 천하제일일까?
문득 내가 했던 고민은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석은 고민이었다.
나는 어떤 무공이 더 뛰어난지 고민하다 시간을 보내기보다 지금 내게 필요한 무공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는 어떤 무공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내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고수가 있어서 너는 지금 이 무공이 제일 필요하니, 이것을 익히라고 하면 얼마나 편할까마는 안타깝게도 나는 스승인 티무르부카에게도 비밀을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벌어졌던 싸움이 떠올랐다.
정현사태와 정허사태 그리고 멸절사태로 이어지는 일전은 매순간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속임수와 요행으로 난관을 넘었으나, 마지막에 의천검이 부러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내 검술이 그들과 당당히 겨룰 만큼 뛰어났더라면 속임수를 쓰더라도 조금 더 수월하게 이기지 않았을까?
사실, 검술 높고 낮음을 떠나서 나는 상대와 쇠붙이를 들고 싸우는 일이 영 못마땅했다.
굳이 가까이에서 상대의 칼날을 피하는 것이 매우 위태롭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그동안 멀리서 지풍을 날려 상대를 제압하는 점화지(點花指)에 열중했던 것이다.
그는 그 해답을 황용과 곽정이 의천검에 숨겨놓은 무예들 중에서 두개나 찾을 수 있었다.
[만천화우척금침(滿天花雨擲金針)]
[탄지신통(彈指神通)]
만천화우금적침은(滿天花雨擲金針)은 한손으로 십여 개의 바늘을 동시에 발사해서 적의 급소를 찌를 수 있는 재주였다.
만약, 제대로 익히면 굳이 상대를 가까이까지 끌어들이지 않아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손에 십여 개씩 번갈아가며 던지는 바늘을 막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탄지신통(彈指神通)은 손가락을 튕기는 재주인데, 그 재주가 얼마나 뛰어난지 일양지와 비견될만했다.
황약사는 과거 주백통과 내기할 때, 이 재주를 이용해서 돌멩이를 튕겨 돌 벽에 박아버려 그를 놀라게 한 바 있었다.
마침 내 소지품 중에 흑혈신침과 빙백은침 그리고 염주알이 몇 알 있었다.
이 일곱 개 뿐인 바늘들은 지독한 독을 품고 있어서 한 번 던지면 돌이킬 수 없었다.
고가금강지(高家金剛指)를 연마 중인 막내 지르가다이를 불러 스무 냥짜리 은원보를 하나 주곤 돈 되는대로 바늘을 몽땅 사오라고 했다.
아무래도 탄지신통(彈指神通)보다는 만천화우척금침(滿天花雨擲金針)이 익히기 쉬웠다.
지르가다이가 심부름을 나간 동안 수하들을 불러 모았다.
여덟 사내가 모였다.
모두 외공수련에 몰두하던 중이었는지 좁은 방안은 금새 쩐내로 가득 차버렸다.
그 냄새가 자못 심각했으나, 중요한 말을 꺼낼 시점이라 굳이 냄새난다고 호들갑떨어 위엄을 떨어뜨릴 수는 없었다.
"나는 천애고아가 되어 스승님을 만나기 전까지 천하를 떠도는 유객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져오는 무학은 절대 잡스럽지 않다.
그래서 남에게는 전하지 않아왔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내가 너희들을 우리 집안의 가신(家臣)으로 여기지 않았다면 아버지에서 아들에게만 전하는 고가금강지(高家金剛指)를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간바타르 등은 실제로 익혀보고 나서야 그가 전해준 고가금강지(高家金剛指)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이전에 배웠던 야호권법 따위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체계적이었고 내공에 있어서도 상승의 법문을 다루는 절학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느낀 것은 고춘기가 소림의 금강대력지공(金剛大力指功)을 연구하면서 위험하고 비효율적인 외공수련을 몽땅 뜯어고쳤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무예들은 일면 놀랄만한 위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현대의 격투스포츠와 비교하자면 매우 비효율적인 훈련시스템을 지녔다.
현대에 웨이트트레이닝은 인체의 균형과 보다 효과적인 훈련방법 그리고 부상의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연구로 발전되었다.
그래서 한 가지 운동을 하더라도 정확하게 자신이 발달시키고 싶은 근육이 어느 곳인가를 정하고 오직 그 근육에 집중함으로써 효율적인 발전을 도왔다.
뿐만 아니라 부상의 위험에서 덜기 위해서 운동마다 자세를 중요시했다.
그러나 이곳의 외공수련은 가혹하기만하고 효율은 떨어졌다.
위험한 외공수련방식을 고수하면서 부상의 위험은 상승의 내공법문으로 커버하려했다.
금강지 중 천하제일의 명성을 자랑하는 소림의 금강대력지공(金剛大力指功)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위험만 크고 효율은 지극히 낮은 외공수련방법을 모두 뜯어고쳐서 전했으니, 그들은 처음 보는 방식이지만 직접 겪으면서 얼마나 뛰어난 체계인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다 적절한 영양섭취와 휴식까지 권하니 비록 그들이 고가금강지(高家金剛指)를 익힌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외적인 면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다.
그들 모두가 몸에 근육 량이 많아졌고 이전에 기대하지 못했던 힘을 갖게 되었다.
이대로 일 년만 열심히 연공한다면 그들은 이전의 공력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서서 외공고수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죽어라고 연공에 열중한 것이다.
"너희들이 예전의 내공만은 못하지만 어느 정도 내력을 가지게 되었으니, 본가의 비전 한 가지를 더 전수하고자 한다."
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어린 주인은 얼마나 많은 비전지학을 지니고 있기에, 수하로 들인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자신들에게 이렇게 선뜻 신공을 전수하는 것일까?
"이는 내가 너희를 타인이 아니라 내 살이요 피라고 생각하고 전하는 것이니, 너희들의 친아들이 아니면 누구에게도 전하는 것을 금한다.
만약, 살면서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외에 누구라도 이 비전을 익힌 자가 있다면 틀림없이 훔쳐 배운 자일 테니, 목숨을 걸고라도 그의 목을 쳐야 할 것이다.
그리할 수 있겠나?"
"충(忠)!"
순간 여덟이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그들의 그 한 마디면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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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가 갖춰지는데로 강호에 출도하겠군요. 어떤 모험이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아마 꾸준히 읽어주시는 거의 유일한 독자분이신 것 같습니다.
매일 댓글 달아주실 때마다 감사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유명세가 있기 전까지는 장편은 독자를 모으기가 힘들죠.
제가 완주할테니 완결까지 달려가봅시다.

3명 밖에 안 읽는 글을 계속 써야되나 고민입니다.
재미없다는 의미니까요..ㅠ

저도 매일 고민합니다. 대중성도 없는 그림체 계속 연습해야 하나.
현재 세이브 분량의 연재가 아니라 리얼타임 연재인가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저는 지지해드리겠습니다.

비축분이죠.
여기에 글을 올리는 것 자체에 회의감이 드네요.
스팀잇의 장래성을 보고 들어왔는데, 시간이 갈수록 기대 이하인 것 같아서요.

아직은 장편연재가 안통하는 것 같아요. 잘된 기획물들도 10편 이하네요.
마음이 정 괴로우시면 단편위주로 재편하는 건 어떨까요?
많은 창작하시는 분들이 꾸준한 연재에도 좋은 보상 못 얻는 문제로 고민을 많이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도전하신 공모전에 대한 경험담이나 장르소설판의 현황에 대한 글을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공감을 먼저 얻고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독자를 늘어난 사례를 목격한적이 있습니다.
그림을 수십개를 연재한 만화가인데 대박은 신형 그림장비 리뷰로 터졌죠.
흥미로운점은 그 후에 그 만화가의 그림에 보상이 많이 늘어났다는 겁니다.
아직 광고가 제대로 안되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니 용기는 잃지 마세요.

여담으로 친구들끼리 코인판 풍자한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에 대해서 얘기해본적이 있는데 나름 비유문학으로서 가능성이 보인적이 있습니다.
습작을 올리는 플랫폼으로 스팀을 대한다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해 볼 수 있지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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