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12)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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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12)

전백광은 한기가 온몸을 휘감아 눈도 뜨지 못할 지경이었으나 가슴과 아랫배에서 저릿한 통증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몸은 이미 차가운 얼음이나 다름없이 딱딱하게 굳은 상태라 저릿한 통증이 그의 몸을 깨뜨릴 것 같은 공포를 느껴야했다.
이미 골수까지 침입해 주인의 자리를 차지한 한독(寒毒)은 전백광의 어떠한 노력에도 영원히 왕좌를 빼앗기지 않을 것처럼 확고부동(確固不動)했다.
게다가 전백광은 현명패천장(玄冥覇天掌)을 수련하기 이전부터 음한진기를 연마했는데, 한독(寒毒)은 전백광의 차가운 기운까지 잡아먹고 급속도로 세력을 확대했다.
그러나 곧 그를 얼음처럼 얼린 한기가 가슴과 아랫배의 두 혈자리에 모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아카시아 꽃의 단내에 홀린 꿀벌 같았다.
가슴의 전중혈과 아랫배의 기해혈로 모인 한기는 어딘가로 끝도 없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전백광은 희한한 감정을 느꼈다.
지금까지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한독(寒毒)이 빠져나가자 그는 기이한 상실감을 느꼈다.
그것은 전백광은 혼몽한 와중이라 인식하지 못했으나 한독(寒毒)이 이미 그의 내력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고춘기는 자신의 실수로 다른 사람이, 그것도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자신을 위하던 의형이 죽는다는 사실에 지독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차라리 자신이 그 벌을 대신 받고 죽었으면 죽었지 이런 죄책감을 갖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에게 방법이 생겼다.
한독(寒毒)도 기운이다.
지독하게 차갑고 인체에 해로운 기운이지만, 그것이 사람의 몸속에 존재하는 기운이라면 북명신공(北冥神功)이 빼앗지 못할 리 없다.
그가 만약 티무르부카의 말을 믿지 못했다면 차라리 죽고 싶은 죄책감을 느끼면서 부끄럽게 살더라도 감히 전백광의 한독(寒毒)을 흡수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백광의 안색이 흙빛을 잃을 때까지만, 한독(寒毒)을 빼앗기로 했다.

고춘기는 자신이 전백광의 한독(寒毒)을 일정부분 가져오면 티무르부카가 자신과 전백광 모두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윽고 얼음보다 차갑고 칼끝보다 고통스러운 한독(寒毒)이 양쪽 엄지손가락의 소상혈을 통해서 들어왔다.
지나오는 길을 모두 갈가리 찢어발기는 듯 한 두 줄기의 한독(寒毒)이 그의 양팔의 수태음폐경의 혈도를 타고 임맥에 이르렀다.
고춘기는 그제야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차라리 평생을 전백광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았어야 했다.
아무리 후회하고 자신을 원망 해봐도 이미 한독(寒毒)이 그의 전중혈까지 다다랐다.
한독(寒毒)은 전중혈에 자리한 고춘기의 북명진기(北冥眞氣)와 만나 하나가 되었다.
고춘기가 품은 북명(北冥)이라는 이름의 바다는 본래 차갑기보단 따뜻한 성질이 강했다.
그것은 그가 이전에 빼앗은 몽고기병들의 내력이 따뜻했기 때문이다.
고춘기의 바다는 난류만 흘렀는데, 한독(寒毒)이 침입하자 그 따뜻한 기운은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북명(北冥)이라는 바다는 정말 북쪽의 큰 바다처럼 차갑게 변하더니 얼음이 얼었다.
살얼음이 낀 바다에 차가운 한독(寒毒)은 쉬지 않고 공급되었고 북극에 있다는 큰 바다처럼 빙산을 이루기 시작했다.
고춘기는 가슴 한가운데 얼음 바다를 품은 것이다.
북명신공(北冥神功)은 본래 남의 기운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취하고 때로는 허공에 날려버리는 일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다.
정춘추가 북명신공(北冥神功)을 배우지 못하고 그것을 모델로 따라 만든 화공대법(化功大法)은 그 두 가지 기능 중 오직 남의 내력을 없애버리는 것만을 흉내 내는데 그쳤다.
그러나 고춘기는 오늘 정오 즈음에 겨우 북명신공(北冥神功)에 첫발을 들였다.
그는 아직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법 밖에 익히지 못했다.
티무르부카와 장삼봉은 고춘기가 전백광의 상의를 찢었음에도 그가 무엇을 하려하는지 감도 잡지 못했다.
고춘기가 북명신공(北冥神功)과 같은 초상승의 내공법문(內功法文)을 익힌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가 양쪽 엄지손가락을 전백광의 가슴과 아랫배에 대고 안색이 창백해지자 좌중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장삼봉과 티무르부카는 그제야 고춘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정말 어리석고 생각이 짧은 짓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한독(寒毒)을 받아들여야 전백광의 안색이 푸르죽죽하게라도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인가?
어린 아이들의 발상이란 이렇게 어리석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얼굴이 흑색 빛을 띠게 된다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상황을 파악하고도 손을 쓰지 못했다.
나이 어린 고춘기가 내력을 주고받는 상승의 내공법문(內功法文)을 어찌 알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보다 내력을 주고받는 일은 한독(寒毒)이라는 지독한 매개체가 아니더라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사문의 사부와 제자 사이이거나 부모자식 사이라도 함부로 행하지 않을 만큼 위험했다.
둘 중 한 사람의 사소한 실수로도 두 사람 모두 폐인이 되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보다 위험한 것은 외부의 충격이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어찌할 수 없는 문제였다.
장삼봉과 티무르부카가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도 손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들의 초조함도 오래가지 않았다.
고춘기의 안색은 순식간에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버렸고 숨을 몇 번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입술이 새파랗게 변해버렸다.
"장 진인! 안되겠소. 한 사람이라도 살려야겠소."
장삼봉 또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춘기의 병세가 순식간에 악화되는 와중에도 전백광의 안색은 흙빛이 조금 누그러졌을 뿐 확연한 호조(好調)를 보이지 않았다.
장삼봉은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티무르부카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춘기의 얼굴은 녹기(綠氣)가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병세가 악화되는 속도가 무섭게 빨라지는 것이다.
티무르부카와 장삼봉 모두 영문을 몰랐으나 그것은 북명신공(北冥神功) 때문이었다.
상대의 내력을 역전하는 순간 더 빠르게 내력을 빼앗는 북명신공(北冥神功)이 고춘기를 죽이고 있었다.

고춘기가 품은 바다는 이미 꽁꽁 얼어서 하나의 대륙으로 변해버렸을 때였다.
이미 고춘기 또한 전백광처럼 정신이 몽롱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갑자기 그의 전중혈을 통해 안온(安穩)하면서도 청명(淸明)한 기운이 거대한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신기한 폭포수는 고춘기의 얼어버린 바다를 녹이기 시작했다.
끔찍하게 차가운 얼음대륙은 폭포수가 닿자마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거대한 여러 조각의 빙산으로 나뉘었다.
폭포수의 유입으로 고춘기의 바다는 더 넓어졌고 더 깊어졌다.
폭포수는 순식간에 표류하는 빙산들을 모두 녹여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고춘기의 양팔의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을 통해서 흘러들어오는 두 줄기 한독(寒毒)이 멈추지 않고 유입되면서 안온(安穩)하고도 청명(淸明)한 폭포수에 맞섰다.
문제는 고춘기가 품은 바다는 지독한 한독(寒毒)과 신비한 폭포수를 받아들이면서 더욱 넓어지고 깊어져감에 따라서 북명진기(北冥眞氣) 자체의 흡입력(吸入力)이 더욱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북명진기(北冥眞氣)의 흡입력(吸入力)이 강해질수록 전백광의 한독(寒毒)을 빨아들이는 속도 또한 강해졌다.
만약 고춘기의 정신이 또렷했다면, 한독(寒毒)을 흡취하는 일을 멈추고 신비한 폭포수만을 받아들여 이미 받아들인 한독(寒毒)을 다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몽롱한 정신 속에서 자신이 한독(寒毒)을 흡취하는 것을 망각한 고춘기는 누군가 자꾸 차가운 기운을 넣어 자신을 괴롭힌다고 여겼다.
자신이 살길은 오직 이 청명(淸明)하고 안온한 기운을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없다고 느끼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청명(淸明)하고 안온한 기운과 한독(寒毒)의 유입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것은 고춘기의 작은 양쪽 유두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전중혈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울 만큼 커졌다.
그의 바다가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보다 빠르게 강물이 유입되었다.
고춘기의 전중혈은 넘치기 일보직전의 댐처럼 위태로웠다.
혼몽한 와중에도 고춘기는 본능적으로 아랫배에 위치한 기해혈에도 바다를 만들었다.
그는 가슴에 안은 바다가 가득차서 가슴이 답답해질 때마다 쏟아져 들어오는 한독과 청명(淸明)하고 안온한 기운을 아랫배의 기해혈로 이끌었다.
그렇게 고춘기는 두개의 대양(大洋)을 품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이 몇 번 반복되기도 전에 기해혈도 금방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는 전중혈이 가득차자 넘치는 기운을 기해혈로 이끌었던 것처럼 기해혈과 전중혈 사이에 혈도에 하나씩 바다를 이루기 시작했다.
전중혈 바로 아래의 중정혈부터 시작해서 구미, 거궐, 상완, 중완, 건리, 하완, 수분, 신궐, 음교에 이르기까지 무려 열개의 바다를 만들었다.
"으음……."
장삼봉과 티무르부카는 침음을 삼키기 어려웠다.
장삼봉은 전백광의 뒤에서 그의 명문혈에 장심(掌心)을 붙였다.
티무르부카는 고춘기의 전중혈에 장심(掌心)을 붙였다.
장삼봉은 전백광의 한독(寒毒)을 제어해서 고춘기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고 티무르부카는 고춘기의 내력을 제어해서 한독(寒毒)을 더는 받아들이지 못하게 막으려했다.
티무르부카는 고춘기의 전중혈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 심각한 상황을 절감했다.
이미 고춘기의 내력은 한독(寒毒)과 구분 지을 수 없이 융합되어버린 것이다.
고춘기의 진기가 미치는 곳이면 어디서건 한독(寒毒)도 지독한 패악(悖惡)을 부릴 것이다.
티무르부카는 상황이 심각함을 알고 전백광의 한독(寒毒)을 빨아들이는 고춘기를 제어하기보단 한시바삐 고춘기 체내를 어지럽히는 한독(寒毒)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수그러들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티무르부카의 소무상공(小無相功)은 수련자의 몸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었다.
그는 막대한 소무상공(小無相功)의 내력을 퍼부어 한독(寒毒)의 기운을 꺾으려했다.
헌데, 고춘기는 자신의 속도 모르고 한독(寒毒)이 조금 누그러들라치면 보다 많은 한독(寒毒)을 빨아들였다.
다시 티무르부카가 소무상공(小無相功)의 공력을 한층 드높였다.
일순간 고춘기 내부에서 흉명을 떨치던 한독(寒毒)이 기세가 꺾였다.
티무르부카는 그제야 안도했다.
그러나, 곧 바로 고춘기는 전보다 훨씬 많은 양의 한독(寒毒)을 빨아들였다.
티무르부카가 고춘기를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공력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그때, 장삼봉도 티무르부카만큼 난처한 상황이었다.
만약 그가 티무르부카와의 대결에서 상당부분의 진력을 소모하지 않았더라면 전백광의 한독(寒毒)을 제어하고 북명진기(北冥眞氣)의 흡입력을 떨쳐내는 일이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의 몸 안에서 자신의 진기를 제어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이 만약 자신의 몸 안에서 진기를 운용하는 것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면, 장삼봉은 아마 진작 장무기의 병세를 호전시키고도 남았을 것이다.
장삼봉은 팔십 년이 넘도록 불완전한 구양신공(九陽神功)을 익혀왔다.
그는 동정을 잃어버리지 않음으로써 남다른 순양지기(純陽之氣)를 자랑했다.
그가 익힌 무당구양공의 양강(陽剛)한 기운은 전백광의 명문혈로 들어간 순간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장삼봉의 양강(陽剛)한 공력(功力)은 전백광의 진기와 하나가 된 한독(寒毒)을 녹이려고 하고 전백광의 한독(寒毒)은 버티려고 안간힘을 썼다.
본래 장삼봉의 공력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이런 대수롭지 않은 공력의 소모를 무시하고 강대한 내력을 동원해서 밀고 들어갔을 것이다.
장삼봉의 이러한 진기운용은 전백광으로선 감사한 일이었다.
자신의 공력을 소모해가면서 전백광의 한독(寒毒)을 중화시켜주는 것이다.
중화된 진기는 고스란히 전백광의 몸에 남아 그의 공력이 되었다.
반면 장삼봉은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얼마 남지 않은 공력이 전백광의 몸 안에서 급격하게 소모되면서 자신의 진기에 대한 주도권을 지키기도 벅찬 상황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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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코인 폭락하더니 고정 독자들이 안보이네요. 다들 싱숭생숭한듯.

어제도 폭락했나요?
독자분들에게 위안이 되는 글을 써야되는데..ㅋㅋ
전 소요님 글 읽으러 ㅋㅋ

새벽에 라인 드로잉 한점 올라올거에요. 지금 맘에 안들어서 갈아엎고 있습니다.

앗...!
저도 오늘 공모전 준비하느라 날 샐듯요 ㅋㅋ
제가 제일 먼저 보팅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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