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6화 진천뢰(2)

in #kr-literature7 years ago

너에게로 가는 길.png
6화 진천뢰(2)
"본래 도적을 피하기 위해 주인어른이 만들어 놓으셨는데, 써보지도 못하고 도망가셨네요."
"지금 나보고 그런 찌끄래기들을 피해서 쥐새끼처럼 여기 숨어있으라는 거냐?"
전백광은 좋던 기분이 한순간에 엉망이 되어버렸다.
내가 보기에도 그 지하실을 쥐굴 같아보였다.
사방이 막혀서 통풍은커녕 채광도 기대할 수 없었다.
주방을 통한 빛이 살짝 비추는 부분만 얼핏 봐도 만들어놓고 오래도록 사용하지도, 정리하지도 않아 거미줄이 어지럽게 쳐져서 들어갔다간 꼴이 엉망이 될 터였다.
거기다 먼지도 엄청나게 쌓여 밟으면 눈처럼 발이 푹 들어갈 것 같았다.
"계속 숨어있자는 말이 아닙니다. 화살비가 걷힐 때까지만, 몸을 피해있자는 겁니다."
"그들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며 또 화살을 쏠 거라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아예 나를 두려워해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굳이 이런 곳에 들어가 먼지를 뒤집어쓰지 않아도 되는 일 아니냐?"
"그들은 틀림없이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멀리서 화살을 쏠 겁니다. 대인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섣불리 덤비지는 않겠지만, 상대가 강하다고 물러나면 몽고기병이라 할 수 없지요. 그들이 항상 행하는 방법입니다. 화살로 위협하고 화살 비를 못 버티고 뛰쳐나가면 벌집이 되는 겁니다."
"호언장담하는데, 빈말이라면 어떻게 책임지겠느냐?"
"제 목을 내놓겠습니다."
"네 놈 목을 어디에 쓰겠느냐."

그 때였다.
땅이 울렸다.
옆으로 옮겨놓은 술 단지들이 서로 부딪히고 그 속에 술들이 찰랑거리는 바람에 주방이 술 향기로 가득 찼다.
당장 뛰어나간 우리는 저 멀리 먼지구름이 보였다.
말할 여유도 없었는지 호안민은 우리의 소매를 잡고 지하실로 이끌었다.
전백광은 영 못마땅한 표정이로 억지로 끌려갔고 지하실 앞에선 차마 들어가지 못하겠다는 듯이 끝까지 버텼다.
"형님, 일단 들어오시오.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기도 하고 흙벽을 뚫고 들어오거나 천장을 뚫고 들어오기도 했다.
지하실 바로 앞에서 버티다 사방팔방에서 내리꽂히고 파고드는 화살 몇 발을 정신없이 피한 전백광은 머뭇거리지 않고 들어왔다.
호안민이 나무판자로 지하실 입구를 가리자 정말로 눈 바로 앞으로 올린 손가락하나도 분간할 수 없었다.
'작은 술집에서 술이나 나르는 사람이 어떻게 군사작전을 이렇게 꿰뚫고 있을까?'
나는 속으로 호안민의 신세내력을 궁금히 여기는 와중에도 우리는 화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 벽에 부딪히는 소리, 벽을 부수는 소리, 뚫는 소리, 땅에 화살이 박히는 소리, 벽과 의자와 식탁에 박히는 소리 등 무수 소리를 들으며 혹시나 바닥을 뚫고 지하실까지 들어오지 않을지 두려움에 떨어야했다.
신기한 것은 지하실에서 듣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소리가 화살이 의자에 박히는 소리인지 식탁에 박히는 소리인지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화살비가 그치질 않더니 이내 언제 그랬냐는듯 시끄러운 파공음과 파열음이 멈췄다.
정적이 흐르고 백을 헤아렸을 무렵 전백광이 입을 열었다.
"이 자식들, 실력이 모자라니까 화살만 날리고 꽁지를 말았구나. 동생, 여기서 기다리게. 내 나가서 이 잡놈들의 꼬리를 잡아야겠어."
전백광이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인, 아직 아닙니다. 하나 더 남았습니다."
"무슨 소리야? 나보고 이런 쥐굴에서 하룻저녁이라도 기다리라는 거야? 아니, 이 손 놓고 말해!"
"잠시만, 잠시만 더 기다려 보시지요."
둘이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쿠왕!
몇 번의 폭발이 연쇄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사이사이 콩 볶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그것은 진천뢰였다. 초기의 수류탄으로 불리는 이 물건은 금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칭기즈 칸이 전리품으로 얻으면서 그들의 전쟁에서 유용하게 이용되었다. 당시 금과 원(元)뿐만 아니라 남송까지도 진천뢰를 사용했다고 한다. 원(元)의 원정군이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진출하고 몇몇 전쟁에서 패하면서 화약과 그 제조기술이 유출되었다. 동양에서 시작된 화약은 그렇게 유럽으로까지 전해졌고 이후 세계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어느새 지하실 입구를 가렸던 나무판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무너진 흙벽이 지하실 입구를 덮었다.
무너진 흙벽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어느새 우리는 입구와 가장 먼 구석으로 몰렸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전백광은 침묵했다.
반대로 호안민이 입을 열어 우리를 재촉했다.
"됐습니다. 대인, 앞장서시죠."
"됐나? 지금 나가도 되겠나? 조금 더 기다려보는 것이 어떨까?"
전백광은 전과 달리 매우 신중했다.
"지금 나가야 합니다. 저들이 원한을 품었으니 폐허 속에서 살점이라도 찾지 못하는 날에는 자리를 뜨지 않을 겁니다."
호안민의 목소리는 단호함이 넘쳤다.
지금 그를 보고 누가 허름한 주루에서 술이나 나르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재촉에도 여전히 선뜻 나서지 못하는 전백광에게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가 살아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할 겁니다. 저들이 방심하는 지금이 적기입니다. 우리의 시체를 찾다가 이곳을 발견한다면 희망은 없습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폭탄을 맞고도 살아남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흙더미 사이로 잠시 주변 동태를 살피던 전백광은 순식간에 튀어나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기마병을 끌어내렸다.
바닥에 패대기쳐진 몽고기병은 한손으로 옆구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상체를 채 일으키기도 전에 호안민의 사커킥에 턱이 돌아갔다.
그 사이 전백광은 바람처럼 종횡으로 내달리며 말 위의 기병들을 하나 둘씩 끌어내려 패대기쳤다.
난 처음으로 말에서 떨어진 기병의 곁으로 가 그의 행색을 살펴봤다.
벗겨진 투구 안으로 보이는 머리는 옆머리와 뒷머리만 남겨놓고 몽땅 밀어버린 변발이었다. 철투구 아래부터 시작된 철제찰갑은 상체는 팔꿈치까지 가렸고 하체는 허벅지까지 가릴 만큼 완벽했다. 왼편엔 활을 차고 오른편엔 만곡도를 찼고 옆구리를 부여잡지 않은 손은 고기다지는 망치보다 살벌하게 생긴 낭아봉을 쥐었다.
의식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도, 낭아봉을 놓지 않는 것을 보니 오지게 독한 사람이었다.
옆구리를 부여잡은 손을 들춰보니 갑옷은 뚫리지도 않았는데, 다리 아래로 피가 흘렀다.
차례로 떨어지는 기병들을 봐도 모두 옆구리를 부여잡았는데, 한쪽 다리아래가 흥건하도록 피가 흘렀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와 전백광은 세계제국 원나라에 떨어졌다.
더 불행한 것은 오자마자 몽고기병과 원한관계를 만들었다.
'친구는 많이 사귀되 적은 만들지 말라고 했는데…….'
"이봐요. 정신 좀 차려 봐요. 형님! 죽이면 안돼요! 원나라 군대에요!"
이미 정신을 잃어버린 몽고기병은 아무리 흔들어도 정신을 차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원나라 군대면 죽여야지!"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며 다시 기병을 끌어내려 패대기치면서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전백광이 대답했다.
"형님, 죽고 싶소! 군대랑 싸울 거요?"
"군대랑…… 이런 제길……."
반박하려던 전백광은 방금 전의 연이은 진천뢰 폭발이 생각났다.
그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봐도 진천뢰 앞에선 답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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