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4화 나는 왜 안돼? (1)

in #kr-literature7 years ago (edited)

너에게로 가는 길.png
4화 나는 왜 안돼? (1)

"동생, 뭘 그렇게 찾나? 자네가 찾는 게 혹시 저 검 아닌가?"
"이런 시발……."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고개 숙일 수 있는 시대의 준걸이라지만, 이런 시발새퀴는 용서 못한다.
죽을 때까지 결코 경험해보고 싶지 않았던 경험인데, 영원히 첫 경험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던 경험인데…….
감히 은미도 그쪽으로는 손도 못 대게 했던 내 소중한 그곳을!
'검?'
망할 놈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로 검푸른 빛을 띠는 90cm정도 되는 검이 있었다.
칼을 들어 내 순결을 파괴한 철천지원수의 목을 베리라!
칼을 잡았다.

-무거운 검에는 날이 없고 뛰어난 기교란 기교를 부리지 않는 것이다.
순간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그곳에서 난 독보강호하는 무림고수로 검고 푸른 한 자루 검으로 수많은 고수를 넘어뜨리고 세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 가면을 쓴 짐승의 목을 베었다.
강호에서 이름 높은 검객들도 내 한칼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손에 꼽는 천하의 대문파 장문인들도 별다르지 않았다.
이름 높은 고수를 쓰러뜨릴수록 허무함만 깊어갔다.
정말 내가 가진 것을 모두 풀어내고도 버겁다고 느낄만한 상대는 없는 것일까?
하늘은 나를 내려 보내고 왜 내 호적수는 보내주지 않을까?
넓은 천하 어딘가에 숨은 기인들 중 적어도 한명은 나와 호각을 다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나를 방랑의 길로 밀어 넣었다.
무려 십년의 천하종횡 이후 상대를 찾아 떠돌며 눈비를 함께 맞은 중검을 내려놓았다.
이젠 인정해야했다.
벌써 십년간 적수를 찾을 수 없었다.
내 몸 밖에서 찾지 못한다면 안에서 찾으리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찾아보리라.

"자네 괜찮은가? 갑자기 눈을 감더니 꿈이라도 꾼 게야?"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독보강호하던 시절, 가장 흉악한 악적들은 머리를 직각으로 내려찍어서 온몸을 곤죽으로 만들어 시체도 남기지 못하게 했던 것이 떠올랐다.
"에잇! 억, 어이짜~"
두 손으로 마주잡은 현철중검을 용케도 머리까지 들어 올린 고춘기는 온갖 욕을 뱉어낼 수가 없었다.
100kg도 넘게 나갈 것 같은 무거운 칼을 머리위로 단 번에 올리고도 가뿐할 만큼 운동을 열심히 한 적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처참하고 난잡한 욕설을 가슴에 묻어두는 대신 어쩔 수 없이 온몸의 힘을 쥐어짜는 기압을 뱉어내야 했다.
들어 올리는 것도 힘들었지만, 머리와 직각이 되도록 들어 올린 상태에서 다시 앞으로 내리치려니 온몸의 근육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당겨진 고무줄처럼 한 번에 몽땅 끊어지는 것 같았다.
"악!"
버티지 못하고 뒤로 쏠리면 허리가 아작 난다는 생각에 입술을 악물고 앞으로 내려찍었다.
바람 빠진 축구공 차는 소리와 함께 엄청나게 커다란 고기다지는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숨이 탁 막히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짜자작!"
"꺼억~"
막혔던 숨통이 순간적으로 트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자의 부축을 받아 앉아있었다.
"제정신인가? 자네 목숨을 내놓고 살기로 작정한 모양이군. 한 바터면 조상님 뵐 뻔 했네! 들어올리기도 버거운 물건을 있는 힘껏 내려찍으면 어쩌자는 건가? 반발력을 감당해낼 내력도 특별히 흘려버릴 절기도 없으면서 이런 무모한 일을 벌이다니……."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이 변태자식아.'
그가 부축해서 앉은 자세라서 마주보면 너무 얼굴이 가까워질까 봐 일부러 고개를 돌렸다.
"그럼 기운을 차린 것 같으니 당장 축하주를 마시러가세!"
언질도 없이 일어서는 바람에 그에게 기댔던 나는 볼품없이 바닥에 철퍽하고 보기 흉하게 넘어졌다.
"수, 술이요? 방금 토했는데……."
이미 한번 새카만 세상을 보고 난 이후라서 그런지 하늘을 찌를 듯 일어났던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기척도 없이 돌아온 비굴함만 남았다.
"그럼, 거북한 속을 푸는데 해장술이 제격이지. 가세!"
알코올 중독이 틀림없다.
짜먹는 위장약 겔포흐라도 하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따라나섰다.
"저 검은 안 가져갈 텐가? 언뜻 보아도 기기한 물건 같은데, 저리 버려두면 쓰나?"
땅바닥에 반 뼘 정도 박힌 채 꼿꼿하게 선 사기꾼이 보였다.
분명히 꿈에선 깃털처럼 가벼워서 무게를 느낄 수도 없었는데…….
마치 나를 놀리기 위해 갑자기 무거워진 것 같다.
"두고 가겠습니다."
"그럼 내가 챙겨도 되겠지?"
"아, 예. 그러면 그렇게 하시죠?"
꼴도 보기 싫어서 남이 가져가든 말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아주 그냥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려라!
"음?"
사기꾼 칼을 들려던 논두렁깡패 녀석이 멈칫했다.
아무리 무거워도 2~3kg정도밖에 나갈 것 같지 않게 생긴 물건이 100kg이 넘는 무게를 자랑하니 누구라고 주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역시 논두렁깡패답달까?
시골에서 힘든 일을 많이 했나보다.
젖 먹던 힘까지 뽑아내서야 겨우 한 번 들었다 던져 놓은 게 다인 나와는 달랐다.
얼굴에 시뻘겋게 피가 쏠리기는 했지만, 한손으로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고 찔렀다.
"보물이네. 동생 이거 보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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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세계관이라면 그 칼은 독고구패의 현철중검이겠군요.

알아주시는 분이 계시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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