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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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10)

고춘기는 이들과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그는 본래 중국무술에 대해서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태극권과 절권도, 영춘권, 팔극권 등등 유명한 중국무술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데, 실제 스포츠경기인 이종격투기 시장에선 빛을 발하지 못했다.
중국무술에 정통했네, 산에서 수양했네 하는 사람들이 링에 올라서 얼마나 볼품없는 꼬락서니를 보였는지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큰 이견은 없을 것이다.
현 격투기스포츠 시장에서 가장 실전격투와 비슷한 것이 이종격투기가 아닌가?
실전에서 쓸모없는 무술이 대접받을 순 없는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과거 전쟁에서 쓰였다는 멋들어진 서술로 무장한 중국무술은 현대에 들어서 크게 실효성을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이종격투기를 주름잡는 무술들은 무에타이, 유도, 레슬링, 브라질유술, 복싱 등이다.
그랬던 고춘기였기에 소위 중국무술이라고 하는 것들을 가볍게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한 UFC 경기가 아니더라도 친구들 중에 중국무술 익혀서 싸움 잘하게 됐단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나 있나?

고춘기는 본래 겁이 많은 성격이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이종격투기 마니아였던 아버지를 둔 죄로 여러 종류의 체육관을 성지순례 하듯 돌아다녀야했다.
천성이 마음이 약해서 상대의 얼굴조차 때리지 못하는 고춘기가 겪어야 했던 심적 고통은 적지 않았다.
희한하게도 고춘기의 아버지 고두심 씨는 그렇게나 이종격투기를 사랑하면서도 직접 배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근골이 굳었다나?
체육관 관장님은 괜찮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끝끝내 직접 운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래희망과는 관계없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복싱체육관을 다녔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당시에 아버지가 복싱에 꽂혔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언제나 코치나 관중으로 남고 싶었나보다.
고춘기는 아버지가 TV를 볼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대회를 제일 싫어하게 된 계기도 거기에 있다.
고두심씨는 고춘기가 체육고등학교를 거쳐 체대에 진학해서 유도나 복싱 국가대표를 노리길 원했다.
햇수로만 십오 년이나 여러 종목의 체육관을 섭렵한 나는 그 덕분에 나쁘지 않은 몸을 지녔다.
하지만, 이제 성인이 되어서 아버지의 바람을 끊지 못한다면 앞으로 평생 동안 끌려 다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단호하게 끊었다.
나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고…….
그렇게 국가대표가 되고 싶으면 다음 생에 아빠가 직접 하라고 소리치고 나서야 고두심씨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자식이 부모에게 하기에는 심한 말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말이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계속 끌려 다니지 않았을까?
딱히 운동 외에 간절히 다른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내 나이 또래에 흔히들 겪는 일을 나도 겪고 싶었다.
운동에 방해된다고 여자도 만나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너무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들이 장삼봉과 티무르부카의 대결을 보며 모조리 깨져버렸다.
예전에도 간혹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복싱 세계챔피언 매치 중계영상을 볼 때면 선수들의 손이 얼마나 빠른지 두세 개로 보인 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의 복서들이 그랬다.
태권도를 배운 친구하고 겨룰 때, 다리가 안보인 적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옆에서 보는데, 상대를 찌르는 손바닥이 수십 개로 늘어나는 황당한 경우는 없었다.
마치 중국무협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CG가 아니고선 불가능한 상황이 눈앞에서 재현되었다.
당황하기도 했지만, 신기하고 궁금한 마음에 집중해서 보니 점차 또렷해졌다.
가슴의 전중혈에서 시원한 기운이 올라와 눈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어렵지 않게 북명진기(北冥眞氣)가 안력을 돋우는데 도움을 준 것이라고 알 수 있었다.
그는 장삼봉이 진산장(震山掌)을 거의 다 펼치고 나서야 두 사람의 공격과 방어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장삼봉이 펼치는 진산장(震山掌)의 대부분을 놓쳐버리고도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의 마음 한편에는 중국권법을 경시하는 마음이 남아있던 것이다.
그러나 초수가 이어질수록 새로운 장권을 선보이는 장삼봉의 무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의 공격이 상대에게 막히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다음 수가 풀려나왔다.
그것은 티무르부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흔히 보는 현대의 격투기 경기에선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마치 인파이터로 유명한 두 복서가 물러서지 않고 숨도 쉬지 않고 치고 막고 맞고 반격하는 혈전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관객들도 광분하는 것처럼 장삼봉과 티무르부카의 접전에 빨려 들어갔다.

두 사람의 접전은 마치 시범단이 미리 짜놓은 합에 맞춰서 홍보용 호신술을 선보이는 것처럼 매번의 공격과 방어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그것만으로도 관객들의 환호를 받아 마땅한 훌륭한 경기였지만, 그 실상은 현대의 어떤 격투스포츠와도 달랐다.
티무르부카가 한 번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을 내지를 때마다 여객선의 엔진룸에서나 느낄 진동이 멀리 떨어져서 구경하는 고춘기에게 전해졌다.
손바닥을 내미는 것만으로도 이런 진동을 울릴 수 있다니…….
얼마나 강한 힘이 담겨있을지 감히 예상 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 장력을 받아내는 장삼봉 또한 기인이다.
이들이 겨루는 방법은 스포츠도 아니고 내가 알던 격투기도 아니다.
무언가 내가 아는 상식을 벗어난 것이다.
내력.
그것이 아니곤 이 엄청난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내력의 차이.
그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그들이 펼치는 매 초식은 신법과 보법, 장법과 지법이 혼합되어 하나의 특이한 공격과 방어를 이루었다.
고춘기는 희한한 체험을 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장삼봉과 티무르부카의 대결 장면이 하나하나 풀어헤쳐졌다.
그들이 펼치는 초식이 한 동작 한 동작 모조리 뇌리에 새겨졌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의도와 허점, 초식 본연의 장점과 약점, 더 나아가 어떻게 보완해야할지 훤하게 보였다.
각 초식에 어떤 묘리를 담았는지 상대가 일부러 부족한 면을 내보이는지 실제로 부족한 것인지 처음 보는 동작임에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고춘기는 티무르부카처럼 소무상공(小無相功)의 도움 없이 두 사람의 무공을 훔쳐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대결이 끝나고 장삼봉은 여한 없이 모든 것을 풀어냈고 스스로 졌음을 시인하자 고춘기는 눈을 감고 그들의 접전을 되새겼다.
곱씹을수록 많은 비밀들이 쏟아졌다.
어떻게 하면 저런 내력운용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게 생각하자 곧 자기 나름대로의 내력운용비결들을 떠올리고 부정하며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이 크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모든 문파에서 비밀로 삼고 함부로 전하지 않는 모든 비밀들을 고춘기는 손쉽게 풀어내 버린 것이다.
'내가 이렇게 똑똑했나?'
사실 그가 이렇게 쉽게 남의 무공을 훔쳐 배울 수 있는 것은 그가 에디터로 육십삼이었던 자질을 백으로 고쳤기 때문이다.
의천도룡기 외전이라는 게임 속에서 자질이라는 능력치의 최대치가 백이다.
단순히 비교하자면 금륜법왕은 밀종 역사상 처음으로 10층의 경지에 오른 불세출의 기재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의천도룡기 외전이라는 게임 속에서 그의 자질은 육십에 그쳤다.
한 번 읽은 책은 앞으로든 뒤로든 몽땅 외워버리는 황용의 자질은 구십, 그런 황용이 기재라고 감탄했던 양과의 자질은 팔십사, 천하 각 문파의 무공을 모두 외워버리고 그 약점을 조목조목 집어내는 천재 왕어언은 구십에 머물렀다.
어떤 천재도 소유한 적 없는 천부적인 자질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현명패천장(玄冥覇天掌)!"
장삼봉의 경악성이 고춘기를 꿈결 속에서 끄집어냈다.
"태감… 태감… 이것은!"
고춘기가 전백광을 봤을 때는 이미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변했고 입에선 냉기가 흘러나왔다.
한독에 얼마나 지독했는지 전백광은 쓰러지지도 못하고 선채로 차갑게 굳어버렸다.
"인과응보다. 어리석은 놈. 어찌되었든 일장(一掌)은 받았으니 이장(二掌) 남았다."
티무르부카는 괘씸한 마음에 이미 얼어붙은 전백광을 향해 다시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을 펼쳤다.
고춘기는 망설이지 않고 티무르부카가 뻗어오는 왼손을 향해 현철중검을 찔렀다.
그가 노린 곳은 정확히 손목 안쪽에 위치한 신문혈(神門穴)이었다.
그것은 좀 전에 장삼봉이 선보였던 신문십삼검(神門十三劍)이었다.
티무르부카는 어린 소년의 칼끝이 제법 매섭다고 생각했으나 전백광의 오른쪽으로 한걸음 내딛는 것으로 소년의 칼끝을 피하는 동시에 자신의 몸을 전백광의 몸으로 가려 소년의 공격을 사전에 막고 내뻗은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을 끌어올려 전백광의 턱을 향했다.
고춘기도 티무르부카를 따라 전백광의 오른쪽으로 왼발을 한걸음 내딛으면서 이미 내뻗은 현철중검을 하늘을 향해 찔렀다.
그는 현철중검을 잡은 오른손을 꽃처럼 형상화한 뒤 왼손가락을 튕겼다.
"점화지(點花指)!"
고춘기가 자신이 창안한 신문십삼검(神門十三劍)에 이어 티무르부카가 펼쳤던 점화지(點花指)까지 연이어 펼쳐내자 장삼봉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근래에 창안한 신문십삼검(神門十三劍)은 어렵고 쉬운 것을 떠나서 제자들에게 전한 것도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제자들 중에서도 오직 은이정만 그 정묘절륜(精妙絶倫)한 검초의 정수를 깨달았다.
그런 신문십삼검의 정수를 자연스럽게 펼쳐내는 고춘기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점화지(點花指)까지 펼치다니…….
비록 고춘기의 내력이 부족해서 대단한 위력을 보이지는 못했으나 점화지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있지 않고선 아무리 내력이 바다와 같이 깊다고 해도 저렇듯 자연스럽게 펼치지는 못할 것이다.
고춘기는 왼손가락을 세 번 튕겨서 티무르부카의 손목 안쪽의 신문혈(神門穴)과 팔꿈치에 위치한 소혜혈(小海穴), 어깨와 겨드랑이가 만나는 지점의 견정혈(肩貞穴)을 노렸다.
세 혈도 모두 티무르부카가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을 펼쳐낸 왼팔에 위치했다.
티무르부카는 어린 소년이 펼친 점화지에 대단한 내력이 깃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지력이 자신의 몸에 닿는다면 소무상공(小無相功)의 순수하고 고강한 내력이 저절로 반탄지력을 뿜어내 오히려 소년이 큰 내상을 입을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또한 비록 자신에게 큰 탈은 없겠지만, 어린 소년이 펼친 지법마저 피하지 못하고 맞는다면 방금 전까지 접전을 벌였던 장삼봉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
티무르부카는 자신의 오른발을 축으로 한 바퀴 빙글 돌아서 본래의 자세로 돌아왔다.
피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본래의 자세로 돌아왔으니 손해 보지도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의 이런 행동 때문에 고춘기의 점화지력은 공연히 허공을 가르고야 말았다.
고춘기는 오른 발을 한걸음 내딛으며 몸을 돌리면서 그 회전력을 이용해 현철중검으로 이십사자권법(二十四字拳法) 중 지(之)자를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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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물은 치트키가 나와야 제맛이죠.

매일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보팅 한번으로 매일 한페이지씩 공짜로 보는 데 제가 감사하죠.

저도 보팅하고 싶습니다.
소요님 숨겨놓은 작품 좀 올려주세요.

옛날 그림은 다시 보면 확깨는게 많아서 습작이라도 요즘 꺼 올리고 있어요. 옛날 건 바빠서 그림 못그린 날 조금씩 공개할께요!

기다릴게요.ㅎㅎ
드릴 게 업보팅 밖에 없는데, 이미 올린 자료엔 다 업보팅을 해놓은 상태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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