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7화 북쪽의 큰 바다 (2)

in #kr-literature7 years ago

너에게로 가는 길.png
7화 북쪽의 큰 바다 (2)
'올 테면 와봐라. 손을 잡으려할 때를 노려 눈알을 터뜨려주마.'
그는 옆구리에서 단검을 꺼내 허리 뒤로 숨겼다.
그러면서 다른 손은 깨진 턱을 잡고 과장되게 고통스러운 연기를 했다.
고춘기는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고통으로 신음하는 훈비쉬 옆에 현철중검을 내려놓았다.
그가 턱을 움쳐준 훈비쉬의 손을 잡으려 할 때였다.
훈비쉬는 고춘기의 손과 눈이 자신의 턱을 움켜쥔 왼손을 향하는 것을 확인하고 단검을 찔렀다.
고춘기가 눈을 꿰뚫으려는 듯 찔러오는 훈비쉬의 단검을 봤을 때는 이미 너무 가까이 다가와 손을 들어 막을 수가 없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화살받이로 들어 올린 몽고기병 우간바타르를 끌어내리는 동시에 몸을 측면으로 틀면서 뒤로 넘어졌다.
훈비쉬의 단검은 간발의 차이로 고춘기의 눈앞을 지나갔다.
"으악!"
그 때, 멀리서 훈비쉬가 단검을 숨기는 것을 본 몽고기병 보르후가 고춘기가 피할 것을 예상하고 날린 화살이 고춘기의 오른쪽 귀를 꿰뚫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기만 했다면 화살은 그의 귀가 아니라 머리에 박혔을 것이다.
천운으로 화살을 피한 고춘기는 어깨를 척척하게 적실만큼 피가 흐르는 반쯤 잘린 귓불을 부여잡았다.
도저히 아파서 직접적으로 꿰뚫린 귀를 잡을 수는 없어 그 대신 귀 주변의 살을 눌러봤지만 고통은 줄어들지를 않았다.
고춘기는 필사적으로 우간바타르를 들어 올려 아예 머리에 이고 단검으로 자신을 공격했던 훈비쉬의 낭심을 뒤꿈치로 찍어버렸다.
깨진 턱으로 인한 고통을 단번에 날려 버릴 만 한 고통이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고춘기를 찌르려했던 단검도 놓쳐버렸다.
화가 난 고춘기는 턱이 깨진 훈비쉬의 성대뼈 위에 위치한 염천혈에 엄지손가락의 소상혈을 위치시키면서 그의 턱을 틀어쥐어 고통스럽게 했다.
염천혈은 임맥의 요혈로서 설하신경과 경피신경이 모인 곳으로 급소 중의 급소다.
훈비쉬는 얼굴 전체가 시큰거리는 동시에 안면이 마비되는 고통을 느껴야했다.
그의 내력이 염천혈을 통해서 고춘기에게 흘러들어갔다.
훈비쉬의 내력을 모조리 흡수해 정신을 잃게 만드는 시간은 우간바타르의 내력을 빼앗는데 걸린 시간의 반절도 되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본래 우간바타르가 훈비쉬보다 높은 수준의 내력을 보유했고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고춘기의 북명신공이 흡인력이 강해지면서 발생했다.
고춘기는 내려놓았던 현철중검을 다시 주워들었다.
현철중검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감히 휘두르지 못할 정도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 때 다시 몽고기병 한 기가 전백광을 향해 달려왔다.
그는 이제 투창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멀리서부터 창을 던지려고 자세를 갖추고 달려왔다.
"전 대인! 사람을 쫓지 말고 말을 못 쓰게 만들어야 합니다!"
지하실 입구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호안민이 전백광을 향해 소리쳤다.

몽고기병들은 맨몸으로 비참하게 당했다는 생각에 철찰갑옷에 철투구까지 쓰고, 창과 활, 만곡도, 낭아봉에다 진천뢰까지 가져왔지만 미처 마갑을 입히지 않고 왔다.
옆구리에 한칼씩 맞아 피가 끓어오른 이들은 마갑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곧장 달려왔다.
사실 이들은 탐마적군에 속한 고려인들로 그들의 부모가 원나라 조정에서 일한 덕분에 몽고군들처럼 아주 어린 나이에 정예화 교육을 받았다.
대부분이 스무 살 안팎으로 전쟁다운 전쟁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제대로 된 전투라고 해봐야 십일 년 전 신양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백련교도를 물리칠 때, 십대초중반의 나이로 참전한 것이 전부였다.
그것은 1개월도 되지 않아 진압된 시시한 반란이었다.
고려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몽고군과 비견될 만큼 정예화 교육을 받은 이들은 그 실력만큼이나 자존심도 남달랐다.
그들은 스스로 전통 몽고귀족군인인 몽골군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니, 오히려 능력만은 그들을 넘어섰다고 자부했다.
능력은 자신들이 더 뛰어나지만, 근래에 이렇다 할 전투가 없었다.
십년 전 고려출신 궁녀, 기황후가 황제의 아들 아이유시리다라를 낳고 몽고 이외의 인종 중 최초로 제 2황후에 등극한다.
그녀를 중심으로 원 왕실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서 언제 내릴지 모르는 비바람을 피하기 급급하던 고려출신의 환관들과 재원고려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녀의 영향력으로 대원제국 안에서 고려인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몽고인들의 아성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런 예는 십년 전 호윤아를 필두로 한 백련교의 반란 진압 후 전공을 포상하는 자리에서 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몽고군을 상회하는 전공을 세웠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의 전공은 탐마적군 내의 몽고인이 세운 것으로 포장되어 상신되었다.
지난 십오 년 전 황태자 시절 고려에 유배된 경험이 있던 황제를 차를 따르던 고려출신 공녀 기씨가 향수를 달래주면서부터 고려인에 대한 평가는 크게 반전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멸시부터 부당한 대우까지 온몸으로 겪어온 탐마적군 내의 고려출신 기병들은 영원히 몽고전통의 병사들과 가까워질 수 없는 벽을 느꼈다.
더군다나 그들은 스스로 색목인 보다 위에 신분이라고 여겼다.
예로부터 고려는 대원제국의 부마국이었고 고려왕은 원황실에서도 가까운 혈족이었다.
그런 그들이 색목인도 아니고 승려도 아닌 구구(驅口:노예)같은 남인들에게 칼을 맞고 개처럼 쫓겨나다니…….
탐마적군 내의 몽고인들 뿐만 아니라 같이 칼을 맞은 서른 명의 동료들끼리도 입에 담기 어려운 치욕적인 사건이다.
그들의 분한 마음에는 입히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마갑까지 입히고 올 여유가 없었다.

Sort:  

슬슬 보팅이 올라가기 시작하네요 축하합니다. 계속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지지해주신 소요님 덕분이에요.

Coin Marketplace

STEEM 0.16
TRX 0.15
JST 0.030
BTC 58331.25
ETH 2509.22
USDT 1.00
SBD 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