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6화 진천뢰 (1)

in #kr-literature7 years ago

너에게로 가는 길.png
6화 진천뢰 (1)

친구들과 마셨다면 이런 말이 나오진 않았을 텐데, 왠지 큰형님 분위기라 어리광이 저절로 나왔다.
"별일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시고 한 잔 받으세요."
"여기 안주는 왜 안 나오는 거야? 주인장!"
전백광이 빨간 개떼들에게 소리칠 때부터 주방으로 도망가 숨어있던 주인은 개떼들이 힘도 못쓰고 피를 줄줄 흘리며 도망가자 자취를 감춰버렸다.
"주, 주인어른께선 몸을 피하셨습니다."
"뭐야? 그럼 그 놈도 도망간 개잡종들하고 한패였어? 운이 좋은 놈이군. 감히 나 전백광에게 밉보이고도 아무런 손해 없이 도망가다니."
왠지 싸움 잘하는 형을 둔 동생이 된 것 같아 우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뭐요?"
전백광이 두려웠는지 자꾸 말을 더듬는 점소이였다.
"아까 도망간 개, 개잡종들은 탐마적군(探馬赤軍) 소속 병사들입니다."
"탐마적군? 형님 탐마적군이 뭐요?"
"글쎄, 처음 들어보는군. 실력도 없는 것들이 감히 대명천지에 군을 사칭하다니, 배짱은 대단하구만!"
"구, 군을 사칭하다니요. 비록 한인, 색목인, 달자들까지 섞여있지만, 정예병입니다."
"뭐야? 그럼 반란군이란 말이야?"
"반란군이라니요? 정규군입니다. 행실이 좋지는 않지만, 그것이야 원군(元軍) 대부분이 그렇지요."
"원군(元軍)이라니? 몽골이 다시 원(元)나라를 일으켰단 말인가?"
"다시라니요? 대인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원나라를 세운 사람이 누구요?"
"그야 황, 황제가 세우지 않았겠습니까?"
그에게 더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군……. 그럼 명(明)나라는 어찌되었는가?"
"명(明)이라는 나라는 처음 들어봅니다."
"아니, 동생! 이게 어찌된 일인가? 명(明)나라가 망했다는 말인가? 자고 일어나니 나라가 망했다니……."
"형님, 아무래도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래, 엔간히 복잡한 상황이다.
"이보시오. 그럼 올해가 몇 년도요?"
"그러니까 올해가……. 지정(至正) 8년입지요."
'젠장, 지정(至正) 8년은 또 뭐냐…….'
짜증이 솟구쳤지만, 다시 한 번 꾹 눌러주고 다시 물었다.
"음~ 지정(至正) 8년이라. 그럼 서기로는 몇 년이요?"
"서기라니요? 소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시발"
욕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다.
뭘 물어봐도 결국에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긴 그러니까 이런 허름한 술집에서 술이나 나르고 있겠지.
"형님. 혹시 지정(至正) 8년이 언제쯤인지 아시겠소?"
"나도 처음 들어보네. 이거 곤란하게 됐구먼."
더럽게 꼬여버렸다.
어쩌다보니 전백광과 함께 과거로 타임슬립해버린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지금은 몽고의 황금기 대원제국인 것 같다.
게다가 정확히 어느 시점으로 왔는지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 빠진 것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위안으로 삼아야할까?
"곧 놈들이 다시 몰려올 겁니다."
"도망친 군인들을 말하는 겁니까?"
"네, 흉악한 놈들이 속절없이 당했으니 무리를 이끌고 올 겁니다."
"흥! 제깟 놈들이 감히 내 얼굴을 다시 볼 용기가 있겠어?"
"아닐 겁니다. 그들이 제대로 준비하고 들이닥친다면……. 여기 있는 누구도 살아남기 어려울 겁니다."
"뭐야? 네까짓 게 감히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저런 개잡종 따위 백 명 천명이 몰려와도 내가 눈 하나 깜빡할 성 싶으냐?"
"그들은 술을 마시러 나오느라 갑옷도 벗고 만곡도 한 자루만 차고 나왔으니 대인의 상대가 못된 겁니다. 만약 그들이 말을 타고 갑옷을 입고 창과 활을 들고 나타난다면……."
"말을 끝까지 해라. 이 건방진 자식!"
"저흰 시체도 보존하기 힘들 겁니다."
전백광은 당장이라도 그를 반 토막 내버릴 것 같았다.
그가 도륙당하기 전에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폭발 직전인 전백광을 뜯어 말렸다.
"몽고군이 돌아오면 목숨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잘 아는 당신은 왜 주인장이 도망갈 때, 함께 따라나서지 않았소?"
"도망갈 수 없습니다. 산 속이라면 몰라도 이렇게 황량한 들판에서 저들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달아난다면 죽기 직전까지 쫓기다 모욕만 잔뜩 당하고 비참하게 죽을 겁니다."
"그럼 도망치지 않고 남아있는다면 살 방도가 있단 말이요?"
"저게 그런 대단한 재주는 없습니다."
"그럼 그냥 목을 빼놓고 베어가길 기다린 거요?"
"제게는 살아날 재주가 없지만, 이분 대협께서는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전백광을 가리키며 말했다.
"흥! 조금 전에는 시체도 보전하기 어렵다더니, 이제 와서 웬 아부냐!"
"지금처럼 아무런 방비 없이 앉아서 두 분이 대작하시다가 그들을 맞이하면 그리될 거란 말입니다."
"아아, 됐다. 그깟 놈들 걱정할 일 없으니 당장 가서 요깃거리나 가져와라. 아침부터 쫄쫄 굶었더니 속에서 난리다.
전백광의 말을 듣고도 그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이 놈! 당장 뭐라도 가져오지 않으면 네 놈이라도 잡아먹겠다!"
그는 결국, 전백광의 독촉을 못 이기고 겉을 바삭하게 익힌 오리훈제를 내왔다.
속을 다 게워내고 나선 이젠 아무것도 못 먹겠다고 했던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고생한 뒤에 술이 들어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밥통이 먹을 것을 구걸했다.
우리는 순간 전투자세로 말없이 오리고기에 집중했다.
겉은 바삭하고 육질은 부드러운 것이 비린내도 나지 않아 먹을 만했다.
세 마리째 살을 발라먹고 나서야 다시 술잔을 들었다.
"어이! 이리 와보게. 아, 내가 뭐라고 부르면 좋겠나? 점소이, 점소이? 이상한데."
술도 들어가고 속도 채우자 상대를 대하는데도 인심이 묻어나는 전백광이다.
"호안민(胡安民)이라 합니다. 편하게 불러주십시오."
그러면서도 호안민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배가 부르고 술도 들어가서 기분이 좋아지자 그제야 쩔쩔매는 호안민이 안쓰러워보였다.
"형님, 호형이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데, 더는 눈 뜨고 못 보겠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이야기나 한 번 들어봅시다."
전백광도 배가 불렀고 기분이 좋은 상태라 거절하지 않았다.
호안민은 우리를 주방으로 데려갔다.
주방 한편에는 술 단지 수십 동이 놓였는데, 호안민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나르더니 술 단지 아래에 깔려있던 나무판자를 들어올렸다.
그곳엔 열 평 남짓한 지하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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