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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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22)

우간바타르들에게서 마상기예를 배우게 된 것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고 나서부터였다.
스승님이 하남행성 전반에 걸친 민생시찰을 나가시면서 잠을 푹 잘 수 있게 되었고 보다 일찍 일어나서 소무상공을 연마할 수 있었다.
소무상공으로 조금이나마 공력을 돋우고 아침을 먹기 전에 전백광과 장무기의 한독을 흡취했다.
이후 점심을 먹기 전까지 우간바타르들에게 돌아가면서 궁전(弓箭), 기마(騎馬), 투창(投槍), 기창(騎槍) 등을 배웠다.
한 사람이 내게 궁전을 가르치면 나머지 여덟 명은 저 옆에서 고가금강지(高家金剛指)를 연마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소무상공에 열중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공력을 쌓아야 한독으로 고생하는 전백광과 장무기의 병세를 완화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저녁 먹기 전에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한독을 흡취했다.

그들과의 첫 만남은 자못 화끈했으나 다행히 좋은 인연으로 이어진 것에 감사한다.
차가운 금속을 서로에게 겨누던 사이에서 이젠 한솥밥을 먹게 되었으니, 이 또한 묘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새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는 반면 몰래 도망간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장삼봉과 스승님의 대결의 계기를 만들어 준 호안민이다.
따지고 보면 그 덕분에 이런 어려운 시기에 권력 있는 환관의 제자가 되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간다는 소리도 없이 사라진 그에게 서운한 마음도 남는다.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을 잃어버린 그를 데려와 매일 상세를 확인했다.
그가 걱정되어서라기 보단 전백광이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 자꾸 호안민의 상세를 물어보니 매일 가서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주일째 그의 병세를 확인하러 찾아갔을 때,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거동이 가능해지자 인사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생사를 함께했는데 이렇게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지니 착잡했다.

저녁을 먹은 뒤엔 홀로 점화지를 연마했다.
지르가다이의 활솜씨를 보고 느낀 바가 적지 않았다.
한자리에 서서 싸우는 일보다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싸우는 경우가 많은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불도 밝히지 않은 어두운 밤에 홀로 뛰고 걷고 넘어지고 일어나면서 점화지를 펼치는 연습을 했다.
양력으로 유월 중순에 들어섰다.
별이 밝은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떤 날은 눈을 떴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펼친 손가락을 구분할 수 없었다.
눈을 감은 것과 진배없는 날에도 점화지 수련은 멈추지 않았다.
그 덕분에 청력에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와 들쥐가 풀밭을 지나는 소리가 어떻게 다른 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발걸음 소리로 육중한 사람인지 가벼운 사람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어디다 써먹을 데 없는 쓸데없는 재주인지도 모르지만, 별도 뜨지 않는 밤에 홀로 서서 그런 재미라도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그렇게 열흘이 채 지나기 전에 전백광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과거 그의 몸 안에서 장삼봉의 무당구양공과 한독이 싸우는 과정에서 생성된 온유(溫柔)한 진기가 그가 한독을 이겨내는데, 큰 힘이 되었다.
전백광은 사부로부터 물려받은 방대한 양의 진기를 한독과 싸우는 과정에서 잃어버렸으나, 무당구양공의 양강함과 현명패천장의 한독이 만나 음양의 조화를 이룬 덕에 온유(溫柔)한 진기를 얻었다.
아침저녁으로 내가 한독을 흡취하는 것처럼 전백광의 온유(溫柔)한 진기도 비록 얼마 안 되는 양이었으나 조금씩 한독을 잡아먹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그의 진기는 힘을 키웠고 한독은 점차 힘을 잃었다.
그러자 그의 온유한 진기는 점차 양을 늘려서 한독을 잡아먹었다.
보다 많은 한독을 잡아먹을수록 그의 온유한 진기는 따뜻함을 잃어갔고 점차 차가운 기운을 띄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한독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그는 지극히 음유한 진기를 지니게 되었다.
한독을 이겨냈을 때, 그의 몸에 남은 내력의 양은 내상을 입기 전에 비하면 오분의 일 수준 밖에 안됐다.
그것은 그가 사부로부터 전수받은 태음신공으로는 절대 연공할 수 없는 한독보다 더 음랭한 기운이었다.
비록 양은 크게 줄었으나, 그는 항시 몸이 개운하고 움직임이 매우 유연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몸을 추슬렀다고 냉큼 밖으로 뛰쳐나갈 수 없었다.
두 달이나 함께 병마와 싸운 장무기와 무척 정이 많이 들었는지 장무기를 치료하는데, 한팔 거들겠다고 자청했다.
고춘기가 한독을 흡취할 때, 자신도 음유한 진기로 하여금 장무기의 한독을 잡아먹도록 시키겠다는 것이다.
이튿날, 내가 한독을 흡취하기에 앞서 전 형이 먼저 시술을 시행하기로 했다.
"악!"
전 형의 손이 장무기의 명문혈에 닿자마자 장무기가 고통을 호소했다.
"한, 한독보다 더 지독한 음기가……."
전백광의 몸 안에선 그렇게 고마울 수 없던 음랭한 진기가 타인에겐 무서운 독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전백광은 장무기를 돕는 일을 포기해야했다.
크게 아쉬운듯하더니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다니기 시작했다.
비록 내게는 답답해서라고 말했지만, 호안민을 걱정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호안민에겐 스쳐지나가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전백광은 처음으로 사람을 거둔 사람이 호안민이었다.
상심한 것을 숨기려 했으나 그런 모습이 더 안쓰러워 보였다.

올해로 스무 살이 된 만다에게 기창(騎槍)을 배우고 있었다.
기창(騎槍)은 말을 타고 창을 쓰는 법이다.
그 외에 여덟 부하들은 모두 연공에 불이 붙어서 한편에서 우리 집 비전무공인 고가금강지(高家金剛指)를 연마에 열심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예전의 공력을 찾고 싶은 것이다.
요새는 마상기예를 가르쳐달라고 말하기가 미안해질 만큼 고가금강지(高家金剛指)에 열중했다.
앞으로 내 손과 발이 될 사람들이기에 더 빨리 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부탁하지 않아도 저렇게 열심이니 마음이 놓였다.
연무장에 구불구불한 길을 만들어 놓고 양옆에 추인(芻人:꼴로 만든 사람)을 세워놓았다.
구불구불 복잡한 길을 얼마나 빨리 달리며 얼마나 많은 추인(芻人)을 찌를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기마(騎馬)에 능하지 않으면 구불구불하고 때로는 장애물이 있는 길을 빠르게 달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복잡한 길을 빨리 달리는데 만 열중하다보면 추인(芻人)을 몇 개 찌르지 못했다.
빨리 달리는 와중에 양옆으로 나란히 하나씩 서있는 추인(芻人)을 찔러야하는데, 두 개를 다 찌르려다보면 하나도 찌르지 못하고 하나만 찌르면 만다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기왕이면 만다가 시범을 보인 것처럼 달려들면서 한쪽을 찌르고 지나치면서 허리를 틀어서 뒤를 향해 다시 찔러서 하나도 놓치지 않아야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 기마(騎馬)도 기창(騎槍)도 능숙하지 않아서 기마(騎馬)에 집중하면 추인(芻人)을 놓치고 추인(芻人)에 집중하다보면 말이 멈춰 섰다.

"음! 음!"
"동생, 일찍부터 고생하는군."
전백광은 양 어깨에 살아 움직이는 포대를 한 자루씩 매고 들어왔다.
"형님, 그건 뭐요?"
"아~ 별거 아니네. 신경 쓰지 말고 일 보시게."
그리곤 장무기가 기거하는 방으로 향했다.
'꿈틀거리고 소리도 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잠깐 따라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별 것 아닌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다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을 되뇌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아자! 오늘은 기필코 완주한다!"
모든 기마 무예를 이 코스에서 연습했다.
손에 창을 들던 활을 들던 계속 이 코스를 달렸지만, 아직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완주한 적이 없었다.
이 핑계 저 핑계 댈 시간이 없는 것이다.

"형님, 전 됐으니 풀어주세요."
"무기아우 거절할 것 없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적적했나?
자네 나이가 몇이라고 했지?"
"열둘입니다."
"음~ 열둘이면 사내대장부라고 할 수 있지.
그 정도면 알 것 다 아는 나이가 아닌가?
까짓 것 모르면 내가 알려주겠네."
"형님. 전, 전 그럴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럴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비록 자네가 지금 병중이긴 하나, 그렇다고 남자구실까지 못한다는 말인가?"
"저, 저는 명문정파인 무당의 제자이니.
감히 태사부님의 허락 없이 혼인을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탁!
"아니, 동생은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나?"
전백광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탁자를 내려치고 일어났다.
"자네는 아직도 어린 애인가? 아니면 사내대장부인가?"
"전 어린 애가 아닙니다!"
"사사건건 사문의 허락을 받아야하다니, 그게 어떻게 사내대장부인가?
다시 물어보겠네.
자네가 보기에 둘 중 누가 더 예쁜가?"
"저는 이쪽이……."
"그럼 오늘부터 그녀가 자네를 모실 것이네."
"형님. 전……."
"아~아! 두말할 것 없네.
자네는 무당파만 중요하고 나는 중요하지 않은가?
나는 자네를 친동생으로 여기고 자네도 나를 형처럼 따른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오해한 것인가?"
"아닙니다. 오해하신 게 아닙니다.
저도 형님을 친형님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점심 먹자고 부르러 와서는 그들이 하는 양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침상에는 포대에서 목만 내놓은 두 여인이 재갈을 문 채 연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두 눈은 곧 잡아먹을 듯 흉험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형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아, 벌써 점심시간이군.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 하세."
"아니, 먹기 전에 들어야겠소."
"유난 떨 것 없대도 그러네.
나는 이렇게 훌훌 털고 일어났지만, 장 동생은 아직도 저리 앓고 있는데 내가 도와줄 건 없고 딱지나 떼주려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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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후방주의 달고 시작하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후...후방주의까지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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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도 해주시고 제가 드려야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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