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18)

in #kr7 years ago

너에게로 가는 길.png

"춘기 안에 있느냐?"
안에서 걸어 잠근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오셨습니까?"
"오늘 혹시 장원 내에서 소무상공(少無相功)을 연성한 일이 있느냐?"
"예, 저도 그 일 때문에 스승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스승님은 제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아시는 군요?"
"그래, 알다마다. 네가 소무상공(少無相功)에 올바르게 입문한 것이다.
나는 육십 년 가까이 소무상공(少無相功)을 익히고 나서야 얼마 전에 드디어 그 경지에 들었다.
첫째 마두징(馬斗徵)은 사십 년 가까이 익히고도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둘째 계사일(桂思逸)은 십오 년을 익혔으나 역시 아직 입문하지 못했다.
홍복이구나.
홍복이야!
그 이전까지의 소무상공(少無相功)은 제대로 된 진정한 소무상공(少無相功)이 아니다.
그저 대단한 내공심법으로는 불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 내력을 무상공력(無相功力)으로 승화시켰으니 앞으로는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가장 어려운 관문을 넘어섰으니 앞으로는 정진하는 대로 공력이 증대될 것이다."
"다 스승님의 은덕입니다."
"어제 해독하는 과정에서 주입된 나의 무상공력(無相功力)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지만, 소무상공(少無相功)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더라면 이런 성취를 얻을 수 없었을 게다."
"저는 아직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문(呪文)을 외우니 공력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공력이 줄어들었는데도 현철중검이 점점 가벼워지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전에 있던 공력이 무상공력(無相功力)으로 승화된 것이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무상공력(無相功力)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게다.
억지로 알아내려고 애쓰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어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다급한 와중에 소무상공(少無相功)을 익혔으나 북명신공(北冥神功)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
둘 다 소요파의 무공이니 같은 뿌리라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 후로 한 달 동안 소무상공(少無相功)을 익히며 공력을 증대시켜왔다.
그러자 자고 일어나면 공력이 반감되어있고 공력을 운용할 때마다 공력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시 공력을 다 빼앗겨버린 상태가 되었을 때, 무상공력(無相功力)을 느꼈다.
무상공력(無相功力)이란 공력이 다른 형태로 승화된 것을 말한다.
본래의 공력이라는 것이 혈도를 따라 움직이는 것을 말하지만, 무상공력(無相功力)은 그런 제약이 없다.
그것은 자유롭게 몸 안팎을 오가며 몸을 보호하고 삿된 것을 물리치고 점차 자신을 키우면서도 그 형태를 드러내지 않는다.
무상공력(無相功力)이 양식으로 삼는 것이 바로 혈맥을 따라서 흐르는 공력인 것이다.
나는 소무상공(少無相功)과 북명신공(北冥神功) 사이에 어떤 끈을 발견했다.
이것은 마치 처음부터 상대의 존재를 의식하고 만들어진 무공들 같았다.
북명신공(北冥神功)으로 남의 내력을 빼앗아 북명진기(北冥眞氣)로 만들고 무상공력(無相功力)은 그것을 먹고 자란다.
무상공력(無相功力)은 혈맥이라는 한계 없이 온몸 안팎을 오가며 연공자를 보호한다.
뭔가 딱딱 들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이추수 이후 많은 사람들이 소무상공(少無相功)을 익혔으나 누구도 무상공력(無相功力)을 이룬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이추수에게 소무상공(少無相功)을 전해 받은 무애자도 그리고 자질이 떨어지는 정춘추도 마찬가지였다.
정춘추는 무상공력(無相功力)을 이루기는커녕 소무상공(少無相功)도 이해하지 못했다.
무애자는 소무상공(少無相功)을 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습 당하는 바람에 이후에도 소무상공(少無相功)에 정진하지 못했다.
허죽도 북명신공을 연구하느라 무예의 발전이 대단하지 않았고 대오각성한 구마지 또한 쓸데없이 소림무학을 복원한다는 이유로 절세무학인 소무상공(少無相功)을 등한시했다.
구마지의 후예들도 마찬가지로 선사의 뜻을 이어받아 소림에서 기원한 다섯 가지 무예를 계승 발전시키는데 전 생애를 바쳤다.
그러나 티무르부카는 달랐다.
자질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거세당하고 원 황실로 팔려가다시피 보내진 티무르부카는 기댈 곳이 없었다.
낙이라곤 비급으로 전해 받은 소무상공(少無相功)과 다섯 가지 소림무예를 익히는 것뿐이었다.
황실이라는 삭막한 공간에서 수십 년을 정진한 덕분에 수백 년 동안 아무도 이루지 못했던 무상공력(無相功力)을 이룬 것이다.
폐쇄적인 상황이 오히려 그를 정진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사실은 고춘기도 그리고 고춘기에게 소무상공(少無相功)을 전한 티무르부카도 짐작하지 못했다.
소무상공(少無相功)을 비급으로 홀로 익힌 티무르부카는 제자들의 자질이 자신보다 부족해서 책을 통하지 않고 직접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무상공력(無相功力)을 터득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은 첫째보다 둘째가 둘째보다 셋째가 자질이 뛰어났다.

이미 점화지(點花指)를 훔쳐 배웠던 나는 밤마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스승님께 내가 유추해서 펼쳤던 조악한 점화지(點花指)가 아니라 구마지 사조 이래로 이백오십여 년 간 복원하고 발전시킨 점화지(點花指)를 배웠다.
제대로 된 점화지(點花指)를 배우고 나서야 점혈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무상공력(無相功力)을 느끼고 다시 한 달이 지났을 즈음에는 스승님의 도움 없이 혼자서 전백광과 장무기의 혈도를 점혈하여 한독이 발작하지 못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론 한독을 조금씩 흡취하기 시작했다.

소무상공(少無相功)으로 공력을 모으면 그 공력은 자연스럽게 북명진기(北冥眞氣) 속으로 유입되었다.
그러면 북명진기(北冥眞氣) 속에서 소무상공(少無相功)의 공력과 한독이 균형을 이룰 수 있을 만큼만 한독을 흡취했다.
소무상공(少無相功)의 공력이 양강하지도 음유하지도 않아서 한 번에 많은 양의 한독을 흡취하지는 못했다.
그리곤 소무상공(少無相功)의 공력과 한독의 기운을 북명진기(北冥眞氣)로 받아들이고 무상공력(無相功力)이 북명진기(北冥眞氣)를 양분으로 삼도록 방치했다.
신기하게도 무상공력(無相功力)은 항상 북명진기(北冥眞氣)를 일정량 남겨두었다.
마치 북명진기(北冥眞氣)가 고춘기의 생명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고춘기는 무상공력(無相功力)이 북명진기(北冥眞氣)를 승화시키는 동안 현철검법을 연마했다.
그는 비록 북명신공을 익히는 바람에 현철검법에 따라서 강물을 상대로 내공을 연마하진 못했다.
양과가 그와 같은 방법으로 얼마나 대단한 내력을 지니게 되었는지 생각한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소무상공(少無相功) 또한 공력을 증진시키는 법문이 존재했다.
그것은 북명신공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만했다.
왜 허죽은 북명신공 자체로서 내력증진이 가능하도록 만들려고 그렇게 애를 썼을까?
북명신공과 소무상공(少無相功)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충돌하지도 않으니, 함께 익히면 굳이 북명신공을 개정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욕심 때문일 것이다.
북명신공을 이용하면 소무상공(少無相功)이 아니라 그보다 더 나은 무공보다 남의 내력을 갈취하는 것이 더 편하고 쉽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도 무상공력(無相功力)의 공능으로 인해 현철중검을 훨씬 가볍게 다룰 수 있게 되니 무엇인가 이룬 것 같은 성취감을 느꼈다.

그때, 티무르부카는 나와 안면이 있는 아홉 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왔다.
"춘기야. 이들은 황후께서 내게 직접 맡기신 오백정병 중 아홉 명이다.
본래 그 오백 명을 모두 제자로 받아들였으나 내가 직접 가르치진 않았다.
오백 명 중 오직 한 명 네겐 둘째 사형이 되는 계사일(桂思逸)만을 관문제자로 받아들였다.
이들 오백정병을 가르치는 일은 앞으로도 너희 사형제가 해야 할 일이다.
허나, 이들은 네가 무공을 폐지하는 바람에 군부에서도 쫓겨났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폐인이 되어버렸다.
네가 한 일이니 네가 책임지어라."
"스승님, 어떻게 책임지라는 말씀이십니까?"
"네가 무공을 가르치든 학문을 가르치든 해서 사람 구실을 하게 만들라는 말이다.
문외제자라지만 내 문하에서 인간 구실도 못하는 것들이 나왔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무공도 학문도 하기 싫다고 한다면 목을 베어 문호를 정리하겠다."
고춘기는 티무르부카의 이런 냉정한 모습은 상상해본 적도 없다.
비록 환관이라 외관이 묘했으나 자신에게만은 언제나 너그러운 할아버지 같았다.
사실, 티무르부카는 고춘기가 생각하는 그런 너그럽고 인심 좋은 인물이 아니었다.
다만, 한 번도 뵌 적 없는 큰스님을 지극히 존경하고 무예에 한 없이 목마른 티무르부카는 큰스님의 이름을 빛내고 여러 무학을 함께 연구하고 발전시킬 동반자로서의 고춘기를 지극히 아껴 한 번도 그 앞에선 냉정한 모습을 보이려하지 않았을 뿐이다.
"삼 사형, 무공을 배우겠습니다. 목숨을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죽이지만 말아주십시오!"
아홉 명의 전직 몽고기병들은 티무르부카의 선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춘기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무릎 꿇고 울부짖는 그들을 어찌 뿌리칠 수 있겠는가?
그들이 그렇게 망가진 데에는 자신의 책임도 반 정도는 있지 않겠나.
"가르쳐보겠습니다. 자네들은 이 사람을 따라가 짐을 풀고 기다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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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무상공에 추가한 설정이 북명신공과 잘 맞물렸네요. 김용소설을 본 사람이면 뇌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겁니다.

으아아!!!!!!!!!!!!!!!!!!!!!!!!!!!!!!
소요님이 알아주시네요!!!!!
그거 엮어넣으면서 누가 이거 알아주려나 했는뎁 ㅎㅎ
감사합니다!!!!!!

아직 보는 사람이 적어서 그렇지 알아 볼 사람들은 다 알아서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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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에는 김용소설에 푹빠져 있을적이 있었어요
워낙 무협지를 좋아 했거든요시간 나는데로 다시 한반 봐야 겠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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