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1화 단장斷魂 02

in #kr-literature7 years ago (edited)

너에게로 가는 길.png
"우욱!"
뜨겁고 불쾌한 것이 솟구쳐 올랐다.
힘겹게 억지로 눌러서 참아냈다.
당장은 한 번 토해버리면 살 것 같지만, 실제로 토하면 온갖 내장을 걸래처럼 비틀어 짜는 고통을 겪을 때면 항상 조금만 더 참을 껄하고 후회하곤 했다.
"너무 마셨나……."
석현은 가까운 자기 원룸에서 자고 가라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꽐라 직전의 메롱 상태이긴 했지만, 아무데서나 자고 싶진 않았다.
더군다나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음식물 쓰래기 발효되는 입 냄새를 풍기는 태관이형 옆에서 깨는 악몽은 사양할 수 밖에 없었다.
내일 저녁까지 환기해도 석현이네 자취방은 술 냄새, 토 냄새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 뻔했다.
미안하게 그 자리에 한 가지 악취를 더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럴 땐, 싸지만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원룸을 구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매일 강의 들으러 나갈 때, 이십 분이나 걸어야 한다는 점이 매번 나를 시험에 들게 하기는 했다.
어쩌면 미안한 마음에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은미 때문이라도 힘들어도 참고 집으로 가야 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집으로 걸어오는 길은 오늘 따라 정말 멀었다.
시야는 연속으로 찍은 사진처럼 장면이 낱장으로 보였고 몸은 비 오는 날 솜이불을 업고 가는 것처럼 갈수록 힘에 겨웠다.
그냥 길바닥에서라도 잠깐 눈을 부칠까?
잠깐만 쉬었다 갈까?
도저히 못 걷겠다.
자꾸 구역질은 올라오고…….
오태관 개자식…….
이별주는 떠나보낸 그녀만큼 특별해야 한다면서 2000cc피쳐를 참이슬, 카스, 발렌타인, 복분자로 가득 채운 뒤 다 마시면 깨끗하게 잊을 수 있다고 썰을 풀었다.
그 땐, 이미 오랑우탄 네 마리 모두 불콰하게 취한 뒤였고 권하는 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니, 쓸데없이 이별이야기를 다시 꺼내서 가슴 한편을 뒤흔드는 태관이형이 미워서라도 다 마셔야겠다는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판단을 내렸다.
마시면서 넘어오고 다시 마시고를 반복했다.
석현이와 영훈이까지 말리는데도 억지로 다 마셨다.
원래 취한데다가 다시 폭탄주를 들이부었는데, 희한하게 정신은 오히려 말똥말똥해졌다.
내가 오버하는 바람에 이미 분위기는 얼어버렸고 나도 더 마시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서 자리를 파했다.
그 뒤로 집에 오는 내내 울렁거림을 겨우겨우 참아냈다.
당장 길바닥에 드러눕고 싶지만 참아야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려워서도 아니었고 얼어 죽을까 걱정 되서도 아니었다.
혹시 집에서 사과하기 위해 기다릴지도 모르는 은미…….

차가운 손잡이를 만지기도 전에 이미 안에 아무도 없음을 직감했다.
불이 꺼져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느낌이 그랬다.
안에 은미가 있으면 불이 꺼져있어도 알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내가 은미 앞에서 진수선배를 때린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인가?
사전에 합의도 없이 뒤통수 때린 건 누가 잘못한 건데?
군대도 갔다 온 노땅이 하고 많은 여자 중에 임자 있는 여자 건드리는 건 뭔데?
시발 군대에선 그렇게 가르치나?
똑바로 서기도 힘들어 벽에 등을 기댔다.
핸드폰 액정을 건드렸다.
AM 04:45
늦은 시간이다.
은미는 자고 있겠지?
그 선배도 자고 있겠지?
혹시 같이 있나?
시발 같이 자고 있냐?
[마눌]
통화를 눌렀다.
컬러링이 울렸다.
'우리 서로 반말하는 사이가 되기를…….'
내가 사준 노래다.
'우리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기를…….'
"시발 진짜 그런 줄 알았는데……."
-너 미쳤어? 이 시간에 전화해서 나한테 욕한 거야? 이게 뭐하는 짓이니?
"어~ 은미~ 안 잤네?
-얼씨구? 술까지 마시구?
"은미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 아무말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할 말 없으면 끊어. 그리고 앞으로 새벽이건 낮이건 전화하지 마.
"잠깐, 잠깐만 끊지 말아봐."
-아, 진짜 짜증나게. 네가 쫑내자며!
"그래, 내가 그랬어. 내가 쫑내자 그랬다. 근데 네가 그 새……. 그 선배랑 팔짱끼고 걷고 있었잖아. 나한텐 아직 집이라며. 씻지도 않았다고 그랬잖아."
-그래서? 지금 그거 들춰내서 어쩌자는 건데? 잘못했단 말 듣고 싶니? 그래 잘못했다. 잘못했다.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됐니?
괜히 전화했다.
그녀와의 지난 추억마저 실수로 떨어뜨린 유리컵처럼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그리고 나에 대한 그녀의 마지막 기억이 최악으로 치달아버렸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게."
-그래, 어차피 너 때문에 잠도 깼어. 다 물어봐.
"왜 그랬어? 나한테 왜 그랬어? 우리 꽤 좋았잖아."
은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침묵이 조금이지만, 위안이 되었다.
-술 깨고 다음에……. 다음에 이야기 하자.
"뭘 다음에 해! 뭘! 우리 사이에 다음이 어디 있어? 지금 말해! 지금 말하고 끝내."
-이래서 그랬어. 너 이럴 때 정말 짜증나는 거 알아? 내가 너희 엄마도 아니고 제발 징징거리지 좀 마.
그리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가 왜 전화했지?"
언제는 나 어린 거 모르고 만났나?
"내가 언제 나이 속인 적 있어? 처음부터 지가 먼저 꼬셔놓고……. 나이답지 않게 든든하다며!"
정말 어린애처럼 행동했었나?
시발…….
언제는 노땅인 줄 알고 만났냐!
"내가 누군줄 알아? 천하무적 무림 제일고수가 바로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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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책읽는걸 좋아한다고 여기는데 , 코인 입문한 뒤로는 영 ~~
책볼시간이 확 줄었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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