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23)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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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23)

이마를 잡지 않을 수 없었다.
"형님, 열두 살이면 너무 이른 것 아니요?
아직 어린 애한테 총각 딱지를 떼 준다니 이건 아동 성폭행이요."
"아니, 열두 살이면 다 컸지.
장가를 가도 두 번은 더 갔을 나이네."
"휴~ 일단, 딱지는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무기가 키도 좀 더 크고 마음에 준비도 되면 그 때 챙겨줍시다."
"아니, 그 때까지 기다릴 것 뭐있나?
저도 그 맛을 알면 나중엔 왜 더 안 데리고 오냐며 뭐라 할 게 뻔 하지 않은가?"
그러면서 음흉하게 웃는 전백광이다.
"그래도 떼 주려면 좀 더 전문적인 곳으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대놓고 보쌈을 하는 것은 좀……."
"뭐 어떤가? 이 강으로 흘러도 바다고 저 강으로 흘러도 바다인데."
"아무튼 일단 좀 미룹시다. 무기 네 생각도 지금은 아닌 것 같지? 응?"
그러면서 두 사람을 유심히 쳐다봤다.
"응?"
이제 초여름이라 낮에는 꽤나 후덥지근했다.
그런 날씨에 기창을 연습하느라 진땀을 빼다왔는데, 그녀를 보니 등허리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은미?"
그녀는 김진수를 선택하고 나를 버린 은미였다.
그러나 그녀가 은미일 수는 없다.
아니, 자신이 겪은 일은 생각하면 그녀 또한 자신처럼 황당한 일을 겪지 말란 법도 없다.
두 달만의 만남이 이런 식이 될 줄은 몰랐다.
아니, 다시 그녀를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추잡한 색마! 차라리 죽여라!"
재갈을 풀자마자 그녀가 내 뱉은 말이었다.
그녀에게 처음 듣는 말은 아니었지만, 수식어와 어투는 확연히 달랐다.
"아니, 이번엔 아무 짓도 안했는데?"
나는 순간 그녀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렸다.
마치 그녀가 좋아하는 카페에 함께 앉아 장난치던 시간으로 돌아간 줄 알았다.
어쩌면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현실을 부정하게 만들었을까?
"장무기! 거기 숨어있다고 모를 줄 아느냐?
네가 장취산의 피를 한 방울이라도 이었다면 당장 내 목을 쳐라!"
투둑!
"시끄러워서 못 들어주겠군.
무기동생,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네.
늘 있는 일이야."
'뭐가 늘 있는 일이란 겁니까?'
전백광은 장무기에게 고함치는 은미의 아혈을 제압해버렸다.
"그나저나, 춘기. 동생과 안면이 있는 여인인 줄은 미처 몰랐네.
혹 깊은 사이였나?"
"네. 저는 깊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기막힌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난감했다.
"아~아! 다 이해하네.
원래 그럭저럭 괜찮은 것들은 다 얼굴값을 하는 법이야.
그렇다고 잠깐 한눈팔았다고 남자가 쩨쩨하게 굴면 못쓰네."
"그, 그야……. 그런가요?"
"암~ 다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자네라고 다를 줄 아나?
더 맛난 음식이 보이면 그 외에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지."
"형님. 지금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거요?"
"으음~ 여하간! 이렇게 다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변치 말고 잘해보게."
"그, 그럴까요? 이 여자 분은 모르는 분인데, 은미랑 아는 분인가요?"
"어, 거 뭐 무슨 파라고 했던 것 같은데…….
왠지 비구니 느낌이 나서 말이야.
내가 그 쪽 방면으론 또 일가견이 있지."
어느 방면인지 모르겠으나, 음흉하게 웃는 것이 좋은 방면이 아닌 것 같아서 감히 물어보질 못했다.
"역시 미인은 절에서 찾아야……."
"일단, 이것부터 풀어줍시다.
어찌하다보니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만났지만, 처음 보는 사이도 아니고 이렇게 둘 수는 없지 않겠소?"
"춘기 형님. 정말 저 소저와 아는 사이가 맞습니까?
그렇다면 왜 아까 형에게 색마라고 한 것 입니까?"
"무기 아우. 남녀가 내밀한 사이가 되면 때론 그런 말을 주고받기도 한다네."
"그렇습니까?"
장무기는 전백광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남녀의 내밀한 사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물어보면 또 어린애 취급당하게 될까봐 무서워서 도저히 물어볼 수 없었다.
그제야 제압된 두 여인을 바로 앉혀놓을 수 있었다.
'은미가 그 사이 수술이라도 했나?'
겨우 두 달 못 봤을 뿐인데, 몸매의 볼륨감이나 얼굴의 윤곽이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했다.
본래 은미의 몸매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두 살이나 많은 연상임에도 불구하고 파릇파릇한 동기들을 제쳐두고 그녀에게 빠진 것은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허리에 군살이 하나도 없고 잔 근육으로 꽉 찬 정도는 아니었다.
'피트니스클럽 회원증만 끊어놓고 한 번도 안가더니…….'
"형님, 신소리 그만하고 혈도나 풀어주시오."
두 달이나 스승님과 함께 점화지(點花指)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벌였기에 점혈공부에도 나름 자신이 붙었다.
굳이 내가 풀려면 못 풀 것도 없지만, 이런 사소한 일로 전백광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전백광에게 잡혀온 두 여인은 숨겨놓은 딸과 함께 도망친 기효부를 찾으러 나온 아미파의 정민군과 패금의였다.
순결을 중요시하는 아미파에서 다음 대 장문인으로 유력시되는 기효부가 사부인 멸절사태를 속이고 아비 모를 아이를 낳고 그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아이와 함께 도망간 것이다.
기효부의 행방을 묻고 물어 낙양성까지 도달한 아미파의 추격대는 각자 이인일조로 흩어져서 기효부와 아이의 행방을 묻기로 했다.
평소 자신보다 늦게 입문하였음에도 금세 자신을 제치고 사부 멸절사태의 신임을 얻어 의발전인으로 내정될 것이 확실시되는 기효부였다.
그런 기효부를 질투했던 정민군은 이번 기회에 확실히 그녀를 몰락시키겠다고 다짐했다.
평소 기효부와 가장 막역한 사이였던 패금의는 정민군의 이러한 심보를 알고 혹시라도 그녀가 독한 살수를 쓸까봐 굳이 그녀를 따라나섰다.
장무기의 한독을 치료하는 일에 자신이 별 도움이 되지 못하자 낙심한 전백광은 장원을 나섰다.
한독보다 음랭한 음유진기를 얻은 것은 축하할만한 일이지만, 크게 흥이 나진 않았다.
막상 나와도 갈 곳이 없어 터벅터벅 정처 없이 걷던 전백광은 혹시 모란주루에 가면 호안민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근거 없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모란주루에서 그는 호안민을 만나지 못했다.
착잡한 마음이 들어서 술이나 한잔하고 나오는데, 주인에게 기효부와 그녀의 아이의 행방을 묻는 패금의와 정민군을 보고 외롭게 병상을 지키고 있을 장무기가 떠올랐다.
병세를 호전시켜 줄 수는 없지만, 적적한 마음을 달랠 순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대로 두 여인을 보쌈한 것이다.
두 여인은 영문도 모른 채, 순식간에 점혈 당하고 재갈까지 물린 채로 보쌈당한 것이다.
전백광이 장원으로 돌아오는 동안 기효부를 찾아 낙양 성을 수색하던 아미파 제자들과 몇 번을 마주했지만, 서로 소 닭 보듯이 지나쳐갔다.
두 여인은 침상에 눕혀진 채로 전백광과 장무기가 하는 양을 그대로 보고 있어야 했다.
정민군은 이 년 전 무당파에서 장취산과 은소소에게 무림의 보물인 도룡도를 가지고 행방을 감춘 금모사왕 사손의 행방을 밝히라고 규탄하는 자리에서 장무기를 보았다.
그러나 그 둘은 금모사왕 사손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 끝내 그의 행방을 밝히지 않고 자살한다.
그 때 곁에서 부모의 죽음을 목도한 장무기가 두 사람을 몰아붙여 죽음에 이르게 한 각 파의 인물들을 보고 울부짖었던 장무기를 이런 상황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막상 얼굴을 보고도 못 알아차렸으나, 무당파니 태사부니, 무기아우니 하는 말을 듣고 나니 못 알아보려야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패금의 또한 정민군이 했던 말처럼 능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고만 싶었다.
그러나 이윽고 고춘기의 말을 듣자 정민군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백광의 물음에 정말 자연스럽게 서로 깊은 사이임을 인정했다.
고춘기가 정민군을 앉히고 다정한 손길로 헝클어진 머릿결까지 정리해주자 패금의의 의심은 커져만 갔다.
마침내 전백과에 의해 혈도가 풀리자, 두 여인은 서로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정민군은 자신을 바라보는 패금의의 표정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뚜렷하게 느꼈다.
자신은 한 번도 순결을 잃어본 적이 없는데, 고춘기는 자신이 봐도 의심스러울 만큼 자신에게 정말 다정하게 굴었다.
그녀를 일으켜 앉히는 손길, 헝클어진 머릿결을 정리해주는 세심함, 사랑스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는 것까지 너무 자연스러워 순간적으로 마치 자신도 그를 그렇게 대해야 하나 착각할 정도였다.
정민군은 적잖게 당황했으나, 한시 급히 패금의의 의심을 빨리 지워버려야 했다.
"이…… 이…… 어서 진실을 밝혀라!"
그녀는 감히 색마라는 말을 입에서 내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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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어렸을때 비디오?로 봤었는데! 새록새록 기억나네요^^

이연걸 주연의 의천도룡기 보셨나보네요.
이연걸의 전성기 모습과 구숙정의 앳된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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