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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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9)

"한가지, 더 묻고 싶은 것이 있소."
장삼봉은 티무르부카의 이종절예가 소림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하자 유대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유대암은 도룡보도를 노리는 도적들에게 당해 벌써 십년이 넘도록 전신마비환자로 살아왔다.
혹시 그를 그렇게 만든 금강대력지공(金剛大力指功)(金剛大力指功)이 이자와 연관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유대암을 전신불수(全身不隨)로 만든 장본인이 티무르부카라면 당시에 유대암이 아니라 자신이 상대했더라도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의혹이 일어나는 한편으론 이런 고수가 과연 도룡보도에 연연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상반된 생각에 그는 상념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의 사문에서 혹 금강대력지공(金剛大力指功)(金剛大力指功) 또한 전하고 있소?"
이런 사문의 내밀한 사정은 강호의 예의상 함부로 물어볼 수 없는 것이라 선뜻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장삼봉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것은 마치 네가 어떤 재주를 지녔는지 네 입으로 실토하라는 것과 같았다.
언제 상대에게 칼을 겨눌지 모르는 강호에서 사전에 상대가 어떤 재주를 지녔는지 아는 것은 대결에 앞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았다.
"본문에선 소림과 관계된 세가지의 손가락을 쓰는 무예와 한 가지 장력을 전하고 있습니다. 방금 보여드린 점화지(點花指)와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 그리고 다라엽지(多羅葉指)와 무상겁지(無相劫指)를 전하고 있습니다."
티무르부카는 그런 질문을 하는 장삼봉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의혹이 일어나긴 했으나 무당의 진산절예를 훔쳐 배운 대가를 치른다고 생각하고 대답했다.
또한 장삼봉이 안다고 해서 그것으로 자신을 어찌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기실 그가 익힌 점화지(點花指)와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은 외양은 소림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실제론 매우 다른 양상으로 발전해왔다.
만약 소림무예에 정통한 사람이 티무르부카의 점화지(點花指)와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을 목격했다면 대번에 알 수 있었을 테지만, 소림에서 곁눈질로 견식을 쌓은 장삼봉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장삼봉은 티무르부카의 대답에 그가 흉수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다른 한편으론 흉수를 찾을 길이 여전히 막막하다는 것에 침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중단되자 전백광이 장삼봉의 왼편에 섰다.
대결을 마치고 장삼봉은 끊임없이 팔다리가 떨리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평생의 절학들을 다 풀어내어 스스로 창안한 많은 무학들을 다시 한 번 집대성(集大成)할 수 있었으나 진력을 대부분 소모해 서있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만약, 그가 백세를 넘기지 못했거나 일파의 종주가 아니었다면 체면을 차리지 않고 주저앉아버렸을 것이다.
전백광은 그의 상태를 알아보고 부축하여 의자에 앉혔다.
"태사부님!"
거동이 불편한 장무기가 힘겹게 품에 안겼다.
자신을 향한 걱정과 검광이 난무하는 대결을 보고 두려웠는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모습이 그렇게 안쓰러웠다.
울먹이는 장무기를 달래며 보니, 자신이 쓰러뜨린 몽고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품 안에서 백호탈명단(白虎奪命丹) 한 병을 꺼내 전백광에게 전했다.
"내가 손속이 과했소. 다들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나 저 병사는 이장을 연달아 맞는 바람에 기식이 엄엄하니 빨리 손을 써야 할게요."
티무르부카가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었음을 아는 장삼봉은 자신이 쓰러뜨린 병사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러한 일로 앙금이 남으면 후에 어떤 악연으로 얽힐지 예측할 수 없었다.
만약 다음에 칼을 겨누게 된다면 생명을 보전할 수 있을지 가늠해보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자신도 그럴진대 앞으로 무당을 이끌어나갈 제자들이 그에게 해코지라도 당한다면 그야말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지 않겠는가.
장삼봉에게 백호탈명단(白虎奪命丹) 한 병을 받아든 전백광은 티무르부카에게 두려운 마음이 일었지만, 꾹 참고 백호탈명단(白虎奪命丹)을 전했다.
티무르부카는 모란주루까지 자신을 안내한 자르갈에게 백호탈명단(白虎奪命丹)을 넘기고 전백광을 바라봤다.
그를 보니 자신을 욕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장삼봉과 신명나는 대결을 펼치느라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이 화를 돋웠다.
"태감(太監)께선 자비를 베푸시오."
전백광을 노려보는 티무르부카를 향해 장삼봉이 당부했다.
"네 잘못은 절대 용서할 수 없으나 진인께서 저리 부탁하시니 나 또한 자비를 베풀지 않을 수 없구나."
전백광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신선과도 같은 장삼봉과 이 기이한 태감의 대결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자신을 대신해서 뛰어든 장삼봉을 돕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춘기와 장무기를 데리고 전장(戰場) 밖으로 피하는 것뿐이었다.
대결의 초수가 더해갈수록 장삼봉을 돕고자 했던 마음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만약 장삼봉이 대신 받아내지 않았더라면 과연 당시 티무르부카가 뻗어낸 장력을 받아낼 수 있었을까?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깜깜하다.
"네가 지은 죄를 생각하면 갈가리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겠으나 진인을 봐서 네가 나의 삼장(三掌)을 받아내면 이전의 잘못을 다신 묻지 않겠다."

"태감(太監)!"
장삼봉이 가늠하기로 천하에 티무르부카가 전력을 다한 삼장(三掌)을 받아낼 사람은 손에 꼽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마음만 독하게 먹는다면 삼장(三掌) 안에 죽이지 못할 사람이 드물 것이다.
전백광은 삼십육계 줄행랑을 떠올렸다.
상황을 보면 장삼봉과 티무르부카 사이의 원한은 풀린 것 같았다.
그들 사이에 앙금이 남지 않았으니 해코지 할 이유도 없다.
고춘기를 데리고 도망갈 수 있을까?
장삼봉을 상대하면서도 티무르부카는 신법을 펼쳐 보이지 않았다.
처음 장삼봉의 장력을 받아낸 곳에서 세 걸음 이상 벗어나지 않고 그의 신묘한 검술을 모조리 받아낸 것이다.
그러니 그의 신법이 얼마나 뛰어날지 예측할 수는 없었다.
허나 장삼봉이 감탄한 무예의 고수이니만큼 감히 경시할 수준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그의 손가락 튕기는 기술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알기 어려웠다.
거리를 막론하고 그 재주를 펼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그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장내를 벗어나야 했다.
자기 한 몸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시도해 볼만 했으나 고춘기를 버려두고 간다면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알 수 없었다.
고춘기를 돌아보니 무언가 골몰하는지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있었다.
'동생은 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동생은 한시도 내 걱정에 여념이 없는데, 그를 버리고 도망갈 순 없다.'
"받아보겠소."
장삼봉과 티무르부카의 대결이 서로에게만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장삼봉은 평생의 호적수를 만나 마음껏 무공을 펼쳐 한을 풀었고 티무르부카는 무당파 무공의 정수를 훔칠 수 있었으며 전백광은 크게 개안했다.
그들의 무학이 워낙 고명한 터라 용호상박으로 오가는 무예의 십분의 일도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
특히, 오늘 아침에 현명패천장(玄冥覇天掌)을 창안한 전백광은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만으로 장삼봉의 다양한 권장지각을 막아내는 것을 보고 장법운용의 묘를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전에 도법과 신법만을 배우고 연구해온 전백광에게 그것은 무엇보다 값진 성과였다.
전백광은 티무르부카의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을 어떻게 막을지 잠깐 고민했다.
광풍도법은 자신의 성명절기(盛名絶技)이긴 했으나 초식이 평범해서 하수에게는 위세를 떨칠 수 있으나 고수 앞에선 큰 이익을 보기 어려웠다.
다행히도 그에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창안한 현명패천장(玄冥覇天掌)이 있었다.
티무르부카는 이미 장삼봉과 사십 분 만에 삼천 초를 겨루었다.
장삼봉이 운신(運身)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멀쩡히 서있는 티무르부카에 비해 손색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장삼봉이라는 거인이 진력을 거의 다 소모할 동안 티무르부카도 전력을 다해서 맞섰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멀쩡한 것처럼 연기하고 있으나 속사정은 그렇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생각해보니 굳이 삼장(三掌)으로 제한한 이유가 무엇일까?'
장 진인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명목이지만, 굳이 자신에게 패한 사람의 부탁을 들어줄 필요가 있었을까?
'그래, 그는 오직 삼장(三掌)을 격출할 여력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차라리 지금 맞서는 것이 멀쩡한 티무르부카를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승산이 있어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전백광은 삼장(三掌)이 아니라 삼십장(三十掌)이라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운이 좋다면 그의 어려운 틈을 타 승세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는 그만큼 자신의 현명패천장(玄冥覇天掌)에 자부심을 가졌다.
티무르부카는 한손은 뒷짐 지고 왼손만을 뻗어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을 발출했다.
준비하고 있던 전백광은 필생의 내력을 쏟아 부어 현명패천장(玄冥覇天掌)으로 맞부딪혔다.
경미한 음향과 함께 두 손바닥이 부딪히는 순간, 전백광은 티무르부카의 장력에 비틀거리며 다섯 걸음이나 밀려났다.
사실 전백광이 예상한 것과는 반대로 티무르부카의 내력은 아직도 충만했다.
그가 장삼봉과 오백초를 겨뤘을 때, 장삼봉이 힘에 부쳐하는 것을 보고 6성 공력으로 낮춰서 상대했다.
겨룸이 일천 초에 달했을 때, 티무르부카는 4성 공력으로 감하였고 이천 초를 넘어서자 오직 1성 공력만으로 장삼봉을 상대했다.
만약 장삼봉이 이유극강(以柔克剛)의 무리를 이용하지 않고 순수한 내력만으로 맞섰다면 채 일장을 받아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장삼봉의 내력은 티무르부카의 3성 공력에 달할 뿐이다.
티무르부카는 장삼봉의 부탁을 받아들여 자신을 모욕한 전백광에게 단지 1성 공력의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을 발출했을 뿐이다.
장무기가 보기에도 전백광의 뒷걸음질은 참으로 기이했다.
두 번째 걸음이 첫 번째 걸음보다 느렸고 세 번째 걸음이 두 번째 걸음보다 느렸다.
그가 마지막 다섯 번째 걸음을 디디는 동안 장무기는 속으로 무려 열셋을 헤아렸다.
뒷걸음치는 동안 그의 안색도 확연하게 변했다.
첫걸음을 디뎠을 때 그의 안색은 창백해졌고 두 번째 걸음에선 얼굴빛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세 번째 걸음에선 찬물에 장시간 방치된 사람처럼 입술이 새파랗게 변했다.
네 번째 걸음에선 안색이 푸르죽죽하게 변해버렸고 마침내 전백광이 마지막 걸음을 내딛었을 때 그 얼굴색은 거무스름하게 변했고 입에선 입김대신 냉기가 흘러나왔다.
"전 소협!"
전백광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 경악한 장삼봉은 장무기를 안은 채 전백광의 맥문을 잡았다.
"현명패천장(玄冥覇天掌)!"
그것은 장무기를 이 년이나 한독에 떨게 만든 현명패천장(玄冥覇天掌)이었다.
본래 티무르부카는 장삼봉의 얼굴을 생각해서 전백광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세 번의 장력으로 어느 정도 내상을 입혀서 앞으로 감히 입을 놀릴 때, 신중하도록 벌을 내리자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허나 이 어리석은 것이 자신의 속도 모르고 필생의 진력을 담아 악독한 장력을 발출하니 괘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티무르부카는 자신의 장심으로 음한한 독기가 침투하는 것을 느끼고 장력에 내력을 더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공력을 배가시켰고 상대의 장력을 뚫지못한 현명패천장(玄冥覇天掌)의 음독은 오히려 전백광을 헤쳤다.
"태감… 태감… 이것은!"
장삼봉은 전후사정을 모르고 티무르부카가 현명패천장(玄冥覇天掌)을 펼친 것으로 오해했다.
그러고 보니 티무르부카의 생김새는 한족과는 달랐다.
한인이라기보다는 북방민족에 가까웠다.
이 년 전 송원교가 목격한 원흉은 오십세 가량의 콧날이 높고 눈이 움푹 패인 서역(西域) 사람 같았다고 했다.
흉수가 만약 티무르부카와 일문(一門)의 사람이라면 유연주가 일장에 깊은 내상을 입은 것도 설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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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화는 긴박감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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