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6)

in #kr-writing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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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6)

"멍청한 고려 놈들아. 멍청하다. 황제에게 딸이나 팔아먹는 더러운 놈들!"
그 말을 들은 몽고 병사들이 일제히 칼을 빼들었다.
고 공자도 금색 장포를 입은 젊은이도 더는 호가라는 말리지 않았다.
"고 공자, 이 정도면 자네 입장을 생각해서 많이 참아줬네만……. 저런 말을 듣고도 참는다면 어찌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내가 틀린 말했나? 딸 팔아서 호강하는 주제에 이젠 나라까지 팔아먹고 원수의 밑에 붙어서 앞잡이 노릇이나 하는 놈들이 사람인가!"
고 공자라는 소년은 이전과 다르게 말리거나 설득하지 않고 가만히 두 눈을 감은 채, 호가라는 젊은이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그것만 보아서는 그가 호가의 말을 듣는 것인지 아니면 홀로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보르후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칼을 휘둘렀다.
호가는 술이 만취해서 보르후의 칼이 자신의 가슴을 가르고 지나간 뒤에야 보르후의 공격을 맨손으로 막으려고 했다.
"나라의 원수. 부모의 원수. 내 목숨을 빼앗은 원수까지! 죽어 귀신이 되어서라도 갚아주마!"
그는 뒤로 쓰러지면서도 자신을 벤 보르후와 몽고 병사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갈라진 가슴은 쳐다보지도 않고 쓰러진 채로 몽고병사들에게 의자를 던졌다.
그가 한칼을 맞고도 목숨을 잃거나 사죄하지 않고 죽기 살기로 발악하니 몽고병사들의 눈에서 흉험한 기운이 솟아졌다.
보르후가 재차 넘어진 호가에게 칼을 내리치려했다.
원나라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지닌 장삼봉은 호가를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허나 무기에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손을 쓰지 못하고 망설였다.
하지만, 보르후의 칼날에 목숨을 잃게 생긴 호가를 보고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린 장삼봉은 양팔에 공력을 모아 대갈일성과 함께 쌍장을 뻗어냈다.
"이놈들! 썩 물러나지 못하겠느냐!"
장삼봉은 허공에 뜬 채 진산장(震山掌)을 무려 여덟 번이나 연거푸 펼쳐낸 장삼봉은 양팔을 펼치며 제운종(梯雲縱)신법을 전개해 사뿐히 쓰러진 호가의 앞에 내려섰다.
실로 불가사의할 정도로 빠른 신법이었다.
좌중에서 오직 금색전포의 사내만이 백발 도인의 신형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 다른 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쓰러졌다.
무려 열다섯에 이르는 병사들이 칼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모두가 심한 중상을 입어 쓰러진 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으나, 호가에게 손을 심하게 쓴 보르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는 진산장(震山掌)에 두 번이나 격증되어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다.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한 장삼봉은 고 공자라고 불리는 소년에게 물었다.
"자네는 곽정 대협과 어떤 관계인가?"

고춘기는 만취한 호안민의 비난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 사이에 담긴 뜻으로 비추어보아 여기가 어느 시점쯤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늙은 황제에게 딸을 팔아 호강한다는 말은 필시 고려에서 보낸 공녀가 원 조정에서 위세를 떨친다는 말이렷다?'
고춘기가 알기로 그런 사례는 원말의 기황후뿐이었다.
'원나라 말기라면 의천도룡기의 주 무대이긴 한데, 원이 망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가 없구나…….'
생각을 정리하고 눈을 떴을 때는 호안민은 이미 가슴이 갈라진 상태로 쓰러졌고 보르후는 다시 칼을 들어 더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못하게 아예 숨을 끊어놓으려고 했다.
호안민은 만취했지만, 병사 아홉 명의 진기를 흡취한 고춘기는 북명진기(北冥眞氣)가 힘을 얻어 쉽게 취하지 않았다.
멀쩡한 정신으로 취객의 욕설을 듣는 것은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죽던 말든 상관하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잠시라도 생사를 같이 한 사이에 그리 쉽사리 고개 돌리기는 어려웠다.
그가 막 보르후를 말리려는 순간 허공을 찢는 소리가 연달아 터졌고 보르후와 이금석 등 몽고 기병들이 피를 토하며 사방으로 너부러졌다.
어느새 호안민의 앞에는 우리보다 먼저 2층을 선점했던 호호백발의 할아버지가 서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내게 곽정과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그제야 그가 연위갑을 알아보고 곽정과 연관 지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뭐라고 대답해야 한단 말인가?
에디터 썼습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고…….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내 앞을 전백광이 막아섰다.
전백광은 이전에 몇 차례 무당의 제자들에게 쫓기면서 제운종(梯雲縱)신법이라든지 진산장(震山掌)을 견식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백발의 노인처럼 대단한 수준에 이른 자는 본 적이 없었다.
필시 무당에서도 손꼽히는 고수가 분명 할 텐데 감히 무례할 수 없었다.
"전백광이 오늘 무당의 고인을 뵙게 되어 실로 영광입니다. 무당의 진산장(震山掌)과 제운종(梯雲縱)신법이 왜 무림일절로 불리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평소의 그의 행실을 비추어보자면 상상하기 어려운 정중한 인사였다.
장삼봉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비록 근자에 무당의 이름이 강호에 퍼지긴 했으나 자신이 몇몇 제자에게만 전해 무당 내에서도 아는 이가 적은 진산장(震山掌)과 제운종(梯雲縱)신법이 아직 무림일절로 불리기엔 상당히 이른 감이 없지 않았다.
"그대는 어느 문하의 제자인가? 단 번에 진산장(震山掌)과 제운종(梯雲縱)신법을 알아보다니 어린 나이에 견식이 대단하군."
"제 스승님께선 무림에 이름을 알릴 정도로 대단하지 못해 말씀드려도 모르실 겁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후배 전백광이 도장님의 법호를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장삼봉은 앞서서 방탕한 모습을 보였던 전백광이 자신에게 매우 공손한 것을 보고 못마땅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장삼봉이라고 하오."
전백광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장삼봉은 후대에 신선으로 알려졌고 민간에선 그를 모시는 사당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전백광은 그제야 자신이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왔음을 실감했다.
더군다나 해마다 사부의 기일이면 장삼봉을 기리는 사당에서 사부의 넋을 기렸던 전백광이었으니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무, 무당산 장진인 이셨군요. 오늘 이렇듯 신선(神仙)님을 뵙게 되었으니 이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전백광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다.
그는 장삼봉이 정말 신선이라고 생각해오던 사람이다.
그를 대함에 있어서 돌아가신 사부보다 극진하게 예를 차렸다.
"소인 전백광의 절을 받으십시오."
장삼봉은 백년을 넘게 살았지만, 제자들을 제외하곤 이렇게 극진한 대접을 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노도는 단지 다른 사람보다 몇 살 더 산 것뿐인데 어찌 신선으로까지 칭호 받을 자격이 있겠소? 과례는 받을 수 없소."
소림에서 문전박대 당한 뒤 지워버린 줄 알았던 서운함이 싹 가셨다.
'비록 소림이 무림에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지만, 소림 방장 공문대사도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은 없을 것이다.'
장삼봉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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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때 이미 구전이었으니까 장삼봉을 직접 본다면 당연히 감격하겠죠. 고증에 따르면 후대에도 장삼봉을 지칭하는 도사가 몇차례 등장합니다. 내가권에 대한 민간전승은 외세에 대한 반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도 하고요.

태극권을 누가 만들었냐에 대해 두 가지 주장이 있다고 하네요.
하나는 장삼봉, 다른 하나는 다른 누군가라는데 장삼봉이 만들었다는 주장이 힘이 약하다고 합니다.
김용은 장삼봉이 태극권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쪽 사람이고 본인도 태극권을 익혔다고 합니다.
그쪽 계열인거죠.
그래서 자기 글에서 장삼봉이 태극권을 만든 것으로 그렸다고 하네요.

태극권 기원에 대한 현재 정설은 양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청나라 말기 전까지는 태극권이라는 명칭이 없었거든요. 양로선이 처음 북경에서 무명을 떨칠때는 면권(부드러운 권법)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고 하네요. 후대에 무술철학이 더해지면서 태극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장삼봉은 기록에 따르면 내가권이라는 무술을 만들었다는데 저는 외세에 대한 반감으로 토속종교인 도교기반의 판타지를 민간에서 창작해낸 것으로 봅니다.

김용 도 태극권을 익혔다고 합니다.
그의 태극권파가 양로선을 부정하고 장삼봉이 태극권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장삼봉이 태극권을 만든 것으로 그렸다는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이것도 몰랐던 사실이네요. 전 태극권을 직접 배웠다는 정도까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작중에 무당장권에 대한 묘사를 보면 실제하는 북방계 기술의 수풀이와 유사한 것을 보고 막연히 그쪽 계통이 아닐까 추측만 했었습니다.

수풀이까지...
저보다 더 깊이 있게 즐기는 당신.
진정한 무협 독자십니다!

태조장권 계통은 명나라 때 것이 아직도 권보가 남아있습니다. 그 후에 파생된 것을 추적해보면 태극권에서도 주요 기술이 이어진 흔적이 나옵니다. 동일한 계통 기술인데 시대상(전술상황)에 따라 메소드가 발현되는 모습이 다른 점이 재미있죠

이런 내용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즐겁네요.
소요님 감사합니다 ㅎㅎ
글을 쓰지만, 그보다 먼저 저는 무협 독자니까요.
태조장권을 무협지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이 당태조가 만들고 군대에 보급했던 보편적인 태조장권을 익혔는데, 극 후반까지 태조장권을 사용해서 강호인들이 경시하던 태조장권으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해서 놀랐던 장면이 기억나네요.
요새 '삼재검법', '육합권'등이 그런 하찮은 무공을 대표했는데, 실제로 존재했던 무공을 도입해서 그런지 매우 설정이 구체적이고 풍부해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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