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28)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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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28)

전백광의 능글능글한 말투와는 달리 그의 발걸음은 정말 기이하도록 빨랐다.
순식간에 멸절사태를 향해 짓쳐 들어가는 전백광의 위세는 사뭇 대단했다.
그의 미친 칼바람은 당장 멸절사태를 천참만륙해버릴 것 같았다.
멸절사태는 당황하지 않고 의천검을 검집 째로 들어 전백광의 가슴을 향해 뻗었다.
전백광은 의천검이 천하명검이라는 소리를 듣고 사뭇 경계하였으나, 검집에서 뽑지도 않은 검을 두려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막 전백광의 도와 멸절사태의 검집이 부딪치려는 찰나 전백광의 미친 칼바람이 자취를 감췄다.
미친 칼바람뿐만 아니라 전백광의 신형도 사라져버렸다.
마치 땅으로 꺼진 듯 사라져버려 장내의 누구도 그의 신형이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멸절사태 또한 마찬가지였다.
찍!
멸절사태는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듣자마자 쳐다보지도 않고 겁짐을 등 뒤로 휘둘렀다.
종이 찢어지는 듯 한 소리와 함께 전백광의 칼끝이 한 뼘이나 잘려나갔다.
전백광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천하의 명검이라지만, 검을 뽑지도 않았는데 칼날을 종이처럼 가르다니!
당황했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신형은 그야말로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며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튀어나왔다.
처음엔 예의주시하던 멸절사태는 전백광의 신형이 너무 빨라 쫒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내력이 심후한 그녀는 곧 그의 칼바람소리를 어렵지 않게 잡아냈다.
멸절사태는 그보다 먼저 그가 나타날 방향을 향해 검집을 휘둘렀다.
전백광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전혀 놀라지 않고 아주 유연하게 검집을 피했다.
그의 몸짓은 매우 유연해서 마치 아지랑이 같았다.
멸절사태의 날카로운 검술을 마치 뼈가 없는 것처럼 유연하게 피하고 휙 사라지고 다시 갑작스럽게 나타나 그녀의 눈을 돌리게 한 뒤 다시 휙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멸절사태는 이런 식으로 싸움을 이끌어가고 싶지 않았다.
당장 승부를 보려는 마음에 결국, 그녀는 의천검을 뽑아들었다.
순간 그녀의 검에서 한기와 더불어 싸늘한 검빛이 번쩍이는데 흡사 번개와도 같았다.
그녀는 전백광이 나타나길 기다리지 않고 그의 칼바람소리를 따라갔다.
멸절사태의 몸이 한 번 꿈틀거릴 때마다 전백광의 신형을 따라잡았다.
그녀가 좌우로 휘두르며 밀고나갈 때마다 전백광은 어렵지 않게 의천검을 피해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의천검과 그의 간격은 줄어들었다.
한독을 극복하며 상당부분의 공력을 상실한 전백광은 그 대가로 얻은 지극히 음랭한 기운 덕분에 한층 더 재빠른 신법과 유연한 움직임을 선보일 수 있었으나 내력이 부족하여 점차 그 한계가 드러났다.
대결초반에 그의 신형을 뒤따를 엄두도 내지 못했던 멸절사태가 이제 그의 꼬리를 물고 달려들 수 있었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위기를 느낀 전백광이 두어 번 칼을 휘둘러 막았으나, 그의 칼은 아무런 저항 없이 잘려나가더니 이내 손잡이만 남아버렸다.
순간 의천검이 전백광의 지척을 지나는 것을 보자 멀리서 지켜보던 고춘기가 달려들었다.
'두려운 것은 두려운 것이고 방관하면 전백광이 죽는다.'
고춘기는 두려운 마음과 자신을 분리하려고 애를 썼다.
의천검과 도룡보도가 현철중검을 녹여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고춘기는 현철중검을 검집에 넣지 못했다.
위험한 순간에 적어도 한 번은 의천검을 막아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따다다땅!
쉴 새 없이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아직도 멸절사태가 두려운 고춘기는 그녀에게서 삼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연신 왼손을 튕겨냈다.
멸절사태는 정신없이 고춘기의 점화지(點花指)를 막아냈다.
그녀는 매번 의천검을 때리는 고춘기의 고강한 내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정민군과 정현, 정허사태의 공력을 흡수한 고춘기의 내력은 멸절사태를 위협할만한 수준이었다.
멸절사태는 점화지(點花指)를 막을 때마다 의천검을 쥔 손이 떨어져나갈 것처럼 아팠다.
전백광은 고춘기의 반대편에서 멸절사태를 위협했으나 손잡이 밖에 남지 않은 칼은 그녀에게 위협이 될 수 없었다.
사실, 손잡이만 남은 칼을 제외하더라도 그의 내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속도가 확연하게 떨어졌다.
그런 속도로 감히 의천검이 난무하는 멸절사태의 검세 속으로 뛰어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멸절사태는 이내 전백광의 상황을 알아채고 고춘기에게 전력을 집중했다.
그녀가 다시 서너 번 점화지(點花指)를 막아내자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멸절사태는 앞으로 고춘기의 점화지(點花指)를 스무 번 이상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이제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승부를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고춘기는 그녀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하고 왼손을 세 번 튕겨냈다.
멸절사태는 전력을 다해 고춘기에게 짓쳐들었다.
그녀는 이전처럼 일일이 의천검을 들어 점화지(點花指)를 막지 않았다.
기묘한 보법을 펼쳐 순식간에 거리를 주파한 멸절사태의 왼쪽 옆구리와 어깨는 살이 한 움큼이나 떨어져 나갔고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가슴부분의 옷은 떨어져나가서 맨살을 드러냈다.
상당한 부상과 치욕을 참아낸 멸절사태는 이윽고 고춘기의 바로 앞에 당도했다.
고춘기는 매우 당황했다.
그녀가 이렇게 독한 마음을 먹고 부상을 입더라도 그를 베겠다고 달려들지는 몰랐다.
그의 경험부족이 이렇게 드러났다.
강호에서 이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았으나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과제였다.
멸절사태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는 한편 당황한 고춘기가 엉겁결에 들어 올린 구십 센티 가량의 검푸른 검과 그의 목을 함께 베어버렸다.

고춘기는 황급히 현철중검에 모든 내력을 넣었다.
'제발 한 번만 버텨라.'
깡!
귀청을 찢을 듯 한 소리가 울렸다.
검푸른 검과 함께 고춘기의 목까지 날려버릴 줄 알았던 의천검은 부러져버렸고 현철중검은 멀쩡했다.
검과 함께 목이 잘려나갈 줄만 알았던 멸절사태는 오히려 자신의 의천검이 동강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멸절사태가 부러진 의천검을 보고 놀라는 사이 고춘기는 왼손을 쉴 새 없이 튕겨냈다.
예의 목미륵반가상(木彌勒半跏像)이라는 점혈수법이었다.
멸절사태는 아미구양공을 익혀 내력이 비범했으나, 고춘기가 본래 지니고 있던 소무상공의 공력과 정민군, 정현, 정허사태의 내력이 합쳐진 막대한 공력으로 펼쳐지는 목미륵반가상(木彌勒半跏像)이라는 고명한 점혈수법을 튕겨낼 정도는 아니었다.
기실 멸절사태가 의천검이 부러진 것을 보고 놀란 것은 부러진 검신에서 비급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미파의 개파조사인 곽양 때부터 그토록 찾기를 원하던 도룡보도와 의천검을 맞부딪쳐 얻으려했던 곽정과 황룡이 남긴 절세비급이었다.
본래 도룡보도와 의천검은 서로 맞부딪치면 두 도검이 모두 부러져 그 안의 비급을 꺼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도룡보도도 아니고 심지어 날도 서지 않은 것 같은 검에 부딪혔다고 의천검이 부러져버릴 줄은 몰랐다.
만약, 의천검에 그런 사연이 없었더라면 대결 중에 검이 부러졌다고 멸절사태가 크게 놀라 멈칫하는 실수를 했을 리가 없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고춘기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의천검이 현철중검을 녹여 만들었다지만, 천하에서 제일가는 장인이 날을 세워 그야말로 날카로운 칼조차 두부처럼 베어내는 예기를 선보였다.
그런 검을 검술이 고명하기로 이름 높다는 멸절사태가 들었으니, 아직 현철검법이 경지에 오르지 못한 자신이 현철중검을 들었다 고해서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진 못했던 것이다.
그는 의천검의 부러진 검신에서 비급을 주워 얼른 품에 넣었다.
그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 리 없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곽정과 황룡, 황약사가 개정한 구음진경(九陰眞經)과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 외에도 수많은 무공들이 집대성되어있을 것이다.
떠올려보면 곽정과 황룡이 익힌 무공들이 얼마나 다양했었나?
이런 무학보전이 욕심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위선자다.
고춘기는 위선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재물을 보고 의를 떠올리는 군자도 아니었다.
그는 전백광과 약속했듯이 소인으로써 본분을 다했다.
"아미파의 손님들께서는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고춘기가 왼손은 멸절사태의 손목을 잡고 다른 손에 현철중검을 치켜든 채 위협하자 아미파 사람들 중 누구도 함부로 날뛰지 못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간바타르 등 아홉 명의 부하들은 아미파 제자들에게 활을 겨누며 그들을 둥글게 포위했다.
"무기를 버리면 해치지 않을 것이오!"
아미파 최고고수 세 명이 이미 사로잡혔는데, 그들이 버틸 재간은 없었다.
다행히도 유혈사태 없이 아미파 제자들이 무기를 내려놓은 덕분에 손쉽게 장내를 정리할 수 있었다.
목미륵반가상(木彌勒半跏像)에 당해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세 사람의 혈도를 해혈해주고 아직 공력을 잃지 않은 사람들은 혈도를 제압한 뒤 각자 다른 건물에 모시도록 했다.
통째로 떨어져나간 대문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부천호(副千戶) 조정이라는 자가 이백에 달하는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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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잇에서 장르 소설 쓰시는분 찾기가 힘드네요
어떻게 검색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ㅠㅠ

그래서 그런지 편당 조회수가 10명도 안되네요.
스팀잇에서 장르소설 쓰시는 분...이.. 아마 없을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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