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5화 아가씨라니? (1)

in #kr-literature7 years ago (edited)

너에게로 가는 길.png
5화 아가씨라니? (1)

주문을 들은 종업원은 산흐춘처럼 작은 술병과 대접 두개를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내려놓더니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아마 그도 붉은 옷 개떼들이 논뚜렁깡패와 내게 보내는 시선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 같았다.
"어이! 점소이.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가져온 거야! 아예 단지 째로 가져와! 아니, 이건 놔두고."
그러자 자기 앞에 놓인 대접에 가득 따르더니 그대로 원샷 해버렸다.
'혼자 마시러 왔냐?'
건조한 벌판을 반나절이나 죽을 고생하며 따라왔더니 목구멍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나쁘지 않은 죽엽청이군. 동생도 한 잔 받게."
연둣빛을 띠는 술이 대접을 가득 채웠다.
가뜩이나 목마르던 차에 잘됐다 싶어서 주저앉고 들이켰다.
"끄아아~"
입안에 머금을 땐 단맛이 나더니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불을 지르는 게 아닌가?
"흐하하하! 동생이 술을 제대로 마시는 군."
논뚜렁깡패놈이 거침없이 원샷하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마셨더니 독주였다.
몇 번 마셔보지 않은 양주보다 더 독했다.
양주는 양주잔에다 얼음이라도 타서 마셨는데, 이렇게 독한 술을 스트레이트로 넘겼으니 당장 불이라도 뿜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종업원이 술을 단지 째 내왔다.
"일단 석잔 술로 하늘이 내린 신공과 신검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세."
이 때, 이미 탈진 상태에서 들이킨 독주로 인해서 술기운이 확 올라온 상태였다.
마른하늘의 날벼락도 유분수지 자고 일어나보니 황량한 벌판이고 옆에는 웬 미친놈이 뺨을 때리질 않나 무거운 칼을 들고 반나절동안 달리도록 똥개훈련을 시키질 않나.
참아도 너무 참았다.
화가 부글부글 끓던 차에 술을 권하니 더는 지고 들어가지 않겠다는 유치한 감정이 솟았다.
그가 따라 주는 대로 내리 석 잔을 연거푸 원샷했다.
그도 아무 말 없이 석 잔을 받아넘겼다.
독한 죽엽청을 넉 잔이나 마시자 하루 종일 두렵기만 했던 그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두렵지도 않은데 성낼 이유는 없다.
상대보다 먼저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상대에게 지고 들어가겠다는 무언의 표시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오늘 있었던 불편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따져 물어야겠다.
"내가 그대와 의형제를 맺었다는데, 그 이야기 좀 들어봅시다."
"응? 역시 동생은 술이 한잔 들어가야 호탕해지는군."
갑작스러운 반말에 언짢으려던 그는 고춘기의 당당한 태도에 오히려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사내라면 마땅히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제 저녁 노을이 질 때쯤이었지. 자네가 내 집 문을 두드렸네. 강호를 주유하는 유객인데 날이 저물어가니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겠냐는 거야. 세상 일을 피해 한가하게 사는 사람이라 내가 어떤 사람인 줄 모르고 문을 두드렸구나 싶었지만, 거절하지 않았네. 지난 삼년간 이 전백광의 집에 손님으로 찾아올 만큼 간 큰 사람은 없었지. 인근에서 나를 안다는 사람들은 우연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워 피하기에 급급했고 일부러 나를 찾아온 이들은 원수를 갚으러 왔거나 내 목을 잘라 강호에 이름을 날리고자하는 협사나부랭이 뿐이었네. 이들은 손님으로 칠 수 없지."
"뭣 때문에 그렇게 원수가 많이 생겼소?"
"어제도 자네는 그런 질문을 하더군. 기억이 나진 않겠지만, 그래도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라니 마음이 놓이네."
그는 나와 자신의 대접에 죽엽청을 가득 채우고 단번에 들이키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천하에 유명한 색마라네."
나도 그를 따라 대접을 비우고 이번엔 내가 그와 내 대접을 죽엽청으로 가득 채웠다.
"도대체 얼마나 들이대고 다녔으면 색마라는 소문이 그렇게 멀리까지 퍼졌소?"
그가 했던 것처럼 내 잔을 비우고 물었다.
그는 내 말을 듣더니 대답 없이 한참이나 웃어젖혔다.
식탁이 살짝 떨릴 정도로 크게 웃던 그는 대접을 비우곤 다시 두 대접을 다시 채우며 말을 이었다.
"역시 어제 자네가 했던 말이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네. 지난 십년간 강호를 떠돌면서 많은 사람과 만났고 원한도 쌓고 내 딴엔 은혜도 베풀었다고 생각하네. 이 중원 천지에 내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적다면 믿겠나? 그렇게 부지런히 돌아다녔으니 얼마나 많은 미인들을 만났겠나?"
"얼마나 많았소?"
"자네는 밥알을 세면서 식사하나?"
그의 겉모양을 봐서는 상당히 신빙성이 떨어졌지만, 굳이 따져 묻지 않았다.
이 정도야 남자들 술자리에선 약과 아닌가?
"그래, 술자리에서야 나도 김태희랑 아는 사이라고 치고 계속 해보쇼."
"아니, 정말이래도? 자네 내 말을 믿지 못하나?"
"아아, 믿어요. 믿으니까 계속 해봐요."
"크음~ 아무튼 많은 미인들은 만났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면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지."
"그런데요?"
"그러니까 나보고 색마라는 거야!"
"그게 다에요?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는데 대뜸 색마라고?"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같이 자자고 했네."
"그래서요?"
"그랬더니 나보고 색마라는 거야!"
"정말 그게 다에요?"
"이런 여자가 매일 집에서 나를 기다렸으면 좋겠다 싶을 때면 내 색시가 되어달라고 했네."
"그게 끝이에요?"
"이게 끝이네. 그랬더니 대뜸 나보고 색마라더군. 남자가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그렇게 큰 죄인가?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것도 죄냔 말일세!"
"그런 식으로 치면 세상에 호두 두알 차고 나온 놈들은 모두 색마겠네."
"흐하하하! 맞아! 자네 어제도 그런 말을 했어!"
"내 평생 나와 이렇게 뜻이 맞는 사내는 죽을 때까지 다시 보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네."
그리고 나를 향해 술대접을 들어올렸다.
나도 그를 향해 술대접을 들어 올려 짠하고 부딪혔다.
"그래서 나는 진정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났다고 자신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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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양우생과 고룡의 대화를 보는 것 같네요. 구독자 늘어나신것 같아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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