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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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13)

그가 이런 위험 속에서도 겨우 버티는 이유는 하나였다.
명문을 통해 들어간 그의 진기는 한 발짝도 못 움직이고 있었지만, 자신의 양강한 공력과 전백광의 한독(寒毒) 사이의 접전으로 중화된 진기는 점차 아래로 내려가 회음혈을 지나 올라가더니 기해혈 바로 아래에 위치한 석문혈에 이르러 자리를 잡은 것이다.
전백광은 뒤로는 장삼봉이 쏟아내는 양강공력(陽剛功力)과 한독(寒毒)의 싸움을 버텨야 했고 앞으로는 온몸의 차가운 기운이 가슴의 전중혈과 아랫배의 기해혈을 통해서 빠져나가며 몸의 중심이랄 수 있는 두 곳을 얼음덩이처럼 얼려버리는 고통을 이겨내야 했다.
다행히 세 사람의 지극한 노력이 통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정신이 맑아진 전백광은 사태를 관망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스스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애를 썼다.
그는 앞뒤로 고통 받는 와중에도 장삼봉과 한독(寒毒) 사이의 전쟁 부산물인 온유(溫柔)한 기운을 제어해서 자신의 중심을 지켜야했다.
그 또한 어려운 상황 중에서 위태로운 지경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의 한줄기 희망인 온유(溫柔)한 기운이 위치한 석문혈은 바로 아래로 고춘기가 한독(寒毒)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기해혈의 지척이었다.
점차 강력해지는 북명진기(北冥眞氣)의 흡입력에 맞서서 온유(溫柔)한 진기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온유(溫柔)한 진기를 대신해서 한독(寒毒)의 기운이 빨려나가지 않았더라면 전백광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티무르부카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소무상공(小無相功)을 소모해버렸다.
이런 식으로는 문제해결은 어렵다는 결론 하에 자신이 직접 전백광과 고춘기의 접점을 떼어버렸다.
하늘이 도우심인지 고춘기는 막대한 양의 소무상공(小無相功)의 유입에 집중하느라 전백광의 한독(寒毒)을 흡취하는 일에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다만, 이전에 흡취하던 습관의 관성을 따랐을 뿐이다.
전백광의 전중혈과 기해혈에서 고춘기의 두 엄지손가락이 떨어지자 그곳에선 멀어져가는 고춘기의 엄지손가락을 향해 두 가락 원뿔형 얼음조각이 자라났다.
녹색을 띄는 얼음조각은 왠지 섬뜩한 기운을 풍겼다.
고춘기의 손가락이 떨어진 것을 알고 나서야 장삼봉은 전백광의 명문혈에서 장심(掌心)을 떼고 주저 앉아버렸다.
그는 더는 한 문파의 종사라는 신분을 내세울 수 없을 만큼 지쳐버렸다.
티무르부카는 자신의 공력을 이할 가량을 소모하고 나서야 고춘기의 얼굴에서 녹기(綠氣)가 가라앉을 것을 보고 안심했다.
사실, 그는 현명패천장(玄冥覇天掌)의 한독(寒毒)을 대수롭지 않게 봤다.
그러나 고춘기의 병세를 완치시킨 것도 아니고 다만 누그러뜨렸을 뿐인데 이 할에 달하는 공력이 소모되자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자신이 경시했던 현명패천장(玄冥覇天掌)이 실은 실로 대단한 기공이었다.
그는 천하에 아직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신공절학이 많음을 실감했다.
티무르부카는 자신이 소모한 소무상공(小無相功)의 순수하고 고강한 공력(功力)이 고춘기의 몸 속 한독(寒毒)을 누그러뜨리고 소모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은 고춘기가 흡취한 한독(寒毒)은 이미 북명진기(北冥眞氣)에 융합되었고 한독(寒毒)화 되어버린 북명진기(北冥眞氣)를 정상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자신의 내력이 북명진기(北冥眞氣)화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고춘기의 바다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얼음산들이 둥둥 떠다녔으나 의식을 놓을 만큼 버겁지는 않았다.
고춘기는 그제야 멀쩡하게 맑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 때였다.
티무르부카는 이쯤하면 되었다고 생각했고 고춘기의 전중혈에서 장심(掌心)을 떼어내려고 했다.
순간 고춘기의 한독(寒毒) 섞인 내력이 티무르부카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고춘기는 순간적으로 이 상황을 파악했다.
몽롱한 와중에 티무르부카의 막대한 공력 중 이할 가량을 자신이 흡취했으나 아직도 자신의 북명진기(北冥眞氣)보다 몇 배나 많은 내력이 티무르부카의 몸속에 존재했다.
따지고 보자면 자신은 강이고 티무르부카가 바다인 셈이다.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북명신공(北冥神功)의 이치였다.
고춘기는 그제야 자신이 북명신공(北冥神功)에서 경계하라던 위험에 처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다급하긴 티무르부카도 마찬가지였다.
한독(寒毒)과 섞인 고춘기의 내력이 장심(掌心)을 타고 흘러들어왔을 때, 자신의 소무상공(小無相功)과 접전을 벌이던 한독(寒毒)이 끌려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티무르부카는 고춘기의 내력이 북명진기(北冥眞氣)인 줄 알리가 없었다.
티무르부카는 고춘기의 내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의 내력에 비해 미약하지만, 티무르부카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 또한 이종진기인 것이다.
이종진기의 침입은 자신을 안에서부터 침몰시킬 것이 분명했다.
티무르부카는 어렵게 북명진기(北冥眞氣)를 다시 고춘기의 몸으로 밀어내자 얼른 장심(掌心)을 떼어버렸다.
그로써 티무르부카는 앞으로 현명패천장(玄冥覇天掌)을 절대 경시할 수 없게 되었다.
고춘기는 티무르부카가 장심(掌心)을 떼고 나서야 눈을 떴다.
아찔한 상황이 티무르부카의 자기방어로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북명신공(北冥神功)의 위험성을 되새겨야했다.
천하에 다시없을 기공(奇功)이지만, 순간의 잘못이 모든 것을 뒤엎을 수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전백광의 안색은 옅은 녹기(綠氣)를 띄는 수준으로 좋아졌다.
한독(寒毒)을 받아들이면서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의형이고 나발이고 미친 짓을 했다고 후회하기도 했던 고춘기였으나, 고생 끝에 인고의 시간이 결실을 맺은 것을 보자 힘들었던 만큼 뿌듯함을 느꼈다.
"태감, 이제 형님을 살릴 수 있겠죠?"
티무르부카는 어리석은 판단으로 자신의 귀한 공력을 이 할이나 날려버린 고춘기가 밉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고춘기가 전백광에게 대했던 그 어리석은 행동을 자신에게도 베풀 것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래. 이제 살릴 수 있다."
바닥에 주저앉아 본인의 몸을 추스르기에 바빴던 장삼봉은 거무스름하게 변했던 전백광의 안색이 옅은 녹기를 띄는 장무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완화된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이 환관의 막강한 공력에 혀를 내둘렀다.

"허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태감. 무엇을 원하십니까?"
고춘기가 보기에 자신은 티무르부카에게 줄 것이 없고 그에게서 받고 싶은 것만 있었다.
"저 녀석이 앓는 병을 내가 직접 치료해 줄 수도 있으나 한독이 예상 외로 강해서 내 귀한 공력을 많이 소모해야한다."
고춘기는 도대체 무엇을 원하기에 이렇게 뜸을 들이나 싶었다.
"그러니 네가 치료해주면 어떻겠느냐?"
"제가 어떻게 형님을 치료한단 말입니까? 할 수 있다면 진작 하지 않았겠어요?"
"지금은 못하지만, 내게 사문의 비전신공을 배운다면 가능하다."
"가르쳐주시면 감사히 배우겠습니다."
고춘기는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티무르부카는 너무 쉽게 응낙하는 고춘기를 보고 왠지 맥이 탁 풀렸다.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허나 내게 사문의 비전을 배우려면 나를 사부로 모시고 앞으로 내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내 말대로 해야 한다. 그래도 하겠느냐?"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고춘기는 한걸음 물러나 가만히 상황을 되짚어봤다.
태감은 자신을 제자로 거두고 싶어 한다.
장삼봉도 불가능하다고 한 일을 티무르부카는 어렵지 않게 이 자리에서 해내보였다.
그가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제자가 되어 비전을 전수받는다면 전백광을 직접 치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백광은 이미 안색이 많이 좋아졌다.
현명이로에게 당한 장무기와 비교해도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장무기를 고칠 방법이야 두 가지나 있지 않은가?
그는 곤륜산맥 어딘가에서 장무기를 기다리는 능가경(稜伽經) 속 구양진경(九陽神功)과 호접곡의 접곡의선(蝶谷醫仙) 견사불구(見死不救) 호청우(胡靑牛)를 떠올렸다.
지금은 저렇게 거동도 불편한 상황이지만, 장차 천하를 오시할 고수가 될 장무기다.
소설 속에서 그가 걸었던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면 전백광의 병세도 호전되고 무위도 상당히 증진될 것이다.
태감의 제안을 받아들여 쉬운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것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니면 이전에 읽었던 장무기의 길을 따라 모험을 해볼 수도 있다.
비록 막연하지만, 거기에 무엇이 있는 줄 알고 작정하고 찾는다면 장무기의 기연이 자신에겐 필연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태감께서는 저를 노예로 부리시려는 겁니까? 아니면 제 자질을 알아보시고 제자로 들이시려는 겁니까?"
"그야 물론 제자로 들이려는 것이지."
"만약 저를 좋게 보시고 제자로 들이시려한다면 항상 고분고분하고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행하는 견마(犬馬)의 길을 걷는 제자는 얻지 못하실 겁니다. 다만, 스승이 가르치는 것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 열심을 다해 배우고 익혀 매번 스승이 놀랄만한 성취를 거두는 제자를 얻으실 수는 있습니다."
"좋아, 좋구나."
"허나, 만약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행하는 노예로 거두실 생각이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실 겁니다. 비록 의형의 목숨이 중요하다고는 하나, 형을 살리자고 제 목숨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고춘기의 대답을 듣는 장상봉은 크게 못마땅했다.
제자가 되기도 전에 사부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다니, 얼마나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인가.
자신이 펼친 검술을 이해하고 단박에 따라하는 영특함을 보고 생겼던 호감이 싹 가셨다.
"내가 어찌 네게 죽으라는 명령을 내리겠느냐?"
"저는 남의 명령에 죽고 사는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고춘기는 아버지의 바람에 이끌려 이리저리 끌려 다녔던 시간을 생각했다.
다시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장삼봉은 고춘기가 버르장머리는 없지만, 제법 남아의 기개는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평가를 재조정했다.
"그래, 그렇게 하자. 네가 말 한대로 그런 제자가 될 수 있겠느냐? 내 비록 환관이나 지닌 공부가 가볍지 않다. 정말 매번 나를 놀랠 자신이 있느냐?"
"예, 정말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제야 고춘기는 안심할 수 있었다.
사실, 쉬운 길을 놓고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나중에 시간은 남아도는데, 할 일은 없다면 그 때 유람삼아서 곤륜산맥을 구경하다 우연히 절벽 사이에서 동굴을 발견한다면 모르지만, 굳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를 자청하고 싶지는 않았다.
"동생, 잘했네. 잘했어. 만약 자네가 나를 위해 자신을 팔았다면 평생 원망했을 거야."
"형님, 이제 조금 괜찮습니까?"
전백광은 이미 혼자 서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나, 동생인 고춘기가 티무르부카 같은 고수 앞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이자 힘없이 주저앉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력을 다해 버텼다.
고춘기가 부축하자 그제야 못이기는 척 기댔다.
"사실, 서있을 기력도 없네. 진인. 괜찮으십니까?"
장삼봉은 그때까지도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진인. 괜찮으시다면 제게 모실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티무르부카는 은연중에 장삼봉을 존경하는 마음이 남아있었다.
"아니, 나는 괜찮소."
그러나, 강호에서 이름 높은 장삼봉이 원 황실의 환관에게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티무르부카도 그의 속내를 알아차렸으나 크게 안색을 일변하진 않았다.
환관에게 있어서 이런 정도의 인내는 일상생활이었다.
그러나 장삼봉을 향한 존경과 호감이 반감되었음은 분명했다.
'내가 환관이기 때문이리라…….'
육체적 결함으로 인해 환관들이 느끼는 열등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장삼봉은 본의 아니게 티무르부카의 열등감을 건드렸다.
"자르갈! 환자들을 나르고 사형과 그 의형을 모셔라!"
"충!"
이미 모란주루 밖은 몽고병사들과 고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몽고병사들이 상한 것도 일이었지만, 티무르부카는 조정에서 하남의 민심을 살피고 오라는 황명을 받은 어사였으니, 지방의 관료들이 엉덩이에 불이나지 않으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인 것이다.
환자들이 먼저 실려 내려갔고 고춘기와 전백광도 장삼봉에게 목례를 한 뒤 내려가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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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묘사된 것만 보고 곤륜산 뒤지다간 제명에 못죽겠죠. 주인공은 쉬운길로 갔지만 작품은 쉬운길로 안가는 점이 좋습니다. 게임상에 묘사된 치트키를 사용하여 진행됐으면 팬픽이 되버렸겠죠.

감사합니다 ㅎㅎ

네이버 맞팔 맞보팅 카페를 운영했던 운영자입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를 드리며 모든 잘못된 부분은 조치하였습니다. 잘못됨을 숙지하지 못함에 있어 사과드리고 짧지만 해명글 남깁니다. 꼭읽어주세요.. https://steemit.com/kr/@wjdtka915/3k6f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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