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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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외전

9화 궤도(詭道) (8)

티무르부카는 아주 어린 나이에 거세하는 바람에 그가 처음 원 황실에 입궐했을 때, 환관 중에 자신보다 어린 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나이가 어린 덕분에 어려서부터 어린 황족의 놀이상대가 되곤 했다.
다른 환관들이 처음엔 아주 힘든 일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팔자였다.
하지만, 때때로 어린 황족들은 그의 신체적 결함을 갖고 심하게 놀리곤 했다.
어떤 황자는 징그러운 괴물이라며 심하게 매질을 해대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남들에게 심하게 놀림 당했던 티무르부카에게 그와 같은 말은 사생결단을 내자는 말과 다름없었다.
전백광은 절대 꺼내지 말아야 할 말을 꺼낸 것이다.
장삼봉은 대경했다.
본래 그가 펼친 진산장(震山掌)은 대단한 위력은 없지만, 그 속엔 이유극강(以柔克剛)의 이치를 담겨있었다.
이번 격돌에서 장삼봉은 티무르부카의 장력에 담긴 순수하고 고강한 내공을 진산장(震山掌) 속에 담긴 이유극강(以柔克剛)의 이치로 풀어냈다.
그렇게 하고도 다 풀어내지 못해 세 걸음이나 물러나야했지만, 그 덕분에 내상을 입지 않고 상대의 무서운 장력을 털어냈다.
만약 자신이 상대의 강력한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을 정면으로 맞받아쳤다면 크게 내상을 입었을 것이 분명했다.
방금 전의 격돌을 떠올리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한데, 전백광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에 격장지계를 써서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려는 것이다.
티무르부카는 분노를 참지 않고 쏟아냈다.
그는 왼발을 한 발 내디뎠다.
이내 쌍장을 천천히 가슴 안쪽으로 당겨 내력을 끌어올리더니 번개처럼 출수했다.
"물러나게!"
전백광의 뒤에서 쌍장을 끌어당기는 티무르부카를 본 장삼봉은 크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양팔을 벌리고 제운종(梯雲縱) 신법을 발휘하여 날아오르더니 공중에서 다시 매처럼 떨어져내렸다.
장삼봉은 그 와중에 전백광의 어깨를 뒤로 밀어내며 티무르부카에게 쌍장을 뻗었다.
이 일장은 누가 봐도 전력을 다해 티무르부카를 쓰러뜨리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티무르부카는 갑작스레 내리꽂는 장삼봉의 장력을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황급히 오른발을 내디디며 쌍장을 위로 올려쳤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티무르부카는 두 걸음이나 물러났다.
이 일장은 무당장권 가운데 칠성수(七星手)란 초식이었다.
본래 무당장권(武當掌拳)은 오묘한 점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무당파의 입문무공이다.
그러나 무당권법은 옛날 각원대사가 읊은 구양진경 가운데 이유극강(以柔克剛)의 원리를 도입하여 자신의 센 힘으로 적을 상하게 하지 않고 적의 경력(勁力)을 되돌려 쳐서 이기는 방법을 추구했다.
상대가 강한 힘으로 공격할수록 되돌아 치는 반탄지력도 강해진다.
장삼봉은 티무르부카의 강력한 장력에 자신의 강력한 힘을 얹어 공격해서 대단한 효과를 보았다.
티무르부카는 심한 충격에 손과 팔이 마비되고 가슴의 기혈이 끓어올랐다.
만약 그가 몸을 보호하는 소무상공(小無相功)을 깊은 경지까지 익히지 않았더라면 크게 내상을 입을 뻔했다.
그는 장삼봉이 자신의 힘에 그의 힘까지 더해서 되돌려 친 것을 알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가 굳이 기황후에게 자청해서 황하의 범람과 기근실태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어사직함까지 받아서 연경에서 떠나 하남까지 내려온 것은 다른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삼십 년 간 그는 천하의 많은 무학을 배웠다.
그가 본래 무학기재이기도 했으나, 그가 익힌 소무상공(小無相功)이라는 신공의 도움이 컸다.
한 번이라도 견식한 무예는 그의 눈에 꿰뚫렸다.
어떤 이치를 담고 있는지, 내력운용법은 어떻고 호흡은 어찌 조절해야하는지 굳이 그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는 자유자재로 따라할 수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연경에 거주하면서 화북지방의 이름 높은 무예를 많이 섭렵했다.
허나 황하이남 무파들의 무예는 접할 기회가 적었다.
티무르부카가 하남에 오자마자 무예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장삼봉의 이유극강(以柔克剛)한 무예를 보자 신기하고 감탄하는 마음이 절로 일었다.
그는 장삼봉의 기이한 무공을 더 보고 싶었다.
티무르부카는 연이어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을 펼쳤다.
그는 더 많은 초수를 겨루고 싶은 마음에 장력에 7성 공력만을 실었다.
장삼풍은 칠성수(七星手)를 이용한 되받아치는 수법에 티무르부카가 손해를 보고 내상을 입어 전과 같은 내력을 펼치지 못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만약, 티무르부카가 몸을 보호하는 소무상공(小無相功) 같은 신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장삼풍의 예상처럼 내상을 입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장삼풍은 세상에 소무상공(小無相功)이라는 신공이 있다는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장삼풍이 생각하기에 비록 내상을 입기는 했지만, 평생 구경도 해보지 못한 고수를 마주하니 백세를 넘겼음에도 호승심이 절로 일었다.
향이 세대 탈 시간동안 그들은 각각 일천 초에 달하는 초식을 교환했다.
장삼풍은 무당파를 창파하고 나서는 누구와 겨룸에 있어서 단 한 번도 전력을 다해본 일이 없었다.
그의 전력을 받아낼 사람이 천하에 드물었기 때문이다.
오늘 그런 적수를 만났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그는 자신이 창안한 무예를 여감 없이 풀어냈다.
평생 이런 기회가 없었으니 앞으로도 다시 있을 거라는 기약할 수가 없었다.
진산장(震山掌)으로 시작한 장삼풍의 무학은 끝이 없이 쏟아져 나왔다.
쌍장을 허공에 연속적으로 휘젓는 면장(綿掌), 초식의 오묘함은 없으나 이유극강(以柔克剛)의 묘리가 담긴 삼십이세(三十二勢) 무당장권(武當掌拳) 그 외에도 호조수(虎爪手), 진천철장(震天鐵掌) 등 끊임없이 현묘한 초식은 하나하나가 극유(極柔)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티무르부카는 장삼봉이 어떻게든 그가 가진 재주를 하나하나 자기 앞에서 쓸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런 와중에도 천변만화로 변화하는 장삼봉의 다양한 권장을 오직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만으로 막아냈다.
평생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장삼풍은 칼을 뽑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무림지존(武林之尊) 보도도룡(寶刀屠龍)으로 시작하는 이십사자권법(二十四字拳法)을 풀어내자 티무르부카도 더는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만을 고수할 수 없었다.

티무르부카는 오른손의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가볍게 모아 한 송이 꽃처럼 둥글게 만들었다.
이윽고 얼굴에 미소를 띤 티무르부카는 왼손 다섯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모란주루 일대는 쇠를 두드리는 소리로 몸살을 알아야했다.
장삼봉의 검은 번번이 티무르부카의 몸에 닿지 못하고 항상 반 뼘 앞에서 튕겨져 나왔다.
티무르부카가 튕기는 손가락이 장삼봉이 찌르고 베는 칼날에 닿지도 않았는데, 장삼봉의 검은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를 내며 튕겨져 나갔다.
그것은 티무르부카가 의도한 것이었다.
티무르부카는 장삼봉과 수를 겨룰수록 그의 무공이 눈에 읽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대한 가까이까지 접근할 수 있게 허용한 뒤 장삼봉이 풀어내는 초식이 어떤 의도를 지녔는지 명확히 알고자했다.
허나 그도 감히 일대종사인 장삼봉의 칼끝이 자신의 반 뼘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용할 배짱은 없었다.
계속해서 목적을 이루지 못했으나, 장삼봉은 칼끝을 멈추지 않았다.
곧이어 십삼 초로 이루어져 매번 다른 동작으로 손목의 신문혈만을 노리는 신문십삼검(神門十三劍)에 이어 비단결처럼 유연하게 변한 검이 좌우로 휘어지며 검 끝이 어디를 노리는지 허와 실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지유검(繞指柔劍)을 마지막 칠십이 초까지 펼쳐내자 티무르부카는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티무르부카는 그제야 장삼봉이 펼쳐낸 다양한 무학이 한사람이 만든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장삼봉이 지금 펼치는 초식을 보고 다음 초식을 예견할 정도로 파악했으나 아는 체 하지 않고 수를 받아줬다.
이 백발백염의 노인이 펼치는 무공들은 수천초식이면서 이유극강(以柔克剛)이라는 하나의 이치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장삼봉은 순식간에 차례로 신묘한 검술들을 쏟아내더니 마지막으로 헌허도법(玄虛刀法)까지 펼쳤다.
이윽고 그의 검세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검술이 차례로 쏟아져 나왔다면 그 순간부터 장삼봉의 초식이 천변만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전에 펼쳤던 신문십삼검(神門十三劍) 중 일초로 티무르부카의 손목에 위치한 신문혈을 노리는 듯 했다.
돌연 일변하여 검 끝을 떨어 허공에 검화(劍花)를 떨쳐 시야를 돌리고 티무르부카의 복부를 노렸는데, 날카롭기가 비할 데 없었다.
그것은 백조조봉(白鳥朝鳳)의 초식이었다.
장삼봉의 검술은 신묘막측하게 변화했다.
이제 그가 펼치는 초식이 이전에 펼쳤던 검법과 같은 것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의 검은 때로는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움직여 눈을 현혹시키기도 했고 때로는 너무 느려서 한 번 칼을 뻗어 티무르부카의 지법에 튕겨나갈 때까지 삼십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지루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수천 초를 겨루는 와중에도 장삼풍은 신선의 풍모를 잃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장삼봉만 따로 떼어놓고 봤다면 마치 제자들에게 검법을 시연하는 줄 착각할 법도 했다.
그만큼 그는 시종일관 고아하고 진중한 자태를 벗어버리지 않았다.
티무르부카 또한 여유를 잃지 않았다.
간간히 장삼봉의 검법에 감탄하고 때로는 당혹스러워하기도 했으나 대결 전반에 걸쳐서 입가에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게다가 왼손가락을 튕겨내는 중간에 오른손으로 형상화한 꽃에 이슬이라도 묻은 듯 조심스럽게 털어내곤 했다.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칼끝이 마침내 제 자리로 돌아갔다.
장삼봉은 몸을 숙여 읍을 했다.
"귀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데 대하여 사의를 표합니다."
그는 상대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진인(眞人)의 신묘한 검술에 감복하였습니다."
티무르부카 또한 몸을 숙여 읍하였다.
"귀하가 펼친 것이 혹 소림의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과 점화지(點花指)가 아닙니까?"
장삼봉은 티무르부카가 펼친 지법이 과거 소림에서 장경각의 책을 말리며 본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과 점화지(點花指) 이종절예와 매우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알기로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과 점화지(點花指) 모두 현 소림에서는 익힌 사람이 없다고 들었다.
"한 뿌리에서 나왔으나, 다른 꽃을 피웠지요."
티무르부카는 장삼봉과 무술을 겨루면서 감탄한 바가 적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제자들을 상하게 한 데 대한 화도 자연히 가라앉았다.
"진인의 검술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가히 일파를 개창해도 모자람이 없을 듯한데, 이 보잘 것 없는 환관이 진인의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티무르부카는 자신을 낮추고 장삼봉을 높이며 물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것이 습관이 되어 매우 자연스러웠다.
"무당의 장삼봉이오. 귀하의 존성대명을 듣고 싶소."
티무르부카는 평생을 고려와 화북지역 일대에 머무르느라 남쪽으로 내려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소림과 함께 무림의 태산북두라 칭해지는 무당파의 드높은 명성만 들어봤을 뿐 본 적은 없는데 이렇게 직접 대면하니 명성이 오히려 모자란 듯 했다.
또한 그렇게 이름 높은 사람이 자신을 무시하지 않고 띄워주자 내심 뿌듯했다.
"티무르부카라고 합니다."
그는 공손히 말했다.
"비록 무예에 있어서 자랑할 것은 없으나 쓸데없이 목숨 줄만 길어 백년을 사는 동안 그대와 같은 절륜한 무예를 지닌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소."
"부끄럽습니다. 수십 가지 절예를 창안하고 무당이라는 쟁쟁한 문파를 개창하신 장 진인에 비하겠습니까?"
"아니오. 그대는 진정 대단한 무예를 이룩했소. 아마 소림에서도 그대와 같이 높은 수준으로 점화지(點花指)와 대력금강장력(大力金剛掌力)을 익힌 사람은 없을 것이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노도가 무례를 범하더라도 한 가지 묻지 않을 수가 없소. 양해해 주실 수 있겠소?"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소인이 아는 바 내에서라면 무엇이든 답해드리겠습니다."
티무르부카는 무당의 절학들을 훔쳐 배워 매우 기분이 흡족했기에 장삼풍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대의 무예는 아마 천하에 적수를 찾기가 어려울 듯하오. 그런데 어찌 그런 고강한 무예를 지니고도 원의 환관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궁금하오."
"환관이 무예가 높아봐야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장삼봉은 괜한 것을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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