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소년 추방史] #40 의지의 표상
#40
의지의 표상
프랑스가 예상대로 극단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최소 한 달간 전면 봉쇄에 들어간다는 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하고 지역 간 이동도 금지된다. 집에서 밥 해먹을 수 있는 프랑스 사람들이야 봉쇄 조치에 집콕 생활로 버티겠지만 여행자인 나로선 완전 난감해질 상황인 것이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벨기에를 거쳐 브뤼셀 공항에서 항공편으로 스웨덴으로 넘어가는 교통편 예약을 마쳤다. 왜 스웨덴인가. 코로나 시국에 집단 면역 정책을 채택한 나라라는 것이 내 호기심을 이끌었다. 한국에선 스웨덴의 집단 면역 정책이 실패했다는 뉴스가 종종 흘러나왔지만 내 눈으로 직접 실상을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봉쇄 조치 같은 게 없으니 유럽에선 거의 유일하게 사회가 정상 작동하고 있을 터였다. 스웨덴의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세로 접어들었다는 소식도 내 행보를 멈춰세우진 못했다. 여하튼 이 시점에선 유럽에선 그나마 가장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있는 나라였다.
유럽 여행 내내 마치 뒤에서 쫓아오는 쓰나미처럼 코로나 조치들이 나를 따라다녔다. 스페인에서는 순례길의 나바라주 코스를 벗어나자마자 그 지역이 봉쇄됐고 리온도 봉쇄 조치를 피해 우회해야 했다.
불행히도 최승희 씨와는 만나자마자 이별하게 된 셈이다. 나는 떠나기 전날 그와 저녁을 먹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순례 여정을 끝내고 야심차게 약속을 지키러 왔지만 코로나는 또다시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인간의 계획은 또 한 번 불확실성의 구덩이에 처박히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재난이 의지까지 사멸시키는 건 아니다. 나는 최승희 씨에게 훗날을 기약했지만 그건 립서비스의 기약이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그가 하려고 하는 프로젝트에 힘을 보탤 것이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어도 의지를 포기해선 안 된다. 불확실한 자연의 위력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뭔가를 하겠다는 의지가 결국 인간을 진화시킨 원동력이 아니던가. 쇼펜하우어의 표현처럼 세계는 의지의 표상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전무후무한 상황을 직접 체험하는 이 여행이 내 인생에서 매우 특별한 순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낙천은 의지의 출발점이고 여행을 뜻하는 ‘Travel’이라는 영어 단어의 어원은 ‘고난’이다. 고단하지 않은 여행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적어도 풍성한 이야깃거리는 남는다.
_ written by 영화평론가 최광희 / @twentycentury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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