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소년 추방史] #14 그리움

in #stimcity3 years ago (edited)


그림1.png






#14

그리움





스페인의 론세스바예스까지 피레네 산맥을 넘어왔다. 비와 바람과 싸우며 24킬로미터를 오는동안 순례자는 딱 두 명 보았다. “부엔 까미노.” 순례자 인사를 한번 나누고는 10시간동안 줄곧 혼자였다. 사람 목소리가 그리울 정도였다. 드디어 론세스바예스로 접어드니 건물이 보인다. 인공물이 이토록 반가웠던 건 국경을 넘어서도 숲길만 족히 3시간 이상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아니 나란 놈은 이토록 간사하다. 사람과 도시 문명에 둘려싸였을 때는 자연의 품이 그립고 온전히 혼자인 채 10시간을 산맥 속을 걷다보니 사람과 도시가 그리운 것이다.



론세스바예스의 공립 알베르게에는 침대가 70여 개 있었는데 절반 이상이 비어있다. 순례길 비시즌이기도 하거니와 코로나 여파에서 여기도 예외가 아니다. 식당 직원이 내게 느닷없이 한국어 인사를 건넨다.



“안냐세요.”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이 많이 왔는데 코로나 이후 한국인을 보는 건 내가 처음이란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스페인 남자와 콜롬비아 남자와 동석했다. 우린 외롭고 추웠던 첫 일정에 대해 각자의 소회를 주고 받았다.



세비야에서 온 셀루는 말했다.



“오는 길에 아무도 없어서 나는 너무 좋았어요. 작년 9월에는 어딜가나 순례자들로 가득 찼거든요. 고즈넉하게 혼자 걷는 지금이 베스트 타이밍이에요. “



두번째 순례길이니 그는 적어도 이전 경험과 지금을 비교할 수 있다. 이전의 경험은 늘 판단의 기준을 형성한다. 그는 이전 순례길에 비해 지금의 장점을 보는 것인데, 거꾸로 사람과 도시 숲에서 온 나는 지금이 너무 외롭다.



알베르게의 아침이 오고 잠에서 깨라는 듯 클래식 음악이 도미토리에 장중하게 흐른다. 순례자들은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오늘도 비가 온다. 내일도 올 것이다. 또 내일도.





_ written by 영화평론가 최광희 / @twentycenturyboy


20세기소년 추천사
#01 안갯속의 여행자
#02 분실
#03 근대 정신
#04 가짜 뉴스
#05 충동위로
#06 자유의 일상성
#07 민중의 사고방식과 언어
#08 시민 의식
#09 여행자의 눈
#10 고향
#11 용기
#12 인연
#13 메타포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2
JST 0.028
BTC 64833.23
ETH 3558.77
USDT 1.00
SBD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