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소년 추방史] #08 시민 의식

in #stimcity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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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시민 의식





파리에 있으니 다양한 사람들이 말을 걸어온다. 가장 흔한 경우는 ‘선생님, 담배 한 대 주세요.’ 멀쩡하게 생긴 젊은이들이 담배 구걸을 한다. ‘없어요.’ 거짓말을 한다. 이유는? 담배 한 갑에 1만 4천 원인데 주겠니? 그다음은 불 좀 빌립시다. 돈 드는 것 아니니 흔쾌히 빌려준다. 관광 명소에 가면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이것저것 조악한 기념품을 팔며 호객 행위를 한다. 최악은 삐끼형이다. 손목에 실로 만든 팔찌를 채워주겠다며 접근해 결국 돈을 달라고 한다. 이건 21년 전 이탈리아에서 경험이 있어 아예 얼씬도 못 하게 한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이런 모든 말 걸기는 성가시다. 그러나 이것도 그 사회를 이해하는 자료가 된다. 어떤 말을 걸어오느냐보다 중요한 건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다. 무엇보다 나는 프랑스 사회를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마스크 제대로 쓰세요.'라는 충고질을 당한 적이 없다. 한국에선 오지랖 넓고 초딩 수준의 질서 의식에 충만해 타인의 자유를 옥죄는 것에 대해 일말의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동료 시민들로부터 일상적으로 당한 일이다. 그들은 사회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입증이 안 되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걱정하는 것이다. 그걸 사회를 걱정하는 어른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게 시민 의식의 왜곡된 개념을 일상화하는 언론이다.



시민 의식이란 무엇인가. 신뢰에 입각한 연대다. 그 연대 의식으로부터 타인의 자유에 대한 관용이 나온다. 관용은 배려와 동전의 양면이다. 두 가지가 맞물리는 것이 성숙한 시민 사회다. 그러나 한국은 다름에 대한 관용 없이 일방적으로 주류적 질서에 자신의 취향과 입장을 맞출 것, 즉 자신을 포기하고 배려할 것을 강제한다. 그런 것은 시민 의식이 아니라 파시즘이라고 보는 게 맞다. 시민 의식을 가장한 주류적 강제가 사회를 지배할 때 불행의 총량이 커진다. 자살률 세계 1위는 그래서다.



한국에 있을 때 코로나보다 더 공포스러웠던 건 동료 시민들이 좀비가 아닌 이들을 무차별 공격하는 좀비로 변하는 모습이었다.





_ written by 영화평론가 최광희 / @twentycentury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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