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소년 추방史] #26 불쌍한 표정

in #stimcity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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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불쌍한 표정





서부의 평원 같은 곳의 허름한 호스텔에 체크인하고, 필경 투숙객은 나 하나 뿐일 것 같은 곳에서 저녁을 먹자니 말은 안통하고 주변에 식당은 없고 완전 사면초가다. 종일 먹은 거라곤 브런치로 먹은 오믈렛이 전부라 뱃속이 난리다.

꿋꿋하게 스페인어만 하는 점원에게 난감하고도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이니 못이긴듯 저녁 메뉴를 종이에 써 내민다. 그거 보면 내가 아냐? 쫌만 기둘려, 하고 급히 번역기를 돌렸고, 그나마 번역이 되는 두 가지 음식을 시켰다. 빠에야와 구운 치킨.

그런데 이 친구는 시계를 툭툭 치며 뭐라뭐라 한다. 알아 짜식아. 지금 시켜도 8시 이후에나 먹을 수 있단 얘기란 거. 그 정도는 나도 스페인 짬밥 열이틀이라 눈치 생겼어. 늬들이 뭐 언제 배고픈 식객의 사정을 봐주든?

파리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 고수의 충고가 떠오른다. 말이 안통해도 먹을 수 있다. 당신이 불쌍한 표정만 장착할 수 있다면.





_ written by 영화평론가 최광희 / @twentycentury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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