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소년 추방史] #13 메타포
#13
메타포
생장의 가게들은 태반이 문을 닫았다. 코로나 여파로 순례자들이 급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나는 어제 짐을 풀고 난 뒤 담배를 사러 마을을 한참 돌아다녔지만 실패했다. 마을의 유일한 담배 판매점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결국 아침을 먹다가 스위스에서 온 젊은 순례자에게 담배 두 개비를 2유로 주고 샀다. 한 개비는 아침 먹고 피우고 나머지 한 개비는 산을 넘어 스페인 국경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아껴두기로 한다. 6시간만 참자.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물자가 없어서라니 처음부터 참 흥미로운 고행이다. 비가 퍼붓는다. 판초 우의를 덮는다. 나폴레옹이 걸었던 길을 따라 피레네산맥을 넘으러 길을 나선다. Hit the road!
비바람 속 끊임없이 이어지는 피레네의 오르막을 오르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 길을 왜 걸으려 했는가. 그리고 지금 왜 걷고 있는가. 문득 머릿속에 메타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렇다. 길은 인생의 메타포다. 길이라는 단어 자체가 인생을 비유하는 데 자주 쓰인다.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며 험한 길이 있고 잘 포장된 도로도 있다. 때론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로 접어들어야 하고 때론 길을 잃고 해매기도 한다. 그게 삶이라는 여정이다. 지금 내가 걷고자 하는 순례 여정이 그런 메타포적 요소들을 갖추고 나를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의 초입에서 내가 터득할 이치는 섣부르다. 아직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고 그 무엇도 자신할 수 없는, 그저 머릿속에 맴도는 관념적 메타포일 뿐이다.
_ written by 영화평론가 최광희 / @twentycentury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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