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소년 추방史] #33 목적지

in #stimcity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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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목적지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시내 외곽의 비교적 저렴한 호텔에 짐을 부렸다. 도착한 날은 시내를 어슬렁거렸다. 안드레스에게는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 말한 날보다 하루 먼저 왔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의 일정에 차질이 생기거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착 첫날은 시내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산티아고 대성당도 눈도장을 찍었다. 내년에 무슨 큰 행사가 있어 대규모 개보수 공사중이었다. 몇몇 순례자들이 성당 앞 광장에서 여기까지 무사히 도착한 걸 서로 축하해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산티아고까지의 도보 여행에 상당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는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한 명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고 알려진 곳이다. 안드레스는 순례길에서 그게 순 뻥이라고 말해주었다. 야고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죽었겠냐며 그건 중세기 산티아고 주교의 마케팅 전략이었다고 일갈했다. 유럽을 기독교 사상의 이데올로기로 통합 지배하기를 원했던 교황은 아마도 산티아고 주교의 아이디어에 무릎을 쳤을 것이다. 실제로 산티아고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유럽은 순례길에서 탄생했다.”



아무튼 뻥이든 진실이든 사람들은 전설에 빙의되기를 좋아하고 유럽인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도착한 걸 두고 감격들 하고 서로 포옹하고 난리 부르스다.



나는 아니다. 나는 종교인도 아니고 예수의 12제자가 각각 어디에서 생물학적 수명을 다했는지 일말의 관심이 없다. 다만 이 길을 걸어보기로 그냥 작심했을 뿐이다. 걸어온 과정 속에 나의 목적지가 숨어 있었다. 그걸 찾으려고 여기 서둘러 왔다. 내 목적지는, 사람이다.





_ written by 영화평론가 최광희 / @twentycentury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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