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소년 추방史] #05 충동위로

in #stimcity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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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충동위로





오르세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데 저녁 무렵 파리 시내에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나는 근처 카페를 향해 급히 몸을 피했다. 목도 축일 겸 생맥주를 시켰다. 맥주를 마시는 사이 비가 잦아들어 10유로 지폐 한 장을 점원에게 건넸다. 점원은 거스름돈 대신 계산서를 영수증 삼아 내밀었다.



10유로! 헉! 맥주 한 잔에 10유로? 1만 4천 원이라고?



도심이라 확실히 물가가 비싸구나, 혀를 끌끌 차며 거리로 나섰다.



가난한 여행자는 돈을 지불하는 순간마다 고민에 빠진다. 가지고 온 현금을 전대에서 꺼낼 때마다 예산이 곧 바닥을 드러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그래서 점심은 웬만하면 슈퍼마켓에서 파는 즉석요리로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나도 가끔 와인과 어우러진 프랑스 음식을 먹는 호사를 누리고 싶기도 하다. 스시집을 지나칠 때면 거리에 내걸린 메뉴와 가격을 보며 침만 꼴깍 삼킨다.



한때 나는 여행지에서 돈을 너무 많이 아끼는 바람에 동행한 이의 짜증을 유발하곤 했다.



“그거 꼭 필요해?”



늘 그런 질문을 던지며 구두쇠 예산 집행자의 권위를 세우다 동행인과 대판 싸우고 여행 기분을 잡치기 일쑤였던 것이다.



태어나서 이렇게 오래, 이렇게 먼 곳에서 혼자 여행을 하게 된 건 처음이다. 검약할 것인가, 약간의 사치를 허락할 것인가는 오로지 나의 판단에 달렸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여행 첫날 잃어버린 재킷을 사러 옷집에 들렀다. 재킷만 사면 그만일 터에 트레킹 바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나는 충동구매를 하고 말았다.



나는 생각했다. 이러다 여행 일정의 중반도 안 돼 샌드위치만 먹게 생겼군. 그 생각이 스스로 측은해 또 와인 한 잔에 파스타를 저녁으로 사 먹으며 나를 위로하고 20유로를 지불했다. 아니 와인 두 잔.



이래저래 나는, 나란 놈에게는 검약이 잘 안 되는 게 탈이다.





_ written by 영화평론가 최광희 / @twentycentury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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