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25

in #kr-pen3 years ago


ⓒzzoya





  “어쩐 일이야?”
  “연락할 수단이 없잖아. 직접 보는 거 말곤.”
  수지 큐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얼굴로 몇 개의 단계를 단번에 뛰어넘었다. 내 질문의 의미를 이해 못 할 정도로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기에 굳이 그걸 지적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렇게 함으로써 다음에 이어갈 말이 궁색해지고 말았다. 나와의 관계를 다시 명확히 짚어 주는 건 피차 잔인한 일이다. 수지 큐도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대답은 다분히 의도적일 수밖에. 내 표정은 저절로 굳어졌다.

  “그렇게 인상 쓸 것까진 없잖아.”
  나는 못 들은 척하며 트럭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내 표정 하나하나에 반응할 게 뻔한 그 시선. 그걸 피하고 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파커 씨가 마셨던 잔을 치우며 물었다.
  “뭐 마실래?”
  이번에 못 들은 척한 건 수지 큐였다.
  “그동안 생각해 봤어. 그러니까, 네가 내 옆에 없는 동안.”

  나는 애먼 잔을 만지작거리며 잠자코 듣고 있었다. 말라붙은 커피 거품이 하얀 도자기 안에 한 폭의 현대 미술을 실현하고 있었다. 목성의 줄무늬 같은 그 기묘한 얼룩에 내 기분은 저기압을 향해 침잠하기 시작했다.
  “우리 인연이 이것으로 끝일까, 이런 결말을 위해 그동안의 시간들이 필요했던 걸까…… 그런 생각들.”
  꽤 길게 이어질 주제였다. 내 생체 시계가 그녀의 등장이 임박했음을 알려 주었다. 피하면 피할수록 시간만 끌게 될 뿐이다. 나는 수지 큐를 향해 돌아섰다. 오늘따라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살짝 기운 태양과 흑발이 일으킨 착시 효과이리라. 불안한 눈동자가 나를 향해 흔들렸다.

  “난 우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그동안 살아온 시간이 널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믿었어. 그건 지금도 그래.”
  간절함이 담긴 불안한 눈동자가 나를 향해 흔들렸다.
  “그런 순간 느껴본 적 없니? 나와 함께 했을 때…….”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폭발할 수 있는 원천이 내재하고 있음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우는 아이 입막음을 위해 장난감 쥐여 주듯 할 수 있는 대답이 아니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아마 있을 것이다. 다만 잊어버렸을 뿐. 기억한다 해도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으리라. 그 속에 희망의 암시로 착각할 만한 요소가 하나라도 있다면 수지 큐는 단숨에 찾아낼 테니. 어쨌든 나는 답을 주어야만 했다.

  “늘 그랬어. 너와 함께 있을 때 진정 살아있다는 게 실감 났으니까. 하지만,”
  나는 헛된 희망이 싹틀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하지만’을 단숨에 붙였다. 하지만 그다음을 이을 적절한 말은 현격한 대비를 이루며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수지 큐는 초조한 기색으로 기다렸다. 그럴수록 내 입은 더 바싹 타들어 가서 꽉 막힌 발화의 분화구를 굳게 닫았다.

  그때 수지 큐의 어깨너머로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 눈동자는 한순간도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증명하며 즉각 그녀를 포착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내 미세한 움직임은 수지 큐에게 포착당했다. 고양이처럼 예민한 감각이 수지 큐를 뒤돌아보게 했다. 그녀를 본 순간 수지 큐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번에 이해한 것 같았다. 나를 향해 다시 돌아온 수지 큐의 눈동자는 순식간에 금이 간 채 싸늘한 증오를 투과했다. 나는 깊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쭙잖은 변명을 시작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내 생각이 중요하긴 하니?”
  이글거리는 눈빛이라는 게 무엇인지 수지 큐에게서 처음 알았다. 수지 큐는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돌아서더니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기 시작했다. 파괴적인 본능을 자극받은 소행성처럼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나는 그저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 같았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다르게 수지 큐는 그녀의 곁을 스치듯 지나 시청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무슨 일이에요? 저분 꽤 화나 보이던데.”
  커피 트럭이 드리운 그늘 밑으로 들어온 그녀가 내게 물었다.
  “약간의 컴플레인이 있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고작 그거였다. 처음부터 전 여자친구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건 얼간이 같은 남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녀에게나 수지 큐에게나 그건 예의가 아니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그녀가 물었다. 표정과 말투로 보아 큰 기대는 안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애써 감춘 것인지도. 나는 수지 큐를 눈으로 좇았다. 퓨마처럼 층계참 위에서 이쪽을 내려다보는 수지 큐……. 그건 내 착각이었다. 수지 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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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감상&잡담

저 상황에서 당황하지않다니.. 프로군요

그냥 바보 아닐까요...?

그냥바보아닐까요ㅋㅋㅋㅋㅋ 빵터졌네요

이런.. 민망하지 않게.. 프로(바보) 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빵 터졌어요.

아...이 글에서 보이지 않는 남자가 떠오르네요. 이름이 릭이었던가...

아니 릭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세요?ㅋㅋㅋ

그 놈이 소설을 여기까지 끌고 왔잖아요. ㅎㅎㅎ

제대로 꼴값을 떤 놈이라 ㅋㅋ

그래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습니다. ㅎㅎㅎ

나쁜남자군! 그냥 전여친이라고 쿨하게 말하지도 못할거면서...!

오늘은 수지 큐가 아니라 긴장 큐네요.

진짜 퓨마처럼 쳐다보았다고?
하고는 바로 아아~~했어요;;

삼자대면이군요!! 둘다놓치지 않으려면, 확실하게 행동해줘야할텐데요

약간의 컴플레인이군요. 수정해 줄 수 없는... 잭은 수지 큐를 생각보다 잘 알지 못 하는 느낌이네요.
잭 바보...

저런 바보가 없습니다...

양다리는 피곤한 건데요. 즐기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벌써 전여친이라고 아예 단정짓는군요. 불쌍한 수지큐... 솔직히 현실에서 보면 분명히 나쁜놈인데 왜이리 매력있지? ㅋㅋ 나쁜남자 싫어하는데 난 ㅋㅋㅋ

두여자 사이의 남자라
아슬아슬한 시간인가요?
슈지큐 ! 큐만 빼면 갖고싶은 이름이예요 ㅎ

그녀가 과연 모르고 물어본걸까요? 여자의 직감이란 빛보다도 빠른데~

아.....불편합니다...얼른 다음 글을 읽고싶어요..........!!

흑. 오래 기달렸습니다. 오늘 김장감 최고네요 ㅎㅎ

오늘은 완전 영화의 한 장면이네요!
머리속에 생생히 그려집니다...

아, 수지 큐...

남자 입장에선 간담이 서늘한 장면이네요. 제가 다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ㅎ

완결나면 정주행할곱니다
그때까지 save

그건 안 보겠단 얘긴뎈ㅋㅋㅋ 100회는 가야 완결될 거 같은데요.

그럼 ㅋㅋ물떠놓고 기다리겠습니다ㅋㅋㅋ

잘못해쎠여 읽을께여

아니 작은 하마에 맞먹는 무공의 소유자께서 왜 갑자기 태세 전환을...? 뭡니까 ㄷㄷ

다시 돌아온 잭의 이야기로군요. 그리고 김작가님의 프로필 사진도 파랑으로 바뀌었구요.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도 궁금하지만 그만큼 김작가님의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제 이야기는 가끔 올릴 일기를 참고해 주세요 ㅋㅋ

오랜만에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소설 속에 빠져듭니다
그와 수지큐는 같이 있으면 살아 있다고 느끼는 운명적인 관계지만
살아 있는 동안 서로 지속적으로 사랑의 열매를 확인하고 소통과 배려의 나무처럼 동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김 작가 샘♡

쌤 건강하시죠? 지속적인 확인과 소통과 배려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실감합니다.

잭은 여자 복이 많은것같습니다
그것도 모두 잭 보다 수준이 높아보여요
혹시 하고 들어왔는데 반가웠어요 ^^

전 운동경기를 볼 때도 언제나 지고 잇는 팀을 응원하거든요.
수지큐에게 마음이 가는 것도 그런 심리일까요?
아무튼 잭 나빠요..ㅠㅠ

저도 지고 있는 팀 응원합니다!

돌아와서 반갑다, 잭!
근데 반갑다고 하기엔 참 난감한 상황이로군.

오랜만에 돌아왔네요. 기다렸어요.
하지만 첫 줄부터 기억이 안나서 24회 다시 읽고 왔어요. 허허허.

바람직합니다. 감사합니다 :)

수지큐... 불쌍 ...

김작가님은 고급지게 디테일합니다.

[끽연실] 트위터

미세 먼지 불평한 게 어제인데 말이죠.

그러니까요. 폐에 무리가 되니 피하세요...

음? 피할 수 있나요? 태양을 피하겠다던 모 청년이 떠오릅니다...

와~ 드디어 소설로 돌아오셨다~!!
만쉐이~!!

만만쉐이!! ㅋㅋ

만만만쉐이!!ㅋㅋ

ㅋㅋㅋㅋ >_<
아 요즘은 정말 스팀잇 덕분에 잠깐씩 웃네요 ㅎㅎㅎ

제이미님 최고!

사실 이 노래를 들은 건 수지 큐라는 이름을 짓고 나서 한참 뒤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던 분위기가 아니더군요. 그 충격으로 이름을 바꿀까 했지만 '이름 자체는' 잡아둔 이미지에는 딱인지라 결국 그대로 남았죠.

어쩐지...ㅋㅋ전개될수록 이 노래랑은 좀 이상한 조합인데? 생각했죠. 외국에서 라디오 등으로 흘려들은 노랜데 몇 년 전에 우연히 본 니콜 키드먼 나오는 To die for이라는 구스 반 산트 영화에서 맷 딜런이 이거 불러서 떠올랐었죠.

오...듣다보니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수지 큐를 만난 느낌입니다.

오랜만에 찾은 끽연실이 복작복작 하네요^^
많은 분들이 잭을 기다리고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잭에 대한 소회는.. 저로서는 뭔가 멈춰있던 시간이 되돌아온 느낌이네요 ㅎㅎ
다음편을 벌써 외치면 너무한다고 하시겠죠?ㅋㅋ

나왔다 짹!!
오래 기다렸습니다..
꽤 쿨하게 가네요 수지큐

쿨하게 가는게 아니라 이글이글 화난거죠. ㅉㅉ 여자의 마음을 이렇게 모르다니

그래서 제가 연애 몇 번 못 해봤습니다...ㅠㅠ

중간부터 읽으니 따라가지질 않네요 ㅠ

응원합니다.

스팀에서는 소설도 있어요!
지인한테 그 얘기는 못 들었는데 인기글을 눌러보니 나오길래 한번 들어와 보았어 여.
24회까지 연재하셨군요.
와 대단하세요.
종종 놀러 올게요.
소설읽으러...

감사합니다. 부담될 땐 그냥 댓글 살롱에서만 놀다 가셔도 돼요.

잘 읽고 갑니다.
수지 큐. 매력있네요.

하지만 뒤에 나올 말은....ㅠ
뒷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사무실] 제보 및 문의

내 생각이 중요하긴 하니?

그저, 여기서 3분가량 II 상태...뚫어지게 응시했네요.ㅎ

잭!!!!!! 드디어 돌아 왔네요. 반가워요~^^~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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