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08

in #kr-pen6 years ago

별을본다_01.jpg

ⓒkim the writer









   한밤을 틈타 아무도 모르게 재활 치료실에 갔다. 걸음마를 떼기 위해서였다. 평행봉을 잡고 일어설 팔힘조차 부족했기에 안간힘을 써도 매트 위에 납작 엎드려 어기적어기적 기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다 큰 성인의 몸뚱이로 그 짓거리를 하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마음은 백주대로를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건만 현실은 엉기적거리는 게 다라니. 어디로 들어왔는지 모를 거미 한 마리가 두어 발짝 앞에서 기어가고 있었다. 진저리나게 싫은 놈. 해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동물이라고? 헛소리. 오늘에야 네놈에게 복수를 하는구나. 나는 남은 힘을 끌어모아 놈을 향해 비협조적인 몸뚱이를 끌고 갔다. 그래, 그 자리에 얌전히 있어라. 곧 하늘에서 전능한 힘이 내려와 네놈을 터뜨려 줄 테니. 거미는 가만히 있었다. 마치 내 심판을 기다리듯……. 마침내 내리치기만 하면 될 정도로 좁혀진 거리에서 나는 손을 치켜들었다. 거기 그대로 얌전히 있어라, 얌전히……? 거미는 내가 운동 신경에 신호를 보내려는 찰나 재빠르게 다리를 놀리며 도망쳤다.

   “젠장!”

   나는 주먹을 말아쥐고 빈 바닥을 힘없이 내리쳤다.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척이 등 뒤로 느껴졌다.

   “이런 노력은 남모르게 하는 게 아니에요.”

   수지 큐의 목소리였다. 몸을 뒤집을 힘조차 바닥난 나는 그대로 고개를 처박았다.

   “사람들은 볼썽사나운 걸 보지 않을 권리도 있어요.”

   문자만 놓고 보면 재치있는 대꾸겠지만 말투는 냉소와 자조와 불만의 교집합이었다. 수지 큐는 내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시야가 닿는 곳까지 걸어와 벽에 기대어 앉았다.

   “왜 그렇게 조바심을 내요? 원래 성격이 급한가 봐?”

   그 말에 어이없는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조바심이라니. 이 여자는 내가 여태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른단 말인가? 수지 큐는 아랑곳하는 기색 없이 말을 이었다.

   “다시 일어나는 건 기정사실인데. 설마 못 믿는 거예요, 나를?”
   “그걸 의심해 본 적은 없어요. 다만 짜증이 날 뿐이지.”
   “짜증 낸다고 될 일이면 안 말려요. 지금은 그저 날 믿고 차근차근…….”
   “20년 넘게 누워 있어 봤어요?”

   나는 유치한 말로 투덜거렸다. 내 입장의 반의 반의 반도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게 넌덜머리가 났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네.”

   수지 큐는 솔직하게 패배를 인정한 뒤 한참을 가만있었다. 나는 그대로 있기도 뭐해서 몸을 뒤집을까 말까 고민했다. 뒤집다가 안 되면 쪽팔릴 거 같았는데 그냥 있는 것도 매한가지였다. 막 시도를 하려는 찰나에 수지 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쟁 영화 좋아해요?”
   “몸값 비싼 배우들이 진창을 뛰고 구르는 걸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죠.”
   “전장에 있다고 생각해 봐요. 머리 위로는 총알이 빗발치고 있어요. 이곳을 벗어나 안전지대로 가려면 꽤 먼 거리를 기어가야 하는 거죠. 가다 보면 두 발로 일어설 수 있고, 더 가다 보면 뛸 수 있는 지대가 나오겠죠.”

   자리에서 일어난 수지 큐는 마치 준비한 거 같은 멘트를 막힘없이 쏟아냈다. 그 말을 곱씹고 나서 막 문을 나서려던 수지 큐의 등에 대고 물었다.

   “내가 앞으로 지미보다 20년을 더 산다 해도 그를 넘는 건 불가능하죠. 안 그래요?”

   수지 큐는 문가에 서서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제일 쉬운 것부터 넘어서 봐요.”

   그게 뭐냐는 얼굴로 쳐다보자 수지 큐가 말했다.

   “인내심. 그것만큼은 지금도 월등하지 않아요?”

   맞는 말이지만 쉽지 않았다. 방법을 모른달까. 단순히 참고 기다리는 게 인내가 아님을 알고 있을 뿐. 인내라는 건 이론을 배우고 추론으로 끌어낼 수 있는 덕목이 아니다. 인내야말로 그 무엇보다 경험의 힘이 필요한 영역이다. 20여 년을 시체 같은 몸에 갇혀 지낸 건 인내가 아니라 체념과 익숙함의 절묘한 조화 아니었을까.

   내게 인내라는 힘이 있는지 증명하기도 전에 정해진 순서처럼 두 발로 땅을 딛고 일어서는 날이 찾아왔다. 엄마는 또다시 기쁨의 눈물을 연신 훔쳤으나 다행히 이번에는 혼절하지 않았다. 지미는 팀원들과 기쁨을 나누면서도 당연한 일이라는 듯 담담한 태도를 보여 나를 분노케 했다. 나는 기적이라는 말로 내 노력을 대체하는 사람들에게 그때까지 부단하게 연습한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기를 선보였다. 의학의 도움을 받은 건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일컫는 기적을 행하는 주체와는 대면한 적이 없다. 한 사람이 흘린 땀을 그런 식으로 폄훼하는 소리를 참아줄 인내 따위는 내게 없었다.

   굳이 누군가와 공을 나눠야 한다면 그 사람은 단연코 수지 큐여야 한다. 그녀는 그때까지 내 옆에서 나를 부축해 주었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으켜 주었다. 가끔은 샤워할 때 아무도 모르게 도와주기도 했다. 그녀가 내 몸에 상흔처럼 남은 욕창의 흔적들 위로 부드러운 거품을 문질러줄 때 나는 묘한 흥분과 쾌감을 느꼈다.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수에게 주어진 달콤한 휴식 같달까. 그 시간에 일어난 일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물에 안 젖는 옷 따위는 그곳에 없었으므로 그때마다 그녀도 알몸이 되어야 했다. 그 몸에는 밖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정도에서 기대할 수 있는 만큼의 문신이 풍만한 몸의 곡률을 돋보이게 하며 화려하게 수 놓여 있었다. 그중 오른쪽 가슴 위에 앉은 해골 큐피드가 특히 내 눈길을 끌었다. 나는 그 녀석을 어디선가 본 거 같은 착각에 빠졌으나 곧 그 아래 상당한 부피감을 자랑하는 지방 덩어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만져보고 싶어요?”

   파란 눈동자를 빛내며 수지 큐가 말했다. 그래도 될까 싶은 의구심이 채 완전해지기도 전에 나는 이미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고 분홍색 돌출물을 정신없이 물고 빨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닌 것처럼 나는 그저 불가항력적인 본능에 몸을 맡겼다. 아래쪽에선 정해진 자극을 받은 형상기억합금처럼 불확실한 욕망이 곧게 자라났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처음으로 남자가 되는 경험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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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엇.. 시청각자료보다는 역시 상상이... 묘사를 잘하셔서 이건 뭐 상상까지도..ㅋㅋㅋ 소설 내용도 즐겁고 궁금한데 19금쪽으로 자꾸 제 집중이 분산되는게... 앞으론 더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다음 편 기대할게요 ^^

그건 집중 분산이 아니라 완전 집중 아닙니까ㅋㅋ

👀 .....(뜨끔)

힘을 내어 가운데 손가락 들기 ㅋㅋㅋㅋㅋㅋㅋ

저번화에서 텐트 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습니다.
제 베팅은 항상 망하는군요. 바로 한 화만에 수지 큐와 이런 일이 벌어질줄이야...
덕분에 좋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전 도박을 해선 안되는 사람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 인간 지표 등극ㅋㅋ 앞으로 해리슨님 반대로만 걸면 되겠군요!

이번에야 말로 수지큐에 몰입해도 되는군요!! 역시 훌륭한 작가님!ㅋ 독자의 니즈를 잘 아십니다~ 몹시도 인상적이고 섬세한 표현이었습니다~ 근데 다음편에서도 이어지나요?ㅋ

살짝만 이었습니다ㅋㅋ 차마 nsfw를 걸 수는 없기에...

크흡... 이 흡입력... 적절하게 끊기는... 19금 ... 크;

이 정도 수위는 요즘 15금도 안 되지 않나요ㅋㅋ

와.. 이 글을 이제야 봤습니다..

포스팅으로 연재소설을....

진심으로 존경의 댓글 남깁니다..

과분한 댓글을... 감사합니다!

글 끝으로 갈수록 너무 몰입해버렸어요..정주행 해야겠어요ㅎㅎ

정주행 감사합니다 :)

008 이라고 세자리식 표현이란... 역시 100회 이상을 생각하고 계신 걸까요? 대단하세요.

어떻게 될지 몰라서 항상 세 자리로 씁니다ㅋㅋ

19금인줄 모르고 읽었다가 마지막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었네요 ^^
다음편도 기대하고 오겠습니다 ^^

그게 사실 기대를 안 하고 봐야 더... 😅

아.. 그것이 포인트 ^^ 배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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