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13

in #kr-pen6 years ago

별을본다_03.jpg
ⓒkim the writer










   불과 얼마 전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일 수 없던 주제에 욕심이 끝도 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언제는 인간의 욕망에 끝이 있었던가. 나쁜 쪽으로 발휘되지만 않으면 욕망이야말로 개인을, 사회를, 문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 아닌가? 덧붙여 말하자면 욕망을 비우려는 마음조차도 하나의 욕망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그 욕망을 내 존재 의의를 찾는 데 모두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 내 정신은 나이에 비해 덜 자란 상태다. 의욕에 훨씬 못 미치는 의지로는 목표 설정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무엇을 해야 할지는 더더욱 몰랐다. 내게 어떤 목적지가 있다는 사실과 그걸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 분명한 건 그 둘뿐이었다. 당장은 가슴과 머리의 체증이 그곳에 도달하는 길을 막고 있었지만 나는 또렷이 인식하고 있었다. 내게는 사명이 있다. 운명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무엇이 내 삶에 있다.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은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북극성, 단지 그뿐이었다.

   그런 식의 우연에 기댄 태도는 초조감을 낳았다. 반복되는 일상도 초조감을 낳았다. 나는 곧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공부는 물론이고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수지 큐가 기분 전환 겸 여행을 가자며 계획을 세울 때도 피곤하기만 할 뿐이었다. 엄마와의 하루 한 번의 통화는 예민해진 감각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격이었다.

   “요즘 엄마한테 전화도 잘 안 드린다며.”
   약을 타러 센터에 간 날, 지미가 그런 말로 형 노릇을 하려 들었다. 공연히 내게 욕을 먹겠다는 심사였다.

   “그래서 뭐. 보증금 도로 내놓으라고?”

   지미는 내 의도적인 시비를 무시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웃음을 지었다.
   “알아서 잘할 거라 믿어. 너는 성인이니까.”

   그런 어른스러운 태도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지미의 안락의자에 몸을 푹 기대며 커피 테이블 위로 다리를 꼬았다.

   “그건 네가 믿고 안 믿고는 상관없는 문제야, 닥터 프랑켄슈타인.”
   "오케이, 오케이, 항복.”

   지미가 예의 그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들었다. 나는 한껏 거만해진 태도로 배 위에 있던 깍지를 머리 뒤로 옮겼다.

   “그래서, 할 말은 그거뿐?”
   “물론 아니지.”

   지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눈이 부신 탓인지 먼 곳을 보는 것인지, 창가에 선 지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창 너머로 시선을 고정했다.

   “죽을 병에라도 걸린 모양이군. 매독은 아닐 테고.”

   내가 혼자 낄낄거리자 지미가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너도 알다시피 곧 있으면 아버지 기일이잖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매일 같이 아버지를 떠올렸었다. 하늘이 푸르고 구름이 화사한 날에는 아버지가 다시는 이런 날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궂은 날도, 기쁜 날도, 슬픈 날도 모두 아버지를 생각할 구실이 되었다. 가끔은 꿈에서 아버지를 만나기도 했다. 한번은 아버지와 통화하는 꿈을 꾸었는데, 난 아버지가 계신 곳이 천국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었다. 엄마는 잘 지내느냐는 아버지의 말투는 대수롭지 않은 당연한 걸 묻는 듯했다. 마치 며칠 전에도 똑같이 물어본 것처럼…….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 내가 그런 꿈을 꾸었다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원래 꿈이란 무의식의 해방 내지는 조각 모음에서 빚어지는 환각에 불과하지 않은가. 내 정신을 환기시킨 건 그런 꿈이 아니었다. 수개월, 수년이 흐르면서 매일 하던 아버지 생각이 격일, 격월로 점차 뜸해졌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그리운 마음은 여전하나 인간은 원래 적응이 빠른 동물 아닌가. 나는 물론 엄마와 지미도 아버지 없는 삶에 너무 익숙해져 버리고 만 것이다.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뉘우쳐 본 적 있냐? 우리 삶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게 된 걸?”

   지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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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간에 풀어야 할 매듭이 좀 있네요. 사실 다른 누구보다 가족끼리 쌓인 앙금이 풀기 어렵지요. 형제가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나아가겠지요?^^

앙금은 팥 앙금인데 말이죠. 콩 한 쪽도 나눠먹어야 할 판에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흠.. 지미는 그저 광할한 우주의 신비에 숨을 토해내지 못했을뿐인데 그일로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아야 한다니..
안타깝네요. 저라면 그 음주운전자를 원망했을것 같네요

주인공 눈에는 지미가 별로 죄책감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나 봅니다.

문뜩 글을 다 읽고나니..
부모님한테 연락 드려야겠어요..:)

저도 생각난 김에 날이 밝는 대로 연락 드려야겠네요.

오늘밤은 별이 보였음 좋았을까요
운하수가 그리운 밤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는 잠깐의 여유가 있으셨길 바랍니다.

기다렸어요~ 근데 오늘 글은 너무 짧네요ㅜㅜ 그다음 글이 기다려져요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짧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 겁니다. 쿨럭...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뉘우쳐 본 적 있냐? 우리 삶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게 된 걸?”

지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운이 너무 남습니다ㆍㆍ
좋은 꿈 꾸세요!

늘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하늘이 푸르고 구름이 화사한 날에는 아버지가 다시는 이런 날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이 부분을 읽고 주인공이 생각보다 훨씬 성숙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아버지에 관련된 것이라 특히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보통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내가 더이상 그를 볼 수 없음' 에 더욱 슬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아버지의 존재뿐 아니라, 아버지의 삶조차 사랑했나봅니다..

정작 아버지는 이제 직장을 안 다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어? ㅋㅋㅋㅋ 아버지 그런 거였....

그런데 주인공이 아버지와 자신에게 가지는 연민을 지미한테는 너무 아끼네요. 비뚤어 진 것이 왠지 마음에 들지만 슬슬 지미가 짠.... ;ㅁ;

지미파가 늘고 있는 느낌적인 느낌...?

형제의 대화 씬이 이렇게 많이 나온 것은 처음인듯 하네요.
지미를 대할 때는 항상 말에 가시가 돋힌 것이 느껴집니다 ㅠ
그 또한 죄책감도 많을 겁니다...
둘이 함께 별을 보러 가는 여행을 떠나면서 형제애를 회복했으면 하네요

제대로 몰입해서 보고 계시군요. 최종적으로 삭제했는데, 원래 마지막 대사에 '가시 돋힌 말투였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해리슨님 어느 기숙사인가요. +5점 드립니다.

그리핀도르입니다! ㅋㅋㅋㅋ -

뭔가 답을 맞췄다는 기쁨보단, 작품과 호응하고 있다는 사실에 넘 좋네요! ㅎㅎ
여태껏 말아먹은 베팅을 다 보상받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가시 돋힌 말투였다'를 삭제한 것도 좋네요. 직접 알려주기보다 독자에게 더 여지를 주는...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당

그리핀도르 ㅋㅋㅋㅋ '가시돋힌 말투였다' 삭제에 저도 한표드립니다.

지금까지 잘 따라온 독자라면 주인공이 그런 투로 말했을 거란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더라구요.

오, 이건 작법 팁인가요?
구구절절 설명하지 말고 독자가 알게 하라.
적어놔야지.

오늘은 지미의 입장이 많이 궁금해지는 에피소드 였어요. 잘 읽었습니다!

애독 감사합니다. 지미의 입장도 들어야 하는데 주인공이 틈을 안 주네요.

나는 물론 엄마와 지미도 아버지 없는 삶에 너무 익숙해져 버리고 만 것이다.

누군가가 없어지면 그 순간에는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이 생각나는 횟수가 하루하루 줄어들고, 결국엔 아무 생각없이 사는 날들이 반복되더라구요. 글에 적으신 것처럼 익숙해지는거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불현듯 생각나는데.. 그럴때 많이 무너지네요.

부재에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에 또 익숙해지는 과정이 쉽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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