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14

in #kr-pen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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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the writer










   아버지의 육신은 새크라멘토 밸리 국립묘지에 묻혀 있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처음 받은 인상은 국립묘지답다는 것이었다. 푸른 잔디밭 위에 몰개성한 하얀 비석들이 오와 열을 맞춰 늘어서 있는 풍경은 묘한 조형미마저 엿보였다. 나는 전에도 언젠가 그런 감상을 품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찮아?”

   내가 우두커니 서 있는 게 아버지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수지 큐가 내 팔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최고지.”

   즐비한 비석들 사이를 이리저리 방황하던 바람이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듯 내 머리칼을 한 차례 쓸어넘기고 달아났다. 나는 발밑의 푹신한 감촉을 만끽하며 수지 큐에게 속닥거렸다.

   “간격이 조금만 가까웠으면 도미노도 가능할 텐데.”

   우리가 쿡쿡 웃자 뒤따라 오던 엄마가 헛기침으로 주의를 대신했다. 앞에서는 지미가 마침내 걸음을 멈추고 어느 비석 하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할당된 자리였다. 나를 대신해 수지 큐가 그 앞에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출발할 때부터 나는 그걸 두고 옥신각신해야 했다. 엄마가 아니라 수지 큐와. 이곳에 묻혀 있는 건 아버지가 생애 유용하게 썼던 유기질의 도구일 뿐이므로 헌화 따위는 불필요한 의식이다. 그런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그녀는 철부지 10대의 개똥철학 같은 소리 그만하라며 기어코 꽃을 사는데 돈을 낭비했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거야.”
   그녀가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런 게 부질없다면 거긴 왜 가는 건데?”

   적절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다시 일어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사후 세계가 있다면 벌써 봤을 테고, 아니라면 보여줄 대상이 없으니 갈 이유가 없다. 어느 쪽이든 어차피 그곳에 아버지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면 수지 큐의 말대로 엄마나 지미를 위해 가려는 걸까? 이유도 모른 채 나는 아버지의 비석 앞에 섰다.

   “아버지, 조니가 왔어요.”
   지미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엄마는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잭이라고.”

   나는 볼멘소리를 뱉었다. 어렸을 때 집에서 나는 조니, 제임스는 지미로 불렸다. 지미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짐이라는 애칭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감금증후군에서 풀려나면서 모두에게 앞으로 잭이라는 애칭을 공식적으로 쓰겠다고 선언했다. 잭으로 불리기를 바라는 이유는 단 하나다. 좀 더 강한 남성의 풍모가 느껴지기 때문에? 아니다. 그런 부분도 있긴 하지만 내게는 설명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불리는 게 내 마음속 어딘가에 강렬한 울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불려본 적도 없으면서 이미 그 느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와 지미는 한결같이 나를 조니로 부르며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이에게 넌 늘 조니였어.”

   엄마가 말했다. 가벼운 데자뷔가 일어났다. 고개를 흔들자 수지 큐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또 볼멘소리를 하려나 착각한 모양이다. 나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아까 내 머리를 쓸고 지나간 바람이 다시 날아와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도망쳤다. 나는 비석 위로 떨어지는 햇빛의 난반사에 눈을 찡그렸다. 세 사람은 묵념을 마치자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의례 그래야 한다는 듯이 나만 남겨둔 것이다. 나는 달리 할 게 없었다. 아버지의 육신이 누운 자리가 아버지를 대신한다고 볼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나는 그저 기억 속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으로 자리를 뜬 사람들의 수고에 보답했다. 산뜻한 머스크향과 따뜻한 담배 냄새와 부드럽게 울리는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으로…….

   돌아오는 길은 떠날 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그 때문인지 지미의 테슬라 뒷좌석에서 수지 큐가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전부터 혼자 들떠 있던 기분 전환용 여행에 관한 것이었다.

   “라스베이거스가 좋겠어. 돈 좀 따고 즐기다 보면 기분이 훨씬 나아질 거야.”

   글쎄.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막연하긴 하지만 내가 기다리는 건 그런 행운이 아니었다.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해 빚어지는 체증과 짜증만 부추길 뿐, 그녀의 제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반드시 잭팟이 터진다는 보장이 애초에 어디 있나.

   “그래, 한번 가 봐. 나도 대학 때 가 봤는데. 너도 알지, 조니.”
   “별로 내키지 않나 봐.”

   아무 말 없는 나를 보며 수지 큐가 단정 지었다. 나는 갑자기 속이 불편해졌다. 내 심리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눈치채주기를 바랐지만 막상 들키고 나니 어쩐지 부정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딱히 중요한 일도 없으면서 여자친구의 여행 제안을 거절하는 속 좁은 남자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런 상황이 오지 않게 처음부터 여행이니 뭐니 꺼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나는 그렇게 쪼잔한 생각을 하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렇다기보다 알다시피 내가 완전하지 않잖아, 아직은. 안 그래, 주치의 양반?”
   “그걸 아는 녀석이 더한 것도 하고 다니냐?”
   “더한 거?”

   지미는 대답대신 룸미러로 수지 큐를 흘깃 보았다. 그녀가 들어서는 안 될 말이었나 보다. 제 딴에는 카운터라고 날린 모양인데 때를 잘못 골랐다. 면박을 주려다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수지 큐가 말했다. 그 말은 내게 가벼운 데자뷔를 일으켰다.

   “인간은 완전해질 수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나 망가질 방법을 먼저 찾는 걸까. 그런 현상을 자연의 이치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자연의 이치는 말 그대로 자연이 부과한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을 말하니까. 자연스럽다는 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즉 가만히 두어도 일어나는 일을 말한다.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작용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반대 방향으로 일어나게 하기보다는 훨씬 쉽다. 식물이 빛을 받으면 무엇을 하는가? 광합성을 한다. 그 순간 광합성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위적인 힘이 필요하다. 별도의 수고가 들어간다는 말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린다. 인생은 인간이 서서히 망가져 가는 과정일 뿐이다. 인위적인 힘으로 그 과정을 붙잡고 틀어막고 갖은 애를 쓰지만 때로는 한순간에 앞당겨지기도 한다. 망가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언제나 쉽게 손닿는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완전해지기란 불가능하기에 차라리 망가지겠다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있는 게 아닐까. 물론 그런 상태를 극복하려고 의지를 불태우는 게 인간에게는 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중력이라는 자연의 법칙 때문에 땅에 붙박여 사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하늘로, 우주로 날아오를 수 있는 새로운 법칙을 찾아내는 것 또한 자연이 인간에게 부과한 이치 아닐까.

   아니면…… 어쩌면 이 모든 건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지 않을까. 애당초 자연은 의지가 없다. 법칙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자연의 이치란 사실 우연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는 처음부터 생명을 잉태하고 태어난 게 아니다. 지금의 자연과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지구는 이웃 행성처럼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었고 앞으로도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다. 지구는 태어나는 순간 사형 선고를 받았고 태양이라는 사형집행인 앞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진실은 이렇다. 우리는 그저 46억 년이라는 시간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지구에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가능성뿐이다. 어쩌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가능성. 지구, 그리고 지구를 낳은 우주가 가지고 있던 것은 그거 하나였다. 그렇다면 쇠락에 순응하는 것도, 쇠락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모두 자연스럽다. 처음부터 부자연스러운 일이란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 무슨 짓을 하든 무엇을 만들어내든 모두 처음부터 우주가 품고 있던 가능성에서 나온 것이기에.

   내가 나를 더 빨리 망가뜨릴 수 있는 유혹에 빠진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일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촉발되었다. 그런 일이라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계속













스티븐 호킹 박사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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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큐 넘나 착하네요

그러게요. 주인공에겐 과분한 듯...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싸 1빠.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가즈앗!

리스팀까지... 감사합니다! 스팀 스달 언제 가나요. 계속 밑으로 가는 느낌적인 느낌...

응원합니다. ^^

응원 감사합니다.

어쩌면 스티븐호킹박사님이 감금증후군같은
신체의 속박에서 끊임없는 생각을 하며
우주에 대한 깊이있는 업적을
이룩한게 아닌가 잠시 생각하게 만드네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생전에 화성 못 가신 게 안타깝습니다...

드디어 주인공의 이름이 나왔네요.
조니... 왠지 나약해 보이는 이름이기는 하네요.
지난 글에서 지미와 한바탕 말싸움이라도 벌어질 기세였는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지미의 이야기를 아직 듣지 못해 계속 궁금하네요.

신체적으론 같이 나이지만 형이 훨씬 어른스럽다 보니 싸움이 잘 안 붙네요.

아.... 안돼 줵..........................ㅠ

줵....! (타이타닉 버전으로 불러 봅니다)

와 작가님 제가 그 드립까지 칠려다가 실례가 될까 싶어 참았다구욬ㅋㅋㅋㅋㅋㅋ

ㅋㅋㅋ 이미 댓글에서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냥 실례를 무릅쓰려고 했는데... 작가님이 먼저 해버려서 당황...

철학적 내용이네요~ 저는 우주 이야기가 나오면 철학적이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가능성을 지닌 이야기가 쓰여질지 궁금해집니다~

맞습니다. 삶과 우주 이야기 나오면 대체로 철학적이죠.

외롭지 않으려고 조니는 별에 별 생각을 다했네요. 몇일 전 조니워커블랙이 생각납니다. 별 하나 보이네요 여기는. 근데 일인칭 작가 시점이였죠? 조니 이름 첨 들어봄...내가 몰랐나.

1인칭 주인공 시점... 이름 이번에 처음 나온 거 맞습니다. 화자의 이름을 몰라서 1회에서부터 다시 확인하고 오신 분들 많았죠.

1인칭 주인공 시점...개나 줘버려라고 쓰실 것 같다고 말하려다...ㅋㅋㅋ
그의 이름이 실검에 떴을 때 작가님의 이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떠나간 별에서는 외롭지 않기를

영혼이라는 게 있어서 우주 여행 마음껏 하셨으면 좋겠어요.

조니였군요. 까칠잭의 다음 행보가 무척 궁금해집니다. 여러번 나오는 데자뷔의 정체도 궁금하고.... 소설가들은 각 캐릭터에 빙의하는게 맞는거 같아요..ㅎㅎ

메소드 작법으로 썼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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