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04

in #kr6 years ago (edited)

별을본다_01.jpg

ⓒkim the writer









   의사는 내가 망가지기 전에 죽을 거라고 했다. 욕창이 생기고, 방심하는 순간 사지가 썩을 거라고 했다. 작은 감염이 치명타가 되어 생명을 빼앗을 거라고 했다. 물론 내게 직접 한 말은 아니다. 나는 그들이 엄마에게 하는 말을 어찌어찌 들었을 뿐이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결국 안 될 거라는 말을. 엄마는 고집이 센 양반답게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넉넉하게 받은 사고 보상금을 내 치료에 다 쏟아부었다. 사람을 몇이나 고용해 욕창이 생기지 않게 관리했다. 자동차 통풍 시트처럼 냉각팬이 달린 특수 침대도 동원됐다. 물리 치료사가 수시로 나를 움직였다. 그래도 욕창이 생기는 걸 아주 막을 수는 없었다. 안구 건조나 요로 감염도 어쩔 수 없었다. 성장은 하나 골밀도는 형편없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영혼은 구할 수 없었다. 쌍둥이지만 언제나 착하고 순진한 막내에 충실했던 내 자아는 미래로 달려갈수록 스스로 내면에서 우려낸 단 하나의 의문에 무너져 버렸다.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내가 일어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단순한 의문.

   내가 사춘기적 반항을 최대한 길게 끌어간 데 반해 지미는 일찍이 방황을 끝내고 어른들 취향에 딱 맞게 성장해 갔다. 상이란 상은 다 휩쓸고 전국적인 대회에서도 수차례 우승하는 등 일찍이 머리로 두각을 나타내더니 고등학교 땐 전교 회장에 교지 편집장에 이글 스카우트까지 해먹는 등 리더십도 증명했다. 대학 시절에는 조정 선수로까지 활약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데 범생이는 아닌, 잘 생기고 운동 잘하고 예의까지 바른 놈과 한집에 살며 비교당하는 일은 누구나 피해야 할 재앙이다. 물론 내 경우에는 힐책이 아닌 동정의 혀 차는 소리를 듣는다는 차이가 있지만.

   더 재수 없는 건 지미가 그 모두에 나를 끼워 팔았다는 데 있다. 동생을 위해서 동생의 몫까지- 그것이 지미의 선전 문구였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문구에 뭇 범인들이 열광한 걸 탓할 수는 없다. 어차피 사람들은 속도 모르면서 이러쿵저러쿵 남 얘기하는 걸 좋아하니까. 하지만 엄마까지 그 대열에 동참한 건 참을 수 없었다. 전후사연을 다 알면서 어떻게 지미를 대견히 여길 수 있단 말인가. 지미의 허약한 정신 때문에 희생당한 아버지와 나는 대체 뭐란 말인가. 아버지와 내 몫의 삶까지 짊어진 채 묵묵히 계단을 오르는 의연한 장남 이미지를 만들어서 무슨 만족을 얻으려 한단 말인가. 나는 지미를 빛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가? 정녕 그것이 전부인가? 내 존재 의의가? 그럴 것이다. 고작 살아있는 게 내가 생전에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 될 것이다. 물론이다. 지금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라는데 이 상태로 노인이 된다면 전설로 남겠지.

   나는 점점 비호감이 되었다. 괴팍하고 반항적이고 삐뚤어진,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지 못한 어정쩡한 존재. 모두 나를 싫어했다. 간호사에게 성적인 농담을 던지다가 소송당할 뻔하기도 했다. 눈 깜빡하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치고는 꽤 괄목할 성과 아닌가? 최근에는 그 대화 비슷한 것도 귀찮아져서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제외하고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덕분에 지미가 독립한 다음에는 처음으로 침묵의 미덕을 맛볼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대화에 불성실하게 응하는 걸 참지 못한 엄마가 격분하는 일이 많았다. 대꾸를 하고 싶어도 못해 답답한 쪽과 대꾸를 듣지 못해 답답한 쪽의 대결은 누가 더 유리할까? 더 고집불통인 쪽이 이긴다. 나는 그쪽으로 타고난 기질을 발휘했고 엄마는 결국 나를 고문하길 포기했다.

   엄마의 포기와는 반대로 지미는 끝내 나를 위한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 아, 그래, 나를 위한 약이란 말이지. 나를 위한……. 어떤 점에서는 갈채를 보낼 만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수도승처럼 의로운 한 길에 매진하다니. 병든 동생에게 할 만큼 했으니 이제 자신의 길을 간다 해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지미의 그런 미련함은 이미 예견된 바 있다. 10년 전쯤인가. 지미를 따라 보이 스카우트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따라간 게 아니라 끌려간 거지만. 지미는 내게 은하수를, 아버지와 함께 타호 호수로 관측 여행을 떠났을 때 봤던 그 은하수를 다시 한 번 보여 주고 싶어 했다. 물론 나 역시 그 은하수를 보고 싶었다. 다소 쌀쌀한 바람이 스치는 까만 밤, 나는 야전 침대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모든 모닥불이 꺼지고 사람이 만든 빛은 일절 허용되지 않은 시간, 별 무더기가 보이 스카우트 대원들과 대동한 의료진과 내 머리 위로 펼쳐졌다. 장관을 맞이한 감동을 채 느끼기도 전에 무언가 목을 타고 기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급히 누군가에게 내가 맞은 위기를 호소하고 싶었으나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심지어 기절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저 놈이 옷 속으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물고 다니는 걸 느껴야만 했다. 끔찍한 공포를 고스란히 맛보며 곧 패닉에 빠졌지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병원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을 때에야 비로소 내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드러났다. 독충에 물려 벌겋게 부은 자국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던 덕분이다. 불행히도 지미는 엄마에게 혼나지 않았다. 그 죄는 온통 의료진이 뒤집어썼다. 그럼에도 지미는 자신을 책망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의료진의 몫까지. 딱 그 한 번뿐이었다. 지미는 다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전보다 더욱 자랑스러운 엄마의 아들이 되었다.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믿음직한 장남이…….

   지미의 또 다른 미련한 점도 그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지미는 독립 전까지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고백은 엄청나게 많이 받은 거 같은데 내 앞에선 내색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내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였다. 움직일 수 없다는 비극을 그때 그 사건으로 똑똑히 목격한 트라우마쯤이리라.

   지미는 점점 내 인권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경험하는 걸 나도 경험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내게 공부 비슷한 걸 지속시킨 것도 지미의 아이디어다. 지미는 단순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그 방면의 전문가들을 불러야 마땅하다고 엄마를 설득했다.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애초에 자기가 경기를 일으키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될 일은 없었다. 지미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내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지미가 나를 위한 일에 좀 더 창의성을 발휘했더라면, 내 욕구불만에 대한 적절한 조치 그러니까 그쪽 방면의 전문가를 부를 생각도 했을 텐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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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입니까 사람입니까! 아무튼 감사합니다 :)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편안한 저녁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ip2yo님도 좋은 저녁 보내시길 바랍니다.

점점 빠져들게 되네요^^
하우스메이트에게 소리내어 읽어줬더니 재미있다고 합니다.

소리내어 읽어 주시기까지...! 감사합니다 :D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선뜻 댓글을 달 수가 없어지네요. 공감되면서도 안타까운 감정을 계속 느꼈습니다. 미워할 대상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저 같아도요.

가까운 누군가를 미워하는 인생은 본인도 남들도 힘들죠...

이세상에 어떤 엄마도 자기자식을 포기하지는 못할거라고 생각합니다
독충이 물어도 어찌할수없는 처지에 있으니얼마나 힘이들까요
형 지미에 행동은 누구를 위한 행동일까요
다른 사람이 보았을땐 동생을 위한 희생이지만 결국은 자기때문에
그렇게된 동생에대한 미안함 때문일까요
결국은 지미 자신을 위한 행동 일거라 생각 합니다
사람들에 모든 행동은 결국은 자신을 위해
자기마음 편할려고 하더라고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음편 기다릴께요 ^^

맞아요. 이타심조차도 결국 자기 만족이니까요. 오늘도 들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

흥미롭습니다. 다음 회가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

왠지 해피엔딩이 예상되는 ㅎㅎㅎㅎ
지미 미워하지 말라니까요~~~~~~~

삘이 오시나요? 개인적으로 해피엔딩 무척 좋아합니다.

제목의 의미를 오늘에서야 깨닫게 되네요. 별은 너무 멀지 않나요. 그래서 외로운가 봅니다. 찰리 채플린, 그의 한마디가 또 다시 이해가 되는 밤입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맞나요? 아니 반대인가... 별은 너무 멀긴 한데 그래야 아름답게 보일 겁니다. 가까이 가면 타 죽습니다. (진지)

맞네요. 모두가 별이라는 의미로 아는 그것들은 혼자 빛을 내지 않죠?맞나...태양이 별이라는...맞다고 해줘요.ㅠㅠ

좁은 의미에서 별=항성이 맞습니다. 위에 댓글도 좁은 의미로 썼습니다ㅋㅋ

츤데레 기질을 마구 보여주는 동생이네요.
겉으로 드러나는 독설뒤에 형의 선한의도를 다 꿰뚫고 있는 것이 여지 없는 쌍둥이네요. 어쩌면 안타까운 새드엔딩속에 잔잔한 해피엔딩의 결말이 예상되는 건 기분탓일까요? ^^ 흥미롭게 다음편 기대할게요!

해피나 새드가 아닌 새로운 엔딩에 배팅을 하셨군요 :D 감사합니다!

아이구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감정이입하게 될 줄..ㅜ,ㅜ 지미도 나름대로 주인공을 배려하면서 최선을 다해 온 것 같은데... 사람의 진심은 자주 왜곡되는 것 같아요. 이번 화를 읽고 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안도했어요. 지난 화까지 읽고는 사건이 엄청 빠르게 전개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오래 읽고 싶습니다ㅎ 잘 읽었어요^^

애플포스트님 오랜만에 뵙네요 :) 선의의 행동이 상대에겐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지요. 상대를 돕는다는 마음조차 그런 행위를 통한 자기만족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구요.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언제나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이야기는 꽤 오래 진행되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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