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06

in #kr-pen6 years ago

별을본다_01.jpg

ⓒkim the writer









   내 최종 동의로 치료는 결정났다. 지미는 마치 결정적인 대목에서 광고를 틀어버리는 돈독 오른 방송사처럼 치료를 다음날로 넘겼다. 기적의 신약 맛을 보려면 그날 밤을 거기서 보내야 했다. 20여 년을 병원에서 지낸 내게 그런 건 전혀 문제없었다. 다만 늘 그랬듯 의료진이 병실을 드나들며 내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느라 잠을 좀 설친 게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 그렇다고 그게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지미의 팀원 중 팔과 가슴과 목덜미에 가득 새긴 문신이 옷 언저리로 언뜻언뜻 보이는 흑발의 여자 때문이었다. 쌍둥이라더니 똑같이 생기진 않았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훨씬 잘 생겼다며 환자를 놓고 품평하는 그 여자의 이름은 수지 퀸이었다. 그렇다면 수지 큐라고 불리겠군. 내 예상은 적중했다.

   “일어나거든 그렇게 불러줘요. 목소리가 궁금하군요.”

   수지 큐의 말이 강렬한 데자뷔를 일으켰다. 인물, 그리고 상황 자체가 기묘할 정도로 낯설면서 친숙한 느낌을 자아냈기 때문일까. 당장은 수지 큐의 잡아먹을 듯 도발적인 눈빛, 윤기 도는 흑발, 풍만한 가슴과 온몸을 뒤덮은 문신의 조화를 신경 쓰느라 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수지 큐가 내 앞에 바싹 다가와 허리를 숙이고 눈을 맞추는 바람에 가슴골이 훤히 들여다보였기 때문이다. 누군가에는 다소 불량하게 보일 수 있는 외모지만 오랜 시간 누워 지낸 내게는 오히려 활력 넘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자기가 뭐 하는 사람인지 설명도 잊은 채 야생마 같은 흑발을 찰랑거리며 나가는 수지 큐를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여자와 한번 자보면 소원이 없겠노라고.

   그런 욕망이 내 머릿속에 가득한 줄도 모른 채 지미는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나타나 남들에게나 통할 순진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새로 태어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라나. 날씨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새로 태어난다는 말에도 동의할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이 결정적 기회가 허사로 돌아간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오히려 앞으로의 내 삶을 파괴하는 쪽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이런 것도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엄마가 받을 실망은? 그래도 끝까지 장남을 믿고 남은 시간을 지금까지처럼 버틸 수 있을까?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거냐고 묻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건 부질없는 물음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가정을 듣는다 해도 내 선택은 바뀌지 않을 것이며 어찌 되었든 물리적으로 변화는 없을 테니까. 난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을 것이며 지금처럼 엄마와 쌍둥이의 위상을 빛내주는 데 전혀 차질이 없을 테니까.

   의료진이 내게 이것저것을 주렁주렁 달았다. 지미가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모두 내 주의를 끌만큼 인상적이진 않았다. 나는 그저 수지 큐가 왜 안 보이는지 궁금했다. 거기에 관해 묻고 답할 겨를도 없이 마침내 결전의 시간이 왔다. 다 잘 될 거라고, 네 형은 단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지 않으냐며 엄마가 말했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그런 말로 내게 용기를 주려 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생각해보면 그건 나보다는 엄마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밀어내기 위해 수지 큐를 떠올렸다. 의료진용 하늘색 브이넥 티셔츠를 벗기고 화려한 문신 아래 자리 잡은 가슴을 감상했다. 그리고 더 아래 깊숙한 곳을……. 내 무의식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욕망이 음탕한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칠 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좋은 꿈을 꾸라는 지미의 말이 현실에서 들리는 건지 꿈에서 들리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어린 쌍둥이 형제가 서로를 잡기 위해 뱅글뱅글 돈다. 라일락 향 가득한 뒷마당 위로 금빛으로 물든 구름 떼가 사그라지는 태양을 향해 점점이 멀어져 간다.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어린 쌍둥이 형제가 가위바위보를…….
   엄마와 지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아주 긴 감정의 트랙을 오르락내리락했다는 걸 막연하게 깨달았을 즈음 나는 바싹 마르고 돌기가 죄다 일어난 혀를 움직였다. 줄곧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메마른 소리로 나는 말했다.



   “여기가 어디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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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왜 이름이 없죠.

억 저는 제가 기억 못하는 줄 알고 소심해서 못물어봤는데!

이 질문이 언제 나오나 했습니다.

@springfield 님 저도 제가 포스팅 어디선가 봤는데 기억못하는건가 했습니다 ㅋㅋㅋ 앞으론 질문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봐야겠어요..

엊저녁 삼겹살 먹고 배두드린다고 이제야 왔어요 ㅠㅠ 그래서 소리는 그러니까 그 말은 진짜 목소리인거죠? 어.떡.해!!!! 아궁아궁! 더이상 기다릴수없다!!!

금강산도 식후경. 냉면과 아이스크림도 드셔야죠ㅋㅋ 월요일에 뵈어요.

원래대로라면 끔찍이도 싫었을, 다음 근무일지에 위병조장이 있었으면 좋겠던 십여년 전의 날이 떠오르네요. 나는 운전병인데 왜 밤샘근무를 넣는 것인가 했지만...계속이라니 내린 스크롤이 너무 짧은 거 아닙니까!!!
그나저나 V의 날은 쓰고 계신 것인지...조심스럽게 여쭈옵니다.

여기서 더 길어지면 오히려 안 보시더라구요ㅋㅋㅋ
브이의 날은 다 썼습니다. 머릿속에서요... 이제 옮기기만 하면 되는데.... 되는데....ㅠㅠ

오 !!!그곳은 어디였을까요 !!! 아 다음편 ....

kr 커뮤니티...!

아~ 수지큐!! .......으로 끝내니까 현기증 나잖아요 ㅠ.ㅠ
그래서 오늘 내용이 뭐라는 건가요? 작가님 내용 한줄 요약좀..
수지큐밖에 기억이...

어? 제대로 읽으셨는데요. 수지큐 세 글자만 기억하시면 됩니다ㅋㅋㅋ

그럴거면 말줄임표 일곱개로 끝내는 건 무슨 경우에요!
작가님 너무 불성실 하십니다!

김형사 여기야!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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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깨어났다!! 주인공이 신약 투약하고 일어나는거 맞죠!!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은 한없이 원초적이네요. 투약전에 수지를 생각하다니...

엌ㅋㅋㅋ 이 짤은ㅋㅋㅋ 여기서 끝내면 되겠군요. 그동안 성원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 압도적 감사...!

이럴수가 여기서 끝내면 안됩니다아!!!(ㅋㅋㅋㅋㅋㅋㅋ)
연재 마치라고 장기 농성할 스티미언들 모집할 수도 있습니다.ㅎㅎㅎ

밖이 아직 춥지 않나요ㅋㅋㅋ 몇 분 안 계실 텐데... 여러분의 감기를 책임질 수 없으니 계속 올려야지요ㅋㅋ

첫회부터 다시 볼게요

수지큐 라는 이름에서

예전
수애씨 주연의 베트남 전쟁 영화
'님은 먼 곳에'에서 수애씨가 직접 부른
노래 '오 수지큐'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수애 씨도 불렀었군요. 옛날 원곡을 들어보고 '아.. 이런 이미지는 아닌데' 했었지만 이름이 주는 어감 등의 이유로 쓰게 되었습니다. 정주행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

아... 이렇게 끊어버리시면... 절단신공을 대성하셨군요... ㅠ
새로운 인물 수지 큐도 읽다보니 저절로 상상을 흠흠.. ㅎㅎㅎ

nod.gif

레드포드 아저씨도...

아, 이렇게 이곳에 소설을 쓰시는군요. 앞으로 계속 애독하겠습니다.

애독해 주시면 기쁘죠. 감사합니다 :)

수면내시경할때가 생각나요. 대기문제때문에 이틀이나 금식하고 초죽음의 상태에서 외부 진료실이 바쁜 풍경이었는데도 저혼자는 슬로우모션의 세계에 빠져든것 있죠. 주인공은 더 그랬겠죠? 그나저나 저긴 어딜까요?

이틀 금식이면 그 자체로 지옥 아닌가요ㄷㄷ 저도 응급실에 누워 본 적이 있어서 슬로우모션에 빠진다는 게 뭔지 알 것 같네요. 그리고 저기는 말이죠. 스팀잇 kr 커뮤니티... (저질개그 죄송합니다 여러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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